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지부루쓰4]변화하되,변함없기?

히말라야
2019-04-23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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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는 하되, 변함은 없자!”

우연히 들어간 어느 카페의 벽면 한 구석에 누군가 허술한 손글씨로 써 붙인 글귀가 눈에 띄었다. 말장난처럼 여겨지다가,  ‘과연 변화란 뭘까’에 생각이 이른다. 나는 늘 변화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나라는 변함없는 고유성 또한 존재한다는 생각과 함께.

2

살림을 시작한 이래, 나는 주기적으로 집안의 가구나 세간살이를 이곳 저곳으로 옮겨 놓는다. 그런 짓을 할 때 내 머릿속은 그 물건의 자리가 바뀌면, 생활이 더 쾌적해 질 것 같고 그래서 나와 가족들이 좀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차 있다. 물론 때로는 생각치 못했던 변수들 덕분에 기대와 다를 때도 있지만, 어쨌거나 변화된 배치는 예전과 같은 집이 아닌 듯 새로운 기분을 들게한다.

이런 사실을 언젠가 가까운 지인에게 말했더니 그는 굉장히 깜짝 놀라했다. 그렇게 무거운 물건을 놓기 전에 왜 최선을 다해 숙고하지 않지? 자기는 한 번 자리를 잡아놓으면, 그게 숙고한 결과 최선책이기 때문에, 다른 집으로 이사가지 않는 한 절대로 옮기지 않는다고.  그 말을 듣고 나또한 그 이 못지않게 정말로 깜짝 놀랐다. 어떻게 그게 최선인지 확신하지? 시간이 지나는데, 최선이 왜 안 변하지? 우리는 서로를 향해 물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사랑이 변하니.jpg 



3

문탁 내에서 나는 언젠가부터, 뭔가를 ‘잘 그만두는’ 사람으로 정평이 나있다. 그러나 뭔가를 잘 그만두는 것처럼 보이는 나의 진짜 문제는 어쩌면 그만두기가 아니라, 뭐든지 대체로 쉽게  시작하는 게 아닐까한다. 나는 귀가 매우 얇아서 다른 친구들이 뭔가 재밌게 하는걸 보면, 따라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무슨 일이든 쉽게 시작하고 한꺼 번에 여러가지 일에 발을 들여놓는다. 그 결과 여러가지 일을 한꺼번에 하게된다.

그런데 모두 아시다시피, 나의 심박수가 보통사람들보다 상당히 높아서 반나절 장터국밥을 끓이면, 이박 삼일을 앓아눕는다. 그러니 내가 벌여놓은 여러가지 일을 다 하려다보면 당연히 힘이 든다. 따라서 벌여 놓은 일 중에서 덜 재미있는 일은 덜 열심히 하게 되고, 덜 열심히 하니까 당연히 점점 더 재미가 없어지게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세상에 재밌는 일도 많은데 왜 재미없는 일을 하고 있지? 라는 의문이 들게 마련이고, 당연히 더 재밌는 일을 찾아 다시 눈을 돌리게 된다.

이런 악순환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자기 능력에 초과하는 과한 일들을 쉽게 시작하지 않아야 하는데, 바로 옆에서 일어나고 있는 재밌어 보이는 것들에 곁눈 돌리지 않고 하고 있는 것들만 열심히 하는 삶이라니!! 아, 생각만해도 벌써 지루해진다! 그래서 이 기회에 친구들에게 슬쩍 부탁해본다. 나를 ‘잘 시작하는 사람’이라고 약간 다른 관점에서 봐주기를, 그러면 ‘잘 그만 두는 사람’일 때 보다는 좀 더 긍정적으로 봐줄만 하지는 않은지…? ^^;;

그러나 많은 것을 그만두는 것처럼 보이는 내가 절대로 그만두지 않는 것도 있다. 그건 바로 어떤 게 내게 더 좋고 행복한 삶일까하는 고민이다. 이런 고민은 한시도 그만두지 않는것 같다. 그래서 귀가 얇은 것인지...ㅠㅜ 어쨌든, 나는 뭔가를 그만두고 새로 시작하는 끝없는 변화 속에서도, 내게 더 좋은 것을 찾기를 원한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4

“요즘 파지사유가 바뀌었어. 뭔가 ‘카페느낌’이야.”

종종 파지사유에 들르는 중학생 딸의 말이다. 요즘 파지사유 테이블에는 예쁜 꽃과 앙증맞은 식물들이 놓여있고, 때때로 음악이 흐른다. 올해 큐레이터로 활동하게 된 뿔모샘과 느모샘의 성질/고유성이, 그들이 적극적으로 결합하려는 파지사유 공간에 묻어나온 결과다.

