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제)벤자민슈워츠_중국고대사상의세계(서론~2장)

여울아
2020-07-17 21:31
343

제1장 초기의 문화 방향설정들

-중심 문제들과 그에 관한 고찰-

 

저자는 초기 중국 문명을 하나의 핵심 지역에서 시작되었다기 보다는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발전하고 합류되어 출현한 것이라고 말한다. 장광직은 하, 상(은), 주를 시간적 연대순이 아니라 “중첩적 정치 조직들”로 주장한다. 즉, 하나의 중심 국가가 아니라 넓은 지역에 퍼져 있던 예닐곱의 다소 발달된 국가 형태들이 동시에 발전했을 것이라는 것. 갑골문에는 하의 정치 체제와 관계없이 상의 통치자들이 절대 왕권을 주장했다는 내용이 있다고 한다. 어떻게 공통 문명이 발생했을까? 저자는 문명 세계 중심부와 주변부에는 이들 문명을 거부하는 세력이 있었으며, 서서히 중심부에 흡수되기도 하고 자체 문명을 꽃피우기도 하면서 공통 문명이 더욱 풍부해졌다는 입장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다루는 고급문화는 각 지역마다 차이가 현저하지만, 이 사상적 유형들이 점차로 공통 담론의 틀 안에서 상호작용을 하게 됨으로써 기원전 천년에 하나의 공통 문명을 형성하게 된다.

 

  • 종교적 방향설정으로서의 조상숭배

저자는 발굴된 갑골문을 근거로 신석기 시대 확산된 종교적, 정치적 질서로 조망되는 중국 문명을 조망하고자 한다. 갑골문은 점술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종교적 방향설정과 연관이 깊다. 이른바 조상숭배는 강, 산, 바람과 같은 자연을 최고신과도 배타적이지 않으면서 중국 문명에서 구심적인 역할을 한다. 갑골문에서 종교적 방향설정으로서의 조상숭배를 다각적으로 살펴보자.

첫째 조상숭배는 왕족의 집안 제식이다. 조상숭배는 고등문명을 생산하지 못했던 아프리카 등지에서도 발견될 수 있지만 중국의 조상숭배는 정치질서에 대해 강력한 인식을 조성하는데 기여했다. 그렇다고 해서 조상숭배가 통치층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조상숭배는 망자 대한 숭배가 아니라 살아있는 후손들과 유기적인 관계를 지속할 수 있는 혈족관계에서 발생했다. 따라서 공동체에서 가족의 역할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런 혈연관계 속에서 조상숭배는 산자와 죽은 자를 모두 공통의 사회로 통합시키는 역할을 한다.

둘째, 중국의 조상숭배는 사회학적으로 혈연관계의 힘을 반영한다. 산자와 죽은 자들을 묶어주는 이런 종교적 의식으로부터 적절한 사회적 행위, 에티켓에 이르기까지 후대 예의 맹아를 발견할 수 있다. 아들이 아버지가 되고, 딸은 엄마나 시어머니가 되는 혈연관계의 계급구조는 고정적이거나 불변이 아니다. 저자는 중국의 신화가 빈약한 이유가 이토록 죽은 자가 산자와 거의 똑같은 수준으로 어떤 역할이 주어지기 때문에 상상에 제약이 가해진다고 말한다.

셋째, 중국의 조상숭배는 철학적으로 신령한 영역과 인간 사이의 연계와 관련이 있다. 인간과 신성한 것 사이의 구분이 불분명해지면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을 신의 위상으로 추대하는 것이 일반적 관례가 된다. 가령 요, 순, 우, 그리고 후대의 성왕들조차 신적인 존재로 추앙받는다. 이와 같은 경계의 상실은 존재론적 사유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

넷째 조상숭배는 혈연관계를 중심으로 정치적 질서를 조성한다. 장광직은 부계 혈통을 나태는 족(族)자는 깃발과 그 밑에 있는 화살로 구성된다고 지적한다. 이것은 군대 조직을 의미하며, 같은 혈통에 속하는 사람들이 공통의 조상숭배 제례에 의해 결속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혈통은 군대조직에 동원될 뿐만 아니라 농사 등 노동에도 동원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혈통조직을 기반으로 국가 조직의 기초가 수립되었을 것이다. 이에 반해, 장광직은 서양의 국가는 혈통에서 해방된 강력한 중앙집권적인 정부형태를 가리킨다고 말한다.

