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초, 그 깊고 깊은 이야기

요요
2018-02-04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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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슨의 <영국노동계급의 형성>을 읽게 된 것은 시작은 순전히 '의리' 때문이었다.

뚜버기가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을 읽고 글을 써야 할 일이 생겼다.

누가 그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셈한기에 게릴라 세미나를 하자고 뚜버기를 재촉했다.

그래서 <영국노동계급의 형성>을 읽었고, 많은 것을 배웠다.

책도 좋았고, 같이 한 친구들도 좋았다.

오랜만에 압박감없이 편하게 책을 읽고 세미나 하는 것도 좋았다.ㅋㅋ

이 책을 읽고 마음에 남는 것은 네 가지이다.

하나는 18세기 말~19세기 초의 영국의 감리교가 영국 민중들에게 미친 영향이다.

종교적 이데올로기와 세속적 이데올로기가 팽팽하게 서로 길항하던 시대에

감리교는 영국 민중운동에 큰 흔적을 남겼다. 

산업혁명과 공리주의가 요구한 규율과 복종을 내면화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고

급진주의 운동에 새로운 조직화 방법과 운동의 스타일에 대한 영감을 주었다.

또하나는 당대의 장인들과 수직공의 역할에 대한, 

그리고 '러다이트운동'에 대한 톰슨의 접근방식이다.

사라져가는 계급이었던 장인들과 수직공, 공격목표를 잘못 잡은 러다이트 운동.

그동안 내가 읽었던 책들에서 그들은 그런 존재였다.

그러나 톰슨은 역사란 회고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당대 사람들의 눈으로 읽어야 하는 것이라고

거듭거듭 우리에게 말해주었고, 스스로 그렇게 연구했다.

그렇기에 그는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자료를 뒤져 당대 사람들의 목소리를 되살리기 위해 애썼다.

세번째는 오언과 오언주의에 대한 해석이다.

<거대한 전환>에서 폴라니는 오언을 매우 높게 평가했다.

공상적 사회주의라는 딱지가 붙은 오언이 아니라 19세기 초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 사상가이자 실천가로서

오언을 재발견한 폴라니를 읽으며 놀랐고, 오랫동안 헷갈려 했다.

그런데 이번에 톰슨의 책을 읽으면서 오언과 오언주의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19세기 초 영국 민중들에게 왜 그렇게 오언주의가 큰 영향력을 미치게 되었는지

막연하나마 나름대로 인과관계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마지막 한 가지는 18세기말~19세기 초의 영국 민중운동의 지성사가 대략 그려진다는 것이다.

1790년대 토머스 페인의 <인간의 권리>가 미친 영향과

셀월, 코벳, 칼라일과 같은 자유주의적이고 급진주의적인 언론인들의 계보,

고드윈, 매리 울스턴크라프트, 셸리 등의 지식인과 스펜스주의의 계열,

수많은 장인 출신의 노동자 지식인들의 계열과 민중들 사이에서의 독서문화의 성장 등.

공리주의가 급진주의 운동에 미친 영향 등등

<영국노동계급의 형성>은 1790년대에서 시작하여 1832년에 막을 내린다.

이제 본격적으로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계급투쟁의 시대가 열리기 시작하는데..

거기에서 이 책은 끝을 맺었다.

아마 여기에 적은 것들과 지난 두 달간 읽은 내용들은 금방 잊어버릴 것이다.

그러나 친구들과 함께 <영국노동계급의 형성>을 읽으면서 

수없이 명멸해간 사람들의 삶의 흔적들 앞에서 잠시 멈추어 서로 묻고 답하며

이런 저런 생각에 젖었던 시간들, 그 때 나누었던 정동들은 새로운 배움과 또 연결되고 연결되기를...

댓글 3
  • 2018-02-04 23:33

    꽤 오랫동안 짐이었던 두꺼운 두권의 책을 친구들의 우정 덕분에 읽어냈습니다~
    그리고 함께 공부할 새로운 인연도 만난 고마운 세미나네요.

    저 역시 무엇보다 러다이트 운동을 다르게 이해할 수 있게 된 점, 

    그리고 오웬의 사상으로부터 다른 생각을 창안해내고 자신들의 삶을 다르게 조직해낸 사람들이 있었다는 점이 제일 기억에 남네요.

    우리 주변의 오웬을 찾아봐야겠습니다.

    아직 해결하지 못한 질문도 있습니다. 오늘날은 어떻게 계급문제에 접근해야 할까?

    사후적인 평가가 아니라 당대의 시각에서 바라보라는 톰슨의 말을 머리에 새기고 질문을 벼려봐야할 것 같아요.

  • 2018-02-06 16:43

    톰슨은 '마르크스주의 역사학' 그 다음단계로 넘어가는 경유지로,


    늘 다른 사람이 매끈하게 비판해놓은 몇줄의 글로 대신한 찜찜함때문에


    뚜버기님처럼 제게도 뒷목을 당기는 '짐'이었습니다.


