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과 선-1> 1회차 후기

도라지
2021-03-09 18:43
725

 

강원도를 오가는 두 집 살림으로 어수선하고 피곤해지는 일요일 저녁이면, 꽉 막힌 고속도로에서 어김없이 저녁 6시를 맞는다. 일요일 저녁 6시. 남편은 차 안에서 불교방송에 주파수를 맞추고 그 시간은 BBS 저녁 예불 시간이다. 차 안에 종소리와 반야심경이 퍼진다.

일요일 저녁 6시의 반야심경은 지난 몇 년, 벽돌 같은 불교 경전으로 식탁의 무게 중심을 맞추던 부인을 위한 남편의 배려다. 어디 그뿐인가? 이제 이등병인 큰아이는 논산 훈련소에서 전화로 종교에 불교를 적어 냈다고 부끄럽게 고백하질 않나! 이때 나는 울다가 웃었다. 녀석은 법당 안에 들어가 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이로써 나는 내 소녀 시절 기타 치며, 밥 잘 사주던 교회 오빠들에게 심심한 위로와 안부를 전하는 바이다.ㅋ

이쯤 되면 내가 집에서 얼마나 불교를 떠들었나 짐작 가며, 가족들이 종종 내게 물어오는 불교에 관한 질문에 엄청 근엄 진지하게 '연기'와 '열반'을 들먹였을 내 모습이 상상되지 않는가?(부끄러움은 나의 몫...)

 

 

나는 지난 몇 년 사이 ‘초기 불교 세미나’와 '중론' 강독을 했다. 무려 초기불교 경전인 '맛지마니까야'는 정가 15만 원을 자랑한다. 내용은 별로 기억에 없으니 책값이라도 영원히 잊지 말자! 책 값과 더불어 초기불교 이론 중 '나'는 '나'인데 다섯 개의 무더기로 이루어진, '나'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은 그런 '나'를 만드는 색-수-상-행-식(오온)을 어찌 잊으랴.  더불어 "가는 자는 가지 않는다."라는 중론의 난해함은 또 어찌 잊을까 말이다.

하지만 초기불교 공부를 하며 아라한을 살짝 마음속에 품기도 했고, 중론을 공부할 때는 인도와 네팔 여행을 꿈꾸기도 했었다. 붓다의 삶에 감동하여 일부는 내 삶에 빌어다 써보고자 노력하기도 했다. 가족들도 그런 내 모습의 한 부분을 보았기에 자연스럽게 불교와 친숙해진 것은 아니었을까?

 

 

작년 한해 불교 세미나를 쉬면서 몸은 편했지만, 마음은 허전했다.  텃밭 고추 농사는 풍년이라 빛깔 고운 김장은 했다지만, 마음 밭은 엉망이었다. 그래서 올해 <도시와 영성 - 공(空)과 선(禪)> 커리큘럼이 떴을 때 설렜다. 하여 올 한 해 우리 텃밭은 강원도 고라니와 멧돼지들의 룸비니 동산이 될 예정이다. 

함께 세미나를 하게 된 쌤들의 이야기도 많이 궁금하다. 엄청 은혜스런 분위기로 소문난 ‘도시와 영성’ 세미나라서 나같이 영적으로 헐렁한 멤버가 함께하면 분위기를 흐릴 것은 뻔하지만, 이 또한 인과 연이니, 잘 부탁드립니다! _()_

 

((이제 지난 시간 배운 “대승불교란 무엇인가”의 내용을 아주 간단히 정리해볼게요~))

 

지난 시간 요요쌤의 굵고 강렬했던 강의를 짜리몽땅하게 내 식으로 정리해보자면,

 

 

붓다 사후 400년을 불교 역사에서는 근본 분열의 시기로 본다. 크게 상좌부와 대중부로 나뉘고 이후 20여 개 부파로 갈라진 부파불교(아비다르마) 시기에서, 지난 시간 우리가 주로 살펴본 것은 상좌부 계열에서 나온 설일체유부였다. ‘삼세실유법체항유(三世實有法體恒有)’로 요약되는 이들의 주장은 삼세(과거-현재-미래)에 걸쳐 세계를 구성하는 존재의 근본 요소(自性)가 되는 법체(5위 75법)가 있다는 것이다.

 

부파불교가 스콜라틱화 하는 것을 비판하며 스스로를 ‘대승(大乘)’이라 명명한 이들이 등장하는데 그들이 내세운 이름은 바로 ‘보살’이다. ‘보살’은 ‘보디사트바(bodhisattva)’를 음역한 것으로 뜻은 ‘깨닫고자 노력하는 중생’, ‘대승의 가르침에 귀의하여 깨달음으로 붓다-되기에 힘쓰는 사람들’이다. 스스로를 보살로 주체화한 누구나 보살이라고 할 수 있다.

대승의 ‘보살’은 부파불교 수행자들의 최고 목표였던 아라한이 자리(自利)를 추구한다고 비판하며 ‘6바라밀(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의 완성)’ 수행을 통해 ‘성불’ 하고자 한다. 6바라밀의 최고의 완성은 반야바라밀 즉 지혜바라밀이다. 이 반야바라밀의 내용이 대승불교의 특징적 가르침인 공사상이다. 공사상은 부파불교 중에서 설일체유부의 ‘법체항유’가 의미하는 ‘자성!’과 치열하게 대결하는 사상이다.

