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없는 번영>1장-7장 후기: 노라와 꿈틀이를 위하여

요요
2020-04-03 21:38
327

'생태거시경제학'이라는 부제로 커리큘럼 안에 포함된 책, <성장없는 번영>을 두번에 나누어 읽기로 했습니다.

1장부터 7장은 성장위주의 사회에 대한 문제제기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가 마을경제를 공부한 이래 너무나 익숙한 주제다 보니 더 발제하기가 난감하더군요.

 

이 책을 읽으며 새롭게 알게 된 개념은 디커플링이었습니다.

지속가능한 성장이라는 말 속에 숨겨진 성장논리가 바로 디커플링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효율성을 높여서 자원을 덜 소비하면 성장하더라도 생태계를 보존할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저자는 상대디커플링이 가능하다 해도 절대디커플링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임으로써

성장 그자체를 문제삼도록 독자를 이끌어 갑니다.

그리고 재미있었던 것이 인간의 본성과 경제구조가 뒤얽혀서 우리를 '소비주의의 철창'에 가둔다는 표현인데요.

소스타인 베블렌의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기 위한 유한계급의 과시적 소비와 대중의 모방이라는 개념과

조지프 슘페터의 기업가의 혁신이 신상품 개발로 귀결된다는 것을 연결하여

기업가의 혁신>창조적 파괴>신상품 개발>유한계급의 과시적 소비>대중의 모방소비>기업가의 혁신...으로 이어지는 

끊이지 않는 경제성장의 순환구조를 보여줍니다.

상품은 자본주의 사회를 사는 개인들의 공허한 자아를 채우고 확장하며 정체성을 드러내는 상징언어라고 말할 수 있는데요,

선물사회에서의 선물 역시 사회적 관계를 만드는 중요한 매개물이자 상징언어라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 물건이든 상품이든 상징언어로 기능하는 것은 어떤 사회에서나 동일한데

그 상징성이 얼마나 다양한 맥락 속에서 작동하느냐, 획일적이냐, 이런 점들을 비교분석해 보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경제 인류학자라면 당연히 그런 점을 중시했을 것 같은데,

경제학과 윤리를 연결지으려는 시도를 하지만 인류학적으로 접근하지는 않는

팀 잭슨에게 이런 관점까지 요구하는 건 아무래도 무리인 듯.

 

세미나에서는 '번영'의 개념에 대해서 논의가 활발했습니다.

저자는 양적 성장이 아니라 만족감이나 행복과도 관련이 있고,

나아가 자기실현의 가능성, 자유, 인권까지 포함하는 개념으로 번영을 사용하고 있었는데요.

뚜버기님이 '번영'의 개념을 마을경제에 어떻게 적용가능할까, 관심이 많았고,

띠우님 역시 이 개념에 꽂혀서 번영의 개념으로 메모를 정리해 해오셨더군요.

저는 토토로님이 영어강독에서 <동물농장>을 읽을 때 'PROSPERITY'가 나폴레옹의 연설에

매우 자주 등장했다는 말을 듣고서야, 이 말이 한 사회의 총체적 발전을 의미하는 일종의 정치적 개념이라는 느낌이 왔습니다.

 

메모를 읽고 논의하는 과정에 블랙커피님이 말한 '출발'과 '도착'이라는 용어가 우리를 잠시 흥분시켰는데요.

조국 사태에서 청년들이 출발의 공정성을 주로 이야기했는데

사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떻게 해도 변경할 수 없는 과거의 출발지점이 아니라

우리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는 도착지점의 공정성과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라는 맥락이었습니다.

모두 지나간 출발이 아니라, 다가올 도착점이라는 발상을 신선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도착점은 미래의 어떤 점이 아니라

바로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곳이 도착한 곳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의 지금의 모습, 그것이 도착점이고, 이 도착점은 또 새로운 출발점이기도 한 셈이지요.

흙수저 금수저론의 출발점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공통적인 것을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이

바로 도착점에서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이야기 아닐까 싶었던 거지요.

