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회 후기] 시중(時中)은 어려워!

토용
2020-08-06 01:01
301

리인편이 끝났다. 앞의 학이, 위정, 팔일편에서는 공자와 제자 또는 다른 사람과의 문답이 제법 있었으나, 리인편은 거의 대부분이 자왈로 시작한다. 주로 인(仁)에 관해 앞뒤 맥락도 없이 공자님이 한마디 툭 던지는 좋은 말 대잔치 느낌이다. 별 생각 없이 읽으면 ‘음 그렇지, 좋은 말이군, 이렇게 해야지’ 라는 생각이 드는. 그러나 이 말들을 나의 일상으로, 삶 속으로 가져와 실천하기란 얼마나 어려운지 새록새록 느끼고 있다.

 

子曰 君子之於天下也 無適也 無莫也 義之與比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천하의 일에 있어 꼭 해야 하는 것도 없고, 절대로 하면 안 되는 것도 없으니, 의를 따를 뿐이다."

 

군자라면 나만 옳다고 내 주장만 해서도 안 되고, 그건 절대 안 돼, 라고 해서도 안 된다. 『중용』에서 말하는 양극단에 치우쳐서는 안 된다는 것인데, 그렇다고 적당히 중간에서 타협해서도 안 된다. 오직 상황에 맞게 융통성을 발휘해야 하는데, 그 때 기준이 되는 것은 의(義)이다. 당시의 군자는 세상을 지배하는 리더였으니 의를 사심이 없는 공적인 것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지금은 이 의를 합리적이고 보편적인 타당성 정도로 해석하면 될까?

 

여름방학을 맞아 외국에 있던 아이들이 돌아왔다.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자가 격리가 의무라 복작대며 2주를 잘 보냈다. 그런데 아이들은 그 2주를 너무너무 아까워했다. 만날 친구들도 많고 놀러도 다녀야하는데 집에 갇혀있으려니 괴롭기도 했겠지. 그렇지만 내 입장에서 그 2주는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왜냐하면 아이들과 내가 주로 의견충돌을 빚는 지점은 귀가시간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칭 성인이 된 뒤로는 더 당당하게 늦게 들어온다. 난 약속 장소와 만나는 친구들과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귀가시간을 정하는데, 아이들은 그게 영 불만이다. 특히 딸은 아들과 비교해서 남녀차별 운운하며 불공평하다고 화낸다.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가며 나름 합리적이라고 생각해서 의견을 제시하지만 아이들은 겨우 마지못해 받아들일 뿐이다. 이 다른 기준을 어떻게 조율해야할까? 아! 시중은 어렵다.

 

子曰 能以禮讓 爲國乎 何有 不能以禮讓爲國 如禮何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예와 겸양으로 나라를 다스릴 수 있다면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예와 겸양으로 나라를 다스릴 수 없다면 예는 무엇하겠는가?"

 

양(讓)은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 양보하는 마음, 배려심이고, 예를 실천하는 실제 내용이다. 양보한다는건 상대방을 좀 더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고 그 가운데 예는 저절로 행해질터. 爲國을 爲家로 바꾸어 생각하면 齊家는 어렵지 않게 될텐데....

 

아이들과 오래 떨어져 지내다보니 아이들의 태도나 언행에 신경이 많이 쓰인다. 청소년기를 집에서 보냈다고 예의바르게 자란다고 단정할 수는 없으나, 가끔은 너무 예의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가족에게. 귀가시간 문제도 집에서 기다리는 부모에 대한 예와 연관이 있다고 말해도 이해를 못하는 얼굴이다. 내가 논리적으로 말을 잘 못해서 그러나? 아, 공자님한테 혼나도 좋으니 재아처럼 말 좀 잘하고 싶다.

 

오늘 아이들이 돌아갔다. 이런 저런 일들로 아이들이 있는 동안 마음 상하는 일이 몇 번은 꼭 생긴다. 꼰대처럼 아이들 훈계하기 전에 예양을 먼저 생각했어야 하는데, 늘 후회가 뒤따른다. 수신도 안됐는데 제가를 꿈꾸다니 ㅋ 다시 수신으로. 원점으로. 공부로.

 

 

댓글 7
  • 2020-08-06 09:35

    천하의 일을 논하는 용은 꼭 해야할 일도,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일도 없지만,
    속세의 구덩이에 허우적 대는 토끼에게는 꼭 해야할 일과 절대로 헤서는 안 되는 일들이 있습죠.
    취중고백, 노상방뇨, 안전운전, 간식당번, 후기쓰기, 주방선물 등등
    맨날 그런 건 아니니, 후회해도 좋고, 수신이 아니어도 제가를 꿈꾸어도 좋고, 꼰대가 되어도 좋지 않을까요?
    토끼와 용, 누가 더 공부하기 좋을까요? ^____^

    • 2020-08-06 10:20

      오늘 아침 바쁘네...량리군^^

  • 2020-08-06 10:19

    산 만한 애들한테 귀가시간을....ㅋㅋㅋ
    애당초 미션 임파서블^^ ㅎㅎㅎㅎ

    그러나저러나 허전하겠네요. 토! (차마 용은 못 쓰겠음. 청량리땜시^^)

  • 2020-08-06 22:15

    토용...강자일세.
    나는 누구랑 만나는지 언제 돌아오는지 그런 거 못 물어보는데..ㅎㅎ

  • 2020-08-07 15:27

    아... 갈 길이 멀다... 남편도 나도 멀리 놀러갈 때 방소를 알리는데, 애들한테 요구하면 안 되나요?? 집 앞에 나갈 때도 알리는 구만!

  • 2020-08-08 18:59

    일상에서 수시로 도전받는 수신미션 ! 이것만으로 쩔쩔매며 벅차하다 영업종료할듯 ㅠㅠ

  • 2020-08-10 16:36

    子曰 君子之於天下也 無適也 無莫也 義之與比
    저는 이걸 읽을 때 義를 仁으로 바꿨으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저의 경험치로 보면 義라는 것은 각자가 살아온 경험속에서 다 다르더라구요.
    사실 정당정치도 붕당의 경우도 각자가 합리적이고 義라고 하면서 싸우니까요.
    제 경우도 내가 옳다고 하니까 답이 안나오는데
    이걸 仁(자비, 사랑) 으로 치환 하면 是非가 줄어들더라구요. 君子之於天下也에서도 군자노릇하기가 유리하겠죠.
    더 나가서 無我(본래 나我라 할 것이 없다)로 가면 판단(智)이 훨씬 명쾌해 지는 경험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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