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튜터의 two픽>(스르륵 편) : 푸코의 새로운 길(中道)

문탁
2020-06-21 10:44
459

 

 

푸코의 새로운 길(中道)

 

 

스르륵

 

 

양생 세미나가 ‘푸코’라는 사실도 처음엔 의아했지만, 그 중에서도 ‘성(性)의 역사’라니... 성(性)? 쾌락? 난 ‘안물안궁’인데 했다. 그러나 성의 역사는 성의 역사가 아닌 성의 역사였다. 권력, 지식, 가정 관리술, 결혼생활, 동정, 해몽술, 기독교...뿐만 아니라 얽히고설키는 개념들도 많았다. 하여 이것은 ‘멘붕 체험기’ 혹은 ‘어떻게든 이해해본 푸코’랄까.

 

 

1. 왜 ()의 역사를 읽었지?

 

먼저 푸코의 가장 근본적인 관심사를 기억해야 한다. 그의 문제계는 ‘나는 누구냐’가 아닌 자다가 꿈에도 나오는 ‘나는 내 삶을 무엇으로 만들어야 하는가?’ 즉, ‘주체화의 양식’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우리 사유의 역사를 통해서 현재의 우리가 형성된 방식을 알아보는 일이다. 푸코는 합리성(‘지식’)과 전략관계(‘권력’)를 통해 우리의 주체성을 확인해가다가 필연적으로 ‘성(性)’과 조우한다.

 

‘성(性)’을 통해 푸코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그림은 명확하다. 17세기에 포착되어지는 생명 권력이 규율과 조절의 원리로써 인간의 육체, 생명을 이용하면서, 성은 점점 정치적 쟁점화 되었고, 그로인해 우리는 성과 관련된 지식과 그것을 실천하는 권력체계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를 성을 통해 사유하는 주체, 즉 ‘욕망의 주체’로 거듭났다는 거다.

 

이는 다시 말하자면 그의 주체화 양식 연구가 ‘지식’과 ‘권력’이라는 문제계를 거쳐 ‘자신(자아)’라는 문제계로 진입함을 의미하는 것이며, ‘자신’이라는 문제계는 자기와의 관계로써 자신을 주체화 하는 방식을 말한다. 그리고 이는 ‘그리스·로마적 자기배려& 기독교적 자기배려’를 통해 우리에게 비교 제시된다. 다시 말해 푸코는 「성의 역사」를 통해 ‘욕망의 주체가 태어난 역사적 배경’을 보여줌과 동시에 그 극단에 서있는 ‘새로운 자기 주체화 양식, 자기수양’을 보여준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성의 역사」, 1,342쪽을 읽어야 했던 이유다. 하여, 우리는 푸코의 계보학적 연구 덕분에 ‘지금의 우리가 왜 자신을 욕망의 주체로 인지하게 되었는지’의 지나치게(?) 상세한 경로를 확인할 수 있었고, 또 무엇보다도 그리스·로마시대 중요한 윤리 원칙인 ‘자기배려’기술을 만나게 된다. 물론 그리스적 자기배려는 이후 기독교적 자기배려에 포위당해 거의 실종되었고, 오히려 오늘날 교육적, 의학적, 심리학적인 다양한 실천들 속으로 숨어들어간 기독교적 자기배려는 우리의 일상에서 은밀하게 변주되며 아직도 작동하고 있다. 욕망의 주체로 살아왔다는 말에 처음에 선뜻 동의하기 힘들었던 이유는 이 때문이었던 듯하다.

 

 

2. ‘권력’ vs ‘통치성’?

 

실은 푸코에서의 첫 멘붕은 무엇보다도 ‘권력’ 개념이었다. 한마디로 푸코에게 권력은 ‘전략적 권력관계’의 줄임말이다. 권력이 ‘전략적 관계’라는 의미는, 그것이 우리의 모든 일상생활의 관계에 미쳐있고, 딱히 부정적인 것도 아니며, 어느 누가 소유하고 금지하는 차원이 아닌, 오히려 아래로부터 흘러나오면서 타인의 행동을 결정하려는 일종의 합리적인 경향을 띤 전술과 오히려 같다는 의미에서이다.