다섯째 조상숭배는 중국 초기 문명에서 도시의 성격 형성에 도움을 주었다는 것이다. 고대 중국의 도시들은 종교 제식의 중심지로서, 군사적 보루로서, 농경적 오지들을 통제하는 정치적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두드러졌지만 그렇다고 이들 도시 공동체가 내부적 정치 생활을 했는지에 대한 증거는 확실하지 않다. 따라서 조상숭배가 대중과 상류층 둘 모두에게서 도시를 일체감의 구심점으로 발전시키지는 못한 것 같다. 차라리 혈연조직이 도시나 촌락 자체의 일체감보다 더욱 중요했다.

 

  • 조상숭배와 자연적 우주적 종교 사이의 상호작용

저자는 이제 조상숭배와 자연적 우주적 종교 사이의 상호작용으로 시점을 옮겨보자고 한다. 중국은 조상숭배와 자연숭배가 서로 배타적이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갑골문 전문가 아카츠카 키요시는 자연신들의 다수는 사실상 종족의 수호신, 즉 종족의 조상이었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입증된 것 같지는 않지만, 초기의 갑골문에서 먼 조상들이 자연의 귀신들과 인간의 조상들을 연결시키는 일종의 교량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가령 상의 조상 왕해가 새 머리에 네 발 달린 짐승으로 상형문자화 된 것이나 강의 신과 연결시키고 갑골문에서 강의 신이라고 불리는 것. 이때 자연신들 및 이전 왕조 이전의 모든 신화적 조상들은 풍성한 제사의 공동 대상이 된다. 그렇다고 왕족 계보만이 조상의 신묘한 힘이 작용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조상이 있고, 각자 혈족이 있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 조상숭배는 만인의 종교이다.

제(帝)가 최고의 신으로 등장하는 시점은 상과 그 통치 혈족의 패권 확립 시기와 일치한다. 이것은 천하의 왕이 보편적 패권을 주장하는 것은 신들의 세계에서 최고 통치자가 출현하는 것과 병행한다. 저자는 이것이 천하공주권의 등장과 밀접한 연계가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시경>이나 후대의 신화들에서 제나 천이 이런저런 방식으로 상과 주의 시조들을 모두 직접 낳았다고 주장한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현재 제가 신격화된 조상이 아니라 상 왕조를 탄생시킨 비인격적인 최고신이라는 데 동의한다.(바로 천이다.) 제(帝)는 가운데의 기둥이 보조 기둥들에 의해 연결된 무속의 상징적 구조를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상징적인 제단 구조와 아울러 사처와 사방의 귀신들에 대한 제사에서 역할을 했다고 추측한다. 고대 문명의 최고신들이 모두 중앙집권적인 정치체제의 등장과 일치하지 않는다. 그러나 중국은 최고신 제는 천하공주권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 최고신은 자연 귀신들과 조상의 영령들이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만드는 질서정연한 우주의 통치자이다. 여기서 질서개념은 초자연적 현상들에 대한 신비적 잠재력을 감소시키고 포용, 포섭, 보전하는 것이다. 가정과 다른 사회 조직들의 의례, 관례 등은 살아 있는 인간들의 활동이다. 가장은 가족 안에서의 역할 수행자이듯 귀신과 영령들 역시 이들 행위가 기성 질서의 범주에 부합된다. 고대 중국은 혈연 계보가 국가 형성에서 실질적이고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을 가능성이 있고, 가족 모델은 중국의 정치적 사회적 질서의 관념과 깊은 연관이 있다.

