<어리바리주역> 19회-지택림, 군자가 세상에 임하는 법

봄날
2018-10-04 08:05
735

<어리바리 주역>은 고전공방 학인들의 주역 괘 글쓰기 연재물의 제목입니다.

그대로 어리바리한 학인들이 어리바리한 내용으로 글쓰기를 합니다형식도 내용도 문체도 제 각각인 채 말입니다.

하지만 압니까언젠가는 <주역>, 그 심오한 우주의 비의그 단 한 자락이라도 훔칠 수 있을지^^

군자가 세상에 임하는 방법



 봄날



지택림.jpg



지택림괘는 주역의
64괘 중 열 아홉 번째 괘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괘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주역의 모든 괘는 변화를 전제로 하고 있다. 또한 비록 괘 전체의 이미지나 의미가 좋다고 하더라도 각각의 효에 이르면 이렇게 효사의 뜻이 나쁜데 어떻게 괘는 길하다는 거지?’ 하는 의구심이 들만큼 괘사와 괘상, 효사 등등이 서로 모순되어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지택림괘처럼 괘사나 괘상, 효사가 모두 원만하고 따뜻해 보이는 괘는 별로 찾아볼 수 없다. 주역에서 상괘와 하괘, 혹은 각 효들이 조응하여 변화에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괘를 좋은 괘라고 한다면, 지택림괘만큼 좋은 괘는 없으리라.


 


굽어보려면 높은 곳에 있어야 한다


지택림괘의 ()’이라는 글자는 안요한 목사의 실화를 영화화한 <낮은 데로 임하소서>를 생각나게 한다. 실명이라는 육체적 고통을 계기로 빈곤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쓰려 한다는 예수의 뜻, ‘낮은 데로 임하는 신을 증거하는 성자의 삶이 주된 내용이다. 이때 임한다는 게 어떤 뜻일까? 한자의 뜻을 보니 임할 임이란다. 이래가지고는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다. 어떤 형상에서 비롯된 글자인지 금문자를 보니 높은 자리에서 아래를 굽어보는 형상을 하고 있다.



금문-지택림.jpg




누군가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그 아래에 있는 만물을 내려다보는 모양이다. 그냥 대충 보는 것이 아니라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이 미처 살피지 못한 부분이 없는지 섬세하게 관찰하는 모습이다. 이렇게 자세히 살피려면 우선 그 자리가 높은 곳에 위치해야 한다. 물리적인 위치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백성들은 굽어보는 것은 바로 군주나 임금처럼 높은 지위에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고 단순히 높은 자리에 있기만 하면 된다는 뜻이 아니다. 아니, 높은 자리에 있는 것 자체가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의 인물됨을 그대로 이야기해준다. 정당한 방법으로 높은 지위에 오르고 늘 한결같은 관대함으로 아랫사람을 다스리는 군자만이 굽어볼 수 있다. 이때의 굽어봄이, 어느 한 곳이라도, 어느 한 때라도 다스림의 풍요로운 효과가 미치지 않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사전적 의미로 보면 이라는 글자는 내려다 보다’ ‘낮은 데로 향하여 대하다’ ‘다스린다는 뜻이 있는가 하면 ‘(더 이상 틈이 없을 정도로)달라붙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상전의 풀이는 이렇다. “못 위에 땅이 있는 것이 림()이니, 군자가 그것을 본받아 가르치려는 생각이 끊임없고, 백성을 포용하여 보존함이 끝이 없다.”(澤上有地臨 君子以 敎思无窮 容保民无疆) 위의 괘가 땅()이고 아래 괘가 못()이다. 이것을 옛사람들은 땅속에 못이 있으니 그 못이 드러나지는 않지만 한없이 깊으며, 사람으로 치면 그 덕성의 따뜻함이 천하에 미치는 군자의 상으로 받아들였다. 이것은 마치 어미새가 자기 날개 밑에 올망졸망한 새끼들을 품고 있으면서 새끼 하나하나를 부리로 세심하게 살피는 모양과도 같고, 어진 정치를 펴는 군주가 자신 밑으로 몰려들어온 백성들을 받아들여 살피는 모양과도 같다. 그러니 지택림괘는 군자의 괘, 다스리는 역할을 맡은 인물의 덕성을 말하는 괘이다.



