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의 고원> 14-15고원 후기

명식
2019-11-04 16:37
270

  안녕하세요, 명식입니다.

  이번 주 후기입니다.

  제 14고원인 <매끄러운 것과 홈 파인 것>은 매끄러운 공간과 홈 파인 공간이라는 개념들을 여섯 가지 모델들을 통하여 구체화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각각 기술적 모델, 음악적 모델, 해양적 모델(바다 모델), 수학적 모델, 물리학적 모델, 미학적 모델입니다. 저자들은 이처럼 다양한 모델들을 통하여 실제 우리 세계에서 저자들의 개념이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는가를 보여주려고 한 듯합니다. 특히, 매끄러운 공간과 홈 파인 공간이 분명 서로 구분되는 개념이긴 하나 동시에 언제나 혼합된 형태로 나타나고 서로 이행하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점을 중요히 보여주려 한 것 같아요. (물론 이것은 초반부의 리좀형-수목형의 개념들부터 반복되어 오고 있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원체 배경지식이 없어 이해하기 힘들었던 수학적 모델을 제외한 다른 부분들은 전부 굉장히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가령, 일전에 저는 ‘미학세미나’에서 기존의 것을 반복적으로 재현하지 않는 예술, ‘비재현적 예술’의 개념을 저 나름대로 해석하며 ‘항해적’이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는데요. 국경들을 그어 영토로 만들 수 있고 대개 정주의 공간으로 여겨지는 땅과는 달리 끊임없이 일렁이며 영토성을 부여하기 힘든 ‘바다’와 순간순간 그 급변하는 환경에 감응하며 그 바다를 나아가는 ‘항해적 태도’야 말로 비재현적 예술과 맞닿아있다는 내용이었어요. 그런데 이번에 해양적 모델에 대한 부분을 다시 읽어보니 결국 지도기술의 발달이 바다 또한 좌표화했고(홈 파인 공간으로서의 바다), 그것을 다시 위성과 레이더, 전략병기들이 접수하면서 재차 매끄러운 공간으로 이행하게 되었다는 내용이 나오더군요. 분명 일리있는 지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흔히 ‘정보의 바다’로 비유되는 인터넷 환경에 이 내용을 접목시킨다면 어떠한 분석이 가능할까 상상해보기도 했고요.

  한편 물리학적 모델에서는 일, 노동, 자본에 이르는 일련의 흐름이 다루어지는데, 모든 것을 시간-화폐로 환산하여 엄청난 규모의 홈파기를 수행한 자본의 측면과 동시에 모든 시공을 전체적으로 점유하여 매끄럽게 만들어내는 자본의 측면, 또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여전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국가와 결부된 ‘홈 파인 자본’ 이야기와 다국적기업들이 만들어낸 새로운 첨단의 ‘매끄러운 자본’ 이야기 등등도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기술적 모델과 음악적 모델에서 들고 있는 예시들도 매우 직관적으로 와 닿았어요. 길드다에서 공방 작업을 곁눈질하며 보았던 것들이 떠오르기도 해서 이해하기 편했구요. 미학적 모델 또한 노마디즘의 사진들을 참고해가면서 보니 이해가 쉬웠습니다.

  위의 모델들을 통해 저자들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고원을 마무리합니다. 거의 모든 메모에서 인용된 바로 그 부분이죠.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홈파기와 매끈하게 하기 라는 조작에서의 다양한 이행과 조합이다. 즉 어떻게 공간은 그 안에서 행사되는 힘들에 구속되어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홈이 파이는 것일까? 또 어떻게 공간은 이 과정에서 다른 힘들을 발전시켜 이러한 홈파기를 가로질러 새로운 매끈한 공간들을 출현시키는 것일까? (...) 물론 매끈한 공간 자체가 해방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바로 매끈한 공간에서 투쟁은 변화하고 이동하며, 삶 또한 새로운 도박을 감행하고 새로운 장애물에 직면해서 새로운 거동을 발명하고 적을 변화시킨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의 매끄러운 공간만으로 충분하다고는 절대 믿지 말아라.” (953)

  이에 따르면, 우리는 홈 파인 공간과 매끄러운 공간 사이의 이행, 혼합의 양상들을 이해하고 분석해낼 수 있어야 하며, 그로써 가장 홈 파인 공간에서도 매끄러운 공간으로의 이행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해야 하고, 또 매끄러운 공간에서는 그 특성에 걸맞은 삶의 방식을 발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실 우리 삶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이죠. “그런데, 어떻게?” 문탁 선생님이 수업시간마다 늘 이야기하시는 문탁 공간의 이야기도, 또 조국 사태를 비롯한 우리 사회의 모습도 이 지점과 긴밀히 이어져 있는 듯합니다. 과연 이것을 저는 에세이를 통해 풀어낼 수 있을지.....음. 아무튼, 『천의 고원』은 일단 이렇게 마무리가 됐지만, 에세이가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겠지요....? 아무쪼록, 다들 힘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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