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시간 후기

명식
2019-04-01 14:55
346

 

  안녕하세요명식입니다.

 

  23일은 텍스트랩 글쓰기의 미학 첫 번째 시간이었습니다그 날 후기 쓸 사람을 정했어야 했는데제가 깜박 잊고 정하질 못했네요……그래서 첫 번째 시간 후기는 제가 쓰도록 하겠습니다.

 



  첫 시간인 만큼 프로그램과 커리큘럼그리고 각자에 대한 소개로 시작했는데요이전에도 길 위의 인문학을 함께 했던 새은채진거기에 이번에 새롭게 함께하게 된 해미그 날 몸이 좋지 않아 조금 늦은 초빈과 보조 튜터로 함께 할 고은까지 총 다섯 명이 함께했습니다프로그램과 커리큘럼 소개는 첨부 파일을 살펴주시고……. (걷은 프린트도 이번 시간에 돌려줄테니 걱정 마시고요!) 거기에 각자 소개를 할 때, ‘글쓰기에 대한 서로의 이야기를 푸는 방식으로 했었지요.

 

  “내가 가장 최근에 쓴 글은 무엇인가?”


  “지금까지 살면서 읽었던 글 중 가장 좋아하는 글 가장 싫어하는 글은?”


  “사람들은 왜 글을 쓴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어떤 글을 쓰고 싶은가?”

 

  다들 솔직하고 성심성의껏 대답을 써주어서 서로에 대해 좀 더 알아가는 기회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학년회장 선거를 위해 글을 쓰는 사람교복 규제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위해 글 쓰는 사람공연과 전시를 풀어내는 글을 쓰고픈 사람잘 정리되는 글을 쓰고픈 사람……글쓰기에 대한 각자의 경험과 생각바람을 듣고 나니 저 개인적으로는 무언가 훨씬 더 여러분에 대해 잘 알게 되었다는 느낌이었어요앞으로도 이 프로그램을 하는 동안 여러분이 이 내용들을 계속 가져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특히 사람들은 왜 글을 쓰는가, “나는 어떤 글을 쓰고 싶은가에 대한 대답은 꼭프로그램이 끝난 다음 그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 그대로인지조금 바뀌었는지를 돌아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소개를 마친 다음에는 제가 준비해온 몇 가지 글들을 함께 읽었습니다.

 

  첫 번째 글은 중국 명나라 사람 심승이 딸을 위해 지은 제문 <제진녀문>.

  두 번째 글은 아일랜드의 시인 W.B. 예이츠의 시 <그는 천국의 옷감을 소망하네>.

  세 번째 글은 미국 연방대법원의 <동성 결혼 합법화 판결문>.

  마지막 글은 일본의 대중소설 작가 와타리 와타루의 소설 <역시 내 청춘 러브코미디는 잘못됐다> 였죠.

 

  시대도지역도장르도뭐 하나 같은 점 없는 네 개의 글들이었습니다그것을 돌아가면서 한 번씩 읽고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 ……딸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 것이 이 세상사이다……너보다 열흘 앞서 두 살 어린 동생 아손(阿巽)이 너와 함께 몸져누웠다가사흘 뒤 아손이 죽고 너 또한 떠나버렸구나이제 더 이상 너와 놀아줄 상대도 없지만적어도 너도 잘 아는 동생과 함께 가는구나너는 걸을 수 있겠지만네 동생은 이제 겨우 불안하게 발걸음을 떼는 상태란다어디를 가건손으로 네 동생을 꼭 붙잡고 가렴그리고 서로 좋게 지내면서다투는 일은 없도록 하렴.

  나는 항상 네 생각을 한다내가 얼마나 너를 그리워하는지 안다면꿈속에서나마 자주 돌아 오거라그리고 만일 인연이 허락해준다면나의 자식으로 다시 태어나거라…….」

 

 

  제진녀문을 읽으면서는 딸을 잃은 아버지의 사무치는 고통을 느낄 수 있었죠딸보다는 아들을 중히 여기던 사회임에도아니 어쩌면 오히려 그렇기에 딸에게 미처 다 하지 못한 말을 토해내는 아버지의 글수백 년 전 중국의 글임에도우리와는 전혀 다른 삶의 방식과 가치관을 가진 사회를 살았을 사람의 글임에도 마치 오늘날 쓰인 것만 같은 이 글을 통해우리는 시대를 넘어 글쓴이를 이해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예이츠의 시는 어떻던가요?

 

 

   「나 가난하여 가진 것 꿈뿐이라

   내 꿈을 그대 발밑에 깔았습니다.

  사뿐히 밟으소서그대 밟는 것 내 꿈이오니

 

 

  누군가는 여기서 헌신적인 연인의 모습을또 누군가는 뒤따라올 후학들을 배려하는 선배의 모습을 읽었죠또 누군가에게는 지나친 헌신적 태도가 거북하기도 했고또 누군가는 감동적이기도 했습니다.

  아그리고 수업 시간에 잠깐 이야기했던 예이츠와 그의 연인 모드 곤의 이야기를 여기 첨부해둘게요. (http://blog.daum.net/xxy1976/2690)

  이 다음은 동성 결혼 합법화 판결문이었죠?

 

 

  「결혼보다 심오한 결합은 없다결혼은 사랑신의헌신희생 그리고 가족의 가장 높은 이상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혼인관계를 이루면서 두 사람은 이전의 혼자였던 그들보다 위대해진다이들 사건들의 일부 상고인들이 보여주었듯이,결혼은 때론 죽음 후에도 지속되는 사랑을 상징한다.