지택림01.jpg


 



기쁜 우리 사이


그렇다면 우리는 지택림괘의 여섯 효를 군자의 성장과정으로 풀어낼 수도 있지 않을까? 군자는 어떻게 군자가 되는가? 일단 첫 번째와 두 번째 효는 양효이다. 이 두 양효가 위로 올라가면서 점점 성장하는 기세를 지닌 것이 임괘이다. 두 효는 비록 어리지만 곧고 총명하여 그 하는 일이 이롭지 않음이 없다.(初九 咸臨 貞 吉. 九二 咸臨 吉 无不利) 그런데 초구와 구이가 반듯하게 자라는 것은 자신들의 재질 때문만은 아니다. 두 효의 자라남은 윗사람들의 신임을 받아 바른 도(正道)를 행할 수 있어서 그렇게 된 것이다. 즉 이들을 믿고 기꺼이 박수쳐준 육사와 육오가 있기에, 이미 군자로서의 덕성을 갖춘 윗사람이 임하여 그 우산 아래에서 젊은 군자들이 자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겉으로 보기에 양의 기운을 가지고 거침없이 자신의 역량을 펼치는 이 두 효가 임괘의 주역인 것 같지만, 실은 귀한 자리에 있으면서도 만물을 포용하는 덕(順德)을 펼치는 육오와, 군주를 도와 끊임없이 아래(백성 또는 아랫사람)를 살피는 육사야 말로 임괘의 주인공이다.


임괘의 상황에서는 아랫사람이나 윗사람이나 서로 호응하고 따른다. 아랫사람은 윗사람의 임함에 감동하여 또 따르고, 그러니 또 윗사람은 아랫사람이 대견해서 흐뭇하게 바라본다. 어린 자식들이 하는 짓이 무엇이든 그 부모들은 미소지을 수 있으며, 그런 부모들에 대응해 아이들이 한 번도 삐딱한 적 없이 커나갈 수 있을까? 적어도 함괘에서는 그런 일이 당연한 일이 된다. 그것이 바로 임()의 효과이다.


그 임하는 양상의 버라이어티함을 맛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임괘의 매력이기도 하다. 임하는 바에 감동해서(咸臨) 멋지게 성장하는가 하면, 자신의 지위와 상황을 제대로 분간하지 못하고 달달한 아첨으로 아랫사람에게 임하는 육삼의 감림(甘臨)이 있다. 이에 비해 아래에서 밀고 올라오는 초구를 묵묵히 받아들이며 간절히 임하는 육사의 지림(至臨)이 있고, 아래의 신하를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정작 자신은 지혜로서 만사에 임하는(知臨) 대군의 임함을 볼 수 있다. 만년의 군자가 임하는 모습은 또 어떠한가. 상육인 그는 가장 높은 자리에서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까지 임하고 현자를 또한 높이니 임하지 않은 곳이 없는 세상(敦臨)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임하소서.jpg



 


진정한 군자는 낮은 데로 임한다


이렇듯 임괘의 모든 효사가 을 말하는 가운데 주역은 하나의 단서를 달고 있다. 임괘가 이렇게 상하간의 아름다운 만남을 노래하지만(臨 元亨 利貞/임은 크게 형통하고 바름에 이롭다), 언제라도 불행의 나락으로 빠질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至于八月 有凶/8월에 이르러서는 흉함이 있을 것이다). 편안할 때에 어려움이 닥칠 것을 염려하고 풍성할 때 경계하는 것은 군자만이 할 수 있다. 모두 기뻐하여 교류하는 동안에, 자라나는 양효들을 흐믓하게 바라보는 사이, 자칫 일상으로 해야 할 일들을 놓치고 있지는 않는지, 씨를 뿌려야 할 때 뿌리고, 정성껏 가꿔야 할 때 가꾸는지를, 거르지 않고 체크해야 하는 것이 군자의 역할이다. 물이 낮은 데로 흐르듯이 군자가 세상에 임하는 것도 꼭 이와 같다. 일반 사람들은 미처 살피지 못한 미세한 틈새까지도 군자는 섬세하게 살펴서 그것에서 혼란이 생기거나 다툼이 벌어질 수 있는 것에 대비해야 한다. 물이 끝없이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처럼 군자도 너무 낮아서, 너무 비천해서 더 이상 내려갈 길 없는 것 같은 곳까지 살피고 경계해야 한다.


