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인으로 사고하라> 후반부 후기

오영
2020-05-04 01:17
394

공유재는 동사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공유재는 여러 층위의 의미를 갖는다. 우선 공동체가 공유하는 자원으로서의 공유(재)가 있다. 이는 자연의 선물, 시민 인프라, 문화 작품, 전통, 지식 등과 같이 우리가 공통의 부라고 일컫는 것들이다. 공유재에는 동사로서의 의미도 있는데 공통의 가치와 공동체 정체성을 보존하는 자원을 장기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사회적 시스템을 뜻한다. 또한 공동체들이 국가나 시장의 영향력은 최소화하면서 자원을 관리하는 자기조직적 시스템이기도 하다.

공유재는  지극히 구체적, 지엽적, 맥락적이고 따라서 각각의 공동체가 공유하는 공유재와 공유기술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하여 저자는 수많은 공유재들을 체계적으로 분류할 수 없고 공유재의 은하계 혹은 군집이라고 소개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책의 후반부를 읽으면서는 무엇보다 공유화의 기술에  관심이 갔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공유인으로 사고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어렵다고 여겨졌다. 공유재가 한번 정해졌다고 해서 유리벽안에 보관해둘 수 있는 무엇도 아니고 한번 만들어졌다고 해서 관성적으로 해도 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무엇이 우리의 공유재이고 어떻게 보존하고 관리할 것인가는 매 상황마다 달라지는 것이고 구성원들의 소통과 합의를 통해서만 구체화되고 실현되는 것이므로 부단한 노력과 세심함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노력 중에는 이반 일리치가 말한 ‘토착법’을 만드는 것도 포함된다.

토착법이 사라진 오늘날, 우리에게 토착법이란 무엇일까? 저자는 과거의 토착법이 그러했듯 공유재를 지키기 위한 ‘경계선 긋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때의 경계선 긋기는 공유재를 침탈하려는 자본주의 시장과 완전히 단절하라는 말은 아니다. 현대에는 시장이나 국가권력으로부터 완전 분리가 전혀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오히려 그 영향력에 휘둘리지 않고 공유재를 보존하기 위해서 공동체의 공식적인 규칙과 윤리적인 규범을 잘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공유인들은 자원과 공동체를 보존하면서도 공유재를 일구는 데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거나 공유재를 훼손, 전용하려는 시장을 경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계선 긋기, 배제, 제재와 같은 말은 공유인들이 각자의 공유재를 돌보고 보호하기 위해 에너지를 집중해야 하고 공유화의 기술을 기르는 것이 그 모든 것의 바탕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가 소개한 베네수엘라의 <세코세쏠라>는 경계선 긋기와 공동체 고유의 공유화의 기술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잘 보여준다. 

세꼬세쏠라는 공유재 기반 기업 중 성공적인 사례로 베네수엘라의 불안정한 정치적·경제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67년 창립 이후로 지금껏 잘 운영되고 있다. 저자는 이 기업이 공유재 주변에 “수호할 수 있는 경계”를 세움으로써 시장의 논리에 의해 좌우되지 않은 예라고 말한다. 그들에게는 대표나 리더, 위계적 직책이 없다.  구성원 모두의 평등하고 자유로운 의사 소통을 가장 중시한다.  2018년에 나온 한 인터뷰 자료에 보면,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잘 알 수 있다. 이 인터뷰 자료의 제목은 "We are one big conversation"이었다. 그들은  공통의 것을 구성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구성원 모두가 함께  숙고하고 시간을 들여 소통하는 일에 집중한다. 일례로 금전등록기 사용 여부를 결정하기 전 3년 동안 수도 없이 논의를 했다고 한다. 의사결정은 만장일치를 원칙으로 하지만 소수와 다수로 가르고 싶지 않아 투표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구성원들에게 <세코세쏠라>가 단순히 일터가 아니기 때문이다. <세코세쏠라>는 구성원들 모두의 프로젝트이다. 다시 말하면, <세코세쏠라>는 구성원들 모두가 협력하는 매일의 현장에서, 구체적인 과정들 속에서 점차 성숙해가는 공유재 그 자체인 것이다.  하여 구성원 모두가 공통의 것을 만들기 위해 시간을 들여 함께 숙고하고 어려움을 뚫고 나갈 수 있는 것이리라.  

https://geo.coop/story/we-are-one-big-conversation

댓글 3
  • 2020-05-04 07:39

    세코쎄쏠라 오십년 동안이나 공유화작업을 해왔다는 거잖아요
    우린 이제
    10년 했으니 한 사십년 더 해야되는거죠?
    그 정도면 토착법이라 부를만한 공통개념이 만들어질 것도 같네요 ㅋ 오래 살아야지^^

    • 2020-05-04 10:52

      오래 살 이유가 하나 더 는 거?

      집값 폭락하는것도 봐야지~
      그전에 기본소득이 실현되는 것도 봐야지
      ㅋㅋ

  • 2020-05-04 18:04

    오영샘! 그니까 링크 말고 번역을 해달라고요..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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