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생이 별건가>노래로 盈科而後進 3회

기린
2020-05-19 06:35
205
  1. 노래 부르기가 정말 양생일까?

 

 봉옥샘이 노래 부르는 것도 양생이냐고 질문했을 때 뿔옹 트레이너도 옆에 있었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

“그럼요, 노래 한 곡을 완전히 마스터하려면 몸을 써야하거든요.”

 

  나도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노래를 부르면서 양생의 의미를 터득해보겠다는 포부를 가졌다.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실제로 몸을 써서 노래를 불러보니 그 말이 요령부득이 되어버렸다. 가사와 리듬을 익히기 위해 반복해서 듣고 가사를 외우기 위해 청각을 쓰고 익힌 것을 소리 내어 부르면 몸을 쓴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려고 매일 시간을 들여 그 작업을 수행했다. 이제 무의식중에도 리듬을 흥얼거리고 가사는 입에 달라붙어서 저절로 나오게 되었다. 그 수행을 치른 후 노래를 불렀는데, 뿔옹 트레이너는 정서가 표현되지 않는다면서 가사의 암송을 제안했다.

 

  2주에 걸쳐 가사를 암송해 보았다. 읽으려고 해도 리듬을 타는 바람에 애를 먹었다. 암송한 것을 들어보면 나도 모르게 노래처럼 리듬을 타고 있는 것을 발견하곤 했다. 2주가 지난 후 다시 반주를 틀어놓고 그 리듬을 따라 노래를 불렀다. 음을 맞출 수도 없고 어디서 숨을 쉬어야 할지 몰라 삑사리가 났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노래가 끝나면 목이 꽉 잠겼다. 시간을 들이고 반복해서 연습을 하면서 몸에 익게 되는 것을 몸을 쓴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했는데도 노래를 부를 수 없게 되었으니 요령부득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렇게 고전하는 나를 보면서 트레이너가 물었다.

“반주의 키가 맞지 않기도 하지만 악보를 보면서 음의 변화에 따라 부르는 것도 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저 듣고 따라 부르면 되겠지 했는데 악보를 보면서 불러야 한다고? 학교 다닐 때 음악 시간에 배웠던 얕은 지식으로 악보를 다시 볼 수 있을까? 내가 난감해 하자 함께 악보를 보면서 호흡 등을 파악해 보자고 했다. 알았다고 대답은 했지만 나는 아직껏 악보를 들고 트레이너를 찾아가지 않았다. 부담이 점점 커졌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노래 부르기가 정말 양생일까? 라는 의심에 이르렀다.

 

 

2. 반복의 의미

 

  『장자』를 읽을 때 ‘양생(養生)’이라는 말을 처음 접했다. 포정이라는 백정이 한 마리의 소를 해체하는 과정을 설명하자 제후가 “삶을 가꾸는 기예(養生)를 터득했노라.”고 대답했다. 칼을 다루는 방법을 설명하는 포정의 말도 멋있었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반복하는 과정도 기억에 남았다. 그 후 양생이라고 하면 오랜 시간을 들여서 지속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줄곧 해왔던 것 같다.

 

 작년 축제 때 노래자랑에 나가서 엉망진창으로 노래를 부른 후 부끄러운 마음이 한 구석에 남아 있었다. 올해 양생 프로젝트에 참가하면서 각자 수행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정하자는 제안을 들었을 때 그 부끄러움이 떠올랐다. 그런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포정처럼 노래 한 곡을 반복해서 연습하다보면 실수를 해서 부끄러워지는 순간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노래 연습을 시작했다. 그런데 하면 할수록 수렁인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포정의 이야기가 나오는 편을 다시 펼쳐보았다.

 

그렇지만 여전히 뼈와 살이 엉겨 있는 곳에 이르면 긴장하며 조심하게 됩니다. 시선이 한곳에 집중되고 움직임은 느려지고 칼의 움직임은 미묘해집니다. 『낭송장자』 85쪽

 

 포정은 소 한 마리 해체하기를 거듭 반복하면서 오랜 시간을 보냈음에도 어떤 지점에 이르면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조심했다. 집중하는 순간이었다. 수 만 번 거듭한 일에서도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서 반복을 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소 한 마리를 잡는 내내 그 긴장감의 연속이라기보다는 “뼈와 살이 엉겨 있는 곳”에서 발휘해야 하는 긴장감이었다. 반복은 긴장감의 강약을 조절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부끄러워해야 했던 지점은 노래를 엉망으로 부른 것도 있지만 그 순간에 ‘집중’하지 못한 점도 있지 않았을까. 노래자랑에 나왔으니 노래를 부르는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면 끝나고 나서 느낀 감정은 조금은 다르지 않았을까. 노래에 집중할 수 있는 몸이 됨으로써 실제 노래를 부르는 순간에 집중을 방해하는 그 어떤 것으로부터도 놓여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내가 노래를 부르는 데 가장 방해가 되는 요소는 나의 ‘몸’ 아니었을까. 온 몸으로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그 순간에 집중해서 노래하라는 의미였다. 그 의미가 가사를 외워라 리듬을 익혀라 호흡을 가누어라 악보를 보라는 방법을 통해 제시되었던 것이다. 이런 방법들을 반복하는 것은 그 행위에 집중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노래를 잘 부를 수 있는 순간에 이르는 것이다. 반복으로 터득해야 하는 것은 집중하는 힘이었다.