  이 남성들과 여성들이 결혼이란 제도를 존중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그들을 오해하는 것이다그들은 결혼을 존중하기 때문에스스로 결혼의 성취감을 이루고 싶을 정도로 결혼을 깊이 존중하기 때문에 청원하는 것이다그들의 소망은 문명의 가장 오래된 제도 중 하나로부터 배제되어 고독함 속에 남겨지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법 앞에서 동등한 존엄을 요청하였다.

  연방헌법은 그들에게 그럴 권리를 부여한다.」

 

 

  마치 헐리웃 영화의 엔딩 나레이션으로 나올법한혹은 마블의 히어로 캡틴 아메리카가 읊을법한 느낌. ‘미국적인’, 장엄하고자신만만하며압도적인 느낌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딱딱하고 밋밋한 공문서와는 전혀 다른 글이었죠.

  우리는 이 글의 무엇이 우리에게 그런 느낌을 주는지(‘헐리웃 영화 나레이션 같은’ 게 대체 무엇인지), 또 실제 동성애자들은 이 글을 읽고서 실제로 어떤 느낌이 들었을지 같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은앞의 무거운 글들과는 다른 가볍기 그지없는 청춘소설.

 

 

   「가령 실패가 청춘의 증거라고 한다면친구 만들기에 실패한 인간도 아직 청춘에 한 가운데 있는 것일 뿐이다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겠지별것 없다전부 그들의 끼워 맞추기에 지나지 않는다그렇다면그것은 기만이다거짓말도 기만도 비밀도 속임수도 규탄 받아야만 하는 일이다그들은 악이다그리고 그것은역설적으로 청춘을 구가하고 있지 않은 내가 올바른 정의라는 뜻이다그러니 결론을 말하겠다.

  "인싸들 다 죽어라!"

 

  선생님은 이마에 핏줄을 세우면서 내 글쓰기 숙제를 큰 목소리로 읽어댔다이렇게 듣고 있다 보니 자신의 문장력이 아직 모자라다는 것을 눈치채버린다조금 어려운 단어를 늘어놓으면 유식해보이지 않을까 하는안 뜨는 작가나 할법한 얄팍한 수작을 들킨 기분이다.

  이제 이 미숙한 문장들을 하나하나 지적당하는 건가.

  선생님은 작문을 다 읽고 난 후 자기 이마에 손을 대고선숨을 가다듬었다.


  " 내가 수업에서 냈던 과제가 뭐였었지?"

  "네에, '고교생활을 돌아보며'라는 주제로 글을 쓰는 거였습니다."

  " 그렇지그런데 왜 너는 범행성명을 쓴 거냐테러리스트냐그게 아니면 바보냐?"」

 


  소설을 읽고는 등장인물들특히 화자에 대한 느낌을 나누었는데요자의식이 엄청 강할 것 같아 주변 말을 안 들을 것 같다는 사람도 있었고허세를 부리는 것이 귀엽다만약에 내가 선생님이라면 절대 미워하지 못할 것 같다는 사람도 있었죠이렇게 평가는 갈렸지만자세히 들어보니 양쪽 모두 자기 경험에 비춘 것이라 둘 다 납득할만한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이렇게 네 개의 글을 읽고 나니 시간이 이미 4시를 넘겨허겁지겁 이야기를 마무리해야 했습니다만대충저는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동성 결혼 합법화 판결문>에서 물씬 풍기는 캡틴 아메리카’ 스타일우리가 막연히 미국적이라고 느끼는 그것인간의 권리와 평등을 강조하고그럼으로써 우리 모두가 헌법 아래 다 같이 하나임을 엄숙하고 자신만만하게 선언하는 그 태도는 미국이라는 국가의 특징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것입니다이 판결문이 주는 느낌은 미국이기에 나올 수 있는 것이죠이 판결문을 쓴 사람은 물론 정해져 있지만그 사람이 그런 글을 쓸 수 있었던 미국이라는 국가를 이루고 있는 수많은 요소들이 그 사람에게 끼친 영향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 사이에서 예이츠의 시 <나는 천국의 옷감을 소망하네>와 <역시 내 청춘 러브코미디는 잘못됐다>의 해석이 갈렸던 것은 우리 모두가 각자 경험한 바가 다르고가지고 있는 가치관이 다르고처해 있는 상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그렇기에 동일한 하나의 텍스트가 우리에게 던져졌음에도 우리 안의 서로 다른 맥락들과 연결되어 다른 해석들을 이끌어낸 것이겠지요.

 

  그렇기에 글을 접한다는 것은 글을 쓰는 것이든 읽는 것이든 간에 수많은 맥락수많은 흐름과 연결됨을 의미합니다내가 글을 쓸 때도 나라는 인간과 맞닿아 있는 수많은 선들(나를 둘러싼 세계)이 내 글에 담겨 새롭게 변형될 것이고내가 누군가의 글을 읽을 때에도 나와 닿아있던 선들이 그 글에 담긴 선들과 연결되어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낼 것입니다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제진녀문>에서 그러했듯 시공을 초월한 동질감을 느낄 수도 있고동시대의 글에서도 엄청난 이질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하지만 그 어느 쪽이든 간에 세계를 달리보게 된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면에서 글쓰기는 읽기와 분리될 수 없고그럼으로써 스스로 알지 못했던 자신의 일면(나에게 닿아있는 수많은 선들)을 이해하게 만드는 능력이자 평소에는 접할 수 없었던 타인의 일면(또다른 수많은 선들)을 마주하게 하는 능력입니다그것은 무궁무진한 새로운 만남의 가능성이며그를 통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우리는 함께 인류사의 여러 글들을 읽고우리가 직접 쓰고다시 우리끼리 쓴 글을 공유해볼 것입니다그 속에서 아무쪼록 글쓰기의 역능과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의 경험을 함께 느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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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네요^^

수아

2019.03.28 
17:35:21
(*.232.249.111)

텍스트랩..뭔가 있어보인당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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