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드다 강학원 에세이② <당사자 되기>

고은
2020-06-25 14:55
462

* 본 에세이는 길드다 강학원 S1 '미디어와 신체'의 김고은의 에세이입니다.

 

 

 

 

 

1. 나는 당사자가 아니다

 

 

     대학생 때 성노동자를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조사만 해도 되는 과제였는데 굳이 일을 키웠다. 나는 섹슈얼리티 영역을 노동 영역이라고 선포하는 과격한 모습에 홀딱 반했다. 인터뷰가 끝나면 그들과 함께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금세 그들과 같아질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인터뷰를 그럴싸한 과제물로 만드는 건 쉬웠지만, 그들의 말을 알아듣는 건 어려웠다. 성폭행과 노동 사이에, 성산업화와 성해방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놓여있는 삶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인터뷰 직전에 했던 생각이 부끄러워졌다. 당사자가 아니면 나서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사건에서 나는 당사자가 아니었다. A가 페미니즘을 불편하게 여길 땐 내가 공격의 대상인 남성이 아니었고, B가 페미니스트가 된 여자 동창들에게 공격당할 땐 내가 그 일을 겪었던 동창이 아니었으며, C가 남성도태를 주장하는 페미니스트가 되었을 땐 내가 C만큼 여성 혐오에 노출된 여성이 아니었다. 당사자와 같은 걸 느낄 수도, 과거의 일을 똑같이 복구할 수도 없었다. 그러므로 나는 당사자의 말이 와전되지 않도록 조심스레 전달하기만 했다. 그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보였다. 어느덧 당사자가 아니라면 쉽게 말해서도 행동해서도 안 된다는 생각이 내 발목을 잡고 있었다.

 

 

 

 

 

 

2. 조건의 절박함, 절박함이라는 조건

 

     전시 <수용소의 기억>(2001, 파리)에는 절멸 수용소에서 수용자들의 ‘소각’을 담당했던 수용자 존더코만도가 찍은 4장의 사진이 걸렸다. 전시 도록에서 실린 조르주 디디―위베르만의 글은 학술지와 대중매체에서 논쟁거리가 되었다. 내가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말을 아꼈던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쇼아에 대해 명확하게 드러난 것 이상으로 말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위베르만은 존더코만도의 사진을 통해 더욱 적극적으로 쇼아*에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을 꺾지 않았다. 3년 뒤 그는 한발 더 나아가 카탈로그 에세이를 증보해 『모든 것을 무릅쓴 이미지들』을 출간했다, 이후에도 2005년 존더코만도를 다룬 영화「사울의 아들」에 공개서한을 보냈으며, 2011년에는 아우슈비츠를 다녀온 여정을 책으로 냈다.

 

     한 생존자의 증언에 따르면 SS(나치 친위대)는 포로들에게 즐거워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전쟁은 우리가 이긴 거야.”** SS가 승리를 확신한 상대는 연합국이 아니라 수용자였다. 수용자들은 아무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누군가 살아남아 증언하더라도 증거는 없을 것이다. 설령 증거가 남는다 하더라도 누구도 그 끔찍한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다. “너희가 아니라 라거(강제수용소)의 역사, 그것을 쓰는 것은 바로 우리가 될 거야.”***

 

▲ SS

 

     위베르만은 SS의 확신이 어느 정도 실현된 것이 아니냐고 묻는다. 몇 달간 임무를 수행한 존더코만도는 다음 기수의 존더코만도에 의해 주기적으로 처분되었다. 살아남은 소수는 자신들의 임무에 대해 명확하게 진술하지 않았고, 그나마 우연히 존더코만도와 접촉했던 민간인과 재판에 섰던 교살자가 그들에 대한 정보를 암시적으로 제공했다. 오늘날 사람들은 존더코만도에 조심스럽게 접근하며, 그에 대한 역사를 쓰기 어려워한다. 존더코만도는 도저히 채울 수도 접근할 수도 없는 공백으로 존재하고 있다.

     위베르만은 자신이 당사자가 될 수도 없으며, 과거의 일을 똑같이 복구해낼 수도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대신 그는 사진 4장이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를 유심히 살펴봤다. 존더코만도는 “한탄과 저주, 속죄, 정당화하려는 시도, 자기 자신을 되찾으려는 노력 사이”****에서 수용자들을 처분하고 자신의 처분을 기다리고 있었다. 수용자들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확신할 만큼 철두철미했던 SS의 감시망을 뚫기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살면서도 죽을 각오를 하고 사진기를 반입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게다가 그들은 자신들이 증언을 보내더라도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다는 공포도 갖고 있었다.

