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이 돌아왔다 6회] 그들만이 사는 세상, SKY캐슬과 '사당동 더하기 25'

새털
2018-12-29 18:34
580

[플라톤이 돌아왔다 6회]

그들만이 사는 세상,  SKY캐슬과 '사당동 더하기 25' 

-국가』 4

문탁에서 공부하고 생활한 지 어느새 9년째다. 시간은 정말 자~알 간다. 정신없이 후딱 지나갔다

세미나에서 오고간 말들을 모아서 ‘10주년 자축이벤트를 준비중이다. 거기엔 분명 당신의 생각도

단팥빵의 앙꼬처럼 들어있다는 사실을 이 연재를 통해 확인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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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털

문탁샘도 아닌데 문탁에 왔더니 쪼는인간으로 살고 있다

요즘 먹고 사는 시름에 젖어 쪼는 각이 좀 둔탁해졌다

예리해져서 돌아갈 그날을 꿈꾸며 옥수수수염차를 장복하고 있다

 

1. 플라톤의 플레이리스트 NO.1 트와이스의 ‘YES or YES’

 

 

네 마음을 몰라 준비봤어

하나만 선택해 어서 YES or YES?

싫어는 싫어 나 아니면 우리?

선택을 존중해 거절은 거절해

선택지는 하나 자 선택은 네 맘 

 (트와이스의 ‘YES or YES' 가사 일부)

 

 

지난 글에서는 플라톤의 시대와 혹은 소크라테스의 시대와 우리 시대의 개인과 국가의 감각이 다르다는 점을 살짝 언급만 하고 지나갔다. 그럼 2,500년 전의 사람들과 우리의 감각은 어떻게 다른지 그 디테일한 차이를 확인해보자. 오늘날 우리가 개인과 국가 가운데 무엇을 우위에 두어야 할까 선택을 고민한다면, 플라톤에게 이런 고민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아니 플라톤에게는 개인 or 국가라는 선택지가 아예 없다. 이건 마치 트와이스의 ‘YES or YES’와 같은 논리이다. 물론 트와이스가 우리에게 ‘YES or YES?’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우리는 0.000.......1초의 망설임도 없이 ‘YES’를 선택할 것이다(이렇게 매력적인 아이돌의 러브콜을 거절할 사람이 있을까??). 선택을 존중해 거절은 거절해/ 선택지는 하나 자 선택은 네 맘.” 연애에서 형용모순으로 가득 찬 가사 따위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논리를 들이댈 만큼 널 사랑해. 그러니 너도 날 사랑해야 해라는 고백에 내포된 역설은 형식상으로만 비논리일 뿐, 내용상으로는 전혀 비논리가 아니다. 연애는 이런 비논리적인 일방통행으로 시작된다. 플라톤의 이상국가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방통행의 논리가 발견된다.

 

 

우리가 이 나라를 수립함에 있어서 유념하고 있는 것은 어느 한 집단이 특히 행복하게 되도록 하는 게 아니라, 시민 전체가 최대한으로 행복해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국가4420b)

 

 

플라톤의 이상국가에서는 생산자들에게는 소유가 허용되지만, 통치자집단인 수호자들에게는 소유가 허용되지 않는다. 어찌 보면, 자신의 부와 명성을 자식에게 남겨줄 수 없는 수호자들은 이상국가의 파수꾼에 불과할지 모른다. 이렇게 수호자들의 희생을 기반으로 유지되는 이상국가는 국가 전체의 이익을 위한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비윤리적인 국가구조라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의 칼 포퍼를 위시해, 공사(公私)의 구분을 기반으로 하는 근대사회의 구성원인 우리들에게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플라톤의 이상국가는 전체주의의 망령이 느껴지는 불의(不義)’로 다가온다.

