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중등인문학교 두번째 시간 후기

명식
2019-09-30 13:28
276

 안녕하세요, 2019 중등인문학교 튜터를 맡고 있는 명식입니다.

 이번 주는 2019 중등인문학교 <학교라는 낯선 곳> 두 번째 시간이었습니다.

 

 지난주에 오지 못했던 연주와 새로 합류한 강욱이가 함께한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주는 시험 기간인 관계로 원래 6주차로 예정되어 있었던 영화보기 수업을 당겨서 했는데요. 영화 ‘억셉티드(The Accepted)’를 함께 보았죠.

 

 

 억셉티드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주인공 ‘바틀비’는 입시 시험을 망쳐 대학 진학에 실패하고 맙니다. 베스트 프렌드인 ‘슈레이더’와 바틀비가 남몰래 짝사랑하던 ‘모니카’가 단번에 진학에 성공했기에 바틀비는 더욱 우울해지죠. 게다가 바틀비의 부모님들은 대학을 진학해야 사람 노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 결국 바틀비는 차마 부모님께 진학에 실패했다고 말하지 못하고, 대신 자신과 마찬가지로 진학하지 못한 친구들을 모아 기상천외한 사기극을 계획합니다. 바로 가짜 대학을 만들어내는 거였죠.

 

 

  바틀비는 내켜하지 않는 슈레이더를 꼬드겨 가짜 대학 홈페이지를 만들고, 친구들과 폐건물(버려진 정신병원!)을 청소해 강의실과 기숙사를 꾸미고, 오래 전 교수직을 은퇴한 슈레이더의 괴팍한 삼촌을 가짜 학장으로 세우는 등 나름대로 치밀하게 계획을 진행해나간 끝에 부모님을 속이는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바로 그 때부터였습니다. 바틀비네 대학을 진짜 대학으로 착각한 수많은 낙제생들이 막대한 등록금을 들고 몰려든 겁니다.

 

 

  당황하던 바틀비는 마음을 다잡고 이렇게 된 바에야 진짜 대학을 한 번 만들어보겠다고 마음먹습니다. 그래서 명문대들을 돌아다니며 수업을 청강하고 이미 대학생이 된 친구 슈레이더와 모니카를 방문하기도 하는데, 이게 웬걸. 권위주의적이고 일방적인 대학교 수업은 지루하기 짝이 없는데다 뭘 배우는지도 대체 알 수 없고, 슈레이더는 학벌주의에 찌든 선배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겁니다. 이에 바틀비는 기존 대학과는 다른, 정말로 학생들을 위한 대학을 만들어보겠다고 마음먹습니다. 학생들이 원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직접 물어 커리큘럼을 짜고, 따로 교수를 초빙하는 대신 학생들 서로가 교사이자 선생이 되는 학교.

 

 

  이윽고 바틀비의 학교는 요리, 패션, 스케이드보드, 락앤롤, 연애, 명상, 조각 등 일반적인 ‘공부’와는 한참 동떨어진 수업들로 북적이게 됩니다. 대체 이게 수업인지 축제인지 난장판인지 알 수가 없는 모습이지만, 놀랍게도 바틀비와 친구들, 학생들은 그 어떤 대학생들보다 열정적으로 배움에 임하고 놀랄만한 성과들을 내기 시작합니다. 꽉 막힌 대학생활에 지쳐가던 바틀비의 짝사랑 모니카도 그 놀라운 광경에 감탄하면서 바틀비의 학교로 오고자 하죠. 하지만 결국, 그 시점에서 바틀비의 사기극은 들통나고 맙니다.

 

  바틀비와 친구들은 이제 모든 게 끝났다며 망연자실하지만, 그 때 다니던 대학을 때려치기로 한 슈레이더가 나타나 그들의 용기를 북돋습니다. 이에 바틀비는 마지막으로 교육부에 자신들의 대학을 인정해달라며 항소하고, 결국 그들의 마지막 기회가 될 심의위원회가 열리게 됩니다. 그리고 심의위원회가 열리는 당일, 뿔뿔이 흩어졌던 바틀비 학교의 학생들과 그 부모들은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여들어 그 과정을 지켜봅니다.

 

  심의위원회는 학교란 국가로부터 공인받은 교육기관이며, 국가 제도가 요구하는 바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바틀비의 학교에게 그 자격을 묻습니다. 그러나 바틀비는 그에 맞서 원하는 것을 배우며 배움의 즐거움을 깨칠 학생의 권리를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심의위원장에게 묻죠. 학창시절 당신은 정말 지금과 다른 길을 걷고 싶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느냐고. 당신 역시 가수, 시인, 연주가가 되고 싶지는 않았느냐고. 그렇게 될 수도 있었다고.

 

 

  결국 심의위원회는 바틀비의 학교에게 1년의 유예기간을 주고, 그 기간 동안 자신들의 교육 철학을 증명하라는 판결을 내립니다. 친구들과 학생들, 어느덧 바틀비의 지지자가 된 부모님과 학부모들의 열광적인 환호 속에서, 심의위원장은 나가며 바틀비에게 속삭입니다. “나는 재즈 트럼본을 연주하고 싶었다네.” 바틀비는 대답합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억셉티드’는 영화가 만들어진 미국 본토에선 그리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한 영화입니다. 이야기 자체도 너무 동화처럼 낭만적인데다, 대학 진학률이 40% 정도로 대학을 가지 않는 사람들도 많고, 입시 외에도 다양한 루트로 대학에 갈 수 있는 미국이었기 때문에 바틀비와 친구들의 절박함이 미국 관객들에겐 그리 크게 다가오지 않았던 것이죠.

 

  하지만 반대로 대학 진학률이 매우 높고 수능과 입시가 개인의 삶을 결정한다고 믿어지는 한국에서 이 영화는 상당히 많은 호응을 얻었습니다. 바틀비와 친구들이 만들어가는 기상천외한 대학의 모습도 볼거리이고, 특히 마지막 심의위원회 장면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학교란 무엇일까요? 사전적이고 법률적인 의미에서 그것은 국가로부터 공인된 교육기관입니다. 국가가 가르쳐야 한다고 판단한 것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그를 토대로 학생들을 평가하는 기관이지요. 심의위원장의 말은 틀리지 않습니다. 이것이 우리 사회에 분명히 존재하는 하나의 학교입니다.

 

  학교란 무엇일까요? 바틀비는 반문합니다. 학교란 배움을 행하는 곳이 아닌가? 왜 내가 배워야 할 것, 배우고자 하는 것을 나 아닌 다른 이가 정해야 하는가? 왜 배움은 즐겁고 기쁜 활동이 아니라 무겁고 고통스러운 책임이어야 하는가? 자신들이 만들어낸 수업들이 ‘배움’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는가? 국가가 규정한 배움을 행하는 학교가 있다면, 왜 스스로 배움을 만들어가는 학교는 있어서는 안 되는가? 두 학교는 왜 공존할 수 없는가?

 

  그럼 이제는 우리도 대답할 차례군요.

 

  학교란 무엇일까요?

 

  이 수업이 끝날 즈음, 모두 각자가 자신듸 대답을 가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다음 주에는 헤르만 헤세의 책 <수레바퀴 아래서> (민음사)를 함께 읽습니다!

  한스 기벤라트와 함께, 또 다른 모습의 학교를 만나보도록 합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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