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영화인문학 시즌3> 여섯번째 후기- '결혼 이야기'를 통해 만난 '영화와 가족'

수수
2020-11-21 22:30
382

11월 19일 목요일 영화인문학 시간에는 교재 여섯 번째 챕터, ‘영화와 가족’에 대해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영화는 <결혼이야기(2019, 노아 바움백 감독)>를 감상하였다.

 

우선 가족이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영화에 나타난 ‘가족’의 의미는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 밑줄 발제를 통해 살펴보았다. “가정은 가장 야만스러운 피조물인 인간이 다른 사람들과 비폭력적이고 비파괴적인 방식으로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는 것을 배우는 곳이다. 함께 사는 사람에게 자신을 완전히 드러내고 동시에 그(녀)의 개성, 인간사, 희망과 공포를 알아감으로써 그가 만들어 냈던 이미지를 수천 개의 조각들로 깨버리는 일은 (……) 매우 고통스러운 경험이다. 이런 의미에서 결혼과 가족 생활은 삶의 오물통과 마주하기에 (……) 훌륭한 장소이다.” 책에도 언급된 것처럼 가족은 한국 사회에서 뿌리 깊은 이데올로기로 작용한다. 가족에 대한 언급이 없는 영화를 찾는 것이 오히려 힘들 정도이다. 주제가 가족이다 보니 모두 할 말이 많아서인지 이번 시즌에서 가장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졌다.

‘모성 신화와 가부장제, 장르 영화와 가족, 성을 통해 바라본 가족, 새로운 가족 공동체’로 이루어진 책의 내용에 대해 대부분 공감하며 재미있게 읽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영화들이 많아 이야기의 소재는 더 풍부했다.
멜로드라마에 가부장제의 모순과 억압된 섹슈얼리티의 근원이 작용하고, 공포 영화 역시 가족 문제를 첨예하게 다룬 작품들이 많이 있다는 ‘장르 영화와 가족’ 부분이 흥미로웠다고 청량리님은 이야기하였다. 토토로님은 책에 언급된 여러 영화들을 몰아서 보느라 피곤함을 호소하였는데, ‘해피앤드’와 ‘가족의 탄생’ 등이 그 영화들이다. ‘해피앤드’는 지금 보아도 괜찮은 작품이었고, ‘가족의 탄생’에 나타난 새로운 형태의 가족에 대한 생각이 좋았다는 평을 해 주셨다. 윤호님은 이 책에 나오는 한국영화 속 가족은 조금 감당이 안 되며, ‘무조건 합쳐진다고 다 가족인가’라는 신선한 문제제기를 하여 이야기에 활력을 넣으셨다. 개인적으로는 일본 영화에 나오는 가족 이야기들을 좋아하며(‘조밀조밀한 느낌’이라는 개성적인 표현을 하심) 재미있게 본 일본 영화들을 언급하셨다. 담쟁이님은 ‘가족은 징글징글한 것이다’라는 공감이 되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가족이라는 프레임에 씌여 있었던 경험담을 나누어 주셨다. 띠우님은 책에 나온 ‘하녀(김기영 감독)’에 대한 평에서 여자 주인공의 행동을 사회·계급적인 고려 없이 너무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 버린 것이 아쉽다고 하셨다.
주제가 주제이다 보니 나를 비롯한, 한국에서 아이를 낳아 기르는 여성들의,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결혼과 육아에 대한 한풀이가 이어지고(띠우샘의 "제가 너무 부족해서 그래요. 흑흑" 이야기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그 와중에 재하군은 묵묵히 우리들의 한탄을 듣고 있었다. 청량리님은 문탁에 와서 처음 읽은 '우리가 알던 가족의 종말'을 보여 주며 가족제도에 대한 새로운 고민이 필요함을 제시하였다.

 

영화를 보았다. 제목은 ‘결혼이야기’이다. 작년에 넷플릭스에서 만들어진 영화로 영화인문학에서는 드물게 여러 명이 이미 본 작품이었다.

 

-

제목은 '결혼이야기'이지만 사실 영화를 보면 '이혼이야기'에 가깝다. 두 주인공 찰리와 니콜은 사랑에 빠져 결혼하지만(니콜은 2초 만에 사랑에 빠졌다고 했다), 서로의 요구와 차이를 극복하지 못해 이혼하게 된다. 그게 이 영화의 단순한 줄거리이다. 이혼의 어처구니 없는 과정을 통해, 사랑하고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함께 살아가는 것의 실상을 현실적으로 잘 보여 주고 있다.

