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릿고개 프로젝트] 1968년, 어떤 그리고 모든 혁명의 질문 <3> “-되기”

명식
2019-05-07 21:11
443
 * 보릿고개 프로젝트는 춘궁기를 겪는 청년들이 고료를 받고 연재하는 글쓰기 프로젝트입니다다섯 명의 청년들이 매주 돌아가며 세 달 동안 저마다의 주제로 세 개씩의 글을 연재합니다글은 매주 화요일에 업로드됩니다!

   

  명식의 보릿고개 프로젝트 : 1968어떤 그리고 모든 혁명의 질문

  인간은 세계를 바꿀 수 있을까?


  이것은 역사의 변곡점마다 반드시 던져지는 질문이다미지의 한걸음을 앞두고 두려움과 불안에 휩싸인 사람들에 의해자신이 지금 하려는 일이 무의미하지 않음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 의해이미 몇 번의 실패를 지켜봐온 사람들에 의해.

그는 곧 다시 새로운 질문들을 낳는다만약 가능하다면세계는 어떻게 바꿀 수 있는가무엇이 필요한가세계를 바꾸려는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글과 이어질 두 개의 글은 그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다이것은 1968년의 이야기이자 2019년의 이야기이며그보다 더 많은 해의 이야기이다그 흐름에 닿아있던 모든 사람들의 문답이자 나 자신의 문답이다.

  이것은 내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가지고 가야 할 질문의지금 이 순간 스쳐가는 대답이다 






  < 3 > “-되기

 

 

  196844.

  

  테네시 주 멤피스의 로레인 모텔에서 한 발의 천둥 같은 총성이 울렸다. 백인 우월주의자 제임스 얼 레이가 모텔 발코니에 서 있던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를 저격한 것이다. 총탄은 킹 목사의 머리에 치명적인 부상을 입혔고, 그는 구급차가 도착하기도 전에 숨을 거두었다. 그렇게 20세기 흑인 민권 운동을 이끌어왔던 남자가 숨을 거두었다. 향년 39세였다.

  그로부터 3년 전, 1965221, 미국의 흑인들은 이미 또 한 명의 지도자를 잃은 바 있었다. 맬컴 X는 뉴욕 할렘의 오두본볼룸에서 연설을 시작하려는 찰나 세 명의 괴한에게 열여섯 발의 총탄을 맞고 사망했다. 그들은 한때 맬컴 X가 몸담았다가 등진 흑인 조직 네이션스 오브 이슬람NOI의 조직원들이었다. 그 역시 향년 39세였다.

  오늘날 많은 역사가들이 그들 두 사람을 일종의 맞수로 묘사한다. 그들이 남긴 투쟁의 두 갈래의 길은 이후 수많은 현실의 운동과 가상의 작품들 속에서 반복적으로 재현되어 왔다. 그 두 갈래 길 중 어느 쪽이 옳은가에 대하여 숱한 사람들의 고뇌와 논쟁이 거듭되어 왔다.

그러나 그들이 암살당하기 전 마지막 1년의 이야기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나는 그 1년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1968년 그 해 혁명의 대열에 섰던 숱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마무리 지을 것이다. 또한 그럼으로써 오늘 여기, 우리에 대한 이야기 또한 매조지할 것이다.

 

 

  미국의 흑인들이여, 미국인이어라 - 아프리카인이어라

 

  킹과 맬컴은 참으로 많은 부분에서 오랜 기간 대척점에 서 있었다. 물론 두 사람은 모두 미국에서 흑인으로서 겪어야 하는 고통을 체감했고 사람들을 이끌고 그를 극복하고자 했으나, 그 외에는 거의 모든 점에서 달랐다. 우선 킹은 비교적 유복하고 화목한 흑인 가정에서 자라났으며, 대학에서 박사 과정까지 밟은 엘리트였다. 그의 사상적/인적 기반은 미국 남부의 흑인 기독교회에 있었다. 한편 맬컴은 북부의 빈민가에서 자라났으며, 그의 어린 시절은 백인들이 그들 가족에 가한 폭력과 더불어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어머니가 자식들에게 가한 가정폭력으로 얼룩져있었다. 그는 정규 교육 과정을 거의 밟지 못했고 어린 시절부터 감옥을 전전하던 중 일라이저 무함마드라는 인물을 만나 그의 수제자가 됨으로써 '네이션스 오브 이슬람'이란 조직에 가입했다. 당연히 맬컴의 기반은 분노로 가득한 북부의 흑인 빈민들이었다.

