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 - 자르고 다듬고 쪼고 간다는 것에 대해

문탁
2019-10-21 16:36
490

1.논어와 절차탁마

 

논어 <학이>편 15장. 바로 그 유명한 ‘절차탁마’가 나오는 곳이다. 자공이 공자에게 “가난하면서도 아첨하지 않고 부유하면서도 교만하지 아니하면 어떠합니까 貧而無諂 富而無驕 何如?(이 정도면 괜찮은 거죠?/ 잘 살고 있는 거죠?)”라고 묻자, 공자가 예의 “not bad.... but...”이라면서 “(그런 라이프스타일은) 가난하면서도 (도를) 즐길 줄 알고, 부유하면서 예를 좋아하는 것未若貧而樂 富而好禮者也 (증여의 달인이 되는 것)만 못하다”고 대답한다.

나는 논어를 처음 읽을 때부터 이 부분이 매우 좋았다. 우리는 (내부에 빈부 차이가 있기는 해도^^) 평균적으로 말해 안회보다는 자공에 가까운 사람들이다. 우리 대부분 많이 배웠고 많이 가졌다. 그래서 자공의 질문도 공자의 대답도, 나는 좋았다. 계속 곱씹어야 했고, 매번 새로운 깨달음을 주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다음의 문답. 공자의 대답을 들은 자공이 느닷없이!! “시에서 말하길 ‘如切如磋如琢如磨 (자르고 다듬고 쪼고 갈 듯이)’라고 했는데, 그것은 이를 말하는 것이지요?” – 도대체 뭔 말이여? - 라고 말을 하자,

공자가 (매우 기뻐하며) “자공아, 비로소 더불어 시를 말할 만하구나. 가는 것을 알려주니 오는 것을 아는구나” - 이건 또 뭔 말이여? - 라고 대답을 한다.

 

절차탁마라는 익숙한 단어가 논어에 이런 식으로 나온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그것의 원출전이 <시경>이라는 것도 그 때 처음 알았다. 그런데 문제는 이 시를 인용하는 맥락이 탁! 들어오질 않았다는 것이다.(어려웠다는 이야기^^)  이럴 땐 주희의 주석을 봐야 한다.

 

“내가 생각하건대, 이 장의 문답은 그 얕고 깊음과 높고 낮음이 변설을 기다리지 않고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절단하지 않으면 가는 것을 베풀 곳이 없고, 쪼아놓지 않으면 가는 것을 베풀 곳이 없다. 그러므로 배우는 자가 비록 小成에 편안해서 도의 極致에 나아감을 구하지 않아서는 안되나, 또한 虛遠한 데에 달려서 자기 몸에 간절한 실제 병통을 살피지 않아서도 안될 것이다.”

 

갈수록 태산이라구... 교과서가 어려워 전과를 봤는데 전과가 교과서 보다 더 어렵고 복잡한 형국이다.  도대체 주자는 또 뭐라고 하는 걸까? ㅠㅠㅠ ....

 

 

 

2.대학과 절차탁마

 

절차탁마에 대한 이해는 <대학>을 배우면서 약간 심화되긴 했다. <대학> 傳3장에는 절차탁마의 원출전, 그러니까 <시경>의 위풍 <기욱>이라는 시가 <논어>에서보다 더 많이, 그러니까 1장 전체가 인용된다.

 

시경에 이르길 “저 기수 모퉁이를 보니 푸른 대나무가 무성하도다. 문채나는 군자여. 잘라놓은 듯 하고 간 듯하며 쪼아놓은 듯하고 간 듯하다. 엄밀하고 굳세며 빛나고 점잖으니, 문채나는 군자여. 끝내 잊을 수 없다” 하였으니, 如切如磋는 학문을 말한 것(道學)이요, 如琢如磨는 스스로 행실을 닦음(自修)이요, 슬혜한혜는 마음이 두려워함(준율)이요, 혁혜훤혜는 겉으로 드러나는 威儀요, 문채나는 군자여 끝내 잊을 수 없다는 것은 盛德과 至善을 백성이 능히 잊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이 전3장에 대해 주희는 “명명덕 하려는 자의 지어지선을 밝힌 것이다.”라면서 “준율과 위의는 德容의 표리의 성함을 말한 것이니, 마침내 그 실제를 가리켜 찬미한 것이다”(아...성백효 선상님!!!!) 라고 주석을 달고 있다.

 

그러니까 결국 요점은,

공부하는 일 – 이치를 탐구하고 (도문학) 자신을 닦는 일(존덕성) {중용 27장} -은 끝이 없으니 하고 했다고 (그러니까 가난하고 아첨하지 않는 수준, 부유하고 교만하지 않는 수준) 그 정도에 안주하지 말고, 계속 다음엔 (그러니까 가난하면서도 도를 즐기고) 하고, 다음엔 (그러니까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를 하기 위해 힘써 노력해야 한다는 것. 하여 “도의 극치”(논어 학이 15장 주희 주)를 추구하여 “止於至善”(대학 3강령)해야 한다는 것!!!! (아이구, 이런 도학자들 같으니라구^^...그땐 그 말들이 넘 멋있었는데 시경을 읽으면서 다시 보니 답답하기 이를데 없군....ㅋㅋㅋ)

 

 

3.<시경>의 절차탁마

 

그런데 진짜 그런걸까? 절차탁마가 “도의 극치”에 이르는 수련이라거나 “지극한 선에 머무는 것”의 상태를 말하는 것일까? 절차탁마가  공부나 인격을 수련하는 고단하고 치밀한 과정을 의미하는 것일까?

