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씨춘추] 1회 후기 - 정제된 통치 매뉴얼

진달래
2020-07-12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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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불위의 꿈

여불위(呂不韋/기원전?~기원전234)는 전국시대 말기 대상인이자 정치가이다. 원래 위(衛)나라 사람인데 한(韓)나라에서 장사를 해 큰 부자가 되었다. 조(趙)나라에서 장사를 하던 중 조나라에 인질로 잡혀온 진(秦)나라의 공자 자초(子楚)를 보고 그에게 투자하면 큰 이익을 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여, 그를 적극적으로 도와 결국 진나라의 왕위를 물려받게 만든다. 왕이 된 자초(장양왕)는 여불위를 불러 상국(相國)으로 임명하고 문신후(文信候)에 봉했다. 후에 장양왕의 아들 영정(진시황)이 어린 나이에 왕위를 계승하자, 여불위는 그의 중부(仲父작은아버지)로 불리며 위세를 떨쳤다. 그러나 영정이 성년이 되어 직접 정무를 맡으면서 여불위는 파면되어 은퇴하였다. 이후 촉땅으로 유배되고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여불위(기원전?~기원전234)

 

여불위에 대해 우리가 가장 흥미 있게 생각하는 것은 그가 진짜 진시황의 아버지인가에 대한 것이다. 『사기』 「여불위열전」에 보면 여불위의 첩을 마음에 들어 하던 자초에게 이미 자기의 아이를 임신한 것을 알면서도 그녀를 자초에게 주었으며,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바로 영정, 즉 진시황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 기록들은 모두 정확하게 ‘여불위가 아버지다.’라고 하고 있지 않으며, 그저 그런 말들이 세상에 있다고 적고 있다. 여불위가 진짜 진시황의 아버지인가 아닌가를 떠나, 그는 진시황이 직접 정치를 하기 전까지 그가 강력한 군주권력을 가질 수 있도록 물심양면 도운 것은 확실한 것 같다. 그리고 우리가 이제 같이 볼 『여씨춘추』도 그러한 작업의 일환으로 생각할 수 있다.

보잘 것 없는 자초에게 투자 해 진나라의 왕위를 잇도록 만든 여불위의 정치적 안목은 보통 사람의 그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리고 진나라가 얼마 안 가 중국을 통일 할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여불위는 상국이 된 후 선진 제자백가의 학설을 종합 『여씨춘추』를 지었다. 통일된 중국에 하나의 준칙, 통치 이데올로기를 세우는 것, 『여씨춘추』를 통해 확인 할 수 있는 여불위의 꿈이다.

 

 

『여씨춘추』를 말하다

『여씨춘추』는 ‘기(紀)’, ‘람(覽)’, ‘론(論)’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십이기(十二紀)는 월령(月令) 형식의 글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계절의 시작(孟)과 한창일 때(仲), 늦은 시기(季)로 다시 나누어 총 열두 시기로 배치하였다.

2부 팔람(八覽)은 ‘팔방을 두루 관람한다.’는 의미이며, 3부 육론(六論)은 ‘육합(六合/천지사방을 뜻함)을 궁구하여 논하다.’라는 뜻으로 각 편이 천문, 지리, 정치, 경제, 생산기술 등을 망라하여 일정한 주제로 논술되고 있다. 가히 백과사전이라 불릴 만하다.

또한 당대 제자백가의 사상을 집대성하여, 하나로 통일하려 하였다. 그러나 『여씨춘추』는 단순히 학파의 학설들을 단순하게 병합하는 것이 아니라 각 사상의 장점을 흡수, 시대적 요구에 맞추어 재해석하여 융합하고 있다. 『여씨춘추』는 이후 잡가(雜家)로 분류되며 한나라 초기 유안이 지은 『회남자(淮南子)』와 더불어 한(漢)대의 황로학(黃老學)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여씨춘추』는 기원전 241년, 진시황이 즉위한 지 6년이 되던 해, 천하가 통일되기 약 20년 전쯤 완성되었다. 이 책이 완성된 지  2년 뒤 스무 살이 된 진시황은 친정을 시작했다. 『사기』를 지은 사마천은 “천지, 만물, 고금의 일에 관한 것이 전부 갖추어져 있다.”고 『여씨춘추』를 평했다. 그리고 『여씨춘추』의 순서가 「팔람」, 「육론」, 「십이기」의 순서로 되어 있다고 적었다. 그러나 이 책의 해제에 보면 이는 사마천이 여불위의 의도와 약간 다르게 본 것이라고 말한다. 『여씨춘추』는 「팔람」이 아닌 「십이기」가 먼저 나오며, 여불위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이 바로 「십이기」라는 것이다. 「십이기」의 마지막에 달린 ‘서의(書意)’를 보면 여불위가 이를 통해 황제의 통치를 전하려고 한 의도를 볼 수 있다.

