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 네번째 시간 후기

요요
2020-08-03 20:00
113

마경팀 세미나 반장인 블랙커피는 <장인>을 4회에 걸쳐서 읽자고 제안했는데

어떻게 하다보니 더 조금씩 다섯번으로 나누어 읽게 되었다.

노라의 강력한 파워 때문인지, 블랙의 하해와 같은 양보심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노라가 무지무지 기뻐했고, 덩달아 우리도 기뻐하면서

<장인>을 야금야금 읽고 있다. 이제 마지막 세미나 한 번이 남았다.

(노라는 딸이 외국에서 와서 격리 들어가는 바람에 5회차 세미나를 못하게 되었다. 이것도 혹시 노라의 빅픽처?ㅋㅋ)

 

처음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난 세넷이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에 적응하기가 어려웠다.

그는 장인이란 어떤 사람인가? 장인의 역사, 지금 장인을 다시 생각하는 이유..

뭐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주장이나 개념을 제시하고 그 타당성을 입증하고 결론을 짓는 방식이 아니라

여러 사례들이 등장하고 그 사례로부터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슬그머니 끌어내는 방식으로 <장인>은 전개된다.

예전에 윌리엄 제임스의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을 읽을 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났다.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이 프래그머티즘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라는데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점점 더 프래그머티즘에 대해 궁금해 하고 흥미를 느끼게 된 것 같다.

 

<장인>의 에필로그에는 세넷 자신이 말하는 프래그머티즘(실용주의)에 대한 소개가 나온다.

"실용주의는 시작할 때부터 현실의 확실한 사실과 아울러 경험이란 것의 성질을 들여다 봤다. 한가지 예로 윌리엄 제임스는 프리드리히 니체의 저술에서 배어나오는 비통과 아이러니, 비극적 예감과는 다른 대안을 찾아 나섰다. 종교를 논하는 자리에서 그는 커다란 교의 뿐아니라 하루하루의 신앙생활을 들여다 보면서 종교의 덕을 작고 구체적인 일들에서 발견했다."

"언제나 실용주의가 힘을 얻는 활력소는 사람들의 일상에서 다채롭게 벌어지는 건설적인 활동을 다루는 것이다."

 

내가 세넷을 읽으며 윌리엄 제임스를 떠올린 것은 그럴 만했던 것이다!

개념이나 주장이 아니라 장인들의 일상에서 벌어지는 활동들을 다루면서 그것에서 장인의 덕을 찾아내는 것, 그것이 세넷이 취하는 글쓰기 전략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이렇게도 말한다.

"우리 시대에 이르러서는 장인 노동이 찾아야 할 철학적 고향은 실용주의다."라고.

 

<장인>에서 문탁의 작업장의 비전 혹은 손인문학의 비전을 찾는데 금과옥조가 될만한 무엇인가를 찾고 싶었는데

오히려 <장인>을 읽으면서 나는 우리의 일상에서 벌어지는 작업, 활동, 공부, 인간관계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장인처럼 생각하고 장인처럼 행동하는 건 어떤 것일까.

우리는 어떻게 서로 만나고, 작업을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 온 것일까. 

지지고 볶으면서도 우리가 계속 같이 하고 있는 것은 이 활동들에서 정말 건설적인 뭔가 있기 때문은 아닐까.

늘 의미를 중시하고, 당위와 현실 사이의 거리를 먼저 생각하고,

우리에게 나에게 부족한 게 뭔가, 고쳐야 할 게 뭔가 문제점을 찾아내는 방식으로 생각하곤 하는 나에게

<장인>은 어떤 의미에서는 다르게 관찰하고 다르게 생각하는 법을 보여주는 책인 것 같기도 하다.

내게는 조금은 낯선 그런 접근법을 따라가며 읽는 것이 한편 어렵기도 하고 다른 한편 즐겁기도 하다.

세넷의 책 세 권을 다 읽고 나면 프래그머티즘에 좀 더 익숙해질까, 그것도 이 시즌 나 자신의 공부 포인트 중의 하나다.

