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그 많던 일베는 어디로 갔을까   차명식       몇 번째 시간이었나, 세미나가 끝나갈 무렵 문탁 선생님은 오늘날 우리 사회 페미니즘의 양상을 말씀하시면서 그중 우리가 생각해볼만한 문제로 ‘그 많던 메갈은 어디로 갔을까’를 꼽으셨다. 소위 ‘페미니즘 리부트’의 기점으로 여겨지던 메갈리아 웹사이트가 동력을 상실한 지금 한국 사회의 페미니즘 운동은 어떠한 형태로 수행되고 있는가를 고민해봐야 한다는 의미였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그 질문을 듣는 순간 또 다른 질문을 하나 떠올렸다. ‘그렇다면, 그 많던 일베는 어디로 갔을까?’   이러한 질문의 변환은 급작스러운 발상이라기보다는 이번 양생 프로젝트를 수강하며 내가 가지고 있었던 특정한 문제의식에 기인한다. 그것은 이른바 ‘대문자 남성’의 문제다. 내가 생각하기에 페미니즘은 타자화된 여성에 대한 통찰에서 시작하여 여성 주체를 재구성하여 세계를 마주하는 과정이며 해러웨이, 브라이도티, 버틀러는 그 과정에서 각기 다른 방향성을 제시하였다. 따라서 우리는 그들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여성 개념을 해체하고 보다 다양한 각도에서 다양한 상으로서의 여성을 살필 수 있었다. 헌데 우리가 그러한 공부를 토대로 현실의 문제를 논하면서 남성에 대하여 말할 때는 대개 단일한 주체이자 동일자로서만 호명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근대적 인간주체가 백인-성인-남성의 형상을 가졌으며 수 세기 동안 남성적 주체가 사회의 주류로 군림하면서 동일자의 법을 집행해 왔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을 현재 우리의 상황, 특히 젊은 세대에서 젠더 갈등이 격화되고 있는 우리 현실에 가져와 적용하려 할 때 나는 어떠한 위화감을 느낀다.   그 위화감의 정체를,...
  그 많던 일베는 어디로 갔을까   차명식       몇 번째 시간이었나, 세미나가 끝나갈 무렵 문탁 선생님은 오늘날 우리 사회 페미니즘의 양상을 말씀하시면서 그중 우리가 생각해볼만한 문제로 ‘그 많던 메갈은 어디로 갔을까’를 꼽으셨다. 소위 ‘페미니즘 리부트’의 기점으로 여겨지던 메갈리아 웹사이트가 동력을 상실한 지금 한국 사회의 페미니즘 운동은 어떠한 형태로 수행되고 있는가를 고민해봐야 한다는 의미였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그 질문을 듣는 순간 또 다른 질문을 하나 떠올렸다. ‘그렇다면, 그 많던 일베는 어디로 갔을까?’   이러한 질문의 변환은 급작스러운 발상이라기보다는 이번 양생 프로젝트를 수강하며 내가 가지고 있었던 특정한 문제의식에 기인한다. 그것은 이른바 ‘대문자 남성’의 문제다. 내가 생각하기에 페미니즘은 타자화된 여성에 대한 통찰에서 시작하여 여성 주체를 재구성하여 세계를 마주하는 과정이며 해러웨이, 브라이도티, 버틀러는 그 과정에서 각기 다른 방향성을 제시하였다. 따라서 우리는 그들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여성 개념을 해체하고 보다 다양한 각도에서 다양한 상으로서의 여성을 살필 수 있었다. 헌데 우리가 그러한 공부를 토대로 현실의 문제를 논하면서 남성에 대하여 말할 때는 대개 단일한 주체이자 동일자로서만 호명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근대적 인간주체가 백인-성인-남성의 형상을 가졌으며 수 세기 동안 남성적 주체가 사회의 주류로 군림하면서 동일자의 법을 집행해 왔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을 현재 우리의 상황, 특히 젊은 세대에서 젠더 갈등이 격화되고 있는 우리 현실에 가져와 적용하려 할 때 나는 어떠한 위화감을 느낀다.   그 위화감의 정체를,...
