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축제, 발제문 읽고 토론 참여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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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6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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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인문학 축제에는 해봄의 일원인, 또 문탁의 일원인 김지원이 대토론회의 발제자로 참여합니다. 고로!! 해봄의 많은 친구들이 토론회에 참석하여 열띈 토론을 함께 해주었으면 합니다!!! 밑의 글 외에 다른 발제문들은 문탁에 비치되어있는 책자에 담겨 있음! 이름만 쓰면 공짜로 가져갈 수 있으니 꼭 가져가길, 시간이 안된다면 당일날 조금 일찍와서 읽어봐도 됨! 축제 토론회에서 봅시다!^^(11월 30일 2시)

 

 

 

문탁 인문학 축제 대토론회 발제

불안과 공부의 로고스

김지원의 문탁 1년

김지원

  작년 여름, 온 몸이 땀으로 젖어도 덥지 않고, 2시간이 넘는 시간을 버스에서 서 있어도 다리가 아프지 않던 날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군복을 입던 날. 많은 사람들이 그 날은 세상을 다 가진 듯 기쁘고, 행복이 온 세상을 감싸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기쁨과 행복감에 더위도 잊고, 아픈 다리도 잊은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그것은 오히려 깊은 고민과 생각들, 걱정들로부터 오는 일종의 마비상태였다. 그건 분명 ‘불안’이었다. ‘어떻게 살아야할까?’, ‘내가 생각하는 대로 살 수 있을까?’.

  그리고 몇 일전, “왜 지원씨는 불안하지 않아요?” 이번 에세이의 주제를 놓고 이야기를 나누던 중 “불안하지 않다”는 나의 말에 광합성님이 던진 질문이다. 지난 1년간 나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세상을 잊을 정도로 깊게 생각하고 고민하던 김지원은 어디로 가고, ‘근자감(근거 없어 보이는 자신감)’으로 무장한 김지원이 나타난 걸까.

 

병장 김지원과 프레이리

  전역하던 날 내가 가지고 있던 불안은 사실 그 전에 이미 시작된 것이었다. 후임은 몇 있지도 않고, 늘 같이 혼나는 처지라 후임을 후임이라고 생각할 수도 없던 시절엔 별 고민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고민할 여유가 없었다. 새로운 사회에 적응하고, 혼나거나 미움 받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생활의 전부였다. 그런데 소위 ‘짬밥’을 먹고, 내가 하던 일들을 후임들이 하면서부터 나에게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여유가 생기니 이등병 시절 내가 어렴풋이 가졌던 의문들과 스쳐가듯 고민했던 문제들이 하나 둘씩 눈에 선명하게 보였다. 군대 밖에서는 씨알도 먹히지 않을 상하관계 속 부조리, 인권침해, 뭔가 이상한 것 같은 애국정신의 강요, 시대가 바뀌어도 없어지지 않는 악습 등이 다시 낯설게 느껴지며 나를 고민하게 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정당한가?’.

  하지만 낯설게 느껴지던 것도 잠시, 그런 나의 고민은 반복되는 생활과 ‘관계의 습관’들, 군 생활의 피로감과 함께 누그러졌다. 익숙해지고, 오히려 질문들이 불편해 졌다. ‘짬밥’이 무서운 것은 시간이 지나며 낯설고 불편했던 일들이 왜 필요한지를 알게 된다는 데에 있다. 부조리와 악 습들은 내가 편해지기 위하여 사용할 수 있는 최적의 도구였고, 지금으로선 누가 봐도 이상한 신념과 애국정신은 도구의 사용을 정당화 시키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군대가 그런 방식으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휴가와 전화기를 없애버렸어야 했다. 익숙하고 편한 습관에 의지한 생활은 다행이도 잦은 휴가에 의해 무너질 수 있었다. 나의 군 생활 이야기는 내 친구들에게 너무나도 낯선 것이라 늘 재미있는 이야깃거리였지만, 나 스스로에겐 부끄러운 이야기였다. 함께 삶에 대해 고민하고 이야기 나누었던 나의 사람들 앞에 떳떳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나 자신의 내부에서 둘로 나뉘어져 싸우고 있었다. 습관에 의지해 편안하게 말년을 기다리느냐, 아니면 습관을 파괴하고 새로운 군 생활을 창조하느냐. 따지고 보면 습관에 의지하는 일은 몸은 편하지만 마음이 불편한 일이었고, 당연히 나는 마음이 불편하지 않은 쪽을 택했다. 그리고는 책을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이후로 부모님이 보내주신 책, 병영 도서관을 뒤적거리며 찾아낸 책들을 읽고, 일기를 쓰며 시간을 보냈다. 책들은 고민에 답을 주진 않았지만, 어느 정도의 위안을 주었고, 일기는 내 습관들을 경계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러던 와중, 병영 도서관에서 나는 ‘프레이리의 교사론’을 만났다. 어디선가 들어본 것도 같은 책 제목, 왠지 모르게 불온해 보이는 책의 빨간 표지 색깔, 그리고 나의 고민과 아무런 연관성도 없어 보이는 ‘교사론’이라는 책의 제목에도 불구하고, 묘한 끌림이 있었다.

