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코 미니에세이② - 내 책 읽기의 계보 (먼불빛)

문탁
2020-07-24 12:07
523

 

 

 

내 책읽기의 계보

 

열망에 들떠서 ‘내 인생에서 푸코를 만날줄은 몰랐다’...거나, 정제된 기쁨 속에서 ‘내 인생에서 푸코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거나, 그런 말들을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사실 지금의 나는, 놀이공원에서 ‘귀신의 집’을 통과해 나온 기분이다. 노다지 생경한 단어들, 이해할 수 없는 문장들이 마치 귀신과도 같아서 튀어나올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 소리만 버럭 버럭 지르다가 어느새 출구에 다다른 기분.

듣기만 해도 황홀한 단어들이, 가슴을 뛰게 만들었던 문장들이 없지 않았음에도 음미하거나 머무를 수 없었던 시간들. 나는 진실로 푸코와 만나기나 한 것일까? 나의 진실 탐구의 자세는 과연 푸코를 만날 자격이 있기나 한 걸까?

 

 

 

 

 

 

gnosi seauton

 

죽음이 될지, 다시 삶이 될지 모를 위태한 순간을 넘어선 것이 벌써 8년도 넘었다. 그때 나는 다시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생존해야 한다는 명령만 있었을 뿐 그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내가 나에게 내릴 수 있는 ‘명령의 가치를 지니는 명제들과 행동의 원칙일 수 있는 참된 담론’(385p)을 알지 못했다. 이전의 나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내가 무얼 해야 하는지를 알기 위해 시작된 것이 책읽기 공부였다. 문탁의 파지사유 인문학의 책들을 만나면서 나는 형편없이 교만하고 조급하고 완고하기 짝이 없는 나를 만났다. 이전의 삶에서는 세상이 나에게만 가혹하다고 불평했었고, 이제는 왜 책에 답이, 길이 없는지를 불평했다. 그때 누군가가 정말 니 꼬라지나 알고, 너나 잘하세요라고 비수처럼 날렸다. 물론 말은 달랐지만 딱 그 뜻이었다. 부끄러워 이불킥을 수십번도 더했다. 그래, 내 꼬라지를 알고, 내가 뭘 모르고 있는지,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끝까지 ‘읽고’, 끝까지 ‘견뎌’보리라 생각했다.

 

 

 

푸코의 도끼

 

이런 나에게 다시 또 도망치고 싶도록 유혹한 것은 푸코의 책이었다. 나의 공부하기, 책읽기의 얄팍한 품행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푸코를 몰라도 잘 사는 사람 천지빼까리인거 같고, 심지어 푸코를 전혀 공부할 거 같지 않은 사람이 1,2세기 그리스,로마인들의 절제된 자기배려의 삶을 똑 닮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진심으로 흔들렸다. 어쩌면 조금 더 여유있는 시간으로 다른 여가를 즐길 수도 있을 것 같고, 나름 자~알(?) 살아가면 안될 것도 없지 않나....

 

그러나 정말 죽을만큼 열심히 읽은 것도 아닌데, 한 절반 이상은 띄엄띄엄 읽은 것 같은데, ‘어떻게 이런 식으로, 이런 명목으로, 이런 목표하에 이렇게 통치당하고 말 것인지, 너는 어떤 권력의 기술로 너가 될 것이냐’고 푸코의 문장이 벌떡 일어나 내게 질문한다. ‘이전의 너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진실의 알맹이를 찾기 위해 네가 치룰 댓가는 무엇이냐’고.

 

‘아, 예, 그 끝이 어떠하더라도 끝까지 읽을 것이라고, 읽기 위해 싸울 것’이라고 그만 푸코에게 맹세하고 말았다. 아이러니 하게도 푸코의 책 때문에 생긴 유혹이 푸코의 글로 싸워 이기게 되는 이 경험, 혹시 이것이 그것인가?

 

“철학적 독서의 대상이나 목적은 한 저자의 작품의 내용을 아는 데 있는 것도 아니고, 저자의 독트린을 심화시키는 것을 임무로 삼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독서를 통해 명상의 계기를 부여하는 것이 관건이며, 이것이 독서의 주요 목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382)

 

 

“주체가 사유를 통해 어떤 상황에 자신을 위치시키는 훈련입니다. 사유의 효과를 통해 현재의 자기와 관련해 주체를 이동시키는 것, 바로 이것이 내가 논의하는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에 사람들이 이해하던 철학적 독서가 가져야 하는 명상적 기능입니다.”(384)

 

 

 

meletan 사유의 자기화 훈련

 

만약 이것이 맞다면 띄엄띄엄 읽었을 뿐인데, 책을 덮는 순간 모든 글들이 흩어져버리는 낭패감 때문에 한숨을 내쉰게 한두번이 아닌데. 반복된 읽기와 짧은 메모-내가 한번 읽고, 동료들의 얘기를 또 듣고, 그리고 튜터의 발제를 듣고 그 텍스트를 다시 읽음으로서-를 통해 사유하는 과정이 내 신체 어디엔가 슬며시 고여 있다가 내 고민에 함께 싸워주는 참된 명제들의 장비로 나타난 것 이것이 책읽기의 명상 아닐까. 나는 이 사유의 자기화 과정을 통해 행동하는 즉 굴하지 않고 다시 읽기를 계속하기로 한 행동하는 주체가 된 것이다.

 

이제까지 나의 책읽기는 어떻게 문맥을 잘 이해하고, 그 의미를 파악할 것인가에 초조하게 매달림으로서 결과적으로 포기를 고민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참으로 우습다. 원래 나는 그렇게 공부를 잘 하는 사람도 아니었고, 무슨 일에 열렬히 매달리는 집요함도 없을뿐더러, 부끄러움을 무릅쓸 줄도, 끝까지 가는 근성도 부족한 사람이다. 부질없이 과도한 기대를 걸고 스스로 걸려 넘어진 꼴이다.

 

 

 

이제 나의 책읽기는 자기배려의 책읽기로 한발을 내딛은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잘하지도 못하는 공부를 선택하고, 모든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잘 모른다는 이유로 위축되는 것을 이겨내며, 끝을 보겠다고 끈기를 부리는 지금의 나는 분명 이전의 내가 아니다.

 

百尺竿頭. 위태로움이, 힘듦이, 당장이라도 때려치우고 싶은 고통이 차오를 때 그때, 그 고비마다 나는 푸코를 꺼내볼 것이다. 나와 함께 싸워달라고, 도와달라고. 그리고 내가 어떻게 다시 한발을 내딛는지 지켜봐 달라고.

 

댓글 2
  • 2020-07-27 12:15

    ㅎㅎ 꽂히는 부분은 역시 공감을 얻어야 하나봐요^^
    귀신의 집 표현에서 다들 신박하다고들 했거든요^^
    파지인문학의 인연을 시작으로 양생프로젝트까지 이르른 먼불빛님을 응원합니다~~~

  • 2020-07-27 13:39

    괜히 울컥하네요.... 저의 책읽기도 돌아보게 해주셨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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