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팔일편 후기 (팔일무가 뭐길래)

영감
2020-08-07 18:35
550

 

기원전 500년 경 노나라의 신문에 난  '팔일무가 뭐길래' 제하의 기사 한 토막을 상상합니다  '계季씨 가문의 대변인은 정기 브리핑에서, 논란이 된 팔일무는 가족 행사에 지나지 않는다고 선을 그면서  순수한 문화 활동에 대한 정치적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이는 철학계의 태산 북두 공자가 연일  '도를 넘는 천자 놀음에 민생은 뒷전' , ' 태산을 바보로 아나' 등등 강한 어조로 계손씨를 비롯한 3 대 가문을 향해 맹비난하고 있는 시점에 나온 논평이라 사회적 관심이 쏠리고 있다.

 

 

논어의 위정爲政 마지막 장에서 공자는 ‘귀신을  가리지 않는 제사는 아첨이며子曰 非其鬼而祭之 諂也, 이를 보고도 가만히 있으면 비겁하다見義不爲 無勇也’ 라고 경고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팔일八佾 편으로 넘어오기 무섭게 공자는 상류층의 제례와 관련된 허세에 대해 작심하고 쓴 소리를 쏟아내기 시작합니다. 이제까지의 문답 ⇒ 일반화 식이 아닌, 묻지도 않았는데⇒실명으로 콕 찍어 화법으로 전환하여 질타합니다.  팔일 편 26개 장의 절반을 제례 관련 규범에 할애하면서까지 벼르는 문제의 일단을 초장 ‘팔일무(八佾舞)를 뜰에서 춤추게 하니, 이런 짓을 한다면 무슨 일인들 차마 하지 못하겠는가孔子謂季氏 八佾 舞於庭 是可忍也 孰不可忍也’의 탄식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공자님이 남의 집 제사 지내는데 쌍지팡이를 짚고 나서는 이유는 뭘까요, 그것도 당시 세도가한테?  더욱이 계씨 측으로서는 남이사 전봇대로 이를 쑤시던 ( 근데, 요샌 이러면 걸립니다, 삼 년 이하의 …) 하고 일축하거나, 또는 ‘문화 예술이 어떻게 정치적이며 옳고 그를 수 있냐’ 고 역逆공에 나설 수도 있거든요. 연전年前에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 항소심에서 형량을 늘려 선고한 판결문의 논거이기도 합니다. 단순히 지도층의 분수에 넘치는 호화 파티가 못 봐줄 지경이면, 평소와 같이 점잖게 팔일 4장 ‘사치보다는 검소禮 與其奢也 寧儉’ 라든지 ‘과유불급過猶不及’ 이라고 일갈하고 넘어가도 될 일이었습니다.

 

이인里仁편 4장에서 ‘유인자 능호인 능오인惟仁者 能好人 能惡人’ - 함부로 사람 판단하지 말 것이며, 그리고 이어서 10장에서  ‘군자지어천하야 무적야 무막지 의지여비君子之於天下也 無適也 無莫也하여 義之與比’ – 이것만 옳고 저건 절대 안된다는 이분법적 고정관념에 빠지지 말라며 주의를 주신 게 바로 지난 주 화요일인데, 정작 당신은 이렇게 대놓고 ‘극혐’하는 배경이 궁금합니다. 아마도 당시 삼三대 가문의 튀는 행태를 쇠락한 왕권에 대한 도전으로 엄중하게 인식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족벌의 패륜적인 참칭을 학자적 양심에서 도저히 묵과할 수 없었든지, 아니면 혹시 공자가 현실 정치에 직접 참여하려는 포석이었는지도 모를 일이지요.

 

이렇게 상징적인 제례 절차를 두고 정파 간에 대립하는 사례는 역사에서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데요, 그 이유는 상제(冠婚)喪祭 의儀식이  권위와 신분을 과시하는 수단의 하나로 이용된  사회 환경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신분에 따라 봉사奉祀하는 범위, 복식, 기간 등을 차등하는 마당에, 위정자들로서는 (그들이 일용하는 권력을 포장하고 있는) 신분의 값에 종속되는 제사 의식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가 없었겠지요. 우리편의 밥그릇을 위협하는 반대파의 허세虛勢에는 양보 없는 한 판을 벌입니다. 왕이 죽은 마당에 생뚱맞게 왕의 계모가 상복을 몇 년 동안 입을 지를 가지고 당파 간에 쌈박 질 한 조선시대 예송 논쟁도 같은 ‘꽈’입니다. 멀리 갈 것 없네요. 바로 지난 달에 이 나라에선 아예 두 편을 동시 상영하더군요. ‘삼일장이면 됐쟎어 vs 오일장은 해야지’ , ‘대전으로 갈까요♪  동작동으로 갈까요♬ 가긴 어딜가…’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전통적으로 군신, 부자, 붕우 등 각 위상에 충실한 행동거지를 미덕으로 삼았고, 이런 규범이 신분제 사회를 지탱해주었습니다. 따라서 규범에서 돌출하는 행동을 (형사 피해자가 없더라도) 사회 전체에 대한 도전으로 엄격하게 견제함으로써 질서를 유지할 수 있었지요. 우리는 누가 분수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아니꼽다’는 생각이 듭니다. 입 밖에 내면 엄청난 모욕이 되지요. 당사자의 능력이나 신분을 아래로 보는 거라 자존심에도 상처를 줍니다. 그런데 영어에서는 ‘아니꼽다’와 ‘메스껍다’ 의 두 형용사를 제대로 식별하지 못하더라고요.  그만큼 우리의 독특한 정서인 셈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팔일무를 둘러싼 쟁론을 ( ‘헐-’ 하면서도), 동일한 사회 문화의 큰 틀에서 무리없이 수긍할 수 있는건지 모르겠습니다. 한편 이런 얼기설기-관계주의가 오늘날까지 우리 사회에 잔존하고 있는 진실을 불편하게 여기는 세대가 있기는 합니다. 그래도 어쩌면 나와 전체의 균형잡힌 구도를 편안해하는 고맥락高脈絡 사회가, 좀 다듬으면, 한 단계 진화한 미래형 사회 모델일지도 모른다는 요행심이 생깁니다.  장마통이라 그런지 맺음이 질척거리는군요.