명식 2021.07.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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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이라도 일어나서 돌아다녀야 한다     문탁에서 공부를 시작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 중 하나가 “공부는 엉덩이의 힘으로 한다”이다. 그만큼 책상 위에 앉아 있는 시간이 공부에는 절대적이라는 말이다. 처음에 이 말을 들었을 때 머리가 좋아야 공부를 잘한다는 말이 아니어서 좋았다. 누구나 엉덩이의 힘만 있다면 공부를 해나갈 수 있는 거구나! 희망이 생기는 말이었다. 실제 루쉰을 공부할 때는 루쉰에 푹 빠져서 고3 때보다 오래 책상에 앉아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럼에도 내 엉덩이 힘이 진짜 발휘될 때는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동영상(영화나 드라마 등)을 시청할 때다. 인생에 도움이 안 된다며 30대 초에 TV를 없앴지만 외국어 공부를 핑계로 일드, 미드를 보느라 컴퓨터 앞에서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지금은 OTT 스트리밍 서비스를 보기 위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을 들고 침대로 향한다. 이젠 엉덩이의 힘도 필요 없는 시절이 되었다. 침대 위에서 누워서 보거나 비스듬히 앉아서 보거나.          이렇게 움직이지 않고 의자 위에서나 침대 위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고 나면 몸 컨디션이 급속히 저하되곤 한다. 공부도 몰아서 하고 나면 몸이 안 좋아진다. 처음엔 이런 습관이 안 좋은 이유는 단지 밤 시간에 잠을 푹 못 자서라 생각했다. 그러다 ‘인문의역학 세미나’에서 읽은 빌 브라이슨의 『바디, 우리 몸 안내서』에서 뭔가를 발견했다. 그는 여러 래퍼런스를 종합해 아래와 같이 적고 있다. “놀랍게도, 그리고 우려스럽게도, 나머지 시간에 운동을 얼마나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은 듯하다....
  조금이라도 일어나서 돌아다녀야 한다     문탁에서 공부를 시작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 중 하나가 “공부는 엉덩이의 힘으로 한다”이다. 그만큼 책상 위에 앉아 있는 시간이 공부에는 절대적이라는 말이다. 처음에 이 말을 들었을 때 머리가 좋아야 공부를 잘한다는 말이 아니어서 좋았다. 누구나 엉덩이의 힘만 있다면 공부를 해나갈 수 있는 거구나! 희망이 생기는 말이었다. 실제 루쉰을 공부할 때는 루쉰에 푹 빠져서 고3 때보다 오래 책상에 앉아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럼에도 내 엉덩이 힘이 진짜 발휘될 때는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동영상(영화나 드라마 등)을 시청할 때다. 인생에 도움이 안 된다며 30대 초에 TV를 없앴지만 외국어 공부를 핑계로 일드, 미드를 보느라 컴퓨터 앞에서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지금은 OTT 스트리밍 서비스를 보기 위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을 들고 침대로 향한다. 이젠 엉덩이의 힘도 필요 없는 시절이 되었다. 침대 위에서 누워서 보거나 비스듬히 앉아서 보거나.          이렇게 움직이지 않고 의자 위에서나 침대 위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고 나면 몸 컨디션이 급속히 저하되곤 한다. 공부도 몰아서 하고 나면 몸이 안 좋아진다. 처음엔 이런 습관이 안 좋은 이유는 단지 밤 시간에 잠을 푹 못 자서라 생각했다. 그러다 ‘인문의역학 세미나’에서 읽은 빌 브라이슨의 『바디, 우리 몸 안내서』에서 뭔가를 발견했다. 그는 여러 래퍼런스를 종합해 아래와 같이 적고 있다. “놀랍게도, 그리고 우려스럽게도, 나머지 시간에 운동을 얼마나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은 듯하다....
