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이 물어하는 게 예이다 (7회차 후기)
바당
2020-07-20 08:18
292
우 선생님은 논어를 읽어나가는데 넘기 힘든 첫 번째 문턱이 <팔일(八佾)>편이라고 말하시는데, 겁을 준 것에 비해 오히려 흥미있는 구절들이 많다. 유래없는 고품격 강의 덕분이겠지만 나의 오래된 연식과도 무관하진 않은 것 같다. <팔일(八佾)>편에는 주로 예(禮)에 대한 상황들이 배치되어 있다. 당시 노나라 제후를 쥐락펴락하는 대부 계손씨가 권력과 재물이 많다하여 감히 천자가 드리는 제사를 드릴 수 있겠느냐 라든지 그런 제사를 올리면서도 마음을 다하지 않고 대강 대강 형식적으로 드리는 것에 대해 못 마땅해 하는 장면들이 있다.
이번에 공부한 15장을 보면 공자가 노나라 시조 주공을 모신 태묘에 제사지내면서 일일이 묻는다. 그것을 본 사람이 세상 예는 자기가 다 안다는 사람이 실제상황에서는 답답하게 천천히 다 물어가면서 제사를 올리더라고 소문을 낸 모양이다. 이 얘기를 듣고 공자는 ‘그렇게 하는 것이 예다’라고 답한다.(子入大廟 每事 問 或 曰 孰謂鄹人之子 知禮乎 入大廟 每事 問 子 聞之 曰 是禮也)
뭐라시는 거지? 무대에서 좀 떠셨을리는 없고, 수시로 오작동하는 머리가 완전 정지된 듯. 해설인즉 이미 다 알고 있지만 실수하지 않게 신중하고 지극하게 마음을 실어서 임해야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난 시간에 배웠던 12장에서 공자는 선조에게 제사지낼 때 그 자리에 조상이 와 계신 것처럼 한다(祭如在 祭神如神在)고 말했다. 공자가 하나하나 물어가면서 제사를 진행한 것은 앞에 와 계신 조상님도 제사진행 과정을 일일이 듣고 즐길 수 있게 엄숙하게 마음을 다했던 것이다. 더구나 선생이라는 직업의식도 있어서 거기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을 함께 이 예식에 참여시키고 배우게 하려는 의도도 있지 않았을까? 이 사건 이후로 제사를 지낼 때 일일이 묻고 속도가 많이 느려졌다고도 하니^^.
17장 子貢 欲去告朔之餼羊 子曰 賜也 爾愛其羊 我愛其禮 구절을 보면, 제후는 천자에게 년 말에 받은 달력을 잘 보관했다가 매달 음력 초하루마다 달력을 내놓고 곡삭(告朔)이라는 제사를 지낸다. 천자와 자기조상에게 그 달에 있을 중요한 일을 보고하면서 잘 성사될 수 있도록 기원하는 의미이다. 자공은 제후가 곡삭 제사에 직접 참여도 잘 안하는데 꼭 양을 잡을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실리주의자인 자공에게는 낭비로 보였던 것이다. 이에 공자가 넌지시 깨우친다. “너는 그 양이 아까우냐? 나는 그 예가 아깝구나” 지금은 양이 아까와 간단히 지내지만 머잖아 그 제사도 없앨 것 같아 안타까웠던 것이다.
공자가 禮를 중요시하는 것은 예 그 자체가 아니라 예를 통해 그 안에 인(仁-孝)과 덕(德)이라는 내용을 담기 위해서이다. 절차와 예법은 그 안에 담고 있는 질(質)을 빛내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라 보았기 때문이다.
내 연배들은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을 때 조상님 산소에 가서 아뢰고 도와주십사고 비는 것을 본 적이 있는 세대다. 일의 성패는 본인의 능력만이 아니라 선대와 천지신명과 모두 묶여있는 걸 알고 또 한 개인의 한계를 인정해서 겸허하고 신중하게 맞이하려는 것이다. 그래도 2500여 년 동안 우리 앞전 세대까지는 많이 덜어내긴 했지만 공자의 예 영향력이 희미하게나마 이어온 것 같다. 우리세대에 와서 많이 간략화되고 없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러다가는 필시 이후세대에게 논어를 잘 읽히려면 우샘보다 수퍼하이 울트라 품격으로 설명을 해야 하는데~~ 문탁 동학들 더 힘내셔야 할듯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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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잘 읽고 갑니다 꾸벅~
절차와 예법은 그 안에 담고 있는 질(質)을 빛내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라 보았기 때문이다.
;완전공감요^^ 文質彬彬이 禮라는 매개를 만나는 순간 문질빈빈이군요^^ 아하^^바당샘~ 쫌 멋짐^^ 다~ 美親암송단의 품격 ㅋㅋㅋㅋ
어쩔땐 음청 격식을 따지시는 분같아 확 멀어지고 싶다가도 송곳처럼 예리하게 허위의식을 파고들며 마음의 본질을 직시하라고 재촉하시는 순간에는
차가운 물 한바가지처럼 정신이 확들게 해주시는 분.. 그분이 멋져보이기 시작한건 얼마전 겨우겨우 다본 공자영화속에 주윤발때문은 아니겠죠.... 아니라고 해주셔요.
결코 아니죠^^
주윤발은 너무 느끼해 공자 이미지랑은 더구나 내가 좋아하는 형도 아니고
나도 지금 공자와 사랑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