그런 점에서 도착점은 아직 오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래서 결코 미래로 유예하거나 기대하거나 약속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지금 우리가 함께 무엇인가를 말하고 실천할 수 있는 유일한 공통의 근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류학자 그레이버가 즐겨쓰는 말 중에 예시적 정치라는 말이 있습니다.

미래의 꿈을 현재로 가져와서 정치적 실천이 되게 하라는 이야기라고 저는 이해하는데

블랙커피가 말한 도착점 역시 그렇게 이해해보면 더 풍부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코스모스님의 메모에서 나온 미래에 대한 '불안'도 우리의 탐구대상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코스모스님의 불안의 배경과 근거에 대해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미래에 대해 불안해 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이 문제는 마을경제세미나에서 앞으로 계속적인 연구과제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다음 주에는 우리의 관심거리인 '생태거시경제학'의 정체가 확실히 밝혀질지

기대하면서 후반부를 읽어보려 합니다.

더불어, 요약보다는 각자의 질문을 더 확장해보는 메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거친 후기는 세미나에 결석했던 노라와 꿈틀이에게 바칩니다.

같이 세미나해도 서로 기억에 남는 장면은 다를 수 있으니

다른 분들도 노라와 꿈틀이를 위해 후기를 생생하게 보충해 주시면 좋겠네요.

 

아, 그리고 각자 반찬 한 가지씩 준비해와서 점심을 먹자는 이야기도 나누었어요.

다음 주엔 모두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요~~

 

 

 

 

 

 

 

 

 

 

댓글 3
  • 2020-04-04 10:26

    세미나에 참석하진 않았지만 생생한 후기를 읽으니 저도 잠깐 생각했었던 '번영'에 대한 다양한 고찰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번영이라는 언어 자체가 미래를 지향하고 있고 다분히 자본주의적이라는 느낌에서 약간의 거부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블랙커피님의 말씀대로 출발과 도착을 사회규범이 만들어 놓은 틀에 가두기보다는 시간을 해체하고
    우리의 것으로 창조한다면 그 번영은 완전히 다른 개념으로 바꿀수 있을것 같습니다
    그리고 상대디커플링과 절대디커플링을 더 상세히 설명해주실 분의 댓글을 기다리겠습니다
    이 부분이 조금 알듯말듯 해서요..

    • 2020-04-05 19:15

      음.. 발제자였던 제가 뭔가 응답을 해야할 것 같은 부담감이..
      디커플링의 의미가 탈동조화라는 건 책에 설명이 충분히 되어 있고요.
      상대디커플링은 이를테면 경제성장율만큼 자원 소비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 소비의 비율이 줄어드는 것이지요.
      (물건하나 만드는데 들어가는 원료가 이전보다 줄어드는 것이라고 이해해도 되겠네요.)
      그러므로 발전론자들은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임으로써, 즉 상대디커플링의 방법으로 생태한계를 해결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상대디커플링을 말하는 사람들은 그 상대적인 비율(축소)만 고려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장하는 한, 그 비율이 0이거나 마이너스가 아닌 한, 자원의 소비는 절대적으로는 늘어날 수밖에 없지요.
      (물건 하나를 생산하는데 필요한 원료는 상대적으로 줄어들더라도 물건을 더 많이 만들면 절대적인 원료의 소비량은 증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절대디커플링이 아님)
      저자는 절대디커플링을 고려하지 않고 지속가능한 성장의 한 수단으로 상대디커플링을 말하는 것은 눈가리고 아웅하는 속임수에 불과하다고 비판하고 있는 것이지요.
      뭔가 부족하다면.. 다른 분들의 보충설명을 기대합니다.^^

  • 2020-04-08 08:42

    코스모스의 불안의 근원을 알게되어 조금 더 이해하게 된 거 같아요
    코스모스가 마치 이야기모임을 하는 것 같다고 했던 게 생각나네요
    세미나가 이야기모임처럼 편하게 자기를 드러낼 수 있는 장이라는 거죠
    다른 분들의 근원도 조금씩 파헤칠 수 있을 듯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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