둥글레 2021.07.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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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군인은 없다. - <지.아이.제인>(’97), <MBC 진짜 사나이 95회:여군특집>(’15), <엣지 오브 투모로우>(’14) 여성 군인 재현 분석        누구에게나 말하기 싫은 이야기가 하나쯤은 있다. 너무 자주 말해서든 말하기 어려워서든. 나에게는 내 직업과 군대가 그렇다. 그래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꾸준히 쓰고 말하려는 이유는 어떻게든 ‘공부하는 몸’으로, 현재의 배움을 바탕으로, 내 언어로 풀어내고 싶어서다. 전쟁, 평화, 폭력 등등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아직 ‘내 몸에, 내 생각에, 내 삶에 ‘개념’을 붙여가는 일’(정승연, 세미나책, 193)이 어렵다. 이번에도 할 수 있는 만큼만. 그래서 이 글은 딱 그만큼의 에세이다. 새로운 현상을 분석한다거나 궁금증에 답을 하는 에세이는 아니다.(문탁샘께서 제목이 길다고 하셔서 바꿨습니다. 원제 : 여성 군인, '진짜 사나이', '어머니', '피해자', 무엇으로 명명되든 재현을 넘어 수행으로)      2006년 페미니즘을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난 내 직업이 불편해졌다. ‘너 역시 군사주의와 성별 이분법적 사고에 갇혀 있다’고 일갈하는 페미니즘을 그냥 외면하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대다수의 문제들이 ‘가부장제-자본주의-군사주의’*의 견고한 동맹에서 비롯되었다는 페미니즘의 진단에 동의하면서 내 직업 현장에 대해 단순히 불편함을 토로하기보다 진지한 고민을 해보고 싶어졌다.    전사(戰死)와 전사(戰士)      역사적으로 여성은 늘 전쟁의 한가운데 있었지만 피보호자 아니면 피해자로 재현되었다. 행주치마로 돌을 나르고(공병/포병), 부상 장병을 치료하며(의정/간호), 전장에서 밥을 지었지만(병참) 여성은 전투를 ‘지원’했을뿐 전사로 호명되지는 못했다. 직접 전투에 참전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여성들의 목소리는 묻혔다. 환향녀와 전시 강간...
'진짜' 군인은 없다. - <지.아이.제인>(’97), <MBC 진짜 사나이 95회:여군특집>(’15), <엣지 오브 투모로우>(’14) 여성 군인 재현 분석        누구에게나 말하기 싫은 이야기가 하나쯤은 있다. 너무 자주 말해서든 말하기 어려워서든. 나에게는 내 직업과 군대가 그렇다. 그래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꾸준히 쓰고 말하려는 이유는 어떻게든 ‘공부하는 몸’으로, 현재의 배움을 바탕으로, 내 언어로 풀어내고 싶어서다. 전쟁, 평화, 폭력 등등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아직 ‘내 몸에, 내 생각에, 내 삶에 ‘개념’을 붙여가는 일’(정승연, 세미나책, 193)이 어렵다. 이번에도 할 수 있는 만큼만. 그래서 이 글은 딱 그만큼의 에세이다. 새로운 현상을 분석한다거나 궁금증에 답을 하는 에세이는 아니다.(문탁샘께서 제목이 길다고 하셔서 바꿨습니다. 원제 : 여성 군인, '진짜 사나이', '어머니', '피해자', 무엇으로 명명되든 재현을 넘어 수행으로)      2006년 페미니즘을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난 내 직업이 불편해졌다. ‘너 역시 군사주의와 성별 이분법적 사고에 갇혀 있다’고 일갈하는 페미니즘을 그냥 외면하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대다수의 문제들이 ‘가부장제-자본주의-군사주의’*의 견고한 동맹에서 비롯되었다는 페미니즘의 진단에 동의하면서 내 직업 현장에 대해 단순히 불편함을 토로하기보다 진지한 고민을 해보고 싶어졌다.    전사(戰死)와 전사(戰士)      역사적으로 여성은 늘 전쟁의 한가운데 있었지만 피보호자 아니면 피해자로 재현되었다. 행주치마로 돌을 나르고(공병/포병), 부상 장병을 치료하며(의정/간호), 전장에서 밥을 지었지만(병참) 여성은 전투를 ‘지원’했을뿐 전사로 호명되지는 못했다. 직접 전투에 참전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여성들의 목소리는 묻혔다. 환향녀와 전시 강간...
