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親복습단]논어글쓰기 10회 - 미생의 미스테리

인디언
2020-10-29 22:47
470

子曰 : “孰謂微生高直? 或乞醯焉, 乞諸其隣而與之.”(공야장 23)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누가 미생고를 (정)직하다고 하는가? 어떤 사람이 식초를 빌리려 하자 이웃에서 빌려다 주었다.”

 

미생고는 공자님과 같은 시대 같은 마을에 살았던가보다. 식초를 빌려주는 일까지 알고 있는 걸 보면.

동네에서 ‘곧은(直) 사람’이라고 평판이 나있었던 것 같은데, 공자님이 이를 뒤집는다.

누군가 식초를 빌리러 갔는데 자신의 집에 없는 식초를 이웃에서 빌려다 주는 걸로 보아 미생고는 ‘곧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생고의 이런 행동에 대해 해석이 분분하다.

첫 번째 해석. 당시 식초는 간장이나 된장처럼 어느 집에나 있는 기본 양념이어서 없으면 이웃에서 쉽게 얻어 쓰기도 했다. 미생고는 제 집에 식초가 없으면 없다고 하면 그만이고 그러면 그 사람은 다른 집에 가서 얻어 가면 된다. 그런데도 미생고가 이웃에서 얻어서 까지 갖다 준 것은 제 집에 식초가 없다는 것을 속이려고 한 것이라는 것.

또 다른 해석은 식초가 옛날에는 좀 귀한 조미료에 속하는 것이었다고 본다. 그런데 자기 집에 식초가 없다고 하면 가난한 것이 알려지게 될까봐 이웃에서 빌려다 주었다는 것이다.

또 미생고네 집에 사실은 식초가 있었는데 자기 걸 주기 싫어서 이웃집에서 빌려다 주었다는 해석도 있다. 어쨌거나 진실을 가린 것이므로 곧은 사람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미생고는 『장자』 도척편에 나오는 미생과 동일인물이라고 본다.

미생은 한 여인과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는데 그 여인이 오지 않았다. 비가 많이 와서 물이 불어났는데도 그는 다리 기둥을 껴안고 기다리고 있다가 물에 빠져 죽었다. 여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버린 것이다.

직이무례즉교(直而無禮則絞-곧되 예가 없으면 걍팍하게 된다, 태백2장)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약속을 지켜야한다는 것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사회적 관계를 조절하는 메커니즘(禮)을 무시하여 목숨을 잃는 답답한 지경에 이른 것이다.

미생고가 이런 사람이라면 식초를 빌리러온 사람에게 이웃에서 빌려서까지 주려고 한 것을 좀 다르게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식초가 필요해서 빌리러 왔는데 집에 식초가 없으니 ‘그를 위해’ 이웃에서 식초를 빌려다 주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 아닐까? 약속은 지켜야 하고 이웃사람에게는 최선을 다해야하고...... 이런 생각이 옳다고 여기며 사는 사람이라면.

공자님은 ‘직(直)-곧음’을 매우 중요하게 말씀하신다.

‘사람이 살아가는 이치는 곧음이다. 곧음을 잃고 사는 것은 요행히 죽음을 면한 것이다.’(子曰 人之生也直 罔之生也幸而免-옹야) 라고 삶의 기본이 ‘곧음’이라고 하고, 유익한 벗의 첫 번째로 ‘곧은 사람(友直)’을 꼽는다(계씨).

그런데 그 ‘곧음’은 ‘정직’이라고만 말하기에는 좀 부족한 면이 있다.

공자님은 양을 훔친 아버지를 고발하는 아들이 곧다고 보지 않고 그 아버지를 숨겨주는 아들이 곧다고 하기 때문이다.

정직이라면 아버지를 고발하는 것이 더 정직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공자님은 부자간에 있을 법한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을 무시하지 않는다.

공자님은 자기 집에 식초가 없는데도 없다고 말하지 않고 이웃에서 빌려다 주기까지 한 것은 미생고가 좋은 평판을 유지하고 싶은 욕심(사욕)으로 한 것이므로 ‘곧은(直)’ 것이 아니라고 한다. 곧은 것은 지극히 공평하고 사심이 없어야 하는 것(至公無私) 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자간에는 잘못이 있다하더라도 오히려 서로를 숨겨주고 싶은 것이 자신의 ‘진실한 마음’이고, 그러므로 이것이 ‘곧은’것이라는 말씀. 만일 양을 훔친 아버지를 고발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남의 평판을 의식한 사욕의 작동일 수 있다는 것 아닐까.

이렇게 보니 ‘곧은’ 것은 ‘정직한’ 것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자신의 진실한 마음을 속이지 않는 것이니까 말이다.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것,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해도 예나 법도에 어긋나지 않게 되려면 늘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일이다. 나 자신을 속이지 않도록.

 

댓글 3
  • 2020-10-30 17:55

    맞아요.. 미생고와 직은 정말 미스테리~~ 공자님을 불러서 꼭 물어보고 싶은 인물이랍니다~ ㅋ

  • 2020-11-01 12:10

    제가 생각하기에 미생은 직 하다기 보다 직에 갇혀 있는, 직에 휘둘리는 사람 같아요. 착한여자컴플렉스처럼.

  • 2020-11-04 13:24

    미생고에 대한 심층 분석 잘 읽었습니다.
    친절함이 지나쳐도 흉이 될 수 있다는 교훈이군요.
    뭐든지 적당해야 하는데 닥치면 중中을 가늠하기가 어렵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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