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얼굴을 지울 것인가 -3분기 안내

문탁
2019-07-20 10:39
804

어어...하다가 3분기 개강이 코 앞에 다가왔습니다. 우리, 다시, 큰일났습니다. 

버뜨, 고전대중지성까지 가서 댓글을 달고 있는 뿔옹님을 보니까 이미 많은 분들이 우리의 개강을 기다리고 계신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하핫..

자, 이제 진짜 3분기 시작합니다. 하여 2주동안 다 잊어버렸을 1,2분기를 다시 환기하는 차원에서.....

 

1. 철학책을 읽는다는 것은 어떤 행위일까요?


철학이란, 들뢰즈에 따르면 "관조도, 성찰도, 소통도 아닙니다." 그것의 임무는 "개념들을 창조(생성)하는 것"인데 (<철학이란 무엇인가>),  "생성이란 (역사학이 아니라) 지리학에 속하며 길찾기, 방향, 출입구에 속하"는 것(<디알로그>)이라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철학 고유의 임무는 개념의 창조(생성)를 통해 "다가올 어떤 사건의 윤곽, 지형, 자리매김"을 하는 것 (<철학이란 무엇인가>)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철학의 임무는 다가올 미래를 개념을 통해 선취하는 것입니다.

전 개인적으로 들뢰즈의 이 구절을 접할 때마다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곤 했습니다. 이거 맑스가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에서 이야기했던 "철학자들은 세계를 다양하게 해석해왔을 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와 같은 이야기 아냐? 근데 뭔 이야기를 이렇게 어렵게 해, 라고^^  물론 들뢰즈가 한 이야기를 이렇게 자기가 아는 이야기로 '퉁 치고' 넘어가면 안되겠지만... ㅋㅋㅋㅋㅋ

 

어쨌든 제가 이 문제를 새삼 꺼내는 이유는 우리가 왜  <천의 고원>이나 <장자> 같은, 듣보잡 개념들이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지는"  것 같은 텍스트를 읽고 있는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기 위해서입니다. 

철학이 개념을 창조하고 다가올 미래를 선취하는 것이라면, 그런 철학을 공부하는 우리도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런 점에서 철학자의 낯선 개념들을 '정보'로 받아들이거나 '소통'시키려 노력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개념을 작동시키기. 그 철학자들을 방편으로 지금 우리 현실에 대한 새로운 지도를 그리기. 새로운 출구를 탐색하기! 이것이 우리의 읽기라는 것을 잊지 맙시다.  

 

 

2. 에세이를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앗... 아우성 소리가.... 들뢰즈와 가타리가 무엇을 말했는지 알아야, 그가 말하는 '지층화', '이중분절', '다양체', '얼굴성', '기관없는 신체' 이런 개념들이 뭔지를 알아야 작동을 시키든, 새로운 개념을 창조하든 하지 않겠냐고... ㅋㅋㅋ 

 

네, 맞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1,2분기에 텍스트를 정밀하게 독해하는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조차도 우리가 읽는 것은 '정답'이 아니라 '문제'입니다(여야 합니다^^). 그들이 당대의 질문에 어떻게 답을 했는가가 아니라 그들이 당대의 질문들에서 어떻게 벗어나려 (도주하려) 했는가입니다. 그들이 개념을 창조하고, 그걸 통해 각각의 고원(강렬도)을 형성하고, 그런 고원들의 '일관성의 평면'을 펼쳐내는 것을 통해 어떻게 다른 '사유의 이미지'를 제시했는가 입니다. 

하여 읽는다는 것은 각 고원의 강도에 접속하는 것이고, 그것을 통해 감응되고 변용되면서 나도 도주선을 타는 것이겠지요. 사유든 일상이든.