musa 2021.07.12 |
조회 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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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없었다   나는 60세. 전형적인 가부장제 가정의 딸로 태어나, 남녀차별의 한복판에서 자랐다. 나는 공교육에서, 더 빈번하게는 혈연관계 아버지로부터 순결교육을 받았다. 나는 한치의 의심도 없이 이성애자가 되어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다. 결혼 이후 독박육아가 시작되면서 나는 남/녀, 가부장의 모순이 얼마나 폭력적이며 심각한 문제인지를 깨달았다. 그때의 나는 우울하지 않으면 늘 화가 나 있었다.   90년대 초. 남편의 구타와 학대로 죽게된 아내들의 사건이 연일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었을 때, 나는 여성의전화에서 상담원 활동을 하게 되었다. 같이 살던 남자에게 향하는 화를 사회적으로 풀고 싶었다. 전화 상담은 너무나 많은 여성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차별과 폭력의 고통 속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전화기 속의 수많은 그녀들과 나는 똑같은 가부장 이데올로기 희생자라는 생각으로 연대감을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절반의 여성이라는 동질감과 연대의식이 왜 나를 페미니스트로 만들지는 못했을까? 아마도 그것은 나에게 페미니즘 운동으로 뛰어들게 만들 수 있는 이론적 무기가 없었기 때문 아니었을까? 상담을 하면 할수록 나는 점점 더 남성혐오자가 되어 갔고, 남/녀 대립으로 치닫기만 하는 감정적 언어와 화법밖에 쓰지 못하는 현실이, 나의 한계가 지겨웠다. 그래서 때려치웠다.       곤란함과 낯섬   해러웨이의 선언문을 읽은 후 나는 뭐라 말할 수 없는 곤란한 감정에 휩싸였다. 단순히 오랫동안 모호한 채로 방치된 과거의 경험이 다시 소환되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물론 한편으로는 과거의 내가 왜 지쳐 나자빠질 수밖에...
언어가 없었다   나는 60세. 전형적인 가부장제 가정의 딸로 태어나, 남녀차별의 한복판에서 자랐다. 나는 공교육에서, 더 빈번하게는 혈연관계 아버지로부터 순결교육을 받았다. 나는 한치의 의심도 없이 이성애자가 되어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다. 결혼 이후 독박육아가 시작되면서 나는 남/녀, 가부장의 모순이 얼마나 폭력적이며 심각한 문제인지를 깨달았다. 그때의 나는 우울하지 않으면 늘 화가 나 있었다.   90년대 초. 남편의 구타와 학대로 죽게된 아내들의 사건이 연일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었을 때, 나는 여성의전화에서 상담원 활동을 하게 되었다. 같이 살던 남자에게 향하는 화를 사회적으로 풀고 싶었다. 전화 상담은 너무나 많은 여성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차별과 폭력의 고통 속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전화기 속의 수많은 그녀들과 나는 똑같은 가부장 이데올로기 희생자라는 생각으로 연대감을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절반의 여성이라는 동질감과 연대의식이 왜 나를 페미니스트로 만들지는 못했을까? 아마도 그것은 나에게 페미니즘 운동으로 뛰어들게 만들 수 있는 이론적 무기가 없었기 때문 아니었을까? 상담을 하면 할수록 나는 점점 더 남성혐오자가 되어 갔고, 남/녀 대립으로 치닫기만 하는 감정적 언어와 화법밖에 쓰지 못하는 현실이, 나의 한계가 지겨웠다. 그래서 때려치웠다.       곤란함과 낯섬   해러웨이의 선언문을 읽은 후 나는 뭐라 말할 수 없는 곤란한 감정에 휩싸였다. 단순히 오랫동안 모호한 채로 방치된 과거의 경험이 다시 소환되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물론 한편으로는 과거의 내가 왜 지쳐 나자빠질 수밖에...