 

 

‘선’은 불립문자(不立文字)/교외별전(敎外別傳)/직지인심(直指人心)/견성성불(見性成佛)을 특징으로 하여 어떻게 언어의 한계를 넘어 부처가 될지를 고민하는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선’은 후기를 쓰면서도 벽을 마주한 듯. 자체가 난해하여 뭐라고 써야할지도 아직은 모르겠다. 이것은 더 차차 알아가기로... 우선 다음 주부터 시작되는 ‘공이란 무엇인가.’ 부터 어찌 해결하고 볼 일이다.

 

요요쌤의 발제문에 의하면 공과 선은 불교사에 혁명이었다고 한다. 더듬더듬 혁명의 발자취를 따라가다가, ‘공’이  ‘무엇’인지 ‘선’이란  ‘무엇’인지 알게 되는 순간이 오기를 바란다. 내공이 깊어 보이는 쌤들이 많이 계셔서 텍스트를 넘어서는 깨달음까지 번외로 불현듯 경험할 것 같다는 느낌이 강렬하게 든다. 또한 어느 일요일 저녁 6시, 차 안에 퍼지는 불경과 함께 남편을 향해 반야심경으로 썰을 푸느라 정신없을 부끄러운 내 모습도 선명하게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내게 공부는 항상 어렵지만 설레는 일이기도 하다. 

 

 

 

댓글 6
  • 2021-03-09 20:48

    와!! 도라지님의 글을 읽는 내내 제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습니다.^^
    어렵지만 설레는 공부, 같이 잘해 봅시다!

  • 2021-03-09 21:57

    와 동물들의 룸비니 동산! 불심을 지니고 자연과 함께하는 삶이라니 그저 부럽습니다^^ 세미나 때 제가 첫 날이라 긴장을 해서 정작 하고싶은 말을 못했었어요.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 키우면서 집에서 섬처럼 고립된 삶을 살아왔는데(불교도 그 즈음부터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같은 관심사를 가지고 이렇게 좋은 분들을 만나게 되어 수업 내내 2시간 반동안 정말로 행복했습니다. 앞으로의 공부도 너무 기대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2021-03-09 23:48

    맛깔스런 후기로 도라지님의 컴백을 확실히 느껴봅니다 ㅎㅎ
    불교도 혁명적인데 그 혁명을 뒤집는 혁명이라니 저도 반야심경을 읽을 생각에 요요샘 강의를 들으며 설레더라고요.
    신상환 선생님의 참말 어려웠던 강의가 공이란 무엇인가를 읽으며 힘이 되는 연기...참 오묘한거 같아요^^
    저도 1년 잘 부탁드려요~~

  • 2021-03-10 10:04

    첫 시간부터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개념들이 날아와 머리가 어지러웠습니다. ㅎㅎ
    첫시간 느낌은 "아, 큰일났다...." 였습니다.
    지난 시즌 초기불교를 조금 맛보았을뿐인데... 대승불교는 초기불교와는 다른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것 같았습니다.
    공이니 선이니 또 얼마나 헤맬까요?
    요요선생님과 함께 하시는 여러 선생님들 의지해서 조금씩 조금씩 가보겠습니다~

  • 2021-03-10 11:04

    맨발

    문태준

    어물전 개조개 한 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펄과 물 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맨발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발을 거두어 갔다.

    저 속도로 시간도 흘러왔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또 헤어져서는
    저렇게 천천히 돌아왔을 것이다.

    늘 맨발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잃고서는 새가 부리를 가슴에 묻고 밤을
    견디듯이 맨발을 가슴에 묻고 슬픔을 견디었으리라

    아-,하고 집이 울 때
    부르튼 맨발로 양식을 탁발하러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
    맨발로 하루 종일 길거리에 나섰다가
    가난의 냄새가 벌벌벌벌 풍기는 움막
    같은 집으로 돌아오면

    아-,하고 울던 것들이 배를 채워
    저렇게 캄캄하게 울음도 멎었으리라.

    요요샘께서 선(禪)을 설명하며 언급했던 마하가섭과 관련된 ‘염화미소’, ‘곽부쌍시’의 일화(혹은 신화?)를 듣는 순간 잠시 생각이 옆길로 빠졌더랬습니다. 문태준 시인의 <맨발>이 생각났었어요.
    부처님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가섭이 뒤늦게 달려와 관 앞에서 슬피 울 때, 그를 위해 발을 관 밖으로 내밀은 부처님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모든 것이 공(空)한 것인데 말이죠? 아니 어쩌면, 공(空)하기에 발을 내밀어 슬퍼하는 가섭을 위로하는 자비심을 내신 것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심전심으로 가섭에게 전해진 부처님의 마음... 또, 그 자비심이 시인의 마음에도 전달되어 이런 시를 통해 세상의 슬픔과 가난과 어둠을 위로하고 있구나...
    저도 이 시를 통해 그런 위로를 얻은 기억이 있어... 수업 중에 잠시 옆길로 새었었습니다.
    암튼 부처님은 참 좋으신 분 같아요^^

  • 2021-03-10 11:04

    도라지샘 후기와 <공이란 무엇인가>를 읽으며
    지난 시간 요요샘의 강의내용이,
    또 지난 시즌 했던 맛보기 불교개념들을 보태서 조금씩 정리가 되는듯요~
    고로 이번 시즌도 요요샘과 여러 샘들의 지혜와 열정에 기대서 갈 듯합니다.
    처음 연을 맺는 분들과 또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분들에게 잘 부탁드린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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