 

지난 시간 내가 발제를 맡았던 부분은 '저항과 모호'라는 장이었다.

일을 하다보면 장인들은 저항을 만나고(일부러 저항을 배치하기도 한다)

또 뭐라 딱 부러지게 판단할 수 없는 모호한 상황들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훌륭한 장인은 저항과 맞서 싸우는 사람이기보다는 저항을 잘 다스리는 사람이다.

모호함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모호한 것을 명확하게 만드는 사람이기보다

모호한 것을 모호한 채로 놔둔채로 모호함과 잘 사귀는 사람이다.

(음.. 후기를 쓰려고 하니 뒤늦게 노자의 상선약수가 떠올랐다.^^)

 

대부분의 세미나 팀원들이 이 장을 읽으며 문탁에서의 활동과 인간관계에서의 '저항'을 떠올렸고

그와 관련한 메모를 써왔다. 나는 특히 토토로의 메모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문탁에 다시 돌아오는데 나름의 저항이 있었다는 토토로의 진솔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토토로가 쓴 글 덕분에 토토로가 함께 하지 않은 기간 동안 세미나에도 나름 변화가 많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기도 했다.

그 내용을 다른 친구들과도 공유하고 싶은데.. 글쎄, 토토로가 그렇게 하고 싶을지 그건 잘 모르겠다.^^

댓글 3
  • 2020-08-03 22:13

    같이 읽고 싶은 메모인 토토로님의 글을 올립니다.^^
    ------------------------

    내 앞의 저항에 대하여

    올 1월, 문탁을 떠난지 거의 4년만에 돌아왔다. 마음으로 늘 문탁의 활동들을 지지했고, 다시 가서 공부해야지, 공동체 활동을 해야지 생각하면서도 다시 오기까지 4년의 시간이 걸렸다. 짧지 않은 시간이 걸린 건 분명 무슨 저항이 있어서였다. 그리고 다시 시작된 문탁 생활에서도 여전히 저항은 존재한다. 그게 뭘까? 무엇이 나를 잡아당기고 주저하게 할까?

    문탁을 쉬는 4년의 동안 내게 소소한 변화들이 있었다. 큰아이는 대학생이 되어 집을 떠났고, 주말부부도 됐다. 바로 나는 파트타임으로 일을 시작했다. 그 일은 만족스러웠다. 어느 순간 보이밴드에 흠뻑 빠져 시간 나는 대로 온갖 영상과 곡들을 무한 반복으로 보고 들었으며, 생소한 아이돌 문화와 언어를 익혔다. 소홀했던 동네 엄마들과도 어울려 다녔고 영화도 상당히 많이 봤다. 그러는 사이 나는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고, “요즘이 제 2의 황금기야!”라고 농담 삼아 말한 적도 있다.(그렇다고 팔자가 폈던 건 아니다. 정도의 차이일 뿐 힘듦은 어디에나 있다.)

    그런 중에 나는 문탁으로 돌아갈 타이밍을 찾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참 쉽지가 않았다. 내가 쉬는 사이 문탁의 세미나 문화는 많이 변해 있었다. 대부분의 세미나가 시즌 마무리 에세이를 쓰는 건 기본이고, 매주 메모를 쓰는 형식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쉽고 말랑말랑한 세미나는 별로 없고 어렵고 쎈 세미나들만 남아 있는 것으로 보였다. 모든 세미나와 활동에 메모, 후기, 완성도 있는 에세이, 그를 통한 출판이라는 결과물을 내기까지도 하는 걸 멀리서 지켜봤다. 과연 내가 돌아가면 잘 할 수 있을까. 책 읽고 글 쓰는데 허덕이게 될 텐데. 지금 내 생활도 그런대로 만족스럽고 무엇보다 시간이 빠듯한데...(알바가 매일 하는 일이라 시간을 꽤 잡아먹는다.) 늘 이런 망설임과 저울질이 맘 속에서 오락가락 했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언젠가 결국 다시 문탁으로 향할 것이란 것을. 누가 부추겨서 라기 보단 내 발로 걸어서. (그래도 친구들의 부름은 늘 고마웠다!)