3000년전 기수가에서 살던 여자들이 '절차탁마'라는 단어를 통해 그런 공부, 그런 인격을 찬양한 것일까?  - 아...그럴 리가....ㅋ

 

일단 절차탁마가 나오는  <시경> [위풍]의 <淇燠>이라는 시 전문을 보자.  제목을 좀 풀면 <기수 벼랑..(의 푸른 대나무)> 정도가 될 것이다.

 

瞻彼淇燠 綠竹猗猗 有匪君子 如切如磋 如琢如磨 瑟兮僩兮 赫兮咺兮

저 기수 벼랑을 보니 푸른 대나무 야들야들하도다. 문채나는 군자여, 잘라놓은 듯 다듬어 놓은 듯 쪼아놓은 듯 갈아놓은 듷다도다. 치밀하며 굳세며 빛나고 점잖으니

有匪君子 終不可諼兮   문채 나는 군자여 끝내 잊을 수 없도다

 

瞻彼淇燠 綠竹靑靑 有匪君子 充耳琇瑩 會弁如星 瑟兮僩兮 赫兮咺兮

저 기수 벼랑을 보니 푸른 대나무 청청하도다. 문채나는 군자여, 귀막이가 옥돌이며 피변의 꿰맨 것이 별과 같도다.

有匪君子 終不可諼兮  문채 나는 군자여 끝내 잊을 수 없도다

 

瞻彼淇燠 綠竹如簀 有匪君子 如金如錫 如圭如璧 寬兮綽兮 猗重較兮

저 기수 벼랑을 보니 푸른 대나무 가지런히 울창하도다. 문채나는 군자여, 금같고 주석같고 규옥같고 벽옥같구나. 너그럽고 여유있으니 수레를 타고 있구나.

善戱謔兮 不爲虐兮   희롱과 농담을 잘하나 지나치진 않구나.

 

그리고 이 시의 공식적 해석은 (모시 + 주자)는 "위나라 무공의 공부와 인격의 찬미"이다.  하지만 난 전혀 그렇게 생각할 수가 없는데 그 이유는  <시경>에서 기수라는 강이 언급된 시가 모두 6개인데 - [패풍]의 <천수>, [용풍]의 <상중>, [위풍]의 <기욱>, <맹>, <죽한>, <유호> - 하나같이 강변의 썸을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이 시는 당시, 패,용, 위 지역에 살았던 평범한 남녀들이 기수가에서 (정기적인 축제의 현장일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놀러 나왔을 수도 있다) 서로를 유혹하고, 함께 썸을 타고, 나아가 '야합'^^하는 노래들 중 하나일 것이다. 

 

하여, 나는 요러큼 번역하고 싶은디....

 

기수가 푸른 대나무 싹이 아름답다.

와, 잘생긴 남자다!  / 잘 깎아 놓은 밤톨같이 생겼구나. 

슬혜한혜 혁혜훤혜  / 자체발광하니 잊을 수가 없네

 

기수가 푸른 대나무 신록이 아름답다

와, 잘생긴 남자다! / 비니 쓴 모습... 간지 작렬!

슬혜한혜 혁혜훤혜 /  자체발광하니 자꾸 생각난다

 

기수가 푸른 대나무 우거져서 아름답다

와, 잘생긴 남자다! / 금처럼 빛나고 옥처럼 맑은 기운

관혜작혜 기중각혜 / 농담도 다정하네.

 

 

마지막으로 보너스 사진 한장 투척 (18금?!)

옛사람의 자유로운 만남을 그린 <야합도> / 한나라 / (<중국을 말한다 2 - 시경 속의 세계> , p154)

 

댓글 3
  • 2019-10-21 18:08

    와하하하~ 재밌어요^^
    아주 설득력있는 이야기로 들려요!ㅋㅋ

  • 2019-10-22 08:28

    샘 글을 곱씹어 두어번 읽어 보니 왜 <시경>이라 했는지 알 것 같아여^^
    그래도 시경은 시편에 비해 훨씬 젊잖은 것 같아요 ㅎ~
    후기를 대신해 댓글로 ... 감사합니다

  • 2019-10-22 09:05

    와~~~ 짝짝짝~~~ <시경>으로 에세이 써야하는 저에게 설득력있는 팁^^!
    보너스컷이 어딘지 익숙하다~~ 어디서 봤더라~~~ 아하^^ <금병매>읽을 때 였어요~ 음... <금병매>에 면면히 흐르는 시경의 세계?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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