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바리주역> 29 중수감괘 - 험한 시절을 건너는 우리의 자세

우연
2019-03-19 09:48
565

<2019 어리바리 주역>은 이문서당 학인들의 주역 괘 글쓰기 연재물의 제목입니다.

그대로 어리바리한 학인들이 어리바리한 내용으로 글쓰기를 합니다형식도 내용도 문체도 제 각각인 채 말입니다.

하지만 압니까언젠가는 <주역>, 그 심오한 우주의 비의그 단 한 자락이라도 훔칠 수 있을지^^ 

험한 시절을 건너는 우리의 자세 

얼마 전 한시 강좌를 들으며 천재적 능력에도 불구하고 험난한 삶을 살다간 두보의 삶에 대하여 알게 되었다. 한평생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두보(712~770)를 공부하면서 내 머리 속에 떠오른 주역의 괘가 있었는데 그건 중수重水 괘이다.

양귀비와의 스캔들로 유명한 당 현종이 즉위하던 해에 태어난 두보는 역사의 소용돌이 현장의 한가운데를 지나갔다. 가난한 선비 집안에서 태어나 뛰어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변변한 벼슬자리 하나 하지 못했으며 항상 굶주림과 생활고에 시달렸다. 그가 머무는 곳은 항상 전쟁 폐해의 중심이었고 지지리 시험운도 없어 과거를 볼 때마다 낙방하였다. 이것은 두보의 능력, 노력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당시대를 살았던 또다른 천재 이백이 항상 전쟁의 현장에서 멀리 떨어져있었던 반면 두보는 참담한 시대 속을 고스란히 관통하며 걸어갔다. 나이 50이 넘어 잠시 강촌에서 여유로왔으나 그의 삶은 항상 고단했고 그의 능력과는 무관하게 세상은 그를 알아주지 않았다. 두보는 끝까지 포승줄에 메이고 가시덤불 숲에 갇히는(係用徽纆 寘于叢棘) 중수重水 의 운명을 살다갔다. 당 시대가 비록 전쟁을 겪으며 어지럽게 흘러갔으나 막대한 경제적 부가 흥청거렸고 찬란한 문화가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허나 두보는 하늘이 자신에게 내린 적 능력을, 당시 백성들의 고단함을 공감, 표현하는데 사용하였다. 전쟁의 참상 속에 더없이 비참한 민초들의 생활상과 역사의 기록을 통하여 후에 시성詩聖과 함께 시사詩史라는 이미지도 얻게 된다. 두보의 생은 그 누구보다도 의 운명, 그 자체의 삶이라고 할 수 있으나 자신이 놓인 처지의 어려움에 매몰되지 않고 동시대 민초들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았으며 처참한 전쟁의 시대를 온 몸으로 같이 아파하며 자신의 무기인 시로 적나라하게 표현해 내었기에 후에 유학자들로부터 이백보다 높이 평가되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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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보를 떠올린 중수 감괘는 주역의 29번째 괘이다. 은 험하디 험하다, 험함에 빠진다라는 뜻으로 서괘전序卦傳에서 대과大過괘 다음에 놓인다. 상황이나 물건이 지나침(대과)이 심해지면 어려움이 닥친다. 감괘241D9C49545A9B9D21-10.jpg )는 상,하괘 모두 험함을 상징하는 수괘( 감-10.png
)
로 반복 구성되어 거듭 험하다, 계속 험하다를 나타낸다. 중복된 험난함을 상징하는 감괘는 둔(), (), ()괘와 더불어 사대난괘四大難卦에 속한다. 하여 주역점을 쳐서 감괘를 얻었다면 쉽사리 좌절하고 두려움이 일기 쉽다. 허나 옛말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하였다. 감괘는 험난함에 빠진 어려운 상황만이 아니라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하는지도 더불어 일러주고 있다.

