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팍한 화장품상식⑥] 주방비누, 文質彬彬의 상징

자누리
2019-10-13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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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겨레신문에 “간다 플라스틱, 온다 천연비누의 시대!”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친환경제품이 계속해서 부상하고 있으며 새로운 가치를 찾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를 말하는 기사였다. 거기서 천연 주방 비누를 이렇게 소개한다. “주방에서 비누를 쓴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그런데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올바른 설거지 워싱바’라는 생소한 제품이 인기를 끌었다.” 음, 주방에서 비누를 쓴다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다는 말이 내게는 더 생소하다. 한 살림, 생협에서는 진작부터 진열대에 있었는데... 하여튼 우리도 진작부터 주방비누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으며 불티나게 없어지는 인기제품이다. 그리고 이 주방비누는 흥미로운 역사를 지니고 있다.

 

 

꽤 오래 전 기린은 자누리 사업단 일꾼이었다. 1년 간 일을 하면서 자기 업적을 하나 만들겠노라고 야심을 불태우더니 주방비누를 만들자고 졸라댔다. 아니다, 기억이 흐릿해서 야심은 다른 것, 주방비누를 문탁 주방에서 쓰게 하겠다는 것일 수도 있겠다. 확실한 건 언젠가부터 주방에서 모든 주방세제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도 기린이 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점심을 먹고 설거지를 주방비누로 하던 사람들이 이거 좋다고 입소문을 내기 시작했다. 씀바귀는 친지들에게 선물하겠다고 한 번에 다섯 개씩 사곤 했던 기억도 있다.

 

주방비누는 처음부터 재활용 제품으로 기획되었다. 우선 코코넛유에 폐식용류를 섞어서 쓰기로 했다. 대대적으로 폐식용유를 모아서 한 몇 년은 잘 썼다. 지금은 잘 안 모아져서 새 식용유를 쓴다. 그래도 나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느 해 인문학축제에서 ‘좋은 삶’을 의제로 삼은 효과로 기름을 많이 안 쓰는 방향으로 식생활이 변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다음 먹다 남은 찬밥과 파지사유 커피머신에서 나온 커피찌꺼기를 넣어서 세정력과 항균효과를 높였다. 나는 지금도 파지에서 버려지는 커피찌꺼기가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다. 언젠가 재활용하리라, 죽기 전에 해야 할 일 리스트에 올라 있다. 그런데 코코넛유, 식용유, 가성소다, 그리고 비법이어서 공개할 수 없는 어떤 재료 등에 돈이 들어간다. 원가를 생각하면 이 주방비누의 가격은 지나치게 저렴하다. 이것은 주방비누가 공진단과 만나 이루어진 효과이다.

 

 

자누리 사업단의 공식 명칭은 ‘자누리생활건강’이라 우리 생활의 건강함을 추구하며 몸을 건강하게 하는 홍삼, 쌍화탕 등을 만들다가 어찌어찌 공신단((拱辰(신)丹,공진단의 우리 식 이름이다)을 만들기로 했었다. 복활동으로 만들자고 공지를 띄웠더니 주문이 밀물처럼 모여들었다. 그 때도 우리는 마을경제의 가치를 열심히 찾고 만드는 중이어서 밀물에 좋아하기에 앞서 당황했다. 다른 제품과 달리 얘는 왜 이렇게 좋아하지? 원래 인기가 많은 제품인가보다 이해하려 해도 마음 한 구석 무거움이 가시질 않았다. 그 찜찜함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니 오직 싼 가격이 친구들의 마음을 움직인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원인이었다. 좋은 제품을 저렴하게 내놓아 많은 사람이 이용할 수 있으면 좋은 것 아닌가? 당연 그렇다. 그렇지 않으면 뭐 하러 이런 일을 벌이겠는가! 그럼에도 주문 이유가 ‘저렴함’ 그게 일등이라면 마을경제의 가치와는 뭔가 어긋나는 것도 사실이었다.