지배 이데올로기의 힘은 언제나 길들임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힘에 영향 받고 상처 받을 때, 판단이 흐려지고 우유부단해집니다. (···)나는 유능하고 정치적 입장이 분명한 교사들이 따라야할 전술 중 하나는 남을 길들이는 교사의 역할을 비판적으로 거부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프레이리의 교사론(기꺼이 가르치려는 이들에게 보내는 편지)/파울로 프레이리/교육문화연구회 옮김/아침이슬>中

  묘한 끌림에는 이유가 있었나보다. 책을 편 이후로 접지를 못하고, 그날 밤을 새워 한 문장, 한 문장 마다 줄을 치며 읽었다. 중간 중간 서러워 복받칠 때는 뜨겁게 훌쩍거리기도 하고, 나의 생각을 정확하게 표현한 듯 한 문장을 만나면 기뻐서 어쩔 줄 몰라 엎드린 상태로 동동거렸다. 그리고 나서도 몇 번을 더 읽었다. 일기에도 같은 문장을 세 번씩이나 적었다.

관용은 우리들이 서로 다르게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치는 미덕입니다. 관용은 우리로 하여금 서로 다른 것에서 배우고 서로 다른 것을 존중하도록 가르칩니다. (···)관용적이라는 것이 도무지 참을 수 없는 것을 묵묵히 따른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무례함을 은폐하는 것도 아니고, 침략자를 너그러이 봐주거나 침략행위를 숨기는 것도 아닙니다. -(위와 같은 책)

  하지만 프레이리 이후로 나는 급격하게 괴로워졌다. 알기 전에는 몰라서 괜찮았지만, 조금씩 알기 시작하면서부터 읽은 대로, 배운 대로 행하지 못하는 나의 모습이 부끄러웠다ㅡ아니, 쪽팔렸다. 소외되고 상처 받는 사람들, 억압받는 이들의 편에 서서 사람들을 사랑하기, 타인을 길들이는 이데올로기를 비판하고 저항하기, 끊임없이 문제제기하고 대화를 시도하기. 어느 하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프레이리를 읽기 전에는 ‘전역을 한다면 어떻게 살아야지’라는 미래를 향한 막연한 희망을 가졌다면, 프레이리 이후엔 ‘지금 여기’에서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나의 찌질한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 괴로웠다. ‘전역을 하고 나면 뭐가 바뀔까? 지금 여기에서도 이렇게 살고 있는데 밖이라고 뭐가 다를까? 전역을 하고 난 뒤에도 이러한 상황이 왔을 때, 내가 다시 이렇게 살지 않을 거라고 어떻게 자신할 수 있는가?’

  그리고 나의 고민은 전역을 하는 그 날까지 이어져,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가’가 아니라,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가’가 되었다.