  

  이러한 성장환경과 기반의 차이는 곧 방법론의 차이로 이어졌다. 킹은, 흑인들의 운명을 벗어나기 위하여 - 저 유명한 아메리칸 드림을 부르짖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나의 벗들이여, - 어제와 오늘 우리가 고난과 마주할 지라도, 나는 꿈이 있습니다. 그 꿈은 아메리칸 드림에 깊이 뿌리 내린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이 나라가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것을 자명한 진실로 받아들이고, 그 진정한 의미를 신조로 살아가게 되는 날이 솟아오리라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조지아의 붉은 언덕 위에 옛 노예의 후손들과 옛 주인의 후손들이 형제애의 식탁에 함께 둘러앉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불의의 열기에, 억압의 열기에 신음하는 저 미시시피주 마저도, 자유와 평등의 오아시스로 변할 것이라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의 네 아이들이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에 따라 평가받는 그런 나라에 살게 되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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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연설 중인 마틴 루터 킹.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로 알려진 이 연설은 1963828, 노예해방 100주년을 

기념한 워싱턴 대행진에서 행해졌다. 이날 20만 명의 흑인들과 백인들이 킹의 비폭력 행동에 동참하기 위해 미국 전역에서 몰려들었다

이 연설은 흑인 운동의 방향성에 대한 킹의 신조와 방법론과 더불어 그의 탁월한 연설 능력을 남김없이 드러내고 있다.

(한글자막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time_continue=1&v=IWjgnhockB4)

 

  킹의 무기는 사랑과 정의, 보다 정확히는 기독교적 사랑과 신이 약속한 평등의 권리였다. 그는 미국 헌법이 기독교도’ ‘남성’ ‘백인이 아닌 모든 인간에게 생명, 자유, 행복 추구의 권리를 보장하며, 다름 아닌 신께서 그 권리를 약속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킹은 미국의 백인들이 끝내 그 사실을 외면할 수는 없으리라 생각했으며 지금 백인들의 말과 행동이 헌법의 이상과 기독교적 윤리에 어긋나고 있음을 일깨워주기만 한다면 장차 미국의 흑인과 백인들은 형제자매처럼 함께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갈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리하여 그가 선택한 수단은 비폭력적인 직접 행동이었다. 그는 폭력에 굴하지 않고 견디며 행진하고 시위함으로써 흑인들의 존엄을 드러내고자 했다. 백인들의 양심에 호소하고자 했다.

  한편 맬컴은 그런 킹을 비난하고 경멸했다. 그가 보기에 흑인에게 있어 백인은 공존의 대상이 아니었다. 백인은 흑인이 당하고 있는 모든 고통과 악덕의 - ‘악몽의 근원이었다.



  당신이 가난한 건 우연이 아닙니다. 백인이 꾸민 일입니다. 당신은 우연히 마약 중독자가 된 것이 아닙니다. 백인이 당신을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당신은 우연히 창녀가 된 것이 아닙니다. 미국의 백인에 의해 창녀가 되도록 조작된 것입니다. 여기 미국에서의 당신의 삶에는 우연히 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맬컴 엑스, 뉴욕 할렘, 1963810일)

 

  “백인이 아메리칸 드림이라고 여기던 것이 흑인에게는 긴 세월 걸쳐온 미국의 악몽이었다.” 

(맬컴 엑스, 뉴욕, 196251일)

 

  맬컴은 흑인들이 완전히 백인과 단절하여 오직 흑인들만의 민족성을 가져야 한다고 믿었다. 애초에 그가 기독교를 등지고 이슬람에 귀의한 것도 백인의 기독교에 대항하는 흑인의 이슬람을 구축하기 위함이었다. 그에게 있어 백인이 만든 모든 것은 흑인에게 있어 고통을 안기는 것이었다. 맬컴은 모든 백인 종족은 악마의 종족이며 지구상 모든 흑인 인류의 공공의 적이라고 공언하면서 흑인들이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백인들과 통합하여 공동체를 이룰 것이 아니라 오직 흑인들끼리 단결하여 백인들과 완전히 분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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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하마드 알리와 맬컴 X. 맬컴은 킹과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탁월한 연설가였다

그는 노골적이고 거칠면서도 언제나 핵심을 찌르는 연설을 즐겨했으며 빈틈없는 논리로 상대의 반론을 허락지 않았다

맬컴은 마치 복싱을 하듯 백인 토론자들을 공개토론에서 짓눌러 논파했고, 그때마다 북부의 흑인들은 열광했다

맬컴과 알리가 오랜 시간 친구였던 것은 이런 공통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는 예리한 언어와 능란한 언변으로 빈민가 흑인들의 고통을 폭로하는 한편 공공연히 백인에 대한 증오를 드러냈고 그런 백인들과 협력하고자 하는 흑인 운동가들을 꼭두각시, 얼간이, 프락치로 여겼다.


