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바리주역>11회-지천태괘로 푼 혁명의 순간

게으르니
2018-08-01 22:34
642

 


<어리바리 주역>은 고전공방 학인들의 주역 괘글쓰기 연재물의 제목입니다.

    말 그대로 어리바리한 학인들이 어리바리한 내용으로 글쓰기를 합니다. 형식도 내용도 문체도 제 각각인 채 말입니다.

    하지만 압니까? 언젠가는 <주역>, 그 심오한 우주의 비의, 그 단 한 자락이라도 훔칠 수 있을지^^ 

지천태괘로 푼 역사의 순간

지천태2-1.jpg 

태괘는 땅이 위에 있고 하늘이 아래에 있는 모양이다. 실제 자연의 형상과 반대이다. 그런데 괘사의 풀이를 보면 길하고 형통 하단다. 하늘은 아래에 있지만 위로 향하는 기운이며 땅은 위에 있지만 아래로 향하는 기운이기 때문이다. 하여 태괘는 천지가 만나는 형국이니 통하여 화합할 괘이다. 신영복 선생님은 강의에서 태괘를 혁명의 괘로 풀 수 있다고 했다. 천지가 뒤바뀌는 형국이 도래하는 혁명을 거쳐 한 사회의 잠재적인 역량을 해방한 후 화합으로 나아가는 이치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역사에서 살펴보자면 천지가 뒤바뀌는 혁명의 때를 만나 새로운 왕조를 건국하는가 하면, 실패로 마감하기도 한다. 중국 천하를 처음 통일한 진나라를 멸망시킨 유방이 전자라면, 진섭은 후자이다. 그들이 혁명의 때를 만나 어떻게 처신했는지를 태괘로 풀어보자.


홍곡이 되지 못한 연작의 허세

 

진섭은 진()나라 사람이다. 진시황이 죽고 이세가 즉위한 해 진섭은 조정의 빈민 이주정책으로 변방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변방으로 이동하는 와중에 큰 비를 만나 도로가 막혔다. 결국 조정에서 정한 기한 내에 도착할 수 없게 되었다. 진나라 법에 기한을 어기면 모두 참수형이었다. 진섭은 함께 움직이는 무리들에게 똑같이 죽을 바에야 나라를 위하여 죽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선동했다. 천하 사람들을 위하여 진나라의 가혹한 통치를 끝장내자!

진섭의 명분은 억눌려있던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너나할 것 없이 진섭에게 동조하면서 그들의 무리가 이르는 현마다 전차와 기병은 물론 수만 명의 병사들이 합류했다. 괘의 초구 효사는 띠풀을 뽑듯이 함께 가야 길하다고 했다. 띠풀을 한 움큼 잡고 뽑으면 줄기가 함께 뽑힌다고 한다. 진섭의 선동에 마음을 낸 이들이 거대한 무리를 이루면서 그를 임금으로 추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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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섭이 난을 일으키고 임금이 되었다는 소식이 퍼지면서 천하는 기다렸다는 듯이 진나라 관군에게 반기를 들고 옛 나라로 복귀하여 임금을 자처하는 무리들이 나타났다. 진섭은 그들과 연합하면서 세를 불려나갔다. 하지만 그가 임금 자리에 있었던 기간에 6개월에 불과했다. 구이 효사는 멀리 있는 사람도 포용하고 맨발로 황하를 건너는 사람도 포용하고, 멀리하거나 버리지 않으며 붕당이 없으면 중도를 행함에 짝을 얻으리라고 했다. 진섭은 임금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멀리서 찾아온 옛 친구들을 참수했다. 그의 머슴 시절을 아는 그들이 임금의 위엄을 해친다는 이유였다. 또 자신이 신임했던 두 장수에게 전권을 일임하니 다른 장수들은 진섭을 만날 수조차 없었다.