 

월든의 나무쟁이 김지원, 함께 읽는 연암

  전역을 한 달 가량 남겨둔 시점에 나는 월든 목공소에 취직하기로 결심했다. 다시 대학에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은 애초에 없었고, 부모님의 품에서도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벗어나고 싶었다. 당장에 쓸 돈을 위해서라도 취직을 해야 했지만, 아무 곳에서나 일을 하고 싶진 않았다. 알바는 군대 가기 전에도 많이 해봤으니, 생산적이고 지속 가능한, 뭔가 배우고 또 얻을 수 있는 곳이길 바랬다. 그런 와중에 목공소에서 사람을 구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손으로 뭔가를 만드는 일에 자신도 있고, 재미도 잘 붙이는 성격이라 별 고민 없이 사장님을 찾아가 일을 하고 싶다고 했고, 흔쾌히 환영해주셨다. 기대도 하지 않았던 4대 보험과 정규직 채용은 보너스. 그리고 무엇보다 문탁과 이웃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나에겐 공부가 절실했기 때문에.

  지금 와서 생각하면 조금 아깝지만, 당시에는 마음이 급했는지 놀지도 않고 전역하기 전 부터 극성으로 목공소로 출근했다. 생각보다 일찍 취직이 된 김에 문탁에서 열리는 강좌도 바로 신청했다. 문성환 선생님의 <연암으로 가는 다섯 입구>. 생각해보면, 나는 신기하게도 여러 번 운이 좋았던 것 같다.

깨달은 사람은 괴이한 것이 없지만, 속인들은 의심스러운 것이 많다. 이른바 ‘본 게 적으면 괴이한 것이 많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깨달은 사람이라 해서 어찌 사물마다 눈으로 직접 보았겠는가? 하나를 들으면 눈 앞에 열가지가 떠오르고, 열을 보면 마음에서 백가지가 베풀어져, 천가지 괴이함과 만가지 기이함이 도로 사물에 부쳐져서 자기와는 간여함이 없다. 때문에 마음은 한가로이 여유가 있고 응수함이 다함이 없다. (···)사물은 절로 괴이할 것이 없건만(본 바가 적은 자는) 자기가 공연히 화를 내고, 한 가지만 같지 않아도 온통 만물을 의심한다. -<연암집中 능양시집서/박지원>中

  어떻게 삶의 태도에 대해 고민하던 내가 연암을 만나게 되었을까. 신기한 인연이다. 연암의 문장들은 모두 나의 가슴을 찌르고, 자극했다. 그리고 나는 공부를 하고,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군 생활 동안 책을 읽으며 마음이 괴로웠던 것이 이제는 이해가 된다. 본 게 적어 괴이한 것이 많았던 탓도 있지만, 아는 것을 행하기 이전에, 안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나눌 곳이 없다는 것이 사실은 더 큰 문제였다. 누구하나 나의 고민을 나눌 이가 없고, 나의 공부를 말하지 못하는 환경이 얼마나 큰 장애물인지는 미처 모르고 괴로워하며 자책만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강좌 중에 우리는 연암을 소리 내어 읽었고, 나는 강좌를 들었던 친구와 함께 따로 만나 연암집의 몇 구절을 읽으며 큰 소리로 감탄했다.

(···) 그런데 후세에 명색이 부지런히 글을 읽는다는 자들은 엉성한 마음과 얕은 식견으로 말라 비틀어진 먹과 쭈글쭈글한 종이쪼가리 사이에 눈을 쳐박고선 그 속에 있는 좀오줌이나 쥐똥 등에 불과한 것들을 엮어 토론하고 있습니다. 비유컨대 이것은 세속에서 말하는 “술지개미만 먹고 취해 죽는다”는 격이니 참으로 딱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토론을 할 친구조차 없었던 나의 군 생활은 더욱 딱한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나의 모습을 ‘본 바가 있기 때문에’ 술지개미만 먹고 취해 죽더라도 토론을 할 친구가 있고, 심지어 술지개미에 취해 죽지 않을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스승이 있는 환경에 더욱 감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부족하더라도, 늘 공부를 하며 살아가는 것이 전역을 하며 내가 가졌던 고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연암을 읽은 이후로 나에겐 모든 것이 공부였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 뿐 아니라 목공소에서 하는 일들과 만나는 사람들, 경험들, 그리고 이후 문탁 1년간의 빼놓을 수 없는 악어떼, 해봄과의 수많은 사건들 또한 마찬가지다.