우리도 부모로서, 누군가의 친구로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어떻게 임해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은 비단 군자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지택림괘는 군자가 세상에 임하는 도를 설명함으로써 우리가 따라야 할 것이 바로 군자의 도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닐까.


 

댓글 2
  • 2018-10-06 10:22

    거르지 않고 체크하기...이게 너무 어려워요 ㅠㅠ

    연못 옆에 땅이 가까이하는게 림괘라는데 내가 연못인지 땅인지 분간하기도 어렵구요.

    친한듯 친하지 않은 사이, 감림이 아닌 지림의 괸계일까요?

  • 2018-10-06 11:21

    너무 좋은 내용이구나 하면서 가슴을 치다가 드는 생각 둘 .

    하나는 이걸 분명 내가 공부했단 말이지?  그것도 불과 얼마전에 그럼으로써 드는 자괴감. 

    어디가서 주역공부했단 말을 절대 하지 말아야겠다...

    두번째는 “누가 위에서  촌촌히 굽어보는 느낌이 나는 싫어!” 하는 삐뚜러진 마음

    그냥 내려와서 마주보자고! 하는 쌩뚱한 마음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1084
[2023 고전학교] 사기열전 - <태사공자서> 후기 (3)
곰곰 | 2023.03.13 | 조회 389
곰곰 2023.03.13 389
1083
[2023 고전학교] 사기열전 읽기 - 첫시간 후기
진달래 | 2023.03.08 | 조회 302
진달래 2023.03.08 302
1082
<간명한 중국 철학사> 6회차 후기 (2)
도라지 | 2023.02.20 | 조회 318
도라지 2023.02.20 318
1081
<간명한 중국철학사> 5회차 간단요약 (4)
마음 | 2023.02.13 | 조회 345
마음 2023.02.13 345
1080
[고전학교 단기세미나]<간명한 중국 철학사> 4회차 후기 - 순자/한비자를 중심으로 (2)
곰곰 | 2023.02.08 | 조회 339
곰곰 2023.02.08 339
1079
[고전학교 단기세미나]<간명한 중국 철학사>3회차 후기 (2)
토토로 | 2023.01.19 | 조회 388
토토로 2023.01.19 388
1078
[고전학교 단기세미나] 간명한 중국철학사 두번째 시간 후기 - 묵자, 양주, 맹자, 공손룡의 새로운 발견 (3)
한스 | 2023.01.12 | 조회 657
한스 2023.01.12 657
1077
[고전학교 단기세미나] 간명한 중국철학사 첫 번째 시간 후기 (2)
진달래 | 2023.01.05 | 조회 328
진달래 2023.01.05 328
1076
[고전학교-단기세미나] <간명한 중국철학사> 읽기 첫 시간 공지
진달래 | 2022.12.22 | 조회 273
진달래 2022.12.22 273
1075
[사서학교] 에세이 발표합니다^^ (6)
진달래 | 2022.12.14 | 조회 345
진달래 2022.12.14 345
1074
[2023년 고전세미나] 올 어바웃 한(漢)나라 (2)
진달래 | 2022.12.09 | 조회 674
진달래 2022.12.09 674
1073
[2023 고전학교] 중국 고대 사회를 읽자 『사기열전(史記列傳))』 읽기 (9)
고전학교 | 2022.12.09 | 조회 1532
고전학교 2022.12.09 1532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