우리가 부당하게 생각하는 개인의 희생을 플라톤은 희생이 아니라 자기통치라고 말한다. 각자 자신의 역량을 단련하는 개인이 없다면 국가는 존재할 수 없고, 국가가 없다는 개인은 자신의 역량을 단련시킬 장소를 갖지 못한다. 국가 안에서 개인은 자신의 역량을 단련시킬 수 있고, 자기 통치할 수 있는 개인들의 역량이 곧 국가의 역량이 된다. 따라서 플라톤에게 개인 or 국가의 선택은 상상할 수 없는 선택지이다. 개인은 국가 안에서 성장하고 국가는 개인 없이 존립할 수 없다. 이것이 아리스토텔레스가 정리한 인간은 폴리스적 동물이다라는 명제의 핵심내용이다. 국가와 개인은 전체와 부분의 포함관계일 뿐만 아니라, 서로를 조건 지어주는 상호의존적 관계라는 것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고대인들에게는 상식과 같은 통념이었다. 고대인들에게 상식이었던 것이 2500년 경과한 뒤의 우리에게는 비상식적이거나 평범하지 않은 사고방식처럼 느껴진다.

인간은 폴리스 안에서 폴리스적 동물이 된다. 기원전 399년에 아테네에서 열린 재판에서 소크라테스는 사형을 자처했다. 많은 사람들이 벌금형이나 추방형을 권고할 때, 소크라테스는 어떤 타협도 없이 사형을 고집했다. 칠십에 가까운 노년의 소크라테스에게 자신이 나고 자란 아테네를 떠나 외지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죽음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소크라테스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테네사람’ ‘스파르타사람’ ‘코린토스사람과 같은 분류는 단지 지리적 위치에 따른 구별이 아니라 그들의 역사와 문화를 포함해 생활양식 전체를 고려한 구별이었다. 영화 <300>에서 스파르타의 장군 레오니다스가 페르시아제국의 불멸의 부대와 맞서 싸우다 전사하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그는 사랑하는 아내나 아들의 이름이 아니라 짧고 굵게 스파르타를 외치고 죽음을 맞는다. 레오니다스에게 스파르타는 그가 사랑한 모든 것들의 총합이었다.