먼불빛 2021.07.09 |
조회 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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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를 구하라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서 다닌 첫 직장은 성폭력상담소 부설 청소녀 쉼터였다. 성폭력 피해 10대,20대 청소녀들이 거주하는 공간으로 쉼터의 간사로 활동했다. 아침, 점심, 저녁 세 끼를 모두 해 먹고 아이들을 깨워서 학교를 보내는 것이 일이었다. 90%가 친부에 의한 성폭력이었고, 유산 경험이 있으며, 어릴 때부터 정서적 학대로 인해서 지능이 발달하지 못해 지적발달장애를 가졌고, 지속적인 성폭력 피해를 받는 딸아이를 외면하는 친모를 가진, 청소녀들이, 거기 있었다. 그 때부터 성(性)에 관심이 높아졌다. 성폭력에 대한 공부를 시작하면서 성이 무엇인지, 성차가 무엇인지 배웠다. 그 즘 레즈비언과 게이를 알게 되었고 트랜스젠더를 알게 되었다. 그렇게 페미니즘을 배웠다. 양성평등을 위해서 페미니즘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성폭력 없는 사회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정책을 만들어내고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성교육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랬다. 페미니즘은 양성평등을 위한 것이었다. 남성보다 차별받는 여성이 좀 더 잘 사는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운동이 페미니즘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친구, 레즈비언   ‘여성’이 좀 더 잘 사는 세상이 궁금했고 그러한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여성단체에서 실시한 아카데미에 참여해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문화예술분야를 바라본다는 것은 무엇인지 배웠다. 그리고 많은 레즈비언을 만났다. 울퉁불퉁하게 생겼을 줄 알았던 그 사람들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다. 대화가 잘 되었고 유쾌했으며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분명하게 말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벽장 속에 갇혀 있어 커밍아웃을 하지 못했으며 아웃팅 당할까봐 전전긍긍한다고 말하는 그들과 나는...
소녀를 구하라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서 다닌 첫 직장은 성폭력상담소 부설 청소녀 쉼터였다. 성폭력 피해 10대,20대 청소녀들이 거주하는 공간으로 쉼터의 간사로 활동했다. 아침, 점심, 저녁 세 끼를 모두 해 먹고 아이들을 깨워서 학교를 보내는 것이 일이었다. 90%가 친부에 의한 성폭력이었고, 유산 경험이 있으며, 어릴 때부터 정서적 학대로 인해서 지능이 발달하지 못해 지적발달장애를 가졌고, 지속적인 성폭력 피해를 받는 딸아이를 외면하는 친모를 가진, 청소녀들이, 거기 있었다. 그 때부터 성(性)에 관심이 높아졌다. 성폭력에 대한 공부를 시작하면서 성이 무엇인지, 성차가 무엇인지 배웠다. 그 즘 레즈비언과 게이를 알게 되었고 트랜스젠더를 알게 되었다. 그렇게 페미니즘을 배웠다. 양성평등을 위해서 페미니즘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성폭력 없는 사회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정책을 만들어내고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성교육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랬다. 페미니즘은 양성평등을 위한 것이었다. 남성보다 차별받는 여성이 좀 더 잘 사는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운동이 페미니즘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친구, 레즈비언   ‘여성’이 좀 더 잘 사는 세상이 궁금했고 그러한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여성단체에서 실시한 아카데미에 참여해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문화예술분야를 바라본다는 것은 무엇인지 배웠다. 그리고 많은 레즈비언을 만났다. 울퉁불퉁하게 생겼을 줄 알았던 그 사람들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다. 대화가 잘 되었고 유쾌했으며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분명하게 말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벽장 속에 갇혀 있어 커밍아웃을 하지 못했으며 아웃팅 당할까봐 전전긍긍한다고 말하는 그들과 나는...