애초에 진섭을 따랐던 사람들은 진나라를 물리치자는 대의에 동조했던 것이다. 그 대의를 유지할 때만이 그의 위엄이 통했을 텐데 진섭은 그러지 못했다. 멀리서 찾아온 어려운 시절의 벗을 포용하지 못하고 붕당을 이루는 그에게 더 이상 사람들이 모이지 않았다. 진나라 관군과 대적하기 위해 직접 군대를 이끌고 나갔지만 점점 패배의 횟수가 늘어갔다. 결국 그의 수레를 이끌던 부하의 손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가혹한 법 집행으로 고통 받던 사람들에게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다며 창을 높이 들었던 진섭의 선동은 한 줄기 빛이었을 것이다. 그 빛에 모여든 사람들과 함께 혁명의 길에 들어섰지만 그의 역량은 곧 한계를 드러냈다. 머슴으로 살면서 겪는 부당한 대우를 벗어나고 했을 때 그의 뜻은 홍곡(鴻鵠)이었지만, 임금이 된 이후 그가 보인 행동은 연작(燕雀)에 불과했다. 혁명을 감당하기에는 허세가 너무 심한 참새였다.


대장부가 천하를 품을 마땅한 길

 

진섭의 난이 일으킨 바람은 패현에서 정장 노릇을 하고 있던 유방에게도 미쳤다. 평소에도 따르던 무리가 많았던 그에게 난이 일어나자 무리를 이끌고 선봉에 나서라고 부추기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유방은 패땅의 우두머리가 되어 반란에 가담하여 점점 세를 불려갔다. ()나라에 맞서 연합군을 형성한 반란군은 당시 승승장구하던 항우가 아니라 유방을 함곡관으로 진격시켰다. “덕망 있고 관대한 자인 유방을 보내 진나라 부로들을 끌어들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함곡관을 거쳐 함양에 들어간 유방은 그 신망을 져버리지 않고 부로들을 위로했다. 또 진나라 조정의 귀중품은 털끝하나 손대지 않고 봉쇄한 후 궁궐을 떠났다. 구삼 효사에 의하면평탄하기만 하고 기울지 않는 평지는 없으며 지나가기만 하고 되돌아오지 않는 과거는 없다. 어렵지만 마음을 곧게 가지고 그 믿음을 근심하지 마라. 식복이 있으리라했다.


유방이 함양 진시황의 아방궁에 입성해서 그 진귀한 보물들을 그냥 두고 싶었겠는가. 하지만 유방은 참모들의 충고를 귀담아 듣고 그 마음을 접었다. 유방이 먼저 함양에 들어간 것을 안 항우가 공격하려 할 때도 홍문으로 가서 항우에게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순간을 수없이 거치면서 그는 때를 기다렸다. 혼란을 다시 평정하여 천하를 호령하는 대장부가 되려했던 그 마음을 되새기며. 항우는 유방이 봉쇄해둔 모든 것들을 약탈하고 파괴하고 불 질러 진나라 백성들의 민심을 잃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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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사의 효사는 훨훨 날 듯이 부유해지지 않아도 이웃과 함께하여 경계하지 않아도 믿는다.”고 했다. 패자가 된 항우는 논공행상에서 유방을 찬밥 취급했다. 이에 불만을 품은 유방은 결국 항우와 패권을 다투게 되었다. 실제 전력에서 유방의 군대는 항우를 대적하기에 역부족이었다. 전쟁의 중반기 유방과 항우가 직접 담판을 짓기 위해 계곡을 사이에 두고 회동했다. 유방은 항우의 죄를 열 가지로 조목조목 나열했다. 항우는 분노를 참을 길 없어 숨겨놓았던 쇠뇌를 당겨 유방을 명중시켰다. 유방은 태연하게 저 놈이 내 발가락을 맞혔다고 외쳤다. 진지로 돌아와서야 가슴을 움켜쥐고 쓰러진 유방. 참모들은 군사들의 사기를 위해 다시 병사들 앞에 나가야 한다고 재촉했다. 유방은 통증을 참으며 참모들의 의견을 따랐다. 그는 참모들이 짜는 전략을 전적으로 수락했으며 그들의 유능함을 한 치도 의심하지 않았다. 기원전 202년 해하에서의 전투를 끝으로 항우 군대를 물리친 유방은 황제에 즉위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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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가 된 유방은 신하들에게 물었다. 항우는 천하를 잃고 자신은 얻은 까닭은 무엇인가. 신하들은 천하와 함께 이익을 나눌 줄 아는 유방의 인품을 들었다. 유방은 고개를 저었다. 그대들이 모르는 것이 있소. 전장에 짜낸 장량의 계책, 후방에서 안정된 군량 보급을 지원한 소하의 업무 능력, 백만 대군을 이끈 한신의 전투력이 있었기 때문에 천하를 얻을 수 있었소. 육오의 효사는 제을이 누이를 시집보냈다. 복되고 크게 길하리라.” 인데 이것은 제왕(제을)의 자리에서도 아랫사람에게 누이를 시집보내는 겸손함이 크게 길하게 하리라는 의미라고 한다. 천하를 얻을 수 있었던 결정적 요소는 자신이 아니라 자신을 보필했던 신하들의 능력임을 인정하는 황제의 겸손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신하가 있었을까. 위엄은 겸손을 통해 획득되는 것임을 유방이 제대로 보여 준 예이다.