왕은 또한 자신의 모든 노력을 기울여 자신의 권력을 비혈연의 종속적 부족 집단들의 수호신들과 동일화 시킨다. 그럼으로써 왕의 궁극적 합법화를 자신의 조상으로부터가 아니라 귀신과 영령들의 우주적 왕국 전체를 통치하는 제의 전포괄적 권력으로부터 이끌어낸다. 갑골문에는 점술가, 사료담당자, 군사집단, 종교 전문가 등 전문화된 관리들이 왕실 조직과 관련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가령 이윤과 같은 사람은 왕족 계보 출신이 아니었으며, 관료제도에는 다수의 비혈족들이 포함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관료조직은 지리적으로 왕이 직접 통치하는 영역으로 제한되었다. 왕은 비혈연적 세력자들에게 종주권을 주장하기 위해 강제적 종교적 봉건적 방법들을 사용하는 한편, 왕자들을 계속해서 봉지해주기도 했다

종교적 질서와 정치적 질서의 관계는 또한 어떠했을까? 고대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인도 등지에서는 종교집단과 왕실은 별개였으며, 독립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이에 비해 중국의 왕은 혈통적 조상의 제례에서 자연스럽게 “최고 승려”가 되어야 했다. 여기서 후대 중국의 정치 질서를 지배했던 원리인 정교합일(政敎合一)의 단초를 발견할 수 있다. 국가 종교에서 무당의 역할은 감소되고, 중국에서 샤머니즘은 신흥 국가 종교와 양립할 수 없었다. 무당의 역량은 사회질서와 예의 정신에 대해 위험하고 전복적이고 유해한 것으로 보았다.

저자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신석기 시대의 룽산(용산) 문화에는 초기 중국 문화의 종교적 방향설정들에 심오한 영향을 끼쳤다. 이 방향설정들은 천하공주권이라는 예외적이고 강력한 관념의 종교적 토대와 이 연장선상에서 사회적 우주적 질서를 망라하는 전포괄적인 개념이 고급문화 내부에서 조기에 등장하는 것을 돕는 종교적 기반을 만들었다. 그럼에도 두 가지 사실 또한 강조한다. 점술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 초기는 문명의 발달에서 거대한 폭발의 시기였다는 것, 점술과 왕조의 관계가 변화되는 과정을 세속화의 과정이라고 보기보다는 왕족 종교의 성격에 대한 변화가 일어난 시기라는 것이다. 왕의 실권을 왕족의 조상들 자체에 대한 숭배로 강조점이 이동되는 중요한 변화이 시점이라는 것이다. 이로써 하늘, 천명이 최고신의 자리에 남게 된다.

 

 