    복귀 타이밍은 우연히 찾아왔다. ‘겨울방학 동안 단기로 <동물농장> 원서를 읽습니다.’ 이건 딱 나를 위한 맞춤 기획 같았다. 글쓰기도 없고, 후기도 없을 테고, 재미난 소설을 읽는 거니까 그냥 단어만 열심히 찾아 해석하고 여러 번 읽다보면 자연스레 영어도 느는 일거양득의 세미나! 망설일 이유 없이 바로 신청했고 그 선택은 아주 적절했다. 마음속 저항을 적절히 비켜갈 수 있는 그런 세미나였다. 두 달 뒤 원서읽기는 끝이 났고 다시 문탁에 들어선 이상 나는 정규 세미나를 해야 했다. 어렵고 때론 지루한 책을 읽고, 이런저런 글을 쓰고, 활동도 해야 한다. 문탁은 공부 욕구나 채워주려고 있는 공간도 아니고, 이곳의 공부란게 돈벌이에 써먹을만한 그런 것도 아니라 생각한다. 삶을 바꾸는 공부이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다르게 만드는 공부이다. 그만큼 내가 치열하게 읽고, 쓰고, 같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활동을 해야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나는 집중력이 약한 쪽에 속하는 사람이다. 진득하니 앉아서 책과 씨름하고 한줄한줄 좋은 글을 쓰기위해 몸부림치는 일엔 자신이 없다. 그래서 자꾸 저항이 생겨난다. 아니 어쩌면 저항을 내 자신이 만들어 내고 있는 것 일수도... ‘발견된’ 저항인지 ‘만들어낸’ 저항인지 구분이 쉽지 않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외면할 수도 없다.

    그런데 그중 내가 가장 크게 느끼는 저항은 뭘까? 그건 글쓰기이다. 책이야 두 번 세번 읽으면 된다 해도 글쓰기는 차원이 다르다. 누군들 글이 쉽게 써질까 만은 내게는 유독 어렵고 막막하다. “무슨 말을 하고 싶지?”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지만 답은 늘 막연하다. 그나마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쓰긴 하는데, 할 말을 매끄럽게 잘 풀어놓는 것도 만만찮다. 글쓰기 훈련이나 연습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알맹이 없는 말로 중언부언, 텍스트 요약, 얼렁뚱땅 넘어가기....슬슬 얄팍한 밑천도 다 떨어져 간다. 그래서 가끔은 좌절스럽다.

    세넷은 말한다. 저항에 인내해야 하고 대처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브루넬 부자처럼 저항에 맞서 싸워 극복하든, 그레이트헤드처럼 저항을 잘 다스리며 극복하든 말이다. ‘좌절-공격 증후군’에 빠져서도, 습관처럼 좌절-회피 패턴에 빠져서도 안 된다. 저항에 부딪혀 좌절하게 될 때, 그 좌절을 생산적으로 체험해보고 기능으로 숙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라고 한다. 그게 장인이 되는 길이라고...공부 장인? 글쓰기 장인? 아님, 활동의 장인? 그런 건 못되더라도 저항을 잘 극복하고 다스려가다 보면 그 근처에라도 가볼 수 있을까. 아니 문탁 생활에 잘 안착할 수 있을까.

    어쩌면 길은 지금 읽고 있는 책 안에, 그리고 내 자신 안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 2020-08-04 12:41

    실용주의, 제가 밀고 싶은 공부입니다...

  • 2020-08-04 20:43

    저항을 다스리고 모호함과 사귀기
    배워 익히고 싶습니다.
    재능보다동기가 중요하다는데
    동기도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어서
    그저 그랬으면 하는 바램만으로는 아무 것도 안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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