 

 포정의 양생으로 다시 돌아오면 그렇게 소 한 마리를 해체하고 나니 보고 있던 제후는 양생의 도를 터득했다. 포정은 눈앞에 매끄럽게 해체된 소를 보면서 “결과를 알아채고 흐뭇해하면서” 일을 끝냈다고 한다. 제후와 포정이 함께 공명하는 순간이었다. 노래 한 곡을 불러서 공명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3. 다시 노래로

 

 반복이 집중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라면 노래를 부를 때도 노래에 집중하는 방법을 찾아보았다. 내 목소리에 맞는 키를 찾기 위해 노래 방 반주가 되는 앱을 다운 받는다 등을 실행해보다가 잘 안 되길래 아예 반주를 꺼 보았다. 그 다음은 고음을 무조건 내지르기보다 성량을 줄여 보았다. 성량을 줄이려니 몸에 힘을 좀 빼야 했다. 그렇게 성량을 줄이니 억지로 힘을 주는 부분을 줄이게 되었다. 그러자 노래 말이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아주 미세했지만 어느 부분에선가 감정이 출렁였다고 할까. 트레이너님이 노래에 정서가 실리지 않았다는 의미가 이거였을까. 이 느낌을 터득하려면 좀 더 반복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래서 현재 노래는 반주 없이 몸에 힘을 빼면서 부르는 연습을 반복하는 중이다.

 

 그 와중에도 여러 변수가 등장하고 있다. 나의 노래 파트너인 봉옥샘은 두 번째 곡을 연습하면 어떠냐고 하신다. 나도 6개월 내내 한곡만 부를 수 있을까 싶기는 했는데 봉옥샘이 그렇게 제안하시는데 성급하지 않나 싶었다. 샘과 나 사이에 차이가 발생했다. 그저 “샘, 이제 같은 노래 계속 부르려니 지루하시죠?” 라고 응대했지만 이 차이를 어떻게 조율할지 샘과 의논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게다가 샘은 듀엣을 하자고 하신다. 다시 부담감. 뭔가 변화해야 하는 시기가 이렇게 오는 것일까.

 

 뿔옹 트레이너도 봉옥샘의 의견에 공감하는 모양이다. 5월 말에는 아예 노래를 불러서 녹음을 하자고 한다. 교회 오빠 경력으로 악기 연주도 가능하고 녹음도 할 수 있으니 첫 곡 녹음으로 마무리 하고 노래 레파토리를 다양하게 하는 것이 더 낫지 않겠냐고 한다. 듀엣을 하면 더 재밌겠다고 한 마디 보태는 것도 잊지 않았다.

 

 생각지 못했던 제안들이 거듭되면서 자꾸 부담감만 늘어간다. 애초에 노래를 하겠다고 결정했을 때는 하다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가면서 구체화되는 내용들이 장난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1회 글에서 두렵지 않아서 좋다는 느낌은 취소해야 할 것 같다. 일이 점점 커지는 것 같아 두려워지기 직전이다. 집중하는 반복으로 그 두려움에서 놓여날 수 있을까?

 

 

 

댓글 4
  • 2020-05-19 07:46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드네요. 기린님의 노래에 필요한 것은,
    盈科而後進가 아니라 爲學日益 爲道日損 아닐까, 라는! ㅋ

    • 2020-05-19 08:38

      무슨 말인지...번역 좀 해주세요??

  • 2020-05-19 08:36

    왜 부담이 늘까? 무엇을 떠올리고 있기에 부담이 생길까?
    부담이 왜 생기는가 생각해보는 것도 '노래 부르기 양생'의 한 파트가 될 것 같아요.

  • 2020-05-19 20:14

    더하지 말고 빼라는 거 아닌겨?
    암튼 이렇게나 노래가 기린샘한테 힘든거라니 놀랍기도 하고 주제를 잘 골랐다는 생각도 드네요. ^^
    문탁샘도 일찍 자기가 안되는 날 보며 놀라시던데 비슷한 느낌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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