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이 돌아왔다 2회] 홍대에서 발견한 동굴의 비유와 서점 리스본

새털
2018-06-26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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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이 돌아왔다 2회]

홍대에서 발견한

 동굴의 비유서점 리스본 

 

 

 

 

 

문탁에서 공부하고 생활한 지 어느새 9년째다. 시간은 정말 자~알 간다. 정신없이 후딱 지나갔다

세미나에서 오고간 말들을 모아서 ‘10주년 자축이벤트를 준비중이다. 거기엔 분명 당신의 생각도

단팥빵의 앙꼬처럼 들어있다는 사실을 이 연재를 통해 확인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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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털

 

 

 

 

문탁샘도 아닌데 문탁에 왔더니 쪼는인간으로 살고 있다

요즘 먹고 사는 시름에 젖어 쪼는 각이 좀 둔탁해졌다

예리해져서 돌아갈 그날을 꿈꾸며 옥수수수염차를 장복하고 있다

 

 

 

 

 

 

 

 

 

 

1. 홍대에서 발견한 동굴의 비유

뉴스타파 김진혁피디가 2015년에 만든 미니다큐 <꼰대와 선배>에서는 엔하위키 미러를 인용해 꼰대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보통 자기 세대의 가치관으로 시대가 지났음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사회적으로 용인될 만한 아랫세대의 문화나 행동에 태클을 걸면 꼰대질한다고 일컫는 경우가 많다.” 내가 이 다큐를 찾아보게 된 것은 같이 일하는 젊은이에게 선생님 꼰대 같아요.”라는 말을 듣고 난 후였다. “그래 나 꼰대야. 그래도 이렇게 불성실하게 일 안하고 변명하는 건 네 잘못이야!” 라고 윽박질렀지만, 내심 놀라기는 했다. 나는 꼰대인가? 잘못을 지적하는 것이 꼰대질인가? 지적을 세련되게 해야 꼰대가 되지 않는 것인가? 문제는 시대가 지났음을 인정하지 않음사회적으로 용인될 만한 아랫세대의 문화나 행동에 있다. 나는 시대변화에 둔감해서 젊은 세대의 행동을 제대로 독해할 줄 모르는 꼰대인가?

내 주변에는 꼰대가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외모에 관심이 많아진 딸들이 아무렇지 않게 머리색을 바꾸고 들어오면, “안 돼!” 남편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왜 안 되는지 이유를 말하지 못하면서도, 노랑머리는 안 되지만 갈색머리는 괜찮다는 근거 없는 기준을 들이대 더욱 딸들의 빈축을 샀다. 남편과 딸들의 전선에서 타협은 불가능했다. 염색은 물론 타투도 안 되고, 피어싱도 안 되고, 비혼(非婚)도 안 된다는 남편의 강경한 쇄국정책에 대해 딸들은 입씨름도 하지 않았다. 아빠의 취향을 존중하겠으니 본인들의 취향도 존중해달라는 매너 있는 무시였다. ‘갓띵작’ ‘치맥각등등 딸들과 눈높이를 맞춘 대화를 위해 급식체(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감성이나 말투)를 연습하는 남편을 보면 마음이 짠했다. 유행어를 학습으로 익혀야 하는 순간이 왔다면, 그건 그냥 아재개그급식체가 아니다.

그러나 우연히 들른 홍대에서 나는 나도 꼰대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처음 가보는 공연장을 찾아가던 중, 나는 홍대 뒷골목에서 외국인 관광객이 되었다. 그곳의 지리는 낯설었고, 그곳을 오고가는 젊은이들의 눈빛과 말투에서 느껴지는 공기도 달랐다. 도로엔 거대한 편집샵들이 포진해 있고, 그 사이를 비집고 다니며 젊은이들이 사먹는 길거리표 간식조차 예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지갑에 카드 한 장 달랑 들어 있던 나는 버블티나 크레페 같은 것을 사먹지 못했다. 현금인출기를 찾으려면 옷, 화장품, 액세서리, 타로점 가게로 꽉 찬 골목길을 빠져나와야 했고, 내가 미로와 같은 그 길을 다시 찾아갈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곳곳에서 내가 느낄 수 있는 것은 출입금지의 표시들이었고, 그것은 젊은이들과 나 사이의 차이를 분명히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내가 옛날사람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나만의 동굴에 콕 박혀 있었다는 사실을 한편의 드라마처럼 체감했다.

