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바리주역> 59. 풍수환괘 - 걷다보니 어느새 흩어짐에서 벗어나고 있었네

고로께
2019-10-15 00:31
682

                                                                  
                                                         걷다보니 어느새 흩어짐에서 벗어나고 있었네          

              풍수환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나는 지난봄부터 매일 누군가를 만나거나, 어디를 가든지 걸어 다닌다. 사람들이 말하는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도 아니고, 걷는 매력에 빠져서도 아니다. 내가 걷는 이유는 친정엄마한테 큰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엄마가 작년부터 조금씩 말이 어눌해지기 시작했다. 피곤해서 그렇다고 했는데 날이 갈수록 심해져서, 전문 대학병원에서 종합검사를 했다. 검사결과는 참혹했다. 엄마는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희귀병 진단을 받았다. 그녀의 몸은 조금씩 굳어가고 있었고, 혀는 이미 많이 굳어져 의사소통이 힘들어졌다. 또 잘 먹지를 못하니 살도 많이 빠졌다. 의사는 앞으로 병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그리고 가족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담담하게 설명했다. 이 병은 치료법도 없고 오직 근육이 굳어지는 것을 늦추는 약을 먹는 것과 꾸준한 운동이 전부라고 말했다. 엄마와 형제들이 받은 충격은 상상이 할 수 없을 정도로 커서 감당이 안됐다. 나는 엄마가 어느 날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날 수 도 있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앞섰다. 그녀는 모든 바깥활동을 접고 집밖으로 나가질 않았다. 힘들어하는 엄마를 보면서, 싸우기도 하고 달래기보기도 했다. 그리고 나도 조금씩 지쳐갔다. 이른 봄 그때부터였다. 아침에 남편과 아이가 나가면 사무실에 출근하는 일을 제쳐두고 무조건 집을 나섰다. 목적지 없이 이리저리 사방팔방으로 정신 나간 사람처럼 돌아 다녔다. 걷다가 지치면 아무데서나 앉아 멍 때리며 하루를 보냈다.

 

                                            물결 파문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주역>의 풍수환(渙)괘에는 기뻐하며 흩어지는 뜻이 있으며, 괘(卦)됨이 바람이 위에 있고 물이 아래에 있으니, 물위에 바람이 불면 물결이 일렁거리며 흩어져 파문이 일어난다.’ 이 때문에 환(渙)이라고 했다.

 

渙 亨 王假有廟 利涉大川 利貞. 渙은 형통(亨通)하니, 왕(王)이 사당(祠堂)을 둠에 지극하며 대천(大川)을 건넘이 이로우니, 정(貞)함이 이롭다.

 

괘사를 보면 환(渙)은 흩어짐이다. 사람들은 뭉쳐있던 것이 풀어지고 흩어지면 형통(亨通)하다 고들 한다. 그런데 환(渙)괘 에서는 백성들의 마음이 뿔뿔이 흩어져 멀어져 있다. 흩어지면 당연히 어려운 때임에도 불구하고 형통(亨通)하다고 했다. 나의 경우만 들더라도 이렇게 힘이 드는데, 왜 환(渙)괘는 형통하다고 했을까? 그리고 ‘왕(王)이 사당(祠堂)을 두는 것에 지극하며 대천(大川)을 건너는 것이 이로우니’ 라고 했다. 왕(王)은 환산(渙散)할 때 흩어진 민심을 모을 수 있는 행동을 취한다. 위기 상황에 쳐했을 때 백성들의 흩어짐을 다스리는 것 또한 마음에 있으니, 마음을 하나로 모아야 제대로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방법 중에 크고 지극한 것이 종묘보다 더한 것이 없으니, 상제(上帝)에게 제향(祭享)을 하고 사당(祠堂)을 세워 민심이 돌아와 따르게 했다. 그러므로 환(渙)의 시대에 잘 다스리면 형통하고, 대천(大川)을 건너는 것 또한 이로운 것이다.

 

나는 하루하루를 불안한 마음과 한숨으로 지냈다. 어떻게 해서든 환산(渙散)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나에게 닥친 환(渙)의 물결은 끝없이 퍼져 절대로 멈추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변화는 엄마로부터 시작되었다. 엄마는 당신에게 온 불가항력의 환산(渙散)을 피할 수 없음을 알았다. 피할 수 없으니 받아들여 함께 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그 후로 엄마는 평온을 되 찾았았고  조금씩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엄마와 나는 건강했던 옛날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손을 놓지 않았고, 각자의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할 뿐이다. 나는 문탁에서 화요일 이문서당과 금요일 고정공방 세미나에서 나이롱 공부를 하고 있다. 나에게 힘든 일이 생기면 의지가 되고, 비빌 언덕이 되어준 것은 공부와 동학들이었다. 아래 환(渙)괘의 초육과 구이도 나와 동학들처럼 서로 의지하고 구원이 되어준다.