탈조선을 외치며 시급이라도 많이 주는 외국으로 워킹할리데이를 떠나려는 청년들이 늘어나는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우리가 고대인들의 폴리스-국가-공동체에 대한 애착을 이해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면, 폴리스(국가와 공동체)와 자신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우리는 어떻게 폴리스적 동물’, 곧 어떻게 정치적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오늘날 우리에게 준칙처럼 느껴지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을 우리 시대의 정치라 말해야 할까? <span sty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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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에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첫 번째 영화는 <디 아워스>(2002)입니다.          죽은 시인의 시간(hours) <디 아워스>(2002) | 감독 : 스티븐 달드리, 주연 : 니콜 키드만, 메릴 스트립, 줄리앤 무어 | 114분       영화 <디 아워스, The Hours>(2003)는 버지니아 울프(니콜 키드먼), 로라 브라운(줄리앤 무어), 클라리사 본(매릴 스트립) 세 명의 여성이 보내는 하루의 시간을 중첩해서 보여준다. 영화는 시간 순으로 1923년 ‘버지니아’로 시작해서 1951년 ‘로라’와 2001년 ‘클라리사’로 이어진다. 이때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댈러웨이 부인’은 세 명을 관통하는 매개 역할을 한다. ‘댈러웨이 부인’은 버지니아가 집필 중인 소설이며, 로라는 ‘댈러웨이 부인’을 읽으며 삶의 위안을 얻고, 클라리사는 ‘댈러웨이 부인’이라는 별명으로 살아간다.     그런데 영화의 첫 장면, 강물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버지니아의 모습은 영화의 엔딩과 서로 맞닿아 있다. 단지 동일하게 반복되는 게 아니라, 리처드의 죽음 이후 이어지는 그 장면은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는 듯하다. 어쩌면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인물은 리처드(에드 해리슨)가 아닐까. 왜냐하면 그는 로라의 아들이자, 클라리사의 옛 연인이면서, 영화 속에서 버지니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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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리 2024.02.19 |
조회 146
논어 카메오 열전
애공(노나라 임금)이 물었다. “어떻게 하면 백성이 복종합니까?”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정직한 사람을 등용하고 모든 부정한 사람을 버려두면 백성이 복종합니다. 부정한 사람을 등용하고 모든 정직한 사람을 버려두면 백성이 복종하지 않습니다.” (哀公問曰 何爲則民服 孔子對曰 擧直錯諸枉 則民服 擧枉錯諸直 則民不服)「위정,19」   공자 말년의 군주   공자가 14년의 주유를 끝내고 노(魯)나라에 돌아왔다. 이제 막 약관의 나이를 지나고 있던 애공(哀公)은 68세의 공자를 보고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의 옷차림은 유자(儒者)들의 복장인가요?” 공자가 대답했다. “제가 어려서 노나라에 있어서 소매통이 넓은 노나라의 옷을 입었습니다. 커서는 송나라에 있어서 송나라의 장보관을 썼습니다. 제가 듣기에 군자는 널리 여러 곳을 다니며 배우지만 고향의 옷을 입는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유자들이 복장에 대해서는 알지 못합니다.”(魯哀公問於孔子曰 夫子之服 其儒服與 」孔子對曰 丘少居魯 衣逢掖之衣 長居宋 冠章甫之冠 丘聞之也 君子之學也博 其服也鄉 丘不知儒服)   이는 『예기(禮記)』 「유행(儒行)」의 첫 장면으로 이후, 애공이 유자들은 어떻게 사는지에 대해 묻고 공자가 이에 답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애공과 공자의 문답으로 이루어진, 이런 글의 형식은 일종의 글쓰기 스타일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애공과 공자가 만나 실제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여기에 주를 단 정현(鄭玄,127년~200년)은 이때를 공자가 주유를 막 끝내고 노나라에 귀국한 직후라고 보았다. 당시 공자는 성공한 정치가는 아니었지만 명망 있는 인사였다. 그런데 공자를 만나자마자 애공이 처음 물은 것이 그의 옷차림이라니. 이를 통해 애공이 어떤 인물이었는지 나름 상상해 볼 여지가 있는 듯하다. 애공(哀公)의 이름은 장(將)이다. 혹 장(蔣)이라고도 한다. 정공(定公)의...