플라톤은 <국가> 7권에서 동굴의 비유를 통해 우리의 지식이 사실은 무지에 가까운 편견과 고정관념이라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현실에서 종종 동굴에 갇힌 자신과 만난다. 명품지갑이 멋져 보이는 이유가 디자인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브랜드로고 때문이고, 내 친구의 씨바와 팟캐스터 김어준의 씨바는 다른 뉘앙스라는 느낌이 들지만 그건 그냥 김어준의 있어 보이는 말빨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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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플라톤행 열차는 동굴의 비유역에서 출발한다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는 연극의 무대와 같은 세트를 보여준다. 동굴이 있고 동굴의 입구엔 횃불과 물건들이 놓여있는 단상이 있다. 사람들은 동굴의 입구를 등지고 벽을 바라보며 결박되어 있다. 사람들이 보는 것은 동굴 벽에 비치는 그림자들이다. 그런데 이들이 평생 이러한 조건 속에 살고 있다면, 이들에게 그림자(가상/환상)’의 세계는 완벽한 현실세계이다. 자신의 눈으로 보고 있는 세계의 진위(眞僞)를 의심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중년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내가 꼰대일 리 없다는 콩깍지가 씌었던 나처럼, 그림자의 세계를 현실이라 착각하며 살아가는 일은 그렇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플라톤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바라보고 있는 것이 현실이나 진실이 아니라 가상이나 환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편견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올바른 판단에 이를 수 있을 것이라 낙관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 ‘동굴의 비유를 좀 더 살펴보자.

누군가 우연히 결박이 풀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벽으로부터 몸을 돌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둠 속을 더듬어 동굴의 입구 쪽으로 걸어가게 된다면, 자신이 봐오던 것이 동굴 입구의 횃불과 물건들의 그림자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동굴 밖에 이르게 된다면 횃불이 아니라 태양이 모든 것을 비추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될 것이다. 이 과정은 쉽지 않고 짧은 시간에 끝나지도 않는다. 동굴 속 어둠에 익숙한 자에게 동굴 밖의 밝음은 시력을 잃게 할 수도 있다. 그가 실명하지 않고 태양의 빛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갑자기 눈을 떠서는 안 되고 천천히 태양의 밝기에 눈을 단련시켜야 한다. 그러나 누구나 이 과정을 천천히 익힌다면 태양의 빛을 똑바로 볼 수 있다.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는 올바른 인식에 이르는 방법을 설명해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간다. 플라톤은 동굴 밖으로 나온 사람을 다시 동굴 안으로 들여보낸다. 올바른 인식의 기쁨을 느낀 자가 있다면, 그는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 자신의 동료들과 그 기쁨을 나눠야 한다는 것이 플라톤의 윤리의식이다. 그래서 또 하나의 스토리가 동굴의 우화 속에 겹쳐진다. 모든 스토리에 반전과 갈등이 빠질 수 없듯이, 동굴로 돌아온 자에게도 위기와 갈등이 기다리고 있다. 평생 동굴의 벽만 바라보고 살아온 사람들이 동굴 밖으로 나갔다 돌아온 동료의 말을 쉽게 믿기는 어렵다.

 

 

위쪽으로 올라가더니 눈이 상해서 돌아왔군. 위쪽으로 올라가려고 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지. 쇠사슬을 풀어주며 위쪽으로 데려가려는 자는 잡아 죽일 수 있으면 모조리 죽여야 해.”(<국가> 7517a)

 

 

동굴의 비유에서 동굴 밖으로 나갔다 되돌아온 자는 현실 속의 소크라테스를 떠오르게 한다. 대중들은 과연 철학자의 말을 신뢰할 수 있을까? 철학자는 과연 현실정치에 참여할 수 있을까? 플라톤은 동굴의 비유를 통해 철학과 정치와 윤리가 분리될 수 없는 난제(難題)를 제시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동굴의 비유는 <국가>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올바른 인식에 대한 문제의식과 그 해법, 그리고 현실과 불화를 겪을 수밖에 없는 철학자의 운명과 윤리적 태도까지 동굴의 비유에는 플라톤이 해결하고자 하는 철학적 난제들이 압축적으로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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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7
  • 2018-06-26 14:37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을 고집스럽게 물고 늘어지는 꼰대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20대가 있듯이 새털이 다른 꼰대로 태어날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본다.

    아, 리스본에 가고싶다.

  • 2018-06-26 15:49

    새털 선생님 글을 읽다보니 훌~쩍 홍대 앞에 가 있는 기분이네요.

    분명 길을 잃을텐데...