유방이 패현의 정장으로 있던 시절 진시황의 행차를 보면서 대장부라면 마땅히 저 정도는 되어야하지 않겠는가 라고 탄식했다고 한다. 천하의 통일 황제로서 그 위풍당당한 행차를 보면서 대장부라면 천하를 품는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탄식으로 들린다. 눈앞의 이익과 자잘한 승리에 연연해서는 그 큰 그림에 어울리는 위엄을 얻을 수 없다. 수많은 위기와 그로 인한 패배를 헤쳐 나가면서도 천하를 품을 대장부의 품격을 잃지 않으려 했던 유방의 인품, 천하의 현자들이 그를 선택한 까닭이었을 것이다.

 

자연의 이치는 춘하추동이 반복되듯이 인간사의 흥망성쇠도 반복된다. 하여 한()나라를 세우고 고조가 된 유방 역시 이후 쇠퇴하는 때를 맞이하여 천하통일을 함께 했던 어제의 동지들을 오늘의 적으로 처단한다. 그 와중에 부인인 여씨 집안에게 왕위가 넘어가기에 이른다. 이후 다시 유씨에게 복귀되기까지 내분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흥미로운 것은 유씨와 여씨가 왕위를 둘러싸고 암투를 벌이느라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고, 그 결과 백성들의 살림살이는 풍족해졌다고 한다. 상효의 성이 무너지고 해자를 메우니 군대를 쓰지 말라는 의미가 이렇게도 읽힌다. 혁명으로 세상이 뒤집힌 가운데 성안에서는 내분이 끊이지 않는 동안 전쟁이 멈추고, 그 사이 백성들은 농사에 힘써서 살림살이가 펴지다니. 그 혁명의 결과로 백성들이 살만한 때를 누렸다니, 하늘과 땅이 화합하여 태평하다는 지천태괘가 딱 맞아떨어진 것인가?

 

*지천태괘의 풀이는 신영복 선생님의 강의,주역 부분을 따랐습니다.


댓글 4
  • 2018-08-02 08:02

    상효의 활용이 흥미롭군요. 유방이 진섭과 마찬가지로 친구를 적으로 삼아도 상황이 다른건 권력이 달라서 그럴까요? 권력자 지네끼리 싸우면 백성들은 편안할수도 있다는게 선뜻 이해되지는 않지만 큰 전쟁을 피하면 상대적으로 그럴수도 있겠다 싶네요.

    역쉬 사기하면 게으르니군요~ 

  • 2018-08-02 16:25

    사기와 주역을 연결시키니 아주 재미있네요.

    성이 무너졌다는건 태의 시대가 끝났다는건데, 그렇다면 혁명은 끝나고 백성들은 바야흐로 살만하게 되었다는 것인가요.

    그게 권력투쟁에 힘쓴 위정자들 덕분? ㅋㅋ

  • 2018-08-05 08:51

    주역과 사기의 만남이 재미있습니다.

    어쩌먼 진섭은 혁명의 시작이었고 유방은 혁명의 마무리,

    그리고 주역은 백성인 엄청난 변혁의 시대였네요.

  • 2018-08-09 16:42

    심오한 주역을 이야기로 풀어주시니 재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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