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소자와 글쓰기 네번째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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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10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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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트롱 6-7장에 대한 사전 세미나에서 저는 ‘이성의 무력함을 어떻게 넘을 수 있을까?’하는 질문을 중심으로, 새털님은 <에티카> 4부 정리 37의 주석2를 중심으로 발제문을 쓰기로 했습니다. 자연히 저는 6장을, 새털님은 7장을 중심으로 쓰게 되었죠. 

   저의 발제문은 질문이 적었습니다. 미미한 이성은 가까스로 등장하지만, 정념과의 힘의 대결에서 참패합니다. 여기서 이성이 승리하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만큼 힘듭니다. 우리가 외적 원인에 의해 영향 받는 한 우리는 정념의 실정성을 막지 못하고, 우리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미미한 참된 인식도 추상적으로 머무는 한 구체적이고 즉각적으로 느껴지는 정념을 이기지 못합니다. 뿐만 아니라 일시적으로 이성적 판단으로 보이는 선악에 대한 인식 또한 기쁨과 슬픔이므로, 이성의 미미한 발전단계에서 충동을 물리칠 수가 없습니다. 여기에 시간적이고 양상적인 고려까지 포함된다면, 이성의 요구는 우리가 즉각적으로 경험하는 정념들에 비해 멀고도 우연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습니다. 
   7장에서도 마트롱은 이를 계속해서 ‘요원한 가능성’이라 부릅니다. 우리는 기껏해야 ‘앎에 의한 고통’에 빠지며, ‘즉자적 관점’에 매몰됩니다. 그러나 이런 바늘구멍에 대해 말하면서도 끈질기게 요원한 ‘가능성’이라고 말합니다. 즉, ‘불가능하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성적 욕망을 체험하지만, 그들에게 이는 단지 여느 욕망 중 하나로, 그것도 대개는 매우 약한 욕망으로 나타난다.(398)” 마트롱은 우리가 쉽게 빠지는, “대자적” 관점과 “즉자적이면서 우리에 관한” 관점 사이의 심연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 쉽게 건너 뛰어버림으로써 한쪽이 다른 한쪽에 희생되는 것을 말입니다. 이것을 치열하고, 섬세하게 짚으면서 ‘느리게’ 넘을 때만이 우리는 다음단계를 향해 갈 수 있습니다. 이것을 저는 마트롱이 포착한 스피노자의 ‘경험’의 세계에 대한 ‘긍정’, 혹은 긍정을 넘은 ‘강조’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보지 않고는 되지 않는다. 그런 말입니다. 우리의 공부도 그렇게 되어야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새털님의 질문은, ‘홉스와 스피노자가 뭐가 다른가?’였습니다. 정리 37의 주석을 보면, 홉스와 스피노자 사이의 차이가 오히려 혼란스럽습니다. 그래서 새털님은 차근차근 스피노자를 따라갑니다. “사물을 그 자체로 고찰할 경우 선과 악은 없다-덕의 기초는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는 것이고, 이 안에서만 성립 한다-존재 유지는 능력에 달렸다-능력은 자신에게 유용한 것을 아는 것이다-인간에게 유용한 것은 인간이다-그러나 인간은 많은 경우 정념에 휩싸여 있으므로, 인간은 인간에게 적일 수도 있다.” 인간이 인간에게 적일 수 있는 경우는 그가 정념에 휩싸여 있을 때입니다. 여기서 인간 대 인간의 만남은 홉스의 말처럼 전쟁상태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언제나 정념에 사로잡혀있는 것이 아니라면, 전쟁이 아닌 협력의 관계 또한 가능합니다. 따라서 홉스와 달리 스피노자와 마트롱, 새털님이 집중하는 곳은 다시 ‘그 바늘구멍’입니다. 논리상 인간들이 이성적일 ‘수’ 있다는 명제를 배제할 근거는 없다!
   정리 37의 주석 2는 도시의 발생을 설명합니다. 도시의 탄생 과정까지는 홉스와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도시의 탄생 이후입니다. 도시는 분명 선악이 없는 자연 상태의 인간들이 존재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자연권을 포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자연권의 포기는 곧 선악의 탄생입니다. 도시의 지속 역시 이성이 아닌 정념에 의해 강제됩니다. 처벌의 공포. 홉스에겐 이것이 도시의 결론이자 본질이었겠으나, 스피노자는 이것만으로 도시가 유지 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도시를 유지하기 위해 각자가 이성적인 구성원이 되어야한다. 도시를 유지하기 위해서 법의 처벌이라는 공포가 필요하지만, 공포로만 강제된다면 필연적으로 도시민의 능력의 감소를 가져온다. 도시민 능력의 확장은 기쁨에 의해 인식에 의해 가능하고 도시에 자유와 활기를 가져온다.” 들뢰즈가 말한 것처럼, “좋은 도시야말로 이성 자체의 형성을 가능케”합니다. 도시는 공통관념의 풀이고, 공통경험의 경유지입니다. 다양함과 빈번함의 구성을 통해 올바른 결정을 향할 수 있는 가능성의 장입니다. 우리는 정념을 경유해서만 바늘구멍 이성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정념으로 돌아와 매번 정념을 경유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개인적, 상호적 이성의 ‘토대’만을 보았을 뿐입니다. 개인적, 상호적 이성의 ‘전개’를 통해 바늘구멍은 넓어질 것인가?!
댓글 2
  • 2017-10-11 01:21

    아...지원이 후기가 올라왔네요^^

    저는 세미나시간에도 얘기했듯이 바늘구멍을 어렵게 통과할 수 있다는 가능성보다

    그 가능성에 대한 긍정과 촉구가 소위 말하는 공자님 말씀처럼 들린다는 점이에요

    `공자님 말씀 듣기 좋고 맞는 말인데 어려워` 라는 허들을 우리는 넘을 수 있는지...

    어떻게 넘어야 하는지....

    그래야 정말 긍정 아닌가....

    이런 고민을 하고 있어요

    플라톤공부에서도 이건 똑같은 고민입니다.



  • 2017-10-11 08:28

    그렇기에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가능성에 대한 긍정이나 촉구가 아니라

    무한한 인과 연쇄 속에 있는 유한양태들-인간 상호 간의 관계, 곧 정치의 문제가 아닐런지요.(삶정치라고 해도 좋겠지요?)

    8장이야말로 지난 시간 새털의 발제문에서 주목한 4부 정리37의 주석2에 대한 꼼꼼한 독해입니다.

    지난 시즌에 읽었던 텍스트들을 환기하면서 마트롱을 읽었으면 합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키비타스, 사회상태와 정치의 파노라마가 펼쳐지고,

    그렇기에 더욱더 윤리학과 정치학의 관계를 따지는 질문이 촘촘해져야 하지 않나 싶군요.

    메모에서도 자신이 붙잡고 있는, 혹은 붙잡고 싶은 문제의식의 윤곽이 드러나기를 기대해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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