    걱정은 훌훌 털어내고 한번 가보고 싶네요~

  • 2018-06-26 17:33

    미디어가 밝혀주는 '힐링'의 동굴에서 나가겠다는 마음을 내기에는

    그 '힐링'의 힘이 너무 셀 때^^

    '플라톤이 돌아왔다'의 이 문장을 떠올렸으면 좋겠네요^^

    " 스스로가 쾌락의 유혹에 굴복하는 것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무지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런데 문득 든 질문, 무지를 해결하면 정말 유혹을 물리칠 수 있나요? 새털샘? ㅋ

    • 2018-06-27 08:01

      무지의 해결에 평생이 걸립니다^^

      주자처럼 공부하세요

  • 2018-06-26 23:27

    별밤?

    그런데 저희 애들은 어렸을 때 뽀로로 밴드를 붙이기만 하면 모든 통증이 사라지던데요.;;

    (열나면 이마에 붙이던데...ㅋ)

    • 2018-06-27 08:06

      최강희의 야간비행 장윤주의 옥탑방고양이 이현우의 음악앨범 등등이요^^

  • 2018-06-27 16:55

    문탁샘께서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좋은 글을 읽고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라고 하시더라구요.

    에세이를 쓰려고 낑낑거려도 안되서 새털샘의 훌륭한 글을 읽어봅니다.

    캬~ 글 잘 쓰신다고 느끼면서....

    덤으로 플라톤의 동굴도 알게 되고

    용인 촌놈이 홍대로 나가 볼까 생각도 해봅니다^^

  • 2018-06-27 19:41

    ㅋㅋㅋ즐거운 홍대 나들이 되셨나용..~

    꼰대인정했네... 나의 공주티콘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놀 줄모르는사람...

    서점 리스본 너무 예뻐서 좋았는데 그전에 다시 책을 열심히 읽어야겠네요.....

    반성하겠습니다.... 독서를... 해보겠습니다....

    그리고전새털쌤딸입니다...

    • 2018-06-28 12:18

      만화 잘 보고 있데이~

      새털은 괜찮다고 잘 안하는데 왜 새털딸은 괜찮다를 남발하고 살까?

      ㅋㅋㅋ

      궁금하신분들은 감자전 인스타로 가보시오...

  • 2018-06-27 23:18

    어렵다던 플라톤의 국가가 침 잘 읽히네요~^^

    뜬금없는 질문인데...

    장사가 이윤을 내지 못하여 가족의 생계가 위협을 받고 신용 불량과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는 현실적 제약 속에 있는 동굴 속 사람도 있을터인데... 그들에게 철학이 들릴까?? 의심도하며..

    문득 니체로 철학이라는 것을 접하다 든 생각입니다. 저 사람에게 그럼에도불구하고... 뭐라 말할 수 있을까?? 철학이란... 삶, 동굴로부터의.. 빛 등등 많은 것을 논하고 잇는듯 싶은데 여유로운 사람의 바탕위의 것인가?? 라는... 한정된 것인가? 라는 생각도 들고...선생님 글을 읽으면서도 저 글귀가 와닿네요  

    • 2018-06-27 23:25

      플라톤과 니체에게 철학하기가 여유있는 생활이 바탕이 된 일이었을까요? 니체를 공부하며 짬짬이 생각해보시면 좋겠네요rabbit%20(4).gif

      • 2018-06-27 23:40

        네....;;; 답답함을 견디지 못하고 던졌네요 ㅎㅎ

  • 2018-06-28 12:14

    서점 리스본을 보면서 난 저런 약방을 차려봐야지 하는 생각도...ㅋㅋ

    동굴은 스스로 만드는 것 같아요. 아니면 제발로 들어가던가.

    엑소시스트는 매번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한 파이데이아, 공부인지 교육인지 단련인지 수행인지 모르겠지만 

    어렵습니다...

    • 2018-06-28 15:28

      인문학 약방 가즈아~

  • 2018-06-29 20:27

    '방금 쓴 글이에요' 보다 '방금 나온 빵이에요' 라는 말에 더 가슴 뛰는 나ᆢ 

    동굴밖 나가보기는 ᆢ ㅠ

     

  • 2018-07-02 01:02

    방금 쓴 글이예요...^^

    동굴 밖 서점 '리스본'은 무슨 사연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서점 리스본>이 나오면 .....ㅎ

  • 2018-07-02 14:12

    홍대 앞을 한 번도 안가본 나는 홍대 앞이 꼬옥 효리네 같고 윤식당 같다.

    함 가보고 환상인지 동굴이지 동굴 밖인지 생각해 볼란다.

    새털은 글을 참 잘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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