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이 돌아왔다 3회] 트라시마코스는 소크라테스를 싫어해

새털
2018-07-31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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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이 돌아왔다 3회]

트라시마코스는 소크라테스를 싫어해

-국가1

 

 

 

 

 

 

 

문탁에서 공부하고 생활한 지 어느새 9년째다. 시간은 정말 자~알 간다. 정신없이 후딱 지나갔다

세미나에서 오고간 말들을 모아서 ‘10주년 자축이벤트를 준비중이다. 거기엔 분명 당신의 생각도

단팥빵의 앙꼬처럼 들어있다는 사실을 이 연재를 통해 확인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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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털

 

 

 

 

문탁샘도 아닌데 문탁에 왔더니 쪼는인간으로 살고 있다

요즘 먹고 사는 시름에 젖어 쪼는 각이 좀 둔탁해졌다

예리해져서 돌아갈 그날을 꿈꾸며 옥수수수염차를 장복하고 있다

 

 

 

 

 

 

 

 

 

 

 

 

 

 

 

 

 

 

1. 현수막을 걸다, “목격자를 찾습니다

목격자를 찾습니다 모월모시 좌회전하는 은색 아반떼와 흰색 소나타 택시의 충돌사고 목격하신 분 연락주세요차가 막히는 도로에서 가끔 이런 현수막을 보게 된다. 정체중인 차량의 행렬을 지켜보다 따분해져 눈을 돌렸을 때, 이런 현수막을 읽게 되면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과연 목격자를 찾을 수 있을까?’ ‘요즘처럼 바쁜 세상에 누가 일부러 자기 시간을 내야 하는 귀찮은 일을 하려 할까?’ 그런데 교통사고의 정도는 어느 정도길래 저렇게 현수막까지 달았을까? 사람이 크게 다쳤나? 피해자가 아이나 어느 집 가장이라면...이렇게 머릿속으로 아침드라마를 찍다, 슬슬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몽상과 잡념은 끝이 난다.

사실 저 위 현수막은 내가 걸었던 현수막의 내용이다. 노면이 살짝 결빙되기 시작하던 12월의 어느 날 자정 가까운 시각, 독서실에서 집으로 오는 아이를 태운 은색 아반떼와 야근을 마치고 귀가하는 회사원을 태운 택시가 충돌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은색 아반떼는 좌회전중이었고 택시는 직전중이었다. 두 대 가운데 한 대가 명백히 신호위반을 한 사고였다. 누가 신호위반을 했을까? 택시 운전자는 삿대질을 하며 차에서 내렸고, 은색 아반떼 차량 운전자는 순간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자정이 넘은 시각 경찰서에서 경찰과 운전자들과 보험사 직원이 대면했다. “아줌마, 잘 기억해보세요. 좌회전 신호 맞아요?” “...너무 놀라서 기억이 안나요...근데 아까 거기는 불법좌회선하기 힘든 곳이에요. 지하도로가 있어 도로폭이 엄청 넓어요. 저는 애까지 태우고 오밤중에 신호위반을 할 정도로 강심장이 아니에요.” 사고 장소는 유명한 포털사이트 본사에서 200미터쯤 떨어진 곳으로, 야심한 시각 서울번호판을 단 택시들이 한시 빨리 귀가를 희망하는 회사원들을 태우고 신호위반을 밥 먹듯 하는, 그런 위치였다. 그러나 그건 그냥 정황일 뿐이다. 베테랑 택시 기사가 차량이 거의 없는 야밤에 신호위반하는 건 흔하고 흔한 일이지만, 그날 그 시각 그 흔한 일이 일어났을 것이라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언제나 신호를 지키는 운전 미숙의 운전자가 불법좌회전을 하는 매우 드문 사건이 그날 그 시각 일어나지 않았으리라는 근거 또한 어디에도 없다. 택시 승객은 기사가 신호를 지켰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야근을 마치고 퇴근하는 승객은 차에 타자마자 잠이 들지 않았을까? 혹은 그들은 택시에서 내리기 전에 기사에게 유리한 진술을 하기로 입을 맞춘 게 아닐까?

 

 

 

야심한 밤 경찰서에서 피곤에 지친 세 남자-경찰, 보험사 직원, 택시 기사와 대치하며 나는 누구도 내 편이 아님을...누구도 사건의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음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경찰은 그저 사건경위서를 작성하면 그만이고, 보험사 직원은 과실여부에 따라 매뉴얼대로 사고처리하면 그만이고, 택시기사는 100% 상대차량 과실을 확신하며 뒷목을 잡고 있었다. 그때 나는 어떤 억울함 혹은 불의를 느꼈다. 세 남자가 자기들끼리 꿍짝이 맞아 멋대로 빨리 사건을 끝내버리는 것은 아닐까? “목격자를 찾겠어요!” 새벽 1시 반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반격이었다.

