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바리주역>41. 산택손괘 - 덜어냄의 지혜

영감
2019-06-10 09:23
527

<2019 어리바리 주역>은 이문서당 학인들의 주역 괘 글쓰기 연재물의 제목입니다.

그대로 어리바리한 학인들이 어리바리한 내용으로 글쓰기를 합니다형식도 내용도 문체도 제 각각인 채 말입니다.

하지만 압니까언젠가는 <주역>, 그 심오한 우주의 비의그 단 한 자락이라도 훔칠 수 있을지^^ 

덜어냄의 지혜 


100 살까지 살고 싶은 사람은 99세 노인뿐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많이 가질수록 욕심을 낸다. 욕구는 발전과 성공의 원동력이지만, 욕심은 분수에 넘치게 탐내거나 누리고자 하는 마음이다. 예로부터 기독교, 유불선 사상 공히 욕심을 죄악의 근본으로 여기고 경계하고 있다.

주역 산택손山澤損괘의 괘사 '損은 有孚면 元吉하고 无咎하여 可貞이라 利有攸往하니'를 정이천은 '손損은 덜어냄 減損이니, 무릇 지나침過失을 덜고 억제하여 義理에 나아감은 모두 損의 道이다' 라고 해석하며 나침을 덜어내는 손損의 도리를 설명하였다.


소비와 욕심

자유 시장 경제의 문제를 거론할 때마다 단골로 소환 당하는 애덤 스미스의 가설 '보이지 않는 손'도 따지고 보면 우리 인간이 필요한 만큼의 물건만 구매할 것이라는 상황을 전제로 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시장은 대량 생산이 과도한 소비를 견인하고 있다. 소비할 재화를 생산하는 게 아니라 생산된 재화를 소비하는 식이다. 기업은 제품과 서비스를 많이 팔기 위하여 광고 등 갖가지 방법으로 소비를 촉진시킨다. 기업의 욕심이 소비자의 욕심과 맞아 떨어지면서 필요 이상의 소비가 조장되며 사회적 통제 -보이는 손- 를 자초했다.


소비와 과시

고급 승용차의 대명사인 벤츠는 승차감보다 하차감이 더 좋다는 말이 있다. 차에서 내릴 때 남에게 보이는 맛으로 비싼 차를 탄다는 풍자다. 미국의 경제학자 솔스타인 베블런(Thorstein Veblen)은 '상층계급의 두드러진 소비는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기 위하여 자각 없이 행해진다'라고 주장했다. 당시 유럽에서 신분을 나타내는 수단이었던 직업이나 가문이 아닌 소비를 통해 자기의 정체성을 표현하던 것을 지적한 것이다. 이러한 미국식 소비는 문화 또는 미덕이라는 꼬리를 달고 전 세계로 퍼져나갔으며 미국과 정치적으로 대척점에 있는 중국마저도 소비에 있어서는 미국식을 부지런히 따라가고 있다.


소비와 거품

흔히 선진국의 기준을 국민 총 생산액으로 따진다. 우리나라도 최근 일 인당 총 생산액이 3만 불을 넘어섰다 하여 스스로들 대견해하였다. 생산은 소비로 이어지므로 일 인당 소비를 많이 하는 나라가 국제 사회에서 대우를 받는 식이다. 그러나 생산액을 가지고 단선적으로 국가의 위상을 가늠하는 방식은 온당하지 않다. 케네디 대통령은 1968년 캔자스대 연설에서 미국의 그릇된 가치관을 지적하면서 국민 총 생산액에는 대기오염 피해 비용, 무기 제조비용, 교도소 운영 비용 등이 포함된 반면 교육, 결혼, 지성, 공무원의 청렴, 헌신, 열정 등 정작 우리의 삶을 가치있게 만드는 것들은 제외하고 있다고 반박한 바 있다.

산택손.png

주역의 산택손괘는 지천태괘의 3번째 양효가 6번째 음효와 자리를 맞바꾸면서 밑에서 취하여 위에 더하는 모양이 되었다. 이는 내內괘의 넘치는 강剛을 외괘에 양보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자아를 과포장하고 있는 소비의 거품을 걷어내어 어려운 이웃과 나누는 것이 산택손의 지혜를 실천하는 길이다. 탐욕스러운 기업들이 초래한 미국 발 2008년 금융위기는 세계경제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지만 당시 200여 개의 기업으로 구성된 스페인의 대형 협동조합, 몬드라곤은 7만 명의 조합원 중 한 명도 해고하지 않고 위기를 넘겼다고 한다. 협동조합은 '필요' 이상의 '욕심'을 내지 않으며 영리보다는 상부상조가 우선하는 기업의 형태이다.


모든 나라가 (생산을 위주로 한) 경제 성장을 지향하고 있다. 언제까지, 왜, 누구를 위해서 이 세상 모든 지역의 생산과 그리고 소비가 계속 늘어나야 하는가?  '필요함'도 채우지 못하고 살아가는 제3세계의 빈곤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역의 소외계층 또는 제3세계의 빈곤층을 배려하며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작업은 단순한 선행이 아닌, 작은 것을 덜어내어喪 큰 잃음大失을 막는 현명한 사회적 투자다. 은 계산된 잃음인 셈이다. 제3세계의 지속 가능한 구제를 위하여서는 부유한 나라들이 필요시 경제성장의 일단 멈춤도 감수할 수 있을 만큼 국제사회는 성숙해져야 한다. 손괘의 단전은 '손익영허 여시해 행. 損益盈虛 與時偕行'라고 부연하고 있다. '덜고 더하며 채우고 비움을 때에 따라 함께 행해야 한다.' 지금이 바로 '덜고 비워야' 할 그때이다.


경제 성과를 평가하는 패러다임도 금전적 가치와 아울러 사회적 가치 창출로 진화하여야 한다. 시장과 정부가 완벽하지 않으면 당사자인 사회가 대신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며 이것이 사회적 경제 ( 사회주의 경제가 아닌 )이자 진정한 경세제민經世濟民이다. 자유시장 경제와 함께 경제 민주화를 명시하고 있는 우리 헌법 119조에 부합하는 사회가 실현될 때 비로소 자본주의 앞에 붙어 다니는 '천박한'이라는 관형어는 '따뜻한'으로 바뀔 수 있을 것이다.


산택손괘의 괘사 '갈지용 이궤가용향曷之用,二簋可用享''두 그릇의 음식만 가지고도 정성만 있으면 제사를 잘 지낼 수 있다'로 마무리하며 지나침過과 거품浮末을 덜어내어 검소한 것이 예禮의 근본임을 강조하고 있다.


외 3

댓글 1
  • 2019-06-11 08:30

    승차감보다 하차감이 좋다에 그런 뜻이..재밌어요^^

    문탁에서 마을경제로 삼았던 문제의식을 이렇게 정리해서 보니 좋아요 ~

    저도 손괘가 좋더라구요^^

    쌤, 주역 좋아하시니 주역세미나에 들어오셔요~

    저희 한 십년 공부할지도 몰라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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