애공(노나라 임금)이 물었다. “어떻게 하면 백성이 복종합니까?”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정직한 사람을 등용하고 모든 부정한 사람을 버려두면 백성이 복종합니다. 부정한 사람을 등용하고 모든 정직한 사람을 버려두면 백성이 복종하지 않습니다.” (哀公問曰 何爲則民服 孔子對曰 擧直錯諸枉 則民服 擧枉錯諸直 則民不服)「위정,19」   공자 말년의 군주   공자가 14년의 주유를 끝내고 노(魯)나라에 돌아왔다. 이제 막 약관의 나이를 지나고 있던 애공(哀公)은 68세의 공자를 보고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의 옷차림은 유자(儒者)들의 복장인가요?” 공자가 대답했다. “제가 어려서 노나라에 있어서 소매통이 넓은 노나라의 옷을 입었습니다. 커서는 송나라에 있어서 송나라의 장보관을 썼습니다. 제가 듣기에 군자는 널리 여러 곳을 다니며 배우지만 고향의 옷을 입는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유자들이 복장에 대해서는 알지 못합니다.”(魯哀公問於孔子曰 夫子之服 其儒服與 」孔子對曰 丘少居魯 衣逢掖之衣 長居宋 冠章甫之冠 丘聞之也 君子之學也博 其服也鄉 丘不知儒服)   이는 『예기(禮記)』 「유행(儒行)」의 첫 장면으로 이후, 애공이 유자들은 어떻게 사는지에 대해 묻고 공자가 이에 답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애공과 공자의 문답으로 이루어진, 이런 글의 형식은 일종의 글쓰기 스타일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애공과 공자가 만나 실제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여기에 주를 단 정현(鄭玄,127년~200년)은 이때를 공자가 주유를 막 끝내고 노나라에 귀국한 직후라고 보았다. 당시 공자는 성공한 정치가는 아니었지만 명망 있는 인사였다. 그런데 공자를 만나자마자 애공이 처음 물은 것이 그의 옷차림이라니. 이를 통해 애공이 어떤 인물이었는지 나름 상상해 볼 여지가 있는 듯하다. 애공(哀公)의 이름은 장(將)이다. 혹 장(蔣)이라고도 한다. 정공(定公)의...
진달래 2024.02.08 |
조회 261
우현의 독서가 테크트리
  “아 테스형!” 삶의 지혜를 소크라테스에게 묻는 것은 합당할까? : <철학 입문> 세미나를 들어야 하는 이유       ‘깨달은 자’의 대명사 소크라테스  “아 테스형!” ‘까’와 ‘빠’를 모두 미치게 만드는 ‘슈퍼스타’ 나훈아는 3년 전 자신의 신곡에서 이렇게 외쳤다. 살아가기 힘겨운 세상을 어떻게 견뎌낼 수 있냐는 질문을 소크라테스 ‘형’에게 물은 것이다. 오랜만에 컴백한 나훈아이기도 했지만, 재미있는 가사로 더욱 이슈가 됐었다. 특히 가사가 ‘철학적’이라는 반응과 함께, 힘든 세상에 대해 한탄하는 내용이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 같다. 그렇다고 이 곡에 ‘소크라테스’의 철학이라던가, <독서가 테크트리>에서 다룰만한 ‘철학적’인 내용이 있는 건 아니다. 그저 소크라테스는 ‘철학자’의 전형으로, 머나먼 인생의 선배이자 ‘진리를 깨달은 자’의 의미의 ‘테스형’으로 쓰였을 뿐이다.  ‘소크라테스’의 이런 사용법은 흔한 편이다. 나도 온라인 대전 게임을 하다보면, 드물게 ‘소크라테스 컨셉’을 잡고 행동하는 유저를 만나곤 한다. 닉네임을 ‘Socrates’로 짓고, 칭호를 ‘철학가’나 ‘깨달은 자’로 달고, 게임 내내 채팅으로 ‘너 자신을 알라’고만 하는 식이다. 이처럼 소크라테스는 세상 만사를 깨달은 ‘철학자’의 아이콘이며, 근엄하고 흔들리지 않는 캐릭터로 인식되는 듯하다. 하지만 정말 소크라테스는 그러한 일반적 이미지와 같은 사람이었을까? 철학사에서 다뤄지는 ‘소크라테스’는 우리가 아는 소크라테스와 어떤 점이 다를까?     나훈아의 <테스형!> 무대. 배경 이미지로 올림푸스 신전과 소크라테스의 그래픽이 나타나는 게 나의 '웃음벨'이었다.     ‘철학의 아버지’, 그리고 ‘슈퍼스타’  우선 소크라테스가 ‘철학자’의 아이콘이라는 것에 대해 반론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실제로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은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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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현 2024.02.05 |
조회 286
한문이예술