하현 2021.07.09 |
조회 239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1. 정체화된 페미니즘의 현장   페미니즘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그게 뭔지는 몰라도 긍정적인 지지를 보냈다. 페미니즘을 통해 새로운 시선을 얻을 수 있었고, 내가 조금 더 나에 가깝게 설명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꽤 오랜 시간동안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지칭하지 못했다. 공공장소에서는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말할 때 의식적으로 작게 소리 냈고, 페미니즘을 여성주의로 번역하기를 꺼려했다. 그것은 무엇보다 페미니스트라고 말했을 때 사람들이 나를 오해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와 메갈을 동어로 쓰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기적이거나 폭력적인 메갈로 오해받기 싫었다. 또, 페미니스트라면 PC(PoliticalCorrectness·정치적 올바름)하거나, 탈코르셋을 한 외관을 가져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PC하기엔 너무 흔들리는 사람이었고, 매일 화장을 하며 죄책감을 가지는 사람이었다.   나는 페미니즘을 그렇게 생각했다. PC하고, 모두가 숏컷하고 바지 입는, 혹은 메갈인 것.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고 온 친구가 나 진짜 페미니스트 같지 않아? 라고 말한 날이 있었다. 그때 친구는 자신의 발언이 언피씨하다고 바로 정정했지만, 우리의 머릿속에는 그런 게 있었다. 페미니스트다운 것, ‘진짜 페미니스트’의 이미지 말이다. 시간이 흘러 내가 서점에서 일하게 됐을 때 ‘진짜 페미니스트는 없다’라는 책을 보게 된 적이 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낙인의 의미로 페미니스트 되기는 밥 먹듯이 쉽지만, ‘진짜’ 페미니스트는 너무도 숭고하여 셀수 없이 많은 판관들의 인증을 거쳐야 한다. 나는 ‘진짜’를 지향하지 않는다. ‘진짜’가 되려는 윤리적 욕망은 때로 타인을 폭력적으로 규정짓고 배척하며 제압할 위험이 있다. (이라영, 『진짜 페미니스트는 없다』 들어가는...
1. 정체화된 페미니즘의 현장   페미니즘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그게 뭔지는 몰라도 긍정적인 지지를 보냈다. 페미니즘을 통해 새로운 시선을 얻을 수 있었고, 내가 조금 더 나에 가깝게 설명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꽤 오랜 시간동안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지칭하지 못했다. 공공장소에서는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말할 때 의식적으로 작게 소리 냈고, 페미니즘을 여성주의로 번역하기를 꺼려했다. 그것은 무엇보다 페미니스트라고 말했을 때 사람들이 나를 오해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와 메갈을 동어로 쓰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기적이거나 폭력적인 메갈로 오해받기 싫었다. 또, 페미니스트라면 PC(PoliticalCorrectness·정치적 올바름)하거나, 탈코르셋을 한 외관을 가져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PC하기엔 너무 흔들리는 사람이었고, 매일 화장을 하며 죄책감을 가지는 사람이었다.   나는 페미니즘을 그렇게 생각했다. PC하고, 모두가 숏컷하고 바지 입는, 혹은 메갈인 것.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고 온 친구가 나 진짜 페미니스트 같지 않아? 라고 말한 날이 있었다. 그때 친구는 자신의 발언이 언피씨하다고 바로 정정했지만, 우리의 머릿속에는 그런 게 있었다. 페미니스트다운 것, ‘진짜 페미니스트’의 이미지 말이다. 시간이 흘러 내가 서점에서 일하게 됐을 때 ‘진짜 페미니스트는 없다’라는 책을 보게 된 적이 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낙인의 의미로 페미니스트 되기는 밥 먹듯이 쉽지만, ‘진짜’ 페미니스트는 너무도 숭고하여 셀수 없이 많은 판관들의 인증을 거쳐야 한다. 나는 ‘진짜’를 지향하지 않는다. ‘진짜’가 되려는 윤리적 욕망은 때로 타인을 폭력적으로 규정짓고 배척하며 제압할 위험이 있다. (이라영, 『진짜 페미니스트는 없다』 들어가는...
현민 2021.07.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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