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바리주역> 54. 뇌택귀매(雷澤歸妹) - 결혼의 의미

토용
2019-09-10 00:44
1764

<20119 어리바리 주역>은 이문서당 학인들의 주역 괘 글쓰기 연재물의 제목입니다. 

제목 그대로 어리바리한 학인들이 어리바리한 내용으로 글쓰기를 합니다. 형식도 내용도 문체도 제각각인 채 말입니다.

하지만 압니까? 언젠가는 <주역> 그 심오한 우주의 비의, 그 단 한자락이라고 훔칠 수 있을지^^

 

결혼의 의미

 

『주역』에는 남녀, 부부 관계에 관한 괘들이 몇 개 있다. 함(咸), 항(恒), 점(漸)괘가 그것들인데 이번의 귀매(歸妹)괘는 특히 결혼에 관한 것이다.

 

 

귀매의 상괘는 우레이고, 하괘는 못이다. 우레가 위에서 진동함에 못물이 따라 움직이는 것은 남자가 위에서 움직임에 여자가 기뻐하여 남자를 따르는 상(象)이다. 또 진(震)은 장남이면서 나이 많은 남자를 뜻하고, 태(兌)는 소녀를 뜻한다. 그러므로 귀매는 나이어린 여자가 나이 많은 남자한테 시집가는 것을 뜻한다. 괘상의 해석으로만 보면 시집가서 남편의 뜻을 좇아 아내로서 현숙한 덕을 발휘하면서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런데 괘사는 그런 장밋빛 전망을 보여주지 않는다.

 

“귀매는 가면 흉하니, 이로운 바가 없다. (歸妹 征 凶 无攸利)”

 

아니, 시집가면 흉하다니? 괘상과 너무 다른 뜻 아닌가? 이는 무턱대고 가면 안 좋다는 뜻이고, 곧 정당한 절차 없이 마음대로 자유연애를 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단전에서는 “천지가 사귀지 않으면 만물이 생기지 않으니 귀매는 사람의 종(終)과 시(始)”라고 하였다. 천지의 모든 만물은 음양이 서로 만나 조화를 이룰 때 생긴다. 인간세상도 마찬가지. 남녀가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이다. 앞의 세대가 끝나더라도 뒤의 세대가 이어서 낳고 낳아 후손이 끊이지 않는다. 그런데 거기에는 예에 맞는 절차가 있어야 한다. 더구나 이효부터 오효까지 모두 자리가 바르지 않다. 또 삼효와 오효는 모두 유(柔)로서 아래 강(剛)을 타고 있다. 귀매괘에서는 유가 강 위에 있는 것을 좋지 않게 본다. 이천은 남존여비와 부창부수의 예가 바른 도인데 이 도에 맞지 않게 욕심과 방자함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효사를 보면 특이한 의미를 가진 글자가 나온다.

“초구는 누이동생을 시집보내되 잉첩으로 함이니, 절름발이가 걸어가는 격이다. 그대로 나아가면 길하리라. (初九 歸妹以娣 跛能履 征 吉)”

여자가 시집가는데 초효의 자리에 있어 지위도 낮고 정응도 없기 때문에 정처로는 갈 수 없고 잉첩으로 가야한다. 양강(陽剛)의 자리에 있어 어진 덕을 가지고 있으나 할 수 있는 일은 정처를 받들어 돕는 역할 뿐이다. 그러므로 다리를 절면서 가는 격이라고 했으니, 자신이 가진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 그러나 싫다고 안 갈 수는 없는 법.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고 가면 길하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말하는 잉첩(娣)은 무엇일까? 잉첩은 중국 고대에 있었던 결혼 제도이다. 제후국 간의 혼사에서 제후의 딸과 함께 그 여동생이나 사촌 등을 딸려 보내 첩으로 삼게 했다. 주역의 효사는 일상생활에서 알기 쉬운 예를 들어서 점괘를 해석해 놓은 경우가 많다. 잉첩이라는 제도도 그 당시 사람들에겐 보편적인 관습이었다고 할 수 있다.

『시경』의 <주남>과 <소남>편에서도 잉첩에 관한 얘기가 나온다. 주자가 <주남>과 <소남>을 해석하는 기본틀은 문왕의 교화이다. 거기에 그 교화를 더욱 아름답게 해주는 문왕의 아내를 칭송한다. <주남>편의 첫 번째 시 ‘관저’는 문왕의 아내 태사의 덕을 칭송하는 시이다. 요조숙녀 태사가 문왕의 배필이 될 만했으며, 그 증명을 이후 다른 몇 편의 시들을 통해 보여준다. 태사가 검소함과 정숙한 덕으로 문왕을 잘 보필했으며, 특히 잉첩들을 질투하지 않고 화목하게 잘 지냈다는 것이다. 음양의 조화가 우주의 질서를 유지하듯 인간사 평화의 바탕은 남녀가 결합한 화목한 가정에서 시작된다. 정처의 너그러운 마음과 잉첩들을 감싸 안는 후덕함에 왕조의 영달이 달려있을 수도.

잉첩제는 당시 사회를 유지하는 계약의 한 형태였다고 할 수 있다. 제후국끼리의 혼인동맹으로 힘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주의 봉건제도를 명목상으로나마 유지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괘사에서 무턱대고 가면 흉하다는 것이 이해가 된다. 자유연애는 금물, 정략적인 결혼 그것이 서로에게 윈-윈이 되는 길이기 때문이다.

 

 

어리바리를 쓰려고 책을 뒤적이다보니 괘사에 대한 동파의 재미난 해석이 보였다. “나이가 적은 자를 좋아하는 것은 사람의 상정(常情)이다. 그러므로 기뻐서 움직인다는 것은 그 시집오는 사람이 젊은 여자이기 때문이다.” 언뜻 생각하기에는 예나 지금이나 남자들이 나이 어린 여자를 좋아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후손을 생산한다는 것과 연관 지어 생각하면 나이가 상당히 중요했을 것 같다. 이것과 비슷한 경우로 택풍대과(澤風大過)괘 구이효가 있다. “마른 버드나무에 뿌리가 생기며, 늙은 지아비가 젊은 아내를 얻었으니, 이롭지 않음이 없다.” 그러나 반대의 효사도 있으니 같은 괘 구오효이다. “마른 버드나무가 꽃이 피며 늙은 부인이 젊은 남편을 얻은 것이니, 허물이 없으나 명예도 없으리라.” 생산의 관점에서 본다면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는 효사들이다. 그러나 오늘날은 결혼이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되는 시대이다.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를 낳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동거를 하면서도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경우도 있다. 더군다나 결혼의 형태도 반드시 남녀의 결합만 있는 것도 아니다. 동성혼을 합법화한 나라도 있다. 귀매괘로 오늘날의 결혼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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