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문학 시즌1 에세이#4_그래, 나는 사춘기다(원제 : 관계, 그 아래에서)

재하
2021-05-04 05:47
271

관계, 그 아래에서

 

글 : 재하

 

 

 

 

 

 

 

 

 

 나는 사춘기다. 그리고 나는 요즘 자주 다툰다. 우리엄마랑. 나는 나대로 전형적인 ‘표출’을 시전하고, 엄마는 엄마대로 힘들어 “기력이 달린다”. 그리고 거기에서부터 싸움이 시작된다. 네가 먼저 이러지 않았냐, 아니다, 도대체 나는 이해가 도통 되질 않는다, 이러저러하니 당연한 것이지 않으냐, 왜 항상 논맂ㄱ으로만 문제를 해결하려 하냐..등등. 항상 익숙한 래퍼토리들이 반복되고, 결국 매일같이 허무한, 각기 방에 들어가는 것으로 끝이 난다. 대체 이런 싸움들은 나는 것인가. 적어도, 예전에는, 이렇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니, 그렇지 않았다. 적어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러한 종류의 다툼은 없었던 것 같다. 엄마 말마따나 내가 문제인걸까.

 

 이는 영화 <블랙스완> 속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착하고 여린’ 딸인 니나와 그러한 딸을 지지해주는 듯한 니나의 엄마.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러한 관계는 깨지기 시작한다. 영화가 뒤를 향해 가면 갈수록, 니나와 니나의 엄마 사이에 있던 관계 사이에 묻혀있었던 것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언뜻 보기에는 그러하지 않은 듯 보였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보이는 엄마의 집착과 딸의 성취에 대한 대리적인 욕망은 니나가 ‘흑화’ 되어가는 모습을 따라간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며 둘의 따뜻해 보였던 관계는 우리의 눈 앞에서 깨진다. 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시간이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다른 의미에서 그것은 시간이 흘러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드러난’ 것이 아닐까.

 

 ‘관계’는 기본적으로 나, 즉 주체와 너, 즉 타인을 연결한다. 그것의 연결의 지점이 어떠한 것이 되었든지 간에, 관계는 너와 나의 공백을 분리를 매꾸는 지점이다. 관계 내에서 우리는 충돌을 만들어내기도, 반대로 공감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변하지 않는 사실은 ‘관계’라는 것은 어느 한 지점에서 충돌(혹은 만남)을 전제로 한다는 사실이다. 나만이 알고 있는 것도 아닌, 그렇다고 너만이 알고 있는 것도 아닌, 너 ‘와’ 나가 있을 때, 관계는 생겨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기에 관계는 마치 두 개의 점들을 묶은 실과도 같다. 어느 하나의 점이라도 움직인다면, 관계의 형태는 변한다. 그것은 내가 어떻게 보고 행동하느냐, 혹은 타인이 그러하는가를 떠나서, 상호 간의 사이에서 발생하는 연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누군가가 변하였을 때, 우리가 맺는 관계의 형태는 전면적으로 바뀐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에 혼란스러워하기도, 분노를 표출하기도 하며, 때로는 그 밑에 숨겨져왔던 것들이 드러나기도 한다.

 

 

 

 마치 니나가 변하면서 엄마와의 관계가 바뀌어 가며 그 전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새롭게 떠오르며 엄마 사이와의 연결들이 변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의 변화는 우리 자신을 또다시 바꾸어 놓는다. 변화에 따라, 우리는 새롭게 생긴 형태 속에서 새롭게 정의된 자신을 맞이한다. 니나의 변화는 단순히 니나만의 변화로서만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또한 그의 엄마마저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도록, 변화하도록 했다. 나의 경우에 있어서도 그것은 마찬가지 아닐까. 엄마와 내가 맺고 있던 긴밀한 관계(들)는 나 스스로가 급격히 변해감에 따라 새로운 형태를 띠게 되었다. 엄마와 나는 더 이상 ‘(과거의)나와 (과거의)엄마가 맺고 있는 관계’가 아닌, ‘(새로운)나와 (과거의)엄마’가 맺고 있는 관계로 변화해감에 따라서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명 모두 이렇게 달라진 관계의 구도에 적응하지 못했고, 그 과정에서 갈등, 마찰이 일어난 것이 아닐까.

 

 엄마가 최근(몇 년간) 가장 많이 한 말들 중 하나는 ‘너 진짜 변했다’였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엄마는 나에게 ‘내가 이럴 줄은 몰랐다’고 했다. 아마 그 말들은 달라진 나에 대한, 그리고 새롭게 다가오는 엄마와 나 사이의 관계의 변화과정이 아니었을까. 문제는 나 자신조차도 이렇게 달라지는 나 자신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달라진 관계의 원인을 도리어 엄마에게 돌렸다. 엄마가 달라졌다고, 나는 내가 대체 무엇이 바뀐 것인지 모르겠다고.

어쩌면 이런 연결관계의 갈등의 원인은 서로가 변화하는 것에 초점을 두는, 즉 관계에 있어서 주체인 ‘나’를 고정적으로 이해하였기에 생기는 것인 것 같다. 대부분 우리들은 ‘내’가 바뀐 것이 아니고, ‘네’가 바뀐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나’를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우리의 눈을 밖을 향해 있다. 그렇기에 달라진 관계의 양성들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그 원인으로 지목한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도, 그리고 현실 속에서도, 변화하는 대상은 그 서로이다. 변화하는 나 자신도, 그리고 그 변화를 수용하는, 혹은 수용하지 않는 타인들 또한 그러한 환경 속에서 새로운 관계가 드러나고, 변화되어 간다. 그렇다면 타인과의 관계의 변화 속에서 통찰해야 되는 것은 나 자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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