  『맬컴 X vs. 마틴 루터 킹의 저자 제임스. H. 콘에 따르면, 킹과 맬컴의 주장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킹은 미국의 흑인들이 무엇보다도 미국인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피부색이 아니라 미국이, 기독교 정신과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와 책무가 그들의 존재를 규정해야 했다. 피부색과 상관없이 백인과 흑인 모두가 신의 백성이자 미국 국민으로서 함께 할 때 그들은 자유로워질 것이었다. 반면 맬컴은 미국의 흑인들이 무엇보다도 아프리카인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검은 피부색이, 그 피부색 속에 함축된 흑인들의 뿌리가 그들의 존재를 규정해야 했다. 미국의 흑인들은 아프리카 왕국들의 영광스런 과거를 기억하고 백인 정복자들의 극악무도한 만행을 기억해야 했다. 모든 미국 흑인들이 피부색에 대한 긍지와 백인들에 대한 증오로 단결하여 백인들에게서 벗어날 때 그들은 자유로워질 터였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킹과 맬컴 X에 대한 이야기이다. 때문에 소수자 운동에 있어 기존 사회와의 소통과 통합을 주장하는 온건파들은 킹을 즐겨 인용하고, 분리와 독립행동을 주장하는 과격파들은 맬컴의 말을 자신들의 근거로 삼는다. 심지어는 히어로 영화들까지도 이들의 이미지를 재생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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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힘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그 때문에 일반인들에게 차별받는 돌연변이들을 다룬 영화 <엑스맨>,  

아프리카 정글 속에 숨겨진 흑인들의 이상국가를 그리는 <블랙팬서>는 킹과 맬컴의 이미지를 차용한 대표적인 영화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암살당하기 전 마지막 1년에서, 우리는 조금 다른 흐름을 발견할 수 있다.

 

 

  맬컴 X 최후의 일 년 : 우리는 그저 아프리카인이어서는 안 됩니다

 

  1965, 맬컴이 암살당하던 해. 그 마지막 일 년 동안 맬컴은 이전과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인다. 당시 맬컴을 둘러싼 환경에는 크게 두 가지 변화가 있었다. 하나는 일평생 그가 영적 스승으로 모셔온 일라이저 무함마드와 결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가 메카를 비롯하여 해외를 순방하고 돌아왔다는 것이었다.


  일라이저 무함마드는 맬컴의 사상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쳤으나 도덕적으로는 부패한 성직자였고, 점점 커져가는 수제자 맬컴의 영향력을 경계하고 있었다. 맬컴은 그럼에도 가능한 한 그에게 존경을 표하려 했으나 결국 그와 관계를 끊고 네이션스 오브 이슬람에서도 탈퇴하였다. 그와 때를 같이 하여 맬컴은 이슬람의 성지인 메카를 처음으로 순례하였는데, 그 때 그는 그에게 있어 대단히 놀라운 광경을 목도한다.

 

 메카에서 그는 이슬람에 관한 일라이저 무함마드의 가르침, 특히 백인은 천성적으로 악인일 수밖에 없다는 사유가 정통 이슬람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맬컴은 메카에서 백인 무슬림들이 자신을 포함한 타 인종 사람들을 형제자매로 간주하며 어떤 편견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목격했다. 인류애가 미치지 못하는 수많은 그늘이 존재하지만 그러한 가운데에서도 전 세계에 인종적 화합의 장이 있음을 깨닫게 된 맬컴은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 “이 성스러운 조상들의 땅에서 전에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진정한 형제애의 정신이 무엇인지를 감동적으로 목격했다. 그들의 피부색은 다양했다. 푸른 눈의 금발에서부터 검은 피부의 아프리카인들까지. 하지만 우리는 모두 함께 제의에 참석했고 단결과 형제애의 정신을 몸소 보여주었다. 미국에 있을 때 나는 백인과 비백인들 사이에서 그러한 일들은 절대 실현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었다.”」 

( 제임스.H.콘, 『맬컴 X vs. 마틴 루터 킹』, 34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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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메카를 순례 중인 맬컴X

 

  그 뒤 맬컴은 주변의 아프리카 국가들을 방문하여 그곳의 혁명가들과 토론을 벌이면서, 인종적으로 백인인 아프리카인, 그럼에도 자국의 혁신을 꾀하는 이들을 마주했다. 맬컴은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흑인 민족주의가 진정한 혁명론자들을 소외시키고 있음을 깨달았다고 술회했다. 그는 점점 더 인종이나 국적과 상관없이 인류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으며, 미국에서의 흑인들의 투쟁과 아프리카인들의 투쟁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가를 고심했고, 여전히 미국의 인종차별주의를 강경하게 비판하면서도 모든 백인들에게 저주를 퍼부었던 과거의 발언들을 후회했다.