인터넷에서 현수막 업체를 알아보고, 현수막에 사건경위와 담당경찰의 연락처를 적으며, 진짜 목격자를 찾겠다는 기대는 거의 없었다. 그래도 이대로 당할 수만은 없다는 억하심정으로 가끔 경찰에게 연락해 제보가 있는지 확인하고, 택시 승객에게 전화해 그날의 기억을 되묻는 껄끄러운 일을 해치웠다. 이제 나는 가끔 도로에서 현수막을 볼 때마다, 그 현수막이 말해주는 것이 억울함의 토로와 그 한풀이라는 것을 이해한다. 그날 그 야심한 밤 경찰서에서 세 남자, 경찰, 보험사 직원, 택시 기사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내게 작은 호의를 베풀었다면 나는 현수막을 내거는 귀찮은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신호위반을 했다고 치자. 그래도 아이와 함께 교통사고가 나서 얼이 나가 있는 애엄마에게 보여야 하는 인지상정이란 것이 있지 않은가? 신호위반의 진위만 가리면 공정하고 정의로운 것인가? 도대체 정의란 무엇인가?

 

 

 

2. 대화, 소크라테스 철학의 알파(Α)와 오메가(Ω)

그 당시 교통사고 시비가 있을 리 만무하지만, 플라톤의 국가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된다. 10권으로 구성된 국가의 첫 번째 권의 중심테마는 정의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정의(正義)의 정의(定意)이다. 정의사회 구현을 의미하는 사회적 정의를 포함해서 무릇 올바름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소크라테스는 대화 상대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고대사회의 정의관은 범박하게 말하자면 인과응보’(因果應報)이다. ‘뿌린 만큼 거둔다는 의미의 인과응보를 달리 말하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바꿔 말할 수도 있다. 나에게 이익을 준 사람에게는 보답을 하고, 나에게 손해를 끼친 사람에게는 해코지를 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논리이다. 국가1권에서 소크라테스가 딴지를 거는 것은 이런 고대사회의 전통 통념에 대한 부분이다. ‘누군가에게 해코지를 하는 사람을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실제로 우리 생활을 돌아보자. 주차중 옆집 차가 내 차를 긁었다고, 나도 옆집 차를 긁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다. 정의롭기는커녕 고지식하고 괴팍한 사람이라는 손가락질을 받기 십상이다. 그가 내게 손해를 입혔으니, 나에게는 그에게 손해를 입힐 권리가 있지만, 그것을 실행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따라서 각자에게 갚을 것을 갚는 것은 정의(正義)의 정의(定意)가 될 수 없다.

우리가 익숙하게 생각해왔던 것이 사실은 모순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 아포리아(aporia)이고, 여러 사람이 함께 아포리아의 발견에 이르는 공동탐구 과정이 소위 말하는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이다. TV예능프로그램 <라디오스타>에서 네 명의 진행자와 여러 명의 게스트가 등장해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나누지만, 그것은 소크라테스식의 대화가 아니다. 물론 가끔 그들도 소크라테스식 대화를 하기도 한다. ‘미담제조기인 어떤 연예인의 선행이 동료 연예인들에게는 결코 미담이 아니라 부담과 괴담이 되는 순간, 스튜디오에는 한순간 정적이 머문다. 연예인의 선행이 사회에 좋은 파장을 준다면, 동업자 연예인인 그들도 선행에 동참해야 한다. 그런데 욕을 좀 먹더라도 돈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면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는 게 상책이다. <라디오스타>의 출연자들뿐 아니라 우리도 무수한 뒷담화 사이, 무의미한 수다 사이 가끔씩 소크라테스식 대화를 한다. 소크라테스는 더 이상 아무 말이나 떠들 수 없는 정적의 순간이 바로 우리가 새로운 앎에 이를 수 있는 쪽문임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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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
  • 2018-07-31 11:48

    <고르기아스>에서 인용한 한 대목이 <고르기아스>의 인용인 줄 모르고 읽으며

    가슴이 뜨끔했음을 인정합니다.

    오래 전 아테네에서도 아이들에게는 공부하고 철학하라고 하면서

    소크라테스에게는 나이들어 아직도 철학하는 철없는 자라고 비웃는 이들이 많았나 봅니다.

    에휴! 사람 사는 모습은 거기서 거기인가 봅니다. 그려~

  • 2018-07-31 16:22

    ㅋ 그럼 나이들면 '철학' 안 하고 뭐하남?

    '철학 속으로 멀리 질주' 하지 않고

    현실(불의가 판치는)에서 '안주' 하지 않자면...

  • 2018-08-01 14:11

    그러나 세상이 전도되어 있다면 

    그 팩트를 팩트로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세상에서 펼쳐진 일은 모두 팩트들이라지만 허위가 숨어있기에

    똑바로 서서 볼 눈은 필요한 것 아닐까요?

    소크라테스의 꼰대질이 팩트와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불필요할 수 없는 지점이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 2019-06-14 15:33

    상여금이라는 것은 회사의 잉여이익에 대해서 주는 것이니 외적인 힘에 의해서 최저임금을 강제로 올린다면 결국 회사의 잉여이익은 줄어 들 것이고 따라서 상여금을 줄이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 같은데...최저임금을 올리면 갑자기 회사의 매출이 올라가는가요?

    도시 개발자가 원주민을 몰아 낸다는 것은 무슨 일제시대도 아니고 토지를 강제 수용할 수 잇는 것도 아닐 것인데, 원주민이 팔았으니 도시개발자가 사서 새로 짓겠지요.

    위의 글이야 말로 궤변으로 혹세우민하고 있는 것 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