 

그렇다면, 오래전부터 우리가 배워오고, 일상적으로 경험했던 ‘어떤 지배성, 강제성(국가)은 도대체 무엇이었단 말인가?’ 또, 푸코의 논지대로 권력이 ‘전략적 관계’같은 것이라면, ‘자유’와 ‘저항’은 전략적 권력관계 내부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이 되어 ‘우리가 국가라는 강압적인 지배형태에 저항 할 수 있는 가능성’은 사라지게 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다시 말해, 언제든 변할 수 있는 유연한 ‘전략적 권력관계(푸코의 권력)’와 고착화된 ‘지배-복종이라는 형식의 ‘국가’우리가 알고 있는 권력와의 관계성에 대한 의문점, 그리고 어떻게 저항해야 하나 라는 의문이 다시금 멘붕의 지점으로 찾아온다는 것이다.

 

하여 푸코는 「안전, 영토, 인구(1978)」에서, 우리가 생각했던 ‘권력(주권, 법)’은 알고 보면 전략적 권력관계의 한 특이 유형에 속하는 ‘통치술(기독교 사목 권력에서 연원한 인간 통치의 기술)’의 한 유형이라 말한다. 다시 말해 ‘근대 국가’는 그저 ‘통치의 돌발사건(346)’, 여러 통치 방식중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덕분에 우리는 국가의 어마 무시한 ‘가오’는 해체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결국 섬세한 권력 작동의 메커니즘 자체가 변하지 않는다면, 우리를 복종-온순하게 만드는 지배체제의 상태에서는 벗어날 수 없다. 우리는 권력과 지배 사이에서의 어떤 ‘통치의 테크놀로지’를 개발해내야 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는 완전히 ‘새로운 윤리의 기준’이고, ‘지배(?)하되 지배를 최소화하는 놀이’가 되는 어떤 것이며, ‘사려 깊은 자유의 실천’과 다르지 않은 어떤 것이다.

 

바로 이러한 사유의 지점에서 다시 그리스·로마적인 주체화의 양식인, ‘자기와 자기와의 관계’기술이 소환된다. 국가라는 통치성에 저항할 수 있는 원칙적으로 가장 유용한 지점은 바로 ‘주체의 자유’와 ‘타자에 대한 관계’를 동시에 고민하고 포착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어떤 것이어야 하기에 ‘자기배려’는 바로 그러한 지점에서 지배적인 권력에의 저항, 권력 남용에의 새로운 저항 지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권력개념을 이해하고 나니 왜 해방이 문제가 아니라고 했는지, 왜 그토록 억압과 금기가 문제가 아니라고 외쳤는지가 마음에 와 닿았다. 그리고 정말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며 그 밑에 깔려있을 무언가들에 더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3. ‘해방’ vs ‘저항’?

 

푸코에게 ‘해방’과 ‘저항’의 관계가 쫌 다른 맥락에서 사유되는데, 「성의 역사」에서도 이미 맛은 보았다. 성을 억압과 금기로 사유하지 말라는 수백 번의 강조에서 말이다. 그런 방식의 사유는 억압이 부각되면서 자연스레 ‘해방만이 저항으로서 강조되어지기에 우리는 권력과 저항을 제대로 사유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해방은 저항과 다른 것?

 

물론 아니다. 해방은 조금 부족한 측면이 있는데, 이는 그것이 새로운 권력관계를 열어 준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나, 실천적 윤리를 제공해주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부족한 것이다. 구습의 신분제에서는 해방 된지 오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신분제가 오늘날 우리 삶에서 늘 시행되고 있기에 말이다.

 

 

 

 

 

 

이는 다시 말해,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억압적인 관계망 내에서 주체화를 사유하는 것이 아닌, 자신이 스스로 무언가를 단호히 결정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즉, ‘자유의 실천’을 고려하는 방식으로 저항해야 한다는 말이다. 여기서의 ‘자유’란 한마디로 ‘사려 깊고 신중한 방식’으로 실천되는 자유다.

 

그것은 자신의 품행과 처신을 구체적으로 가시화하는 하나의 ‘존재양식’이고, 또한 동시에 타인과의 관계가 필연적으로 고려되어지기에 ‘윤리적인 실천’이다. 이러한 방식은 바로 푸코가 주목했던 고대의 ‘자기배려’의 방식에 다름 아니다. (‘자기배려’가 더 궁금하다면 「주체의 해석학」으로!)