 

  「그는 파리 외곽에서 비행기가 충돌해 백인 130여 명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방금 좋은 소식을 들었다!”라고 했다. 맬컴은 알렉스 헤일리에게 내가 결코 하지 않았어야 할 말 중의 하나였다라고 고백했다. 또 다른 예로 한 백인 소녀가 할렘을 찾아와 맬컴에게 흑인이 벌이는 투쟁에 기여하기 위하여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물었을 때 맬컴은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대답했고 소녀는 울면서 돌아갔다. 맬컴은 후에 이렇게 고백했다. “그 소녀에게 그렇게 말했던 것을 후회한다. 지금 그녀의 이름을 알거나, 연락처를 알거나, 편지를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진지하게 이런 저런 방식으로 그녀가 물었던 것과 똑같은 질문을 하는 백인에게 지금 내가 대답하는 말을 들려주고 싶다. 백인은 백인의 사회에서, 흑인은 흑인의 사회에서, 이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일함으로써 실제로 진실한 백인과 진실한 흑인은 함께 일하게 될 것이다.”」 

(제임스.H.콘, 위의 책, 496p) 

  그의 사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일찍이 그는 미국의 흑인이 순수한 흑인으로서의 아프리카인이어야한다고 말했다. 그것은 피부색으로 이미 처음부터 결정된 것이고, 따라서 그의 투쟁에 백인들의 자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그는 미국의 흑인들이 - 아니, 인류가 무엇이 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정해진 뿌리, 정해진 운명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 꿈틀거리는 운동들 속에서 새로운 무언가가 되고자 하는 미국의 흑인들, 유색인들, 백인들, 아프리카인들의 행보를 고민하고 있었다.

  바로 그런 가운데 맬컴은 오랫동안 경멸하고 비난해온 킹에게 다시 손을 내밀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맬컴은 킹에게 만남을 계속해서 제안했지만, 그것은 그를 공적인 자리에서 논파하고 욕보이기 위함이었다. 킹은 그것을 알았기에 철저하게 맬컴의 제안을 무시하고 그를 피해왔었다. 하지만 1965년에는 킹 역시 맬컴의 변화를 감지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킹 역시도 이미 변화하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미국을 꿈꾸지 않았다.

 

 

  마틴 루터 킹 최후의 일 년 : 우리는 흑인이 되어야 합니다

 

  킹에게 통합주의, 흑인들과 백인들이 함께 일하고 기도하며 투쟁하는 그러한 미국의 꿈American Dream은 그가 결코 저버릴 수 없는 이상이었다. 그는 그 아메리칸 드림이 진정한 민주주의이자 미국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었다.(354) 그리고 실제로 그의 비폭력 운동에 많은 백인들이 지지를 보내고 또 참여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또한 린든 존슨 대통령이 흑인 민권 법안에 서명하는 쾌거를 이룸으로써 킹의 확신은 더욱 강해졌다.

  허나 그런 킹의 아메리칸 드림을 뒤흔든 것은 지금 당장 흑인들이 처해있는 비참한 현실이었다. 미국 북부 와츠 지역에서 일어난 흑인 폭동 현장을 방문한 킹은 흑인 빈민들이 처한 극도의 가난을 목격했고, 그곳의 흑인 젊은이들이 비폭력으로는 결코 자신들이 자유로워질 수 없다 생각하는 데에 충격을 받았다.

 

  마틴()은 그 아이들의 대답과 비폭력에 대한 적대적인 반응을 곱씹어보며, 민권과 민권 법안은 인종차별주의와 가난을 전혀 상쇄시키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특히 북부에서는 말이다. “와츠는 인종차별이나 민권 결여 때문에 고통 받은 게 아닙니다. 식수대가 단 한 개라는 것, 그게 뭔지 당신()은 모를 겁니다 (...) 존슨이 1964년 민권법에 서명을 했을 때 와츠 사람들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우리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었으니까요.”」 

 

  「와츠에서 마틴에게 조언을 해주었던 베이러드 러스틴은 당시의 일을 이렇게 회상하고 있다

댓글 2
  • 2019-05-13 08:19

    어쩌면 혁명은 

     백인이라는, 흑인이라는, 여성이라는, 남성이라는, 한국인이라는, 국가라는, 아내라는, 엄마라는, 인간이라는, 동물이라는 ... ...  이 수많은 분별하고 규정하는 것들에서 벗어나는 것이, 무엇이 되는 동시에 무엇이 아닌 것이 되는 ... ... 

     그레이버의 책을 읽고 있는 요즘 명식의 글을 읽으면서 여러 생각을 했습니다. 

    결국 멜컴이나 킹에게 혁명은 

    흑인혁명이 아니라 자신들의 정체성에서 벗어나는 것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 2019-05-15 16:28

    브란트가 유대인 추도비 앞에서 무릎을 꿇는 장면이 감동적이네요.

    명식이는 글을 참 잘쓰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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