  한자에서 느껴지는 모든 것   동은       1. 한자의 느낌적인 느낌   알려진 바와 같이 우리 말 단어의 상당수는 한자어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1948년 정부수립 이후 서서히 한자어를 한글로 표기하게 되면서 이른바 우리나라 고유어와 한자어의 구분이 어려워졌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에 어떤 한자가 사용되었는지 알아차리기가 어려워졌다. 예를 들면 ‘유람’과 ‘유랑’은 ‘여유롭게 돌아다닌다’는 어감이 비슷해보이지만 각각 놀 유遊와 흐를 류流로 다른 한자가 사용되어 ‘놀면서 돌아다니다’와 ‘목적없이 물 흐르듯 다닌다’는 차이가 있다. 이런 경우도 있다. ‘사전’은 ‘단어들을 모아 그 의미를 밝혀놓은 책’으로 말씀 사辭와 책 전典을 쓰는데, ‘백과사전’은 ‘여러 분야의 지식을 압축해 분류하고 모아 현상과 상태 자체를 모아 설명해 놓은 것’이라 이 때는 일 사事자를 사용한다. 이 事는 원래 ‘어떤 사람’을 지칭하는 한자였는데 오늘날에는 어떤 사건이나 일 자체를 의미하기도 해서 ‘일事’이 포괄하는 용례를 살펴보면 한자 하나로 얼마나 다층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아시아의 근대화와 함께 중국 철학은 서구에서 성립된 근대 학문 체계로 편입되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중국 철학을 중국 자체의 시선으로 바라보려 했던 마르셀 그라네는 『중국 사유』에서 한자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중국의 단어는 하나의 개념에 부응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하나의 단순한 기호도 아니며, 문법이나 통사의 기교를 통해서 생명을 부여받은 추상적 기호도 아니다. 그것은 불변의 단음절 형식과 중성적 양상 속에 작용을 미치는 데 필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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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은 2024.01.11 |
조회 223
봄날의 주역이야기
우리 사무실은 한 사람의 후원자 A씨가 거액의 전세 보증금을 빌려준 덕에 월세 없이 5년여를 버텨왔다. 그런데 그 후원자가 그것을 돌려받고 싶어했다. 실은 이런 뉘앙스의 말을 일년 전부터 들어왔다. 하지만 월세가 얼마가 되었건 새로운 고정지출을 만드는 건 회사 운영에 큰 위협이 된다는 점에서, 나는 듣고도 모른 체 해왔다.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작은 동네서점’을 지향하며 청년 중심으로 운영되는 서점의 관리자 B씨로부터 연락이 왔다. “우리 서점이 0월말로 전세기간이 만료돼요. 조금 더 공간이 크고, 학교와 가까운 곳으로 옮길 생각인데...혹시 함께 공간을 얻을 생각이 있으신지요?”   한번도 이 문제에 대해 입밖에 낸 적도, B씨와 논의한 적도 없었는데, 나는 이상하게 그 제안에 끌렸다. 늘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던 A씨에 대한 부채를 해결하고픈 생각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공간을 함께 나누면 월세의 부담도 덜고, 초기 위험부담도 적어질 거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나는 덜컥 동의를 해버렸고, 하루 이틀 사이에 신축건물 2층 공간을 발견하고, 며칠 사이에 월세계약까지 해치워버렸다. 누가 떠민 것도 아닌데, ‘이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정해진 수순처럼 나의 결정은 거침 없었다.   택천괘(澤天夬)는 바로 이런 결정의 순간을 가리킨다. ‘결단하다’, ‘결정하다’의 뜻을 가진 쾌(夬)라는 글자는 활시위를 당길 때 엄지에 끼는 깍지나, 깍지를 낀 손의 형상에서 나왔다. 활은 쏘아 맞히는 도구이고, 시위를 당긴 화살은 언젠가는 쏘아야 한다. 쾌괘는 목표를 겨누었다가 깍지를 풀어놓는 그 순간의 상황이다. 겨눌 만큼...
우리 사무실은 한 사람의 후원자 A씨가 거액의 전세 보증금을 빌려준 덕에 월세 없이 5년여를 버텨왔다. 그런데 그 후원자가 그것을 돌려받고 싶어했다. 실은 이런 뉘앙스의 말을 일년 전부터 들어왔다. 하지만 월세가 얼마가 되었건 새로운 고정지출을 만드는 건 회사 운영에 큰 위협이 된다는 점에서, 나는 듣고도 모른 체 해왔다.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작은 동네서점’을 지향하며 청년 중심으로 운영되는 서점의 관리자 B씨로부터 연락이 왔다. “우리 서점이 0월말로 전세기간이 만료돼요. 조금 더 공간이 크고, 학교와 가까운 곳으로 옮길 생각인데...혹시 함께 공간을 얻을 생각이 있으신지요?”   한번도 이 문제에 대해 입밖에 낸 적도, B씨와 논의한 적도 없었는데, 나는 이상하게 그 제안에 끌렸다. 늘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던 A씨에 대한 부채를 해결하고픈 생각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공간을 함께 나누면 월세의 부담도 덜고, 초기 위험부담도 적어질 거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나는 덜컥 동의를 해버렸고, 하루 이틀 사이에 신축건물 2층 공간을 발견하고, 며칠 사이에 월세계약까지 해치워버렸다. 누가 떠민 것도 아닌데, ‘이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정해진 수순처럼 나의 결정은 거침 없었다.   택천괘(澤天夬)는 바로 이런 결정의 순간을 가리킨다. ‘결단하다’, ‘결정하다’의 뜻을 가진 쾌(夬)라는 글자는 활시위를 당길 때 엄지에 끼는 깍지나, 깍지를 낀 손의 형상에서 나왔다. 활은 쏘아 맞히는 도구이고, 시위를 당긴 화살은 언젠가는 쏘아야 한다. 쾌괘는 목표를 겨누었다가 깍지를 풀어놓는 그 순간의 상황이다. 겨눌 만큼...