 

이렇게도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들뢰즈는 생성이란 "가장 지각하기 힘든 것이며, 오직 삶으로만 아우를 수 있고, 스타일로만 표현할 수 있는 작용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또 "스타일은 시니피앙 작용을 하는 구조가 아니며, 곰곰이 성찰해 본 조직도 아니고, 저절로 생겨나는 영감도, 오케스트라 편성도, 저속한 음악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단지 "하나의 배치, 즉 발화 행위의 배치"이고, "자신의 고유한 언어로 더듬거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자신의 구체적인 말인 파롤을 더듬는 것이 아니라 언어 활동 자체를 더듬거리기. 모국어를 쓰면서 이방인으로 있기. 도주선을 만들기"라고 말합니다. (<디알로그>)

우리의 쓰기란 무엇일까요? 우리의 쓰기란 그런 생성일까요?  우리의 에세이는 자신의 스타일을 창조하는 것이 되고 있는 것일까요?  이것 역시, 새삼 고민이 되는 문제입니다. 

 

 

3. 저에겐 이것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2분기는 <천의 고원>을 가지고 에세이를 썼습니다.(3분기는 <장자>로 에세이를 씁니다)  1분기에서  <천의 고원> 전체의 개요에 해당하는 '리좀', '다양체' 개념을 거쳐, 기관없는 신체인 지구의 두 가지 운동 , 즉 지층화(3장)과 탈지층화(6장)에 대해 공부했다면  2분기에서는 지층화의 이중분절 중 표현 차원에서의 분절에 대해 집중적으로 공부했습니다. 언어학, 기호계, 얼굴성 등의 개념을 다루었지요. 

 

구체적인 에세이에 대해서는 명식이가 후기를 썼고 많은 분들이 댓글을 달았으니까 여기서는 패스하고, 저에게 인상적이었던 몇 분들, 즉 더 발전시켰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아이디어에 대해서만 언급하겠습니다.

 

우선, 지원의 주제. 

에세이는 정말 엉망진창이었지만 소통이 정말 가능한 걸까, 라는 질문을 자신의 경험 속에서 진지하게 제기하고 있는 부분이 좋습니다. 다시말해 그것이 푸코/하버마스 논쟁(이라고 흔히 이해되는) 속에서의 푸코의 논지나 들뢰즈의 언어학적 테제(언어=언표행위=언표행위의 배치)를  재설명하려는 시도라기 보다는,  (당연히 그래서는 안되겠죠. 푸코가 이성을 문제시하고, 들뢰즈가 구조주의를 문제시하는 것과 지원이가 이 문제를 제기하려는 결은 다르니까요), 자기의 화두가 있다는 점이 좋습니다. 그렇다면 지원에게는 이중의 과제가 있는 셈이겠군요. 푸코나 들뢰즈의 언어학적 논의를 잘 독해하는 것 뿐만 아니라 지금 자기가 부딪히고 있는 현실의 맥락을 더 잘 드러내는 것. 특히 후자와 관련해서는 이제 기술적 쓰기가 아니라 분석적 쓰기가 필요할 듯 싶습니다.

 

그 다음, 오영님 

역시 자기 질문이 있습니다. 다만 글쓰기 기술이 발전한데 비해 생각의 패턴이 반복적입니다.  질문-답의 패턴이 점점 뻔해집니다. 글 안에서 '실험'을 강조하는 게 아니라, 삶 속에서 사유하고 실험합시다.

 

뿔옹님의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길 바랍니다. 

그날도 말했지만, '경련'이라는 단어를 포착한 게 재밌습니다. 정체성을 벗어나는 것은 다수의 정체성을 갖는게 아니라 비가시적, 비인칭적 존재가 되는 것이라는 점을  2장의 '다양체'와 연결해서 써보시면 좋을 듯 싶습니다. 다양체의 '다'가 숫적 다수가 아니라는 것,  n은 n+1이 아니라 언제나  n-1 이라는 것을 얼굴지우기, 경련과 연결해보면 아주 좋은 글이 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명식의 '전쟁의 얼굴'. 나도 좀 정리해보고 다시 피드백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주제입니다. 함께 고민해봅시다.

  

4. 얼굴 지우기, 혹은 얼굴 해체하기

 

에세이데이 때 보니까 많은 분들이 얼굴 지우기 혹은 얼굴 해체하기에 꽂히셨더군요. 