뿔모샘은 큐레이터 첫날부터 파지사유의 테이블을 옮기기 시작했다. 너무 큰 테이블이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고 거기에 누군가 한명이 짐을 펼치고 앉는 순간, 공유가 아닌 점유가 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 같다고. 그 말을 듣고 보니 또 그런 것같아, 큐레이터들은 끙끙거리며 커다란 테이블을 함께 옮겼다.  게다가 본래부터 가구 옮기기를 좋아라하는 나는 아주 적극적으로 동조했다.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은 다 다르다. 배치를 바꾸고 나니, 피아노방쪽 공간은 종종 공연이나 강연의 무대로 쓰기에 커다란 테이블을 이동하려면 많은 힘을 써야하니 불편하다는 의견도 있었고, 테이블을 두 줄로 놓던 공간에 크긴 해도 하나의 테이블이 들어가니 왠지 모르게 비어보인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 의견들은 사실상 모두 타당하다. 스피노자의 말을 빌려와 이 의견들을 모두 한마디로 정의해 본다면, 바뀐 배치가 현재 우리에게 익숙한 신체의 운동과 정지의 리듬과 맞지 않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런지.


뿔.jpg


스피노자에 따르면, 우리는 자기 신체의 운동과 정지의 리듬을 보존하는 것을 선이라 여기고, 그렇지 않은 것을 악이라 여긴다. 새로운 배치는 신체가 이미 익숙한 기존의 리듬을 변화시켜 새로운 운동과 정지의 리듬을 만들어내도록 요구한다. 그것은 매우 낯설고 피곤한 일이다. 하나의 변화에도 아직 익숙해지지 않았는데 아직도 매일매일 자꾸만 테이블과 화분의 위치를 바꿔보는 뿔모샘은, 지금은 악으로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좀 더 좋은 배치를 찾아내려고 매일매일 노력 중인 것이라 여긴다면, 애정어린 눈으로 바라볼 수도 있으리라.

5

식물 가꾸기와 걷기를 좋아하던 둥모샘이 큐레이터였을 적에는 파지사유에 근사한 정원이 만들어지고 걷기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둥모샘이 큐레이터를 그만두면서 걷기 프로그램은 중단되었지만, 정원은 여전히 남아있다. 걷기만 하면 지루하다며 달밤의 댄스를 선보였던 전 큐레이터 물모샘은 이제 파지사유에서 제대로 춤판을 벌이고 있다. 물론 그가 큐레이터시절 애지중지했던  ‘금월애’는 그가 큐레이터직을 물러나면서 중단되었다. 대신 뿔모샘이 공들이는 월간 파지사유가 가열차게(?) 가동되고 있다.

비단 큐레이터 뿐만 아니라 파지사유에 드나드는 많은 이들 각자의 성질/고유성과 운동과 정지의 리듬들 덕분에, 파지사유라는 공유지는 매일매일 변한다. 나는 이런 끊임없는 ‘변화’ 덕분에 공유지가 ‘변함없이’ 유지될 수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물론 공유지란 특정한 누군가에게가 아니라 모두에게 더 좋은 곳이어야 할텐데, 더 좋은것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일은 각각의 사람들이 끊임없이 적극적으로 자기 고유성을 드러내고 표현하면서 서로 조율하려고 할 때만 가능하지 않을까.

누군가 하나의 성질/고유성으로 독점해 버리는 곳은 공유지가 아닐 것이지만, 어느 누구도 자기 성질/고유성을 표현하지 않는 곳 역시도 더이상 공유지가 아닐 것 같다. 서로의 다양성들이 만개하면서 서로 배척하지 않고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공유지라면, 누군가는 계속 변화를 시도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변함없이  애정어린 관심과 잔소리를 하고 있겠지.

춤.jpg

댓글 5
  • 2019-04-23 22:16

    재밌다ㅎㅎ

  • 2019-04-24 05:38

    재밌다 ㅎㅎㅎ

  • 2019-04-24 08:00

    변화는 '문턱'을 넘어야 가능한 것 아닐까? ㅋㅋㅋ

    만약, 친구들이 히말에게 '잔소리'를 한다면, 그건 "함께 문턱을 만들고, 그걸 넘어보자"는 우정 가득한 권유 아닐까? 호호호

    뭐,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여전히 히말이 예쁘긴 해^^

  • 2019-04-24 15:27

    요즘 까페에서 자주보이고 수다도 엄청 늘어난 뿔옹이 좋고

    뭔가 끊임없이 모색하는 히말도 좋고

    날씨도 점점 좋아지고

    좋아지고 또  좋아지는구나!

  • 2019-04-27 22:19

    집안의 가구를 거의 옮기지 않는 1인으로서

    파지사유의 이전의 테이블 배치로 돌아가고 싶은 소망이 있네요~

    물론 지금의 변화들도 즐겁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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