    1963년에 그가 쓴 책을 2000년에 사 두고 이제야 ‘제대로’ 읽었네요^^


    여행을 하다보면 어디를 가느냐보다 누구랑 함께 하느냐가 그 여행의 진가를 말해주듯이,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은 너무나도 ‘우연히’ 처음으로 결합하게 된,


    문탁의 함께 한 선생님들 덕분에!


    보다 풍부하게 더 쒼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이 시점에서 왜 갑자기 ‘수녀원’이 떠 오르는걸까요?ㅎ).


    넘의 나라 역사지만,


    잉글랜드 노동자들이 그들의 경험 속에서 계급의식을 가지게 되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계급개념은 생산관계라는 객관적 결정요인만 가지고서는 설명할 수 없다는 톰슨의 ‘입장’이 선명해집니다.


    동시에 영국의 노동계급은


    반국교도의 전통, 도덕경제에 입각한 18세기 ‘폭도’의 전통, 그리고 부심쩌는 ‘잉글랜드인의 생득권’ 전통의


    경험 속에서 형성되었음을


    자신만의 독특한 역사서술 방식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용량초과의 이름들과 지명들, 저술들은 책을 덮는 순간 다 날라가버렸지만,


    제 맘 속에 남아 있는 단하나의 각인은 비타협적 자세로 끈질지게


    민중을 역사적 주체로 자리매김하고자하는 톰슨의 열정과 노력이었습니다.


    계급, 젠더, 지역, 세대 등이 교차하면서

    노동계급 내부의 차이가 당시의 계급 차이만큼 확연한 지금에 있어서도 

    그를 여전히 대면해야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 2018-02-07 23:31

    저는 한때 '단무지'(단순하고 무식하다라는 뜻에서^^)라고 불리는 공대생이었어요.

    그땐 제가 단무지인줄 몰랐는데 아직도 제가 단무지란 사실을 깨달았지요. ㅎㅎ

    인간과 사회에 대해서 단순 무식하게 생각하고 귀결시키는 점에서요.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은 처음에 당췌 읽기 어려운 책이었습니다.

    당시 사회의 모습도 알지 못할 뿐더러 

    구겨서 버려진 신문 쪼가리까지 조심스레 펼쳐서 

    당대의 면면을 한 개도 놓치지 않고 기술하는 톰슨의 방식은 정말이지 질려버릴 지경이었죠.

    읽어나갈수록 톰슨의 책에서 당시의 사람들이 영화처럼 펼쳐지기 시작했어요.

    당대의 가치와 새로 등장한 자본주의적 가치와의 40여년 간의 대결.

    프롤레타리아로 몰락한 장인과 수공업자들, 

    가정을 빼앗기고 공장노동자가 된 여인들, 

    거기에 휩쓸려 더욱 착취되었던 아동들.

    어렵고 끔찍한 시절이었으나 

    그들에게는 언제나 꺼지지 않는 급진주의의 불꽃이 있었고, 언제든 발화가 될 수 있었지요.

    19세기 초 영국노동자들의 모습은 매번 저의 단순 무식한 편견을 깨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당시의 노동자들의 삶과 운동에 대해서도 많이 배웠지만, 

    저자 톰슨의 기술 태도에서 '단무지'와 같은 저의 세계가 조금 넓어짐을 느끼고 감사했습니다.

    톰슨님 존경합니다.^^

    "한 사람의 행위가, 뒤따르는 발전이란 관점에 비추어 보아 정당한 것인가 

    아닌가의 여부를 우리의 유일한 판단기준으로 삼아서는 안된다. 결국은 우

    리 자신도 사회의 발전의 종점에 있는 것은 아니다. 산업혁명기 사람들의 

    실패한 주의 주장들 가운데 몇가지에서는 우리가 아직도 치유하지 못하고

    있는 사회악의 본질에 대한 통찰을 찾아낼 수도 있다. 더욱이 오늘날 세계

    의 더 넓은 지역에서는 여전히 공업화 문제, 민주적 제도의 형성 문제 등

    산업혁명기에 우리 자신이 경험한 것과 여러모로 유사한 문제들을 겪고 있

    다. 잉글랜드에서 패배한 주의 주장이 아시아나 아프리카에서는 혹시 승리

    할지도 모른다."

    머릿말의 이 부분이 책을 읽으면서 무엇일까? 생각하게 했던 부분이었는데요.

    오웬주의를 읽으면서 이 부분이 더욱 다가왔습니다.

    문탁이나 무진장도 생각나면서요.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문탁공동체에서의 움직임들이 좀 더 급진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머리로만 ㅜㅜ)

    셈한기에도 쩔쩔매며 책을 읽으면서 자책도 했지만,

    좋은 샘들과 좋은 책 읽어서 감사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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