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 이해하기> 두 번째 시간 후기

고은
2019-02-03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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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 콜브룩의 들뢰즈 이해하기두 번째 시간이었습니다. 생명과 차이, 그리고 그로부터 비롯되는 정치학에 관해 다룬 2장과 스타일과 내재성에 다룬 3장을 읽어왔습니다.

 

들뢰즈가 앞선 세대를 넘어선 핵심 개념, 차이

저자가 1장에선 앞선 세대를 들뢰즈가 어떻게 넘고 있는가를 다뤘다면 2장에서 들뢰즈가 -혹은 구조주의와 가장 크게 분별되는 지점이 어디인지에 대해 서술하고 있습니다. 우선 구조주의(+들뢰즈)-을 넘어서는 지점은 차이에 있습니다. 동일성 혹은 개념이 우선시 되어있던 -을 구조주의는 차이를 대두시켰습니다. 그러나 구조주의는 차이라는 개념을 내세우기는 했지만 여전히 차이란 부정적이고 외연적인 것으로 가정하고, 또 그 차이를 발생시키는 주체를 전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적이라고 보았습니다. 여기서부터 들뢰즈의 가장 핵심적인 주제가 나옵니다. 이 책의 저자가 책 제목에 꼭 넣고 싶었다는 단어이자, 아마도 이 책의 가장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지 않나 싶은 주제이기도 합니다. 바로 “‘차이란 현동적인 것이다라는 것이지요. 들뢰즈에 와서 차이란 더 이상 부정적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부정적이라고 인식하는 것 자체가 가상에 불과한 것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면 구조주의는 세계가 재현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이데아와 같이 본질적이고 모든 것의 전제가 되는 것이 있어서, 그것이 세상에 표현되는데 우리는 그것을 차이로써 인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들뢰즈는 재현된다는 생각, 근본적이거나 전제되어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 자체가 가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은 불교의 냄새가 짙게 납니다. 생명이란 우리가 명제 시켜 놓은 것과 같은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그저 역동이거나 생성일 뿐입니다. 이 모든 것은 미리 전제되어 있지도 않고, 그런 것이 가능한 초월적인 외부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저 차이들의 일의면이 존재할 뿐이지요. 그리고 이 차이들은 지각작용에 의해 수축되거나 종합되거나 영토화혹은 코드화되면서 인식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연속된 차이, 차이의 사건만이 존재하기 때문에 구변가능한 점들로 이뤄져있는 것이 아니라, 곡선과 변곡만이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구조주의까지 중요한 것은 변별가능함이었습니다. 그래야만 재현된 세계에서 존재를 인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들뢰즈에 와서는 식별불가능함이 중요해집니다. 진정 생명이란 역동이기 때문에, 우리가 놓치기 쉬운 이 살아 움직이는 식별불가능함에 주목하는 것입니다. 작년 고전대중지성에서 읽었던 스토아 학파나 불교와 접점이 참 많습니다.


 

들뢰즈에게서 짙게 나는 불교 냄새

세미나에서는 책에서 순식간에 지나가버린 개념들을 다시 붙잡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제가 제일 재미있었던 개념은 관조입니다. 관조라는 단어는 종합이나 수축과 함께 나오는데요, 어떻게 이 변화무쌍한 세계를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가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써 등장합니다. 우리는 차이를 총체적으로 지각하지 못하고 때문에 우리의 지각은 차이의 속도를 완화하고 선별해냅니다. 달팽이가 인식하는 세계가 얼마나 신비로운지 아마 익히 들어서 아실 겁니다. 달팽이의 지각 속도와 인간의 지각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전혀 다른 세계를 인식하고 만나게 됩니다. 물론 인간 내에서도 그 속도는 상이할 것입니다.

다른 모든 영혼들처럼 우리는 차이의 수축들이고 관조들이며, 우리가 얼마나 많은 차이를 취하고(관조) 얼마나 많은 차이를 환원하거나 지각하지 않는가(수축) 사이의 진동이다

지원의 질문은 이것이 왜 관조냐는 것이었습니다. ‘관조contemplation인데요, 옮긴이에 따르면 적극적으로 의역하자면 응축이 될 것이고 어떤 곳에서는 응시라고 번역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관조라고 번역된 것은 이 행위의 주체성을 소거하려는 저자의 의지가 드러났다고 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 단어가 들어간 들뢰즈의 문장을 읽어보면 묘한 느낌이 납니다. (어쩌면 제가 조금 다른 의미로 쓰이긴 했지만- 관조하는 스토아학파의 책에서 감명 받은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수축을 통해서 동시에 습관들로 이루어지지만불교의 냄새가 강하게 납니다.

그 수축은 관조를 통해 이루어진다. () 행위하는 자아 아래에는 관조하는, 그리고 행위와 능동적 주체를 모두 가능하게 하는 작은 자아들이 있다. 우리는 우리 안에서 관조하는 이 수천의 작은 목격자들에 의해서 우리의 자아에 대해 말할 뿐이다. 즉 나를 말하는 자는 언제나 제3자이다.”

응축이나 응시는 행위의 주체가 분명해 보이지만, 우리가 세계를 인식하는 것이나 우리의 존재까지도 그저 차이에 지나지 않을 뿐입니다. 불교에 따르면 오온 십이처 십팔계와 같은 것들(맞나요?), 들뢰즈에 따르면 우리의 작은 자아 같은 수천의 작은 목격자에 의해 말해질 뿐입니다. 그러니 굳이 표현하자면 나를 말하는 자는 언제나 제3자인 것이지요. 이 책에서는 끊임없이 인간-라는 개념이나 존재의 허황에 대해서도 꼬집고 있습니다. 불교의 무아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들뢰즈의 온갖 개념어로 이해하려면 정신이 없지만, 어쩐지 불교를 떠올리며 읽으면 이해하기가 훨씬 쉬운 것 같습니다. (사실 차이와 생명의 개념도 동양고전을 생각하면 훨씬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불교도 들뢰즈도 잘 알지는 못하는 사람으로써, 아직은 확실히 머리에 들어오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들뢰즈의 원전을 읽는 것이, 읽으며 만나게 될 여백들이 기대됩니다.

 

 

다음시간에는 4장과 5장을 읽고 와서 함께 이야기 합니다. 동은과 우현이 무사히 발제해올 수 있기를!


댓글 1
  • 2019-02-06 18:13

    저도 오랜만에 머리가 지끈지끈. 그래도 성기현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니 한결 마음이 놓이더군요. 우리가 큰 방향은 맞게 가고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명식이형 덕에 68이라든지 하는 역사적 배경도 잘 짚고, 개념적인 것들도 많이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가닥이 잡히는 것 같다는 생각해요. 저도 장자-들뢰즈 세미나가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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