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바리주역> 40. 뇌수해괘 - 올바른 관계 맺기는 추운 겨울을 보내고 따듯한 봄을 불러 온다

우연
2019-06-04 06:04
950

<2019 어리바리 주역>은 이문서당 학인들의 주역 괘 글쓰기 연재물의 제목입니다.

그대로 어리바리한 학인들이 어리바리한 내용으로 글쓰기를 합니다형식도 내용도 문체도 제 각각인 채 말입니다. 

하지만 압니까언젠가는 <주역>, 그 심오한 우주의 비의그 단 한 자락이라도 훔칠 수 있을지^^ 

올바른 관계 맺기는 추운 겨울을 보내고 따듯한 봄을 불러 온다





주역 괘를 읽다보면 어려운 시대를 나타내는 난(難)괘를 만날 때도 있고 좋은 시절을 이야기하는 괘를 만날 때도 있다. 어려운 시절이라 하여 내내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니며 호(好)시절이라하여 항상 즐거운 것만도 아니다. 하여 힘들다하여도 절망할 것도 없고 즐겁다하여 그리 좋아할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주역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다 그의 때와 쓰임이 있으니 그 시기를 잘 견디라는 것을. 어려운 시기를 만나 조심하고 또 조심하라는 경고는 받아들이겠는데 좋은 시절에도 삼가고 신중하라는 말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아니 이해하기 힘들었다기보다 심정적으로 반감이 일었다. 거친 시기를 잘 넘기고 비로소 한 숨 쉬게 되었는데 기뻐하기보다는 두려워(懼)하고 걱정(慮)하라니. 그렇다면 도대체 언제 걱정없이 맘껏 웃으란 말인가. 인생을 항상 걱정 속에서만 보내란 말인가. 갑갑하고 답답했다.

주역에는 4개의 험한 시대를 나타내는 4대 난괘가 있다. 시기가 아직 도래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수뢰둔괘, 뭘 어찌 해볼 수도 없이 그저 험하기만 한 중수감괘, 앞에 험한 산이 딱 버티고 서서 난감하기 짝이 없는 수산건괘, 그리고 상승의 기운이 이미 다해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고 내려올 일만 남은 택수곤괘.

이번에 살펴볼 뇌수해괘는 일이 술술 잘 풀려나가는 시기를 의미하는 吉卦이다. 다음 일을 도모하거나 근심(謹心)으로 조심해야하는 신독(愼獨)의 메시지도 별로 품고 있지 않은, 주역 64괘 중 몇 되지 않은 마음 편안한 순수 길(吉)괘이다. 물론 정(貞)해야 질(吉)하다는 원론적 유가 가르침이 나타나나 이 정도 쯤은 유가 경전을 공부하는 마당에 가볍게 넘어가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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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뢰둔의 상괘와 하괘가 뒤바뀐 뇌수해는 수산건 다음에 위치한다. 어려움이 시기가 다해 그 기운이 사그라지면 험함 속에서 움직임이 일어 문제가 풀어지게 된다. -彖曰 險以動 動而免乎險 解- 천지가 풀려서 우레와 비가 일어나고 우레와 비가 일어나서 온갖 나무와 초목이 터져 나오는 시기이다. -天地解而 雨雷作 雨雷作而 百果草木 皆甲折 解之時大矣哉- 시기가 아직 도래하지 않아 웅크리고 있을 수밖에 없는 수뢰둔과 반대로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니 만물이 생성하는 때가 온 것이다. 문왕이 지었다는 후천 팔괘에 의하면 육감수(六坎水)는 북쪽방향, 추운 겨울을 상징하고, 사진뢰(四震雷)는 동쪽, 봄을 의미한다. 뇌수해는 북쪽의 추운 겨울이 지나고 따듯한 봄이 찾아왔음을 나타내고 있다. 차가운 얼음이 봄볕에 풀리듯 만사가 순리대로 자연스럽게 풀려나간다. 갈 곳 몰라 방황한다면 굳이 가려하지 않아도 괜찮다. 서남쪽으로 감이 이로우나 갈 곳이 없다면 다시 돌아와 그 자리에서 일의 되어감을 살펴볼지어다. -卦辭 解 利西南 無所往 其來復 吉-


주역을 공부하다 보면 같은 괘임에도 불구하고 괘사와 효사의 풀이가 다소 어긋나 있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전체적으로 바라보는 관점과 구체적 상황 속에서 나의 위치에 따라 취해야할 행동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겠다. 일이 술술 잘 풀려나간다는 뇌수해의 경우 괘사와 효사가 모순되는 것은 아니지만 효(爻)의 자리값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뇌수해-8.jpg

 

初六 無咎 (초육은 허물이 없다)

九二 田獲三狐 得黃矢 貞 吉 (구이는 사냥하여 세 마리의 여우를 잡아 누런 화살을 얻었으니, 정하여 길하도다)

六三 負且乘 致寇至 貞 吝 (육삼은 지고 있어야 하는데도 타고 있는지라 도적이 오게 하니, 정하더라도 부끄럽다)