 

우리처럼 대안경제를 찾는 히라카와 가쓰미는 <골목길에서 자본주의의 대안을 찾다>에서 ‘가난은 강하다’. ‘가난은 야생이다’고 말한다. 반대로 부는 아이와 같은 약함에 빠지게 한다. 강한 가난은 열심히 일을 해 부를 가져오지만 그 부가 야생을 잃어버려 약해지는 악순환에 빠진다. 이 순환을 선순환으로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논어>에 문질빈빈(文質彬彬)이라는 좋은 말이 있다. 문과 질은 각각 꾸밈-본바탕, 문명-야생의 대비를 이룬다. 문과 질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 문질빈빈의 요지이다(質勝文則野 文勝質則史 文質彬彬然後 君子). 대안경제를 찾을 때 가장 신경 쓰이는 점이 바로 문이 질을 넘어서 과도하다는 현실인식이다. 문이 균형을 넘어서면 바탕이 감추어지고, 기반 없는 허공에 붕 뜬 채 유일한 가치, 지배적인 가치를 만든다. 우리의 현실에서는 화폐의 가치가 그러하다. 아마 폭주하는 주문에 가격을 연결하며 불편했던 마음은 이 현실 감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문질빈빈의 방법은 다른 게 없다고 생각한다. 지배적 가치를 없애는 것이다. 문과 질의 균형은 화폐의 시장가치, 교환가치가 힘을 못 쓰도록 더 다양한 가치로 살을 붙이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부를 재정의 하는 일이다. 약한 아이와 같은 부가 아니라 야생과 공존하는 부, 바로 ‘공통의 부’이다. 공통의 부는 당연히 공동재산이 아니다. 너무 많은 가치의 얼개가 있어서 어떤 친구든 ‘선순환 하는 가치’의 담지자가 되게 하는 그런 가치들의 집합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우리는 가격에 선순환 하는 가치를 추가하기로 했다. 그래서 공신단으로 들어 온 돈의 일부를 떼어서 친구들이 함께 쓸 수 있는 기금을 만들었다. ‘양생기금’이었다. 그리고 몸과 환경을 건강하게 하지만 좋은 재료 때문에 시중보다 비쌌을 수밖에 없는 자누리의 생활제품에 지원하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오천원이었던 주방비누는 삼천원이 되었다. 친구들은 주방비누를 살 때마다 양생기금의 지원을 받는 것이었고, 그 양생기금은 어느 날 공신단을 만들러 왔던 그 친구들이 주는 것이었으며, 물론 그 친구들은 주방비누와 공신단으로 얽혀 있는 공통의 부로 인해 값이 비싸 살 엄두를 못냈던 공신단을 몇 십개씩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가치는 무어라 부르는 게 좋을까? 사람들이 서로의 노고에 감격해하고(때로는 모르기도 하지만) 그 만큼 초과분이 발생하는 이런 가치를 교환가치라고 부를 수는 없지 않을까? 그것은 일종의 상징가치이다. 더 많은 의미를 부가할 수 있고, 종류도 다양할 수 있고, 더 많은 동의를 얻어내기 위해 다툴 수도 있는 그런 가치의 연쇄이기 때문이다. 문질빈빈은 상징가치에 대한 의지와 아이디어만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을까하는 생각마저 든다. 지금 양생기금은 없어졌다. 그런데 주방비누는 여전히 삼천원이다. 양생기금이 주었던 그 상징가치를 대체할 만한 다른 가치를 아직 찾을 수 없어서이다(물론 찾으면 가격은 원위치 할 수 있다). 양생기금은 없지만 그 상징가치는 아직도 유효하다. 정말 상징가치가 되었다.

 

* 한겨레 신문에 실린 기사에서 놀란 점은 다른 데 있다. 제주의 어떤 숙소에 갔더니 욕실에 비누 하나만 달랑 있더란다.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액체 세제가 즐비한 욕실과 다르다. 비누가 다시 보였다.” 나는 비누가 샴푸와 클렌징을 담은 플라스틱을 대신한다는 생각은 못하고 있었다. 그 숙소의 주인이 한 수 위라는 생각이 든다.

댓글 1
  • 2019-10-14 09:51

    문질빈빈을 문명과 야생으로 엮으니 신선합니다요~~ 양생기금은 없어졌지만 그 '상징가치'는 남아서 여전히 3천원인 주방비누~
    이제는 다른 가치를 찾아서 책정 가격을 '바꿔' 보아요^^
    우리집 욕실에도 자누리 비누밖에 없는데요^^ 샴푸, 린스, 바디클린저까지 대체하는 자누리 비누들~
    자누리에서 1년 일꾼으로 일하고나서 저 제품들과 과감히 이별을 고했죠.
    저 제품들 가격이 그렇게 싼 이유가 어떤 재료를 썼기 때문인지 쫌 감을 잡았거든요
    무엇보다 뽀드득대는 감을 살리려고 넣은 성분이 피부의 수분까지 바싹 말린다는 사실을 알고는 더이상 못 쓰겠더라고요
    그렇게 자누리비누만으로 세안과 샤워까지 구성한 결과 건조를 모르는 피부를 유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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