 

“일찍이 황제가 전욱을 가르치던 방도를 배울 수 있었다. 즉 하늘이 위에 있고 땅이 아래에 있으니, 그대가 이를 본받을 수 있으면 백성들의 부모가 될 것이다. 듣기로 옛날에 세상을 평정하는 것은 곧 천지를 본받는 것이라 했다. 무릇 「십이기」라는 것은 다스림과 어지러움, 살아남음과 멸망함을 다스리는 방도이자, 장수와 요절, 길함과 흉함을 알아내는 방도이다. 위로는 하늘을 헤아리고 아래로는 땅을 살피며, 가운데로 사람을 이해한다. 이렇게 하면 옳고 그름과 가함과 불가함이 숨을 것이 없게 된다.”(여씨춘추/글항아리/p296)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 봄

「십이기」의 편집을 보면 각 계절에 그에 해당하는 논의를 모아 배치하고 있다. 즉 봄은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로 '삶을 주관하는 덕'을 가지고 있다고 보고 양생(養生)에 관한 글들을 모아 놓았다. 여름은 만물이 자라는 계절로 발육과 생장을 주관, 교육에 관한 글들을 모아 두었다.

맹춘, 중춘, 계춘으로 나누어진 봄은 각 시기에 다섯 개의 논의를 갖는다. 맹춘기에는 맹춘(孟春), 본생(本生), 중기(重己), 귀공(貴公), 거사(去私), 중춘기에는 중춘(仲春), 귀생(貴生), 정욕(情欲), 당염(當染), 공명(功名), 계춘기에는 계춘(季春), 진수(盡數), 선지(先己), 논인(論人), 환도(圜道)로 나누어져 있다. 각 첫 머리에는 그 계절을 개관하고 앞의 두 편은 개인적 차원의 양생을 뒤의 두 편은 통치의 차원을 대체로 말한다.

논의는 도가를 주류로 하고 있기 때문에 『노자』. 『장자』의 어법과 비슷하게 느껴지는 것들이 많았다. 예를 들면 ‘정욕’편의 내용 중 손숙오에 관한 내용에 그가 초장왕을 위해 일 한 것을 두고 사람들이 손숙오의 요행으로 말하지만 나라 안의 힘든 일을 모두 한 손숙오는 밤낮으로 쉬지 못하며, 삶을 편안히 살지 못하고, 공적이 초장왕의 이름으로 후세에 남게 되었으니 초나라의 요행일 뿐이라고 했다.

 

강남갔던 제비가 돌아왔어요

 

중춘은 지금으로 보면 3, 4월경으로 볼 수 는데 이때 제비가 날아온다고 하였다. 제비가 처음 날아온 날에 희생을 갖추어 고매(高禖)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데, 이 때 고매는 아이를 점지하는 신으로 백성의 인구 증가를 위해 천자가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이를 보니 『시경』을 읽을 때 그라네가 봄에 들에 나가 노래하며 대규모로 짝짓기를 하는 풍습에 대해 언급했던 부분이 생각이 났다. 아마도 이 때가 그 시기와 같은 것 같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귀생’편에 자화자(子華子/위나라 도인)가 한 말로 “삶을 온전하게 만드는 것(全生)이 최고이고 삶을 부족하게 만드는 것(虧生)이 그다음이며 죽는 것(死)이 그다음이고 삶을 괴롭게 만드는 것(迫生)이 가장 아래이다.”라고 한 부분이다. 이 당시 죽음보다 못한 삶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는 것, 존중받지 못하는 삶보다 죽음이 낫다는 것 문장을 보며 ‘존엄사’ 논란이 떠올랐다.

봄에 가장 중요한 일 중에 하나는 농사를 시작하는 것이다. 천자는 농사를 짓는 모범을 보이며, 이 시기에는 전쟁이나, 큰 공사 등을 행하면 안 되었다. 생명을 중시하는 것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다.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그렇지만 통치의 기본이기도 하다. 계춘기의 마지막 ‘환도’는 이러한 것들이 모두 하늘과 땅의 도를 본받는 것임을 밝힌다.

 

이번 세미나는 어찌어찌하다 보니 인원이 많이 줄었다. 혼자 읽을 땐 그냥 이런 내용이 있나보다 했는데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재미있는 이야기가 끝없이 나왔다. 『관자』를 읽을 때와 달리 깔끔하게 배치된 글들을 보며, 역시 돈 많은 여불위가 만들었다는 티가 난다고도 했고, 각 학파의 논의를 분량 맞추어 비판하고 있는 부분을 보면 이 책을 저술하는데 많은 공을 들였음을 알 수 있었다. 이미 읽은 책들과 비교하여 풍습과 사상을 알아보는 재미도 있었다. 참, 함께 읽으면 좋은데…….

 

다음 세미나는 이번 시간 못한 '맹하기부터 계추기(p232)'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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