영화는 두 시간이 넘었지만 실감나는 배우들의 연기와 개연성 있는 전개로 몰입이 잘 되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활발하게 이야기들이 오고 갔는데, 역시 같은 영화를 이렇게 다르게 볼 수 있다는 것에 또 새삼 놀랐다.
우선 결론에 대한 해석이 조금 달랐다. 두 사람의 감정이 아직 남아 있고, 찰리가 니콜이 살고 있는 곳으로 직장을 잡은 것을 보니 상황이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과, 다시 잘되긴 힘들고 그냥 저렇게 흘러가는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서로의 바닥(둘이 싸울 때 서로에게 쏟아낸 말들을 생각하면 정말 다시 같은 공간에서 살 수 있을까 싶긴 하다)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이혼한 상태로 지낼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양육권을 위해서 저렇게까지 싸우는 것이 이해가 안 간다는 솔직한 의견도 나왔다. 이혼한다면 아이도 돈도 모두 주고 홀가분하게 살겠다는 의견에 나도 살짝 공감이 가긴 했다. 미국에서도 '완벽한 모성'에 대한 사회적 기대가 높다는 것에 한숨을 쉬는 의견도 있었다. 변호사들에 꽂힌 이야기도 나왔다. 부부의 문제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확대하고 과장하는 모습에 화가 난다고 했다(그런 변호사들을 통해 결국 부부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을 것이라는 다른 사람의 의견도 추가되었다). 어쩌면 이 영화가 보여 주는 또 다른 측면이 이혼의 과정을 통해 '이혼 제도' 자체의 문제점을 비판한 것이 아닐까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가정의 해체를 먹이로 이윤을 취하는 '이혼전문변호사'들의 모습이 또 다른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이혼 과정에서 부부들은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서로 상처를 받게 된다. 그러나 변호사들 역시 고객에게 최선의 결과를 주기 위해 노력하는 전문가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영화 속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시 현실 결혼 생활에 대한 담소가 이어졌다. 부부의 문제는 여러 사람들과 나누면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이야기, 화목한 가정에 대한 환상과 의무 때문에 힘들었다는 이야기, 영화 속 여자 주인공처럼 자신의 삶을 남편에게 맞추다보니 힘든 결혼 생활을 했던 경험, 새로운 가족 또는 식구의 개념을 만들고 있는 문탁 이야기 등 11시가 넘도록 우리의 시간은 끝날 줄 몰랐다. 이번 주제는 워낙 우리의 삶 속에 밀접해서인지 서로의 인생 이야기가 많이 오갔다.

 

세상에는 참 많은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사랑하지만 이혼을 선택하는 사람들
사랑 따위 믿지 않지만 결혼을 하고 있는 사람들
사랑도 결혼도 이혼도 관심 없는 사람들

 

그리고,
영화를 보고 그 안에서 아무말 대잔치를 하며 답을 찾는 사람들
난 이 사람들을 만나러 다음 주에 또 문탁에 갈 것이다

댓글 3
  • 2020-11-22 17:16

    이번주말 저희 가족은 '아웅다웅' 김장을 했답니다.
    김치 버무리는 법에 대해
    서로 훈수질도 하고,
    지적질도 하고,
    옥신각신하다가
    마무리는 맛있는 수육으로 대동단결!ㅎㅎㅎ
    가족이 뭐 별건가요ㅋ~~

    수수님의 디테일한 후기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 2020-11-22 21:50

    지금은 지금의 의미대로 가족이 나에게 다가오는 듯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저 역시 또 다른 의미로 가족을, 아마도 지금과는 다른 의미로 가족을
    바라보게 되지 않을까 싶네요.
    그 가운데, 제 옆지기를 바라보는 시선 또한 달라질 것 같습니다.
    예전에 띠우샘이랑 사랑의 존재에 대해서 이야기했던,
    맞나요? 그때 띠우샘은 우정이 존재한다고 했던, 어렴풋한 기억이,
    전 그래도 사랑이 남아있지 않겠느냐는 뉘앙스로 목소리를 냈던 기억이,
    가물거립니다.

  • 2020-11-24 15:01

    집에 돌아가서 마주한 가족들을 보며 다시 이날 이야기가 떠오르더라구요.
    말로는 열려있다거나 상대의 의견을 존중한다고 하면서...
    언제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것처럼 하면서...
    사실은 한쪽으로 치우친 곳에 있는 나를 발견하는 시간입니다.
    다행이지요. 이런 나를 발견해 슬쩍 다시 한발 옆으로 가보기도 하니 말입니다.
    앞으로도 꺼내놓을 것이 많을 것만 같은 수수님ㅎㅎㅎ
    일하고 힘드실텐데 함께 해주셔서 감사해요^^
    후기 잘 읽었습니다~~

    청량리님, 우정이 아니라 의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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