봄날 2024.01.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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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의 공동체가 양생이다
  1. 양생에 대한 오해       양생이라는 낱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병에 걸리지 않도록 건강관리를 잘 하여 오래 살기를 꾀함”이라는 뜻이 첫 번째로 실려 있다. 즉 양생은 오래 살기 위한 방편이라는 것이다.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에서도 양생과 관련한 공부를 하자고 했더니, 건강 챙기는 것도 공부해야 하느냐고 반문한 친구도 있었다. 하지만 양생(養生)의 출전으로 알려진 「양생주」에서는 병이라거나 건강, 장수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다. 다만 첫 장에 “시비선악을 넘어 중도의 도를 지키면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고, 삶을 온전히 할 수 있고, 부모님을 잘 모실 수 있고, 천수를 누릴 수 있습니다.”는 내용이 있다. 이 또한 오래 사는 것보다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양생이 장수를 뜻하게 된 데는 진시황의 일화가 한 몫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진시황본기」에는 불로장생에 꽂힌 진시황의 이야기가 나온다. 진시황이 천하통일을 이룬 후 천하를 순행하기 시작했는데, 제나라에 들렀을 때 서불 등의 방사들을 만나 신선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후로 진시황은 방사들을 가까이 하며 죽지 않는 신선이 될 수 있는 약을 구하려고 막대한 비용을 댔다. 그 중의 노생이라는 방사는 진인(眞人)을 소개하며 “물에 들어가도 젖지 않으며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고(....) 천지와 더불어 영원합니다.” 라고 했다. 「대종사」편에 나오는 진인을 가리키는 내용과 같다. 하지만 진시황은 불사약을 얻지 못했고 순행 도중에 병을 얻어 객사하고 말았다. 이후에도 한무제 역시 말년에 불로장생에 몰두하였다는 등 진인이...
  1. 양생에 대한 오해       양생이라는 낱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병에 걸리지 않도록 건강관리를 잘 하여 오래 살기를 꾀함”이라는 뜻이 첫 번째로 실려 있다. 즉 양생은 오래 살기 위한 방편이라는 것이다.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에서도 양생과 관련한 공부를 하자고 했더니, 건강 챙기는 것도 공부해야 하느냐고 반문한 친구도 있었다. 하지만 양생(養生)의 출전으로 알려진 「양생주」에서는 병이라거나 건강, 장수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다. 다만 첫 장에 “시비선악을 넘어 중도의 도를 지키면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고, 삶을 온전히 할 수 있고, 부모님을 잘 모실 수 있고, 천수를 누릴 수 있습니다.”는 내용이 있다. 이 또한 오래 사는 것보다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양생이 장수를 뜻하게 된 데는 진시황의 일화가 한 몫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진시황본기」에는 불로장생에 꽂힌 진시황의 이야기가 나온다. 진시황이 천하통일을 이룬 후 천하를 순행하기 시작했는데, 제나라에 들렀을 때 서불 등의 방사들을 만나 신선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후로 진시황은 방사들을 가까이 하며 죽지 않는 신선이 될 수 있는 약을 구하려고 막대한 비용을 댔다. 그 중의 노생이라는 방사는 진인(眞人)을 소개하며 “물에 들어가도 젖지 않으며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고(....) 천지와 더불어 영원합니다.” 라고 했다. 「대종사」편에 나오는 진인을 가리키는 내용과 같다. 하지만 진시황은 불사약을 얻지 못했고 순행 도중에 병을 얻어 객사하고 말았다. 이후에도 한무제 역시 말년에 불로장생에 몰두하였다는 등 진인이...
기린 2023.12.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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