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曰可曰否논어>21회-충고보다 중요한 것

게으르니
2018-07-29 02:23
320

  <曰可曰否논어>는 '미친 암송단'이 필진으로 연재하는 글쓰기 입니다.

 子貢問友. 子曰, “忠告而善道之, 不可則止, 毋自辱焉.”(안연,23)
 
자공이 벗과의 사귐에 대해 물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진심을 다해 말해주고 잘 이끌 되 불가능하면 그만두어서 스스로 욕되지 말게 하여야 한다.”

 『논어를 읽다보면 어떤 맥락에서 이런 대화가 오고 갔을까 궁금해질 때가 있다. 물론 후대의 주석가들은 당시 역사 상황에 비추어서 이런 저런 해설을 내놓는다. 또 제자마다 다른 성향인 것을 감안하여 같은 질문에도 다른 대답을 했다고도 한다. 위의 문장에서 보자면 자공은 어떤 맥락에서 저 질문을 했을지 도무지 알 수 없다. 당시 공자 학단에서 여러 제자들과 함께 지내면서 벗과 사귐에 문제가 있었을까? 벗과의 사귐에 대해 물은 다른 제자들이 없어서 자공의 성향을 염두에 둔 질문인지도 파악이 안 된다


 여튼 공자님의 대답은 너의 진심을 다해 그의 잘못을 일깨워 깨달을 수 있도록 말해 주되,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면 멈추어서 스스로 욕되는 상황에 이르지 말라고 했다. 나는 이 말이 절교하라는 말로 들린다. , 진심어린 충고가 벗에게 통하지 않음, 즉 불가하다고 판단하면 더 이상 교제를 할 필요 없다. 그러다 너만 욕보기 십상이니까. 벗이 진심어린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는데 계속 사귈 수 있을까? 좌구명이라는 사람은 원망을 숨기고 그 사람과 벗하는 것을 부끄러워했는데 공자님도 그렇다고 했다. 충고를 않는 친구와 사귀며 원망을 숨기느니 절교가 여러모로 깔끔하지 않은가. 그런데 난 이 깔끔하게 읽히는 공자님의 말씀이 왠지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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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진심어린 충고라는 것은 어떻게 드러나는가? 나는 진심을 다하여 말해 주었지만 상대방에게 그 진심이 가닿지 않았기 때문에 충고를 따르지 않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충고가 통하지 않은 것은 상대의 불가능 못지않게 나의 불가능도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 말로 설득하는 능력의 부족이든지 또는 상대가 처한 상황을 파악하는 관찰 능력의 부족 등등 말이다. 충고가 통하지 않는 맥락은 재처 두고 진심이라는 일방적인 판단이 불편하다.


 무리수를 두어 자공이 저렇게 질문한 맥락을 찾다가 문득 염구가 떠올랐다. 염구는 공자학단 출신으로 노나라 대부인 계씨 집안에 가신으로 가게 되었다. 그는 대부 집안일을 도맡아 하면서 마을 사람들에게 가혹하게 세금을 징수하여 계씨 집안 살림을 불렸다. 이를 본 공자님은 제자들에게 염구를 자신의 문하에서 쫓아내라고 호통을 쳤다. 염구와 함께 공부했던 자공은 이 과정들을 겪으며 벗과의 사귐에 대해 고민했던 것은 아닐까. 그런 제자에게 공자님은 진심어린 충고가 통하지 않는다면 절교가 낫다는 속뜻을 에둘러 저렇게 말씀하신 건 아닐까. 같이 배웠으나 바라보고 가는 길이 달라져버린 벗과의 절교는 단호할수록 좋다. 하지만 어디로 가야할지 함께 길을 찾는 벗과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때 진심어리다고 여기는 충고나 불가하다는 판단이거나 간에 서로에게 상처주기 일쑤다.


 문탁은 우정의 공동체를 지향한다. 그래서 무엇이든 혼자보다는 친구와 함께 하는 것이 더 좋다고 여긴다. 함께 세미나를 하며 에세이를 써서 합평을 하고 여러 활동들을 함께 꾸린다. 그 과정에서 의견이 다른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럴 때 친구의 의견이 나와 다르다고 받아들이면서 쉼 없이 차이를 조율하려 노력하기도 하지만, 때로 서로의 의견에 대해 틀렸다고 판단하여 언성이 높아지고 마침내 감정이 상하고 만다. 매순간 진심어린 충고였지만 서로에게 상처만 남기고 만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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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충고를 멈춰보는 것은 어떨까. 그 대신 친구에게 진심을 담아 물어보자. 만약 친구가 대답할 마음을 낸다면 그 말을 들으며 내 머릿속에 파생되는 수만 가지 충고의 말이 목구멍을 뚫고 나오려고 용을 쓰는 것을 참는다. 그러자면 긴장감이 필요하다. 경험에 비추어 들이대는 훈수로부터 멀어지는 긴장, 자기 확신에 사로잡힌 근거 없는 장담을 흘리지 않는 긴장이다. 그 긴장감 속에는 가능과 불가능의 분별이 작동하지 않는다. 그래서 스스로 욕되지 않을까 염려하는 계산속도 없다. 섣부른 충고보다 중요한 것, 그것을 멎게 하는 긴장감이다. 그 긴장을 터득하자. 

댓글 3
  • 2018-07-30 14:27

    충고를 했는데 안 듣는다면 절교하라고 공자님이 하셨을까요? ^^

    저는 그냥 충고를 그만하라고 하셨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지내다보면 굳이 절교 안 해도 사이가 소원해 지더라구요. 

    충고를 멈추는 긴장감이 필요하다는 샘의 글을 읽으니, 말하기 좋아하는 자공이 떠오르네요. 

    그래서 공자님이 이렇게 말하지 않았나.......

  • 2018-07-30 19:37

    글쎄요... 듣는 사람이 잘 알지 않을까요?

    상대의 말이 진심의 충고인지... 자기에 견주어 타인을 재단하려는 훈수인지를...

    옳고 그름의 생각 너머에 뭔가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게...

    뭘까요? ㅎㅎ^^

  • 2018-07-30 23:37

    충고를 한다는 것은 상대에 대한 진심어린 사랑이 담겨 있을때 할 수 있겠지요.

    그만큼 진실한 마음을 다한 것이라면 

    그만둠에도 미련이 남지 않을것이라 생각이 드네요.

    충고를 할 때 생각해 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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