하긴 '얼굴성'이라니요. 참 재밌는 개념이고 그런만큼 인상적이기도 하지요.그러다보니 저도 티비를 보거나 신문을 읽으면서 계속 얼굴성에.....ㅋㅋ

 

얼마 전 <방구석 1열>에서 '차이나타운'을 다루더군요.  전 그 영화를 보진 않았는데 여주인공인 김혜수가 그동안 한번도 재현된 바가 없었던 여성누아르 주인공을 표현하기 위해 프란시스 베이컨을 참조했다는 이야기를 하는게 인상적이었습니다. 김혜수는 확실히 똑똑해요. 그런데 왜 영화 속에서 김혜수=엄마는 익숙한 모성의 얼굴로 돌아갔을까요? ㅋㅋㅋ

알다시피 베이컨은 들뢰즈가 사랑한 작가였습니다. 들뢰즈는 베이컨에서 구상을 넘어서는 형상(형태의 기형적 변형?), 어떤 힘을 발견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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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얼마전 한겨레 신문에서 조각가 권진규에 대한 기사를 하나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기사 내용 중에 요미우리 신문사에서 권진규에 대해   “불필요한 살을 최대한 깎아내고 요약할 수 있는 포름을 최대한 단순화하여 극한까지 추구한 얼굴 안에 무서울 정도의 긴장감이 창조돼 있다”고 말했다는 게 있더군요. 저는 권진규의 테라코타에서도 백인-얼굴성-추상기계를 넘어서는 어떤 것을 봅니다. 기사에 따르면,  권진규 작가는 ‘인생은 공(空). 파멸(破滅)’이란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고 하는데, 그가 만들고 싶었던 것이 혹시 공(空)=추상기계로서의 얼굴은 아니었을까요?

 

 권진규-춘엽니-horz.jpg

 

하지만 '얼굴 해체하기'와 관련하여 저에게 가장 영감을 주는 작가는 아네스 바르다입니다. 언젠가는 꼭 감자-되기에 대해 뭔가 써보고 싶습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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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진짜 공지 -  3분기 안내

 

3,4분기에서는 본격적으로 얼굴지우기. 즉 탈지층화, 혹은 도주에 대해, 그 윤리적 정치적 방향에 대해 다룹니다. <장자>의 소요유와 <천의 고원>의 되기 장이 포함되어 있군요.

 

  "도주란 딱히 여행이 아니며, 심지어 움직임도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우선, 지나치게 역사적이고 문화적이며 조직화된 프랑스식 여행이란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 이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자아'를 운송하는 데 만족하지요. 다음으로 도주가 부동의 여행 속에서, 제자리에서 생겨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토인비는 엄격한 의미에서, 그리고 지리적 의미에서, 유목민이란 이주민도 아니고 여행자도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오히려 유목민이란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 제자리에서 형성되는 도주선을 따라 부동의 상태에서 성큼성큼 걸어다니는, 스텝 초원에 꼭 달라붙어 사는 사람들, 가장 위대한 신무기 개발자들이라고 토인비는 말합니다." (<디알로그> , 75쪽 

 

이제 세부 공지

 

1)우선 3분기도 1,2분기처럼 1교시와 2교시로 나누어 세미나를 진행합니다. 1교시는 조별모임, 2교시는 전체세미나입니다. 9시반에 칼같이 시작하구요.

2)버뜨, 달라지는 것도 있습니다.

첫째) 매주 1인이 발제를 합니다. <장자>는 단순요약을 넘어서는 발제를, <천의 고원>은  아주 잘  요약된 발제를 해오셔야 합니다.

둘째) 매주 전원(발제자 제외) 그 전날 10시까지 a4 1장의 메모를 올립니다. 메모는 질문을 중심으로 써오셔야 합니다. (요약금지)

세째) 각자, 자기조원의 메모를 모두 읽고 프린트해와서 1교시 조별토론을 진행합니다. 조별토론에서는 서로의 메모에 대해 질의 혹은 피드백을 합니다.

3 )3,4분기의 진도표는 다음과 같습니다.


4)참고도서는 따로 없습니다. 다만 <장자> 외, 잡편을 읽기 위한 가이드로  유소감 <장자철학> (장자에 관한 대표적인 연구서입니다) 중 일부(2편)를 나눠드립니다. 이미 반장이 복사해서 복사기 옆에 두었으니 개강날 오셔서 복사해가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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