살다보면 그 어찌해도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가 있다. 나의 그 어떤 노력도 소용이 없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나쁜 일이 계속 닥쳐오기도 한다. 속된 말로 죽어라 죽어라 하는 상황에 빠지는 때가 생기기도 한다. 이런 어려움에 처해 우리는 초조하고 조급해져서 한시라도 바삐 그 상황을 벗어나고자 쉽게 유혹에 빠지거나 잘못된 방법을 취하려 한다. 그러나 이것은 더욱 험한 구덩이로 빠지는 길이다.(來之坎坎 險且枕 入于坎窞) 험함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믿음을 가지고 정성을 다해 꾸준히 항상성으로 때를 기다려야 한다.(有孚 維心亨 行有尙) 험함에 빠짐은 도를 잃었기 때문이다.(習坎入坎 失道)

물의 괘상卦象은 두 음효 사이의 가운데 양효로 구성되어 있다. 안과 밖의 음효는 어려움을 상징하나 가운데 양효는 강건함과 굳건함을 의미한다. 비록 상황이 어려움에 처할지라도 내실의 흔들리지 않은 믿음으로 물과 같이 막힘없이 꾸준히 덕행을 유지하여 나간다면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역은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 (有心亨 乃以剛中也 行有尙 往有功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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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보 

 

험난함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고 우리는 어려움을 겪으면서 좀 더 지혜롭게 성장하며 그 어려움 속에서 나의 참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무릇 어려움 뒤에는 밝음과 이로움이 뒤따른다. - 감괘 다음에는 밝음을 상징하는 중화리괘中火離卦가 위치한다. - 지혜로운 자는 거듭되는 험난함 속에서 그 험난함의 이로움을 살펴볼 수 있다. 옛 성현은 하늘과 땅의 험함을 보고 백성들이 사는 울타리 밖에 험함을 설치하여 외부의 적이 쉽사리 쳐들어 오지 못하게 하였다. (天險 不可升也 地險 山川丘陵也 王公 設險 以守基國 險之時用 大矣哉) 또한 군자는 계속되는 어려움 속에서도 덕행을 유지하며 가르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君子以 常德行 習敎事) 살다보면 언제나 꽃길만을 걸을 수는 없다. 도저히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어려움에 처해 어떤 자세로 어떤 면을 살피는가는 전적으로 나의 몫이다. 왕공은 하늘의 험함과 지세의 험함을 보고 오르지 못하는 비애와 왕래하기 힘든 곤란함을 한탄하지 않고 나라를 지켜낼 수 있는 이로움을 보았고 군자는 사태의 좌절스러움 속에서도 자신의 덕행을 지켜내며 타인을 교화시키는데 힘썼다. 의 시대는 분명 어렵고 고단한 시절이다. 허나 이 또한 긴 인생의 세월 속에서 반드시 살아내야만 하는 기간이다. 내 노력으로도 어찌할 수 없을 때 주역의 감괘는 내 기다림을 자세를 생각하게 한다. 감의 시대를 만난다면, 험함을 이용하여 나라를 지켜내는 지혜는 없을지라도, 소소한 나의 중실中實을 유지하며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주역-은 모든 것은 변한다라는 뜻이다 -의 교훈을 상기하며 원망하거나 비탄에 잠기지 않고 어찌할 수 없음을 알아채고 조심히 세월을 지나가 보리라. 전쟁의 한 가운데를 뚜벅뚜벅 지나가면서도 자신의 능력을 포기하지 않고 백성들의 고단한 삶을 표현하며 같이 하면서 살아갔던 두보를 떠올리면서.

댓글 1
  • 2019-03-20 00:10

    외국에서 집 없는 설움 느끼며 이 방 저 방 옮겨다니고 있지만,

    그래도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조바심내지 않으며 찾고 기다리니 때에 맞게 방이 구해지더라구요.

    두보에 비하면 제 처지가 坎에 빠졌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요^^ 

    오랜만에 우연샘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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