九四 解而拇 朋至 斯孚 (구사는 네 엄지발가락을 풀어버리면 벗이 이르러 믿으리라)

六五 君子維有解 吉 有孚于小人 (육오는 군자가 풀어버림이 있으면 길하니 소인에게서 징험함이 있으리라)

上六 公用射 隼于高墉之上 獲之 無不利 (상육은 공이 새매를 높은 담장 위에서 쏘아 잡으니 이롭지 않음이 없도다)



상육(上六)을 제외하곤 자리값이 모두 어긋나 있다. 양(陽)의 자리인 1, 3, 5의 자리에는 음효(陰爻)가 위치하며 음(陰)의 자리인 2, 4 위치에는양효(陽爻)가 자리한다. 맨 위의 자리를 제외하곤 모두 부정(不正)이다. 일의 잘되고 못됨은 자신의 자리를 완벽히 차지하고 있음이 아니다. 자신의 바름만을 고집하기보단 서로간의 관계를 살펴야한다. 14, 25효가 정응(正應)을 이룬다. 맨 윗자리의 사람이 결코 고집스럽지 않게 기준을 정해주고 있을 때 아래 위치의 실무자들이 잘 협력한다면 일이 풀려나간다는 것이라 해석해 볼 수도 있겠다. 내가 비록 원하는 위치도 아니고 내 자리가 아닌 것도 같아도 서로를 믿고 협력한다면 사태는 그리 나빠지지 않는다. 좋게 변화할 수 있다. 좋은 관계성은 각자의 역량보다 일의 해결에 더 큰 힘을 발휘한다.

 

九四 解而拇 朋至 斯孚 네 엄지발가락을 풀어버리면 벗이 와서 믿으리라.

험함의 하체(下體)를 벗어나 움직여 일을 해결해 나가는 상체(上體)로 올라온 구사(九四)는 양효(陽爻)이다.육오(六五)를 적극 보필할 수 있는 자리이다. 엄지발가락을 풀어버려야 자신과 뜻이 같은 강양(剛陽)의 벗이 와서 큰 일을 도모하고 육오(六五)의 군주를 도울 수 있다. 엄지발가락은 아래에 있으면서 작은 것으로 이천에 의하면 초육(初六)을 의미한다. 그런데 정응(正應)으로 무구(無咎)인 초육(初六)이 왜 나에게 해가 되는가. 그래서 혹자는 무(拇)는 초육이 아니라 육삼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이기적 사욕으로 자신의 위치에 만족하지 않고 더 높은 지위를 탐하는 육삼은 더 윗자리에 있는 구사와 친하고 싶어한다. 육삼은 구사와 정응(正應)이기도다. 구사(九四)도 육삼(六三)이 편할 것이다. 짐을 지고 있어야 하나 수레를 타고 있는 육삼. 이렇게 본다면 엄지발가락은 육삼에 더 가까워 보인다. 무튼 어떤 상황에서는 나에게 이익이 되고 편한 사람일지라도 여건이 변하면 불편해지고 나의 발전을 가로 막는 사람이 있다. 자신의 사욕과 맞아떨어질 때는 나에게 잘해 주지만 자신의 이익과 어긋날 때는 조금의 불편도 감수하려 하지 않는 사람, 이런 사람을 우리는 소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처한 지금의 조건에 가려져 이런 소인들을 골라내지 못한다면 진정한 벗을 만날 수 없다. 뜻을 같이 할 벗을 사귀고 싶다면 과감히 친근한 엄지발가락을 풀어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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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수해의 길함은 너그럽고 유순한 상육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상육이 변효로 작용해 상구로 움직이면 화수미제가 되어버린다. 일이 잘 해결될 것 같은 조짐은 맨 윗자리의 강함과 고집불통으로 다시 제자리, 오리무중이 되어버린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부드러워지자. 상구가 아니라 상육으로서 자신의 부드러움을 키워나가자. 모든 자리값이 어긋나 있다고 하더라도 윗사람이 자신의 뜻을 고집하지 않고 포용과 화해의 마음으로 서로간의 관계성을 중요하게 여긴다면 화수미제가 아니라 뇌수해의 시기를 맞이할 수 있다. 양강(楊鋼)의 자녀를 두었는가? 가정의 평화를 위해선 유순(柔順)의 상육(上六)으로 혹은 육오(六五)로 처신할 줄 아는 지혜를 갖출진저.

 

사족 하나. 점괘로 뇌수해괘가 나왔다면 분명 기뻐할 일이다. 사업운, 재물운, 학업운, 여행운 두루두루 순탄하다. 단 하나, 연애운은 별로. 계곡의 얼음이 녹아 시냇물이 되는 과정에는 진흙이 섞이기 마련, 한 때의 유희로는 모르겠으나 진실된 관계가 되기에는 진흙이 지나치게 서걱거린다. 부부의 연은 뇌수해가 아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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