 

 

4. ‘새로운 길

 

푸코가 말하고 있는 것들은 낯설기도 하고, 익숙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어찌보면 기승전, ‘자기배려’ 같았지만, 그 마디마디에 숨어있는 푸코 각각의 사유, ‘권력’, ‘통치성’, ‘해방’과 ‘저항’의 관계 분석들은 놀라왔고 신선했다. 코끼리 다리 더듬듯 힘든 텍스트 읽기를 통과하며 문득 마음에 와 닿은 한 가지가 있었다.

 

그것은 ‘아, 푸코도 붓다처럼 새로운 길(中道)을 발견했구나.’였다. 붓다도 팔정도(八正道), 그 중에서도 ‘알아차림(sati)’같은 기존과는 전혀 다른 수행법으로 욕망의 양극에 서있는 중생들에게 허용도 금지도 아닌 전혀 새로운 ‘자기와의 관계기술’을 알려주었듯이, 푸코 역시 기존과는 다른 개념 분석과 새로운 존재의 기술을 제안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문탁샘 feat)

 

 

 

 

 

 

‘그래서’ 이제 푸코를 ‘요만큼’ 읽은 지금의 나는... 나만의 새로운 길을 찾아야겠다고 결심해야할까. 아니면 지금 우리 일상 속 실천들 속에 교묘히 숨어있다는 욕망의 주체화 방식에 새삼 분노해야 할까. 그도 아니면 내 일상 속에서의 대항품행은 어떤 것이 되어야 할지 고민을 시작해봐야겠다고 선언해야 할까. 하지만 이도 저도 너무 식상하고 오래된 구호 같은 느낌적인 느낌은 왜 일까.

 

실은, 지금 우리 일상의 교육과 의료, 과학적 지식들은 너무나 친절하고 유용하기에, 나는 자신이 욕망의 주체로 살아가고 있는지, 나의 주체화의 양식이 진리놀이와 권력놀이에 예속되어 있는지도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왔기 때문이다. 겨우 막판에 조금 지켜볼 수 있었던 민주화 운동도 끝난 지 오래고, 더구나 나라의 녹을 오래 먹고 산 나는 오히려 국가에 안심(?)하며 살아 왔달까. 하여 저항의 불길은커녕 왜 점화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음을 ‘고백’하고 싶다.

 

아마 이는 바로 푸코가 지적한 대로 ‘권력이 다시 대항품행을 취합, 순화하는 방식으로 진화해(311)’ 왔고 또 그런 문화양식 안에서 우리의 주체화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어서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멀게는 요즘 연일 보도되는 ‘조지 플로이드 사망사건’을 보고 있노라면, 또 가깝게는 코로나로 촉발된 사이버 강의에 연일 강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는 딸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혹은 요즘 문탁에서 진행되는 ‘전태일 50주년, 필사릴레이’를 보노라면,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나 자신과의 관계에서 기인하는 묵은 갈등들을 감지하게 되는 순간이면, 나는 나도 모르게 푸코가 말하는 ‘대항 품행’과 ‘자기배려’를 어느새 떠올리게 된다.

 

이렇게 가다보면, 아니 1,342쪽과 또 앞으로 다가올 600쪽도 마다하지 않는 다면, 또 오늘처럼 이렇게 힘든(?)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고 이어가다 보면 나의 새로운 길, 중도(中道)의 기술도 어느새 장착하게 되지 않을까 긍정해본다.

 

댓글 2
  • 2020-06-21 13:04

    그 어려운 푸코를 읽어냈다는 사실만으로도 리스펙트!! 책을 읽고 곱씹고 고민하며 글을 쓰는 스르륵의 모습이 멋집니다. 피처링에 등장했던 문탁샘이 몇년 전 '자기배려하는 인간,군자'라는 글을 썼는데...읽는 도중 내내 그 생각이 났어요. 강민혁의 '자기배려'도...푸코는 1도 읽지 못한 일인이지만 결국 자기배려는 스스로의 실천 없이는 깨달을 수 없는 개념 같군요...

  • 2020-06-21 15:47

    성의 역사가 왜 양생 프로젝트에서 읽혔는지 쬐끔 알 것 같네요. 문탁쌤이 왜 앞으로의 10년 문탁 공부 비젼을 양생과 영성으로 잡으셨는지도 쬐끔 알 것 같고요 ㅎㅎ 치열한 고민 끝에 쓰셨을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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