     그럼에도 존더코만도는 사진을 찍었다. 글도 사진도 그 무엇도 남길 수 없다는 사실에 반박하기 위해, 그들에게 주어진 현실에 저항하기 위해, 인간성을 박탈당한 채 살면서도 인간으로 살기 위해 사진을 찍었다. 그들이 보내온 네 장의 사진은 수용소라는 조건에서는 나올 수 없는 것이었지만, 동시에 그 안에서 존더코만도들이 인간으로 살기 위해서는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기도 했다. 위베르만은 사진이 자신에게까지 오게 된 절박한 조건들을 생각하며 사진들을 손에 꼭 쥐었다. 어째서 그가 재현할 수 없는 것을 재현하려는 페티시가 있다는 비판을 예민하게 받아들였는지 이해가 된다.***** 쇼아를 외면하는 도덕적 결함이야말로 위베르만이 지적하고 싶어했던 문제였다.

 

▲ 조르주 디디-위베르만

 

살해의 ‘내부’를 증명하는 데 있어서의 불가능함. 살아서 말을 사용할 수 있던 자들에 관해서 말하자면, 그들은 ‘아무것도’ 증명하기를 원하지 않았거나(수용소 안의 나치스) 증명할 수 없었다. 이 두 가지 극단적 위치 사이에, 말하자면 제 3의 위치가 존재한다 … 그것은 존더코만도의 일원들에 의해 ‘모든 것을 무릅쓰고’ 정식화되고 전달된 증언이다. - 조르주 디디 위베르만, 『모든 것을 무릅쓴 이미지들』 (166)

 

     그러므로 위베르만은 쉽지 않지만 사진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고, 쇼아에 완벽하게 가까워질 수 없더라도 모든 것을 무릅쓰고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모든 것을 무릅쓴 이미지들』에서 절박한 마음으로 네 장의 사진을 대면하였고, 그럼으로써 사건의 당사자는 될 수 없었지만 증언-사진이라는 사건의 당사자는 될 수 있었다. 위베르만의 절박함은 강력해서 금방 나에게로 옮아왔다. 나는 얼마나 절박했던가? 문득 내가 사건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어떤 방식으로도 당사자가 될 수 없다고 거리를 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3. 불순한 이미지, 이미지의 불순함

 

     그러나 절박한 마음으로는 증언을 본다고 곧바로 증언이라는 사건의 당사자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나 같은 사람들은 증언에 감염되었을 때 발생하는 지나친 감정 소모가 두렵다고 말한다. 나의 절박한 마음은 전이된 아픔에 가슴을 치며 울기, 무능력한 자신을 원망하기, 인류를 향해 회의적인 웃음 짓기로 끝나버린다. 혹은 위베르만을 비판한 사람들은 합의할 수 있는 명확한 진실을 포착하기 어렵다는 것만 더욱 확실하게 알게 될 뿐이라고 말한다. 존더코만도가 남긴 증언인 4장의 사진은 알아보기 어려우며, 온갖 불순물로 뒤덮여 있다. 그러나 위베르만은 두 부류의 사람 모두에게 증언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 영화 <사울의 아들> 한 장면. 주인공 존더코만도가 일하는 모습과 그 뒤로 벌거벗은 시체가 보인다.

 

     사람들은 이미지에 절대―진실을 요구한다. 사진으로부터 존더코만도가 무슨 일을 했는지, 학살의 규모는 어땠는지, 시설은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로부터 어떠한 감정소모 없이 명백한 상황을 맞이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러나 4장의 사진은 이 요구들을 충족시켜주지 않는다. 사진은 온통 검은 여백, 나무 장막, 연기, 흔들린 피사체로 점칠 되어 있을 뿐이다. 위베르만은 바로 그 어려움으로부터 사유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절대―진실을 찾을 수 없다고 해서 쉽게 이미지와 진실의 관계를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

     그는 증언으로부터 절대―진실을 찾는 대신 불순한 증언 자체에 집중한다. 불순한 증언-이미지는 그 자체로 역량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불순함을 배제하지 않을 때 비로소 “매우 넓은 가능성들의 스펙트럼”(190)을 발견할 수 있다. 위베르만은 자신이 발견한 가능을 예외, 틈, 잔여, 예기치 못한 잔뿌리, 흔적이라고 부른다. 흔적이란 실재 그 자체가 아니라 실재의 파편인 것, 합의 가능한 것이 아니라 예측 불가능한 것, 영원히 안정적인 것이 아니라 언제고 돌발하는 것이다. 그가 발견한 가능성은 고정된 사물이 아니라 운동하는 행위에 더 가깝다. 4장의 불순한 이미지로부터는 어떠한 흔적을, 어떤 행위를 포착할 수 있을까?

 

▲ 존더코만도가 남긴 네 장의 사진

 

     우선 연기로부터 존더코만도의 임무를, 검정 여백으로부터 사진을 찍기 위해 숨었던 장소를 추측할 수 있다. 또 연속된 사진의 구도 변화로부터 사진 찍는 자의 심경이나 상황 변화를, 흔들린 초점과 빗나간 피사체로부터는 급박함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미지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베일에 가려져 있었던 것들을 동요시킨다. 수용소는 포로들이 서로를 동류(同類)로 알아볼 가능성을 파괴했다. 수용소는 사회적 유대를 실종시키는 방법을 연구한 실험소였다. 희생자에게 부여된 침묵과 나치의 기만(존더코만도가 특별sonder 기동대kommando라는 거짓말)으로 언어를 실종시킨 곳이자, 마지막엔 실종 실험을 위한 도구(수용소)를 실종시킨 곳이다. 무엇보다 그곳의 가장 큰 성과는 “‘인간들의 실종’이다. 살해는 충분하지도 않다.”(38) 그리고 이 사진을 쥔 우리는 사형집행자들의 희생자인 동시에 사행집행자들과 동류다.