 

初六 用拯 馬壯 吉. 써 구원 하되 말이 건장하니, 길(吉)하다.
九二 渙 奔其机 悔亡. 환산(渙散)에 안석(机)으로 달려가면 뉘우침이 없어지리라.

 

초육은 처음 흩어질 때에 구원하면 환산(渙散)함에 이르지 않는다. 그러나 재질이 유순(柔順)하여서 혼자서는 힘들다. 초육은 강중(剛中)의 재질이 있는 구이에게 의존한다. 건장한 말은 구이를 가리킨다. 사람이 건장한 말에게 의탁하기 때문에 흩어짐에서 멀리 가는 것으로 구제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길(吉)한 것이다. 구이는 환산(渙散)한 가운데 험함에 처해 있어 뉘우침이 있을만하니, 구부려서 편안한 초육에게 가면 뉘우침이 없어지게 된다. 마침 초육도 그를 필요로 하고, 아직 험한 가운데 있지 않으니 구이는 급히 달려가 편안하게 여긴다. 초육과 구이는 서로에게 정응(正應)이 아니다. 그러나 환산(渙散)의 때를 맞아 초육은 구이에게 안석(机)이 되고, 구이는 초육에게 말이 되어주어 서로를 의지하고 구원한다.                                                함께 걷기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九五 渙 汗其大號 渙 王居 无咎. 환산(渙散)한 때에 큰 호령을 내되 땀이 나듯 하면 환산(渙散)에 대처함에 왕자(王者)의 거처에 걸맞으니 허물이 없으리라.

 

구오는 환산(渙散)할 때에 왕(王)의 큰 호령이 백성들의 마음에 베어들어, 마치 온몸 전체에 땀이 흠뻑 젖어들 듯이 두루 미치게 한다. 왕(王)은 새로운 정치로 백성들이 땀이 나게 하여 그들로부터 믿고 복종하게 한다. 왕(王)이 호령하는 것은 백성들을 새롭게 하는 것이고, 큰 변혁은 아니더라도 개혁정치로서 백성들을 새롭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면 천하(天下)의 환산(渙散)을 구제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왕(王)이 하는 일은 자리에 걸맞기에 허물이 없다. 백성들을 설득할 수 있는 왕(王)의 강한 리더십은 천하(天下)가 흩어질 때 잘 대처해 나갈 수 있다.

왕이 큰 호령으로 백성들이 믿게 한 것처럼, 나는 온 힘을 다하여 걸었다. 여름 땡볕은 온몸이 땀으로 젖게 하였고, 장마와 폭우로 물벼락을 맞은 때도 있었다. 걸으면서 간혹 정신 나간 행동을 하면서도 조금씩 제자리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걷기를 꾸준히 하니 전혀 의도하지 않았는데 덤으로 살이 많이 빠졌다. 그렇게 빠지지 않던 살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세상 참 별일이다. 파지사유에서 오랜만에 동학들을 만나면 내게 얘기한다. ‘무언가 분위기가 달라졌다’, ‘살이 빠져서 예뻐졌다‘ 는 등등...  남의 속도 모르고 예뻐졌다고 한다. 그래도 예뻐졌다고 하니 기분은 좋다.

 

 

댓글 5
  • 2019-10-15 15:53

    오랜만에 고로께님 글 읽으러 들어왔더니 다사다난한 봄날을 보내셨네요....아무일 없이 지내기 힘든 나이가 됐지만 마음 단디 먹고 버텨봅시다!!

  • 2019-10-16 10:59

    걸으면서 터득한 환괘의 이치로 예고없이 닥친 일도 잘~ 흩어내면서 갑시다~화이팅!

  • 2019-10-16 12:00

    아, 그런 일이 있었군요.
    고로께님도, 저도, 우리 모두 물결에 바람이 일어 파도가 일렁일 때를 맞아,
    사당을 세움에 지극히 하고 또 눈 앞에 닥친 큰 강물을 잘 건너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 2019-10-16 18:20

    고로께가 자꾸 걷는 이유가 자주 못나오는 이유랑 같아서 짠하네요. 볼때마다 힘이 되어주면 좋을텐데요...

  • 2019-10-22 07:39

    나, 그 어머니 병, 뭔지 알아요.
    환괘를 다시 보고 싶군요.
    글구...진짜...분위기 멋져졌어요. 빈말 아닌 거 알죠?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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