외3.

댓글 3
  • 2020-08-08 16:58

    영감님의 느닷없는 후기를 보고 이 노래가 격하게 공감됐습니다~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은근 중독성 강한 영감님의 후기, 정말 잘 읽었어요.
    우샘의 지도 아니면 팔일편에 담긴 공자의 절절한 탄식을 잘 읽어내기 어려웠을 듯 합니다.
    새로운 시즌에서도 재밌는 후기 계속 써주시겠지요?ㅎㅎ

  • 2020-08-08 17:24

    영감님 후기 너무 재밌어요^^
    유튜브에 올려요~~

  • 2020-08-08 18:55

    너무 재밌음요 근데 공자님이시기에 예의 허울을 꿰뚫어 보시고 오만방자한 계씨에게 침튀어 꾸짖으신게지요. 그강직함이 시류와 불화를 일으키고 고단함을 자초케하지만 한편으로는 긴세월을 살아남게한. 고갱이가 아닌가하는 생각을 합니다. 근데 재밌는 후기라는 댓글을 왜이리 주저리주저리 할까요 이것도 긴비탔이겠쥬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알림]
이문서당 2분기 2회차 수업 공지합니다 (2)
봄날 | 2021.05.11 | 3192
봄날 2021.05.11 3192
[알림]
2021년 이문서당 1회차 수업 공지합니다!!!!
봄날 | 2021.02.15 | 2690
봄날 2021.02.15 2690
[모집]
2021 강학원④ <이문서당> : 논어 (온라인과 오프라인 동시모집) (2.16 개강 /27주 과정) (43)
관리자 | 2021.01.09 | 조회 5698
관리자 2021.01.09 5698
[모집]
2020 以文서당 - 논어, 깊고 넓게 읽기 (55)
관리자 | 2019.12.16 | 조회 5554
관리자 2019.12.16 5554
874
이문서당 2분기 5회차 공지합니다!
봄날 | 2021.05.31 | 조회 205
봄날 2021.05.31 205
873
이문서당 2분기 4회차 수업공지!
봄날 | 2021.05.24 | 조회 209
봄날 2021.05.24 209
872
[논어 2분기 2회차] 有爲에 대해 생각하다 (2)
기린 | 2021.05.17 | 조회 242
기린 2021.05.17 242
871
이문서당 2분기 3회차 수업 공지합니다~
봄날 | 2021.05.17 | 조회 204
봄날 2021.05.17 204
870
[논어 2분기 2회차] 나라에 도가 있을 때와 없을 때 (2)
향기 | 2021.05.16 | 조회 273
향기 2021.05.16 273
869
[이문서당-논어]2분기 1회차 후기 (2)
산새 | 2021.05.10 | 조회 257
산새 2021.05.10 257
868
2분기 1주차 후기입니다. (1)
뚜띠 | 2021.05.07 | 조회 232
뚜띠 2021.05.07 232
867
2021이문서당 시즌2 첫시간 공지입니다!
봄날 | 2021.05.02 | 조회 255
봄날 2021.05.02 255
866
9회차 후기 : 공자의 3년
토용 | 2021.04.23 | 조회 189
토용 2021.04.23 189
865
8회차 후기 - 이름을 바로잡는 이유
여울아 | 2021.04.13 | 조회 238
여울아 2021.04.13 238
864
이문서당1분기 9회차 수업 공지
봄날 | 2021.04.12 | 조회 252
봄날 2021.04.12 252
863
이문서당 1분기 8회차 수업 공지합니다
봄날 | 2021.04.05 | 조회 227
봄날 2021.04.05 227
862
자장과 번지, 그리고 番地를 잘못 찾은 공자 (7회차 후기) (2)
바당 | 2021.04.05 | 조회 253
바당 2021.04.05 253
861
이문서당 7회차 후기, 번지에 대하여 (2)
봉옥이 | 2021.04.04 | 조회 352
봉옥이 2021.04.04 352
860
이문서당 1분기-7회차 공지합니다
봄날 | 2021.03.29 | 조회 225
봄날 2021.03.29 225
859
[이문서당]6회차 후기 자장이 崇德辨惑을 묻다 (2)
지앵 | 2021.03.28 | 조회 259
지앵 2021.03.28 259
858
이문서당 1분기 6회차 수업공지합니다
봄날 | 2021.03.23 | 조회 253
봄날 2021.03.23 253
857
[이문서당]5회차 후기: 司馬牛의 憂 (4)
바람~ | 2021.03.19 | 조회 600
바람~ 2021.03.19 600
856
이문서당 1분기 5회차 수업 공지합니다
봄날 | 2021.03.15 | 조회 440
봄날 2021.03.15 440
855
1분기 4회차 후기 (1)
잠잠 | 2021.03.15 | 조회 340
잠잠 2021.03.15 340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