댓글 1
  • 2020-07-19 23:29

    2장. 주초의 사상

    공자는 자신이 처했던 혼란의 시대 속에서 이상적인 사회로 양모했던 시기를 주초의 중국사에서 찾고 있다. 공자는 이 시기에 무엇을 발견했으며 이것이 어떻게 당시의 역사적 현실과 연결되는가? 공자가 발견한 것은 주초와 공자의 시대를 연결하는 중간기적 기록 자료들로서 대표적인 것이 <시경>과 <서경>이다. 이 자료들은 주초부터 기원전 600년 경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주왕조가 급격히 쇠퇴하던 춘추시대에 대한 자료가 담긴 <좌전>역시 공자 이전 사상사에 관한 풍부한 자료의 원천이다. 마지막으로 청동기에 새겨진 청동문은 주초의 사회적, 정치적 상황들을 밝혀주는 귀한 자료이다.
    왕과 제상들의 격식을 갖춘 연설을 담고 있는 <서경>은 공자와 제자들의 초기 입장이 반영되어 원시유학적이다. 그러나 <시경>은 공자의 입장과 관계없는 내용들도 많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자료들은 당시 고급문화의 주도적 태도들을 잘 반영하고 있으며 문화적 방향설정등을 구체화시켜준다.
    그렇다면 주초의 사회적, 정치적 실상은 어떠했을까? 역사적 자료로 보면 주 왕조는 거의 전쟁을 하지 않았다. 원시적인 과학 기술과 통신이 지배했던 당시 상황에서 주 왕조가 두 세기에 걸쳐 광대한 영토에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 정말인가. 일부 학자들은 주의 정치체제가 광대한 지역들을 그토록 효과적으로 통치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주왕조는 왕권을 성취하기 이전부터 상과 더불어 상당한 발전을 경험했음을 <시경>의 자료를 통해 알 수 있다.
    주왕조의 통치체제를 살펴보면 봉건제 형식이지만 서양의 봉건제도와는 다르다. 서양의 봉건제는 안정이나 질서보다는 권력의 분산과 연결되어지며 분열과 투쟁을 함축한다. 그러나 주왕조의 봉건제는 절대적 통치자가 권력을 위로부터 부여하는 포괄적인 정치 체제를 전제로 하고 있으며 일부 권력을 부여받은 가신들은 대부분 왕족의 구성원들이었다. 또한 통치자 권력의 종교적 기반(하늘, 즉 천과의 특별한 관계에 대한 왕의 권리주장)이 상대적으로 강했으며 이것은 효과적으로 봉건제도를 뒷받침했다. 반면 서양의 봉건제는 종교(카톨릭)가 황제나 국왕과의 봉건적 계급구조의 유대를 강화하는 한계는 제한되었으며 봉건제도와 관료제도 사이에서 뚜렷한 대립을 볼 수 있다. 반면 중국은 정치적 종교적 질서의 정점이었던 왕권이 봉건제도와 후대 관료제 모두에게 강력한 상징적 기초가 되었다.
    이렇듯 왕을 중심으로 봉건 제후들간의 혈연적 유대관계와 비혈연 제후들에 대한 봉건적 방책들, 그리고 원형 관료제도의 조직 등에 대한 혼합적 의존이 상당기간 주 지배하의 평화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들을 탄생시켰으며 전체로서의 통치 계층이 자신들의 이익과 체제를 동일시하는 것을 가능케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공자의 이상적 사회의 이미지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제 관심을 주초의 사상의 영역으로 돌려보자. <시경> <서경>에서 보이는 주초의 천명(天命)에 대한 관념들이 새롭게 보이지만 학자들은 상 왕조때 이미 존재했을지도 모른다는 제명(帝命)의 관념과 연결시킨다. 주의 창시자들은 천(天)과 상제의 결합을 열망했다. 최고신 사제-천은 자신이 어떤 왕족 계보보다 묶여있지 않다는 점을 충분히 설명한다. 궁극적으로 하늘의 의지는 어떤 왕조와도 결부되어 있지 않으며 따라서 왕에 대한 하늘의 태도는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행동 기준에 근거한다. 이런 논리로 인해 상왕조는 의례와 도덕의 총체적 실패로 인하여 천명을 상실한 것이다.
    상을 멸하고 주왕조를 창건하며 기틀을 확립한 주공은 상이 하를 전복시킨 것도 자신과 같이 덕의 실천을 통해 하늘을 총애를 받은 것이라고 주장했다.(권력의 합리화 과정) 이는 하늘이나 최고신이 우주와 사회의 윤리적 삶에서 중심적, 초월적 위상으로 상승한 것이다. 천(天)은 왕조의 지속을 결정하는 최고의 도덕적 의지이다. 인간의 질서를 지배하는 의례의 패턴과 기타 행동양식들, 초월적인 우주의 질서 모두 천에서 유래한다. 그리고 하늘의 명령, 즉 천명은 선한 사람들이 권력을 잡을 것이며, 규범적 질서의 실현은 오직 선한 통치자를 통해서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최종적으로 확신시키기 위한 하늘의 전략이다.
    주왕조 시기에 천은 조상과 자연의 귀신들을 훨씬 초월하는 범주이다. 주왕조 시기에는 천의 임재에 직접 접근할 수 있는 조상들조차 천의 진노로부터 왕조를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왕족의 조상들의 세력은 약화되었지만 세심하고 경건한 제사와 의례의 수행은 통치자의 덕을 측정하는 판단 기준의 하나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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