 

사물이 아니라 사물의 유사함의 조각인 무엇인가가 남아있다. 무엇인가―아주 사소한 것, 한 장의 필름―가 절멸 과정으로부터 남아 있다. 따라서 이 무엇인가는 실종에 맞서 저항하는 동시에 실종을 증언한다. (258)

 

     우리는 저 불순한 흔적으로부터 악을 돕는 인간의 평범함과, 그렇기에 우리를 더욱 비탄에 잠기게 하는 공포가 돌발하고 있음을 목격한다. 위베르만은 사진 네 장을 손에 쥠으로써 자신이 역사학자라는, 철학자라는, 무엇보다 인간이라는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다. “인간이라는 수치심, 글을 쓰는 더 좋은 이유가 있는가?”(250) 스치듯 인용한 들뢰즈의 말은 사실 그 자신의 말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는 “‘벌거벗은 공포’를 거기서 지각하는 상황에 우리는 처하게 된다.”(129) 확신을 잃고 혼란스러워진다. 익숙한 것은 변질된다. 증거―이미지가 하는 일이 이토록 불순하다. 이미지 자체를 의심하게 하고 사진의 조건에 대해 묻게 하는 것도 모자라, 학문과 예술이 놓인 전제 조건에 질문을 던지고 마침내 우리 자신에 대한 전복을 가지고 온다.

 

 

 

 

 

 

4. 상상할 수 있다

 

 

이미지는 지식에, 기억에, 그리고 심지어는 사유 일반에 불가결한 그 불순물이라는 것을 반복해야 할까? 나는 ”알기 위해서는 스스로 상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175-176)

 

     상상해야 한다. 위베르만은 어떤 사건에 다가가는 이 과정을 ‘상상하기’라고 명명한다. 나는 위베르만을 읽으며 상상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존더코만도를 다룬 영화 「사울의 아들」을 보며 내적으로 히스테릭해지거나, 5·18을 다룬 소설 『소년이 온다』를 읽으며 오열하다가 나가떨어지고 싶지 않다. 페미니즘이 양성 간의 대립으로 환원되는 사태를 보며 거부감만 키우거나, 밀양과 연대할 때 할머니들을 열심히 보필하면서도 그들로부터 조심스럽게 거리 두어 사건을 흘려보내고 싶지 않다. 장애인과 관련된 책을 사서 읽고 빈곤연대, 퀴어 모임을 팔로우하며 멀리서만 응원하고 싶지 않다. 나는 조금 더 가까이 가고 싶다. 나는 내가 상상하기 어려운, 상상하기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증언들을 마주한 당사자이고 싶다.

     물론 사건과 증언을 절박한 마음으로 대면하고, 불순한 증언으로부터 돌출하는 것들을 포착하는 일은 어렵고 또 위험하다. 불순한 흔적으로부터 출발해 많이 헤매야 할 것이고, 돌발하는 것을 포착하기 위해서는 인내심이 필요할 수도 있다. 절박함을 비롯한 수많은 감정을 거치게 될 것이며, 한 발만 삐끗해도 사건의 당사자를 기만할 수 있고, 마침내 맞닥뜨리게 된 것이 우리 자신의 전복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당사자가 되는 길이, 주체가 되는 길이 이렇게나 멀고도 험하다. 그러나 “상상해야 한다”는 위베르만의 말이 나에겐 “상상할 수 있다”로 들리기도 한다. 존더코만도의 증언이 불가능해 보였지만 진짜 불가능하지는 않았던 것처럼, 증언에 가까이 다가가는 일 또한 마찬가지이다. 완벽하게 명료한 지점으로 수렴될 수는 없겠지만, 흔적을 좇다보면 극한 함수처럼 계속해서 가까워질 수는 있을 것이다. 상상하기를 ”노동“(185)과 같이 한다면 말이다.

 

 

 

 

 

 

 

 

 

* ‘대재앙’을 뜻하는 히브리어다. 나치의 대량 학살이 신을 위한 제물을 뜻하는 ‘홀로코스트’로 불릴 수 없다는 의미에서, 유대인들은 홀로코스트 대신 쇼아라고 부른다.

** 프레모 레비,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1986), 돌베게, 9.

*** 프레모 레비,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1986), 돌베게, 9.

**** 프레모 레비,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1986), 돌베게, 60.

***** “반대자가 나의 인격의 오류의, 그리고 더 나쁘게는 도덕적 추행의 회신 자체로 만든다면, 그대로 내가 토론할 수 있을까?” (조르주 디디-위베르만, 『모든 것을 무릅쓴 이미지들』(2004), 레베카,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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