 

악어떼와 마을교사 아카데미

  ‘악어떼, 그 이름만 들어도 가슴 뭉클해지는 악어떼!’가 아니라 지겨운 놈들이다. 사실은 지난겨울, 상영회가 끝나고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영화 촬영이 한편으론 재미있기도 했지만 이 녀석들은 좀체 속을 시원하게 내보여주지 않았다. 그뿐이면 다행이다. 말을 안 듣는 게 아니라 말을 알아듣지를 못하고, 토론이나 회의에 도움이 되지 않는 말만 골라서 하고 입을 싹 닫는다. ‘이것들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커져갔다. 이번 프로젝트만 끝내고 빠져야겠다는 생각도 했지만 차마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어쩌면 지금까지 악어떼 아이들과 꾸역꾸역 해왔다 것이 솔직한 이야기다. 너무나도 수동적인 아이들의 태도와, 뭔가 새로운 아이템을 계속해서 던지시는 이희경 선생님 사이에서 나는 일단 억지로라도 일을 벌여 놓고, 어떻게든 벌여 놓은 일들을 수습하면서 왔다. 그러나 놀랍게도 배움은 지겨운 과정의 반복 속에서, 혹은 반복된 습관 사이사이에 찾아오는 예상치 못한 순간들에서 일어나는 듯 했다.

  영화촬영, 중고 책 판매, 일일식당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나는 아이들과 ‘정’이 많이 들었다ㅡ고운정 보다는 미운정이 많겠지만. 중간 중간 우석이의 가출이나 징계 등의 사건 사고들도 큰 몫을 했다. 그리고 정과 함께 생기기 시작한 것이 문제의 ‘관계의 습관’이었다. 군 생활을 하던 때에 내가 그토록 분노했던 것과 같은 위계적 관계가 형성되고 있었지만 당시의 나는 깨닫지 못했다. 수동적인 태도를 바꿔야한다고 생각했던 나는 아이들에게 변화하기를 끊임없이 요구했고, 뭔가를 강요하고, 명령했다. 좋은 말들로 치장하고, 감정에 호소했지만 본질은 같았다. 아이들의 입장이나 생각을 이해하려는 노력 이전에 나의 목표가 정해져 있었다.

  그러던 와중, 나는 마을 교사 아카데미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다. 대안문화 아카이브 봄에서 친구들과 하고 있던 세미나, 문탁에서 하고 있던 공공공 세미나가 끝나는 시점에 공부를 이어나갈 수 있는 새로운 세미나가 필요했다. 그리고 악어떼와 만나는 내가 이 관계를ㅡ연암이 말한 것과 같은, 진정한 공부라고 생각한다면 ‘마을교사’에 대한 고민은 당연히 필요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푸코와 함께 시작된 세미나는 내가 가장 괴롭게 고민했던 순간인 군대, 그리고 깨닫지 못한 악어떼와 나의 관계 속에 만들어지고 있던 미세한 권력의 작용들을 까발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복종의 기술을 통해서 새로운 객체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서서히 그 객체는 기계적인 신체의 외양을 갖춘다. 그 새로운 객체란, 힘을 갖고 있으면서 지속적인 근거가 되는 자연 그대로의 신체이고, 그 자체의 질서, 시간, 내적 조건 및 구성요소를 갖춘 특정한 작업을 영위할 수 있는 신체이다. -<감시와 처벌/미셸 푸코/오생근 옮김/나남>

  나는 군 생활 속ㅡ나아가 23년간 살아온 나의 모든 경험(학교, 가정 등) 속에 스며들어있는 많은 권력 작용 중ㅡ에 배치되어 있는 수많은 복종의 기술에 무의식적으로 단련된 신체를 가지고 있었다. 그 신체란 군인의 신체 뿐 아니라 가정에서의 나, 학생으로서의 나, 거시적으로는 사법적 주체인 나, 세밀하게는 말을 잘 듣는 김지원이다. 그리고 배운 것을 잘 사용하는 학생처럼 악어떼 아이들과 만나며 자연스럽게 그런 관계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사실 이것은 나에게 꽤 충격적인 것이었다. 연암의 ‘본 게 적으면 괴이한 것이 많다’는 말이 딱 나의 꼴. 아이들을 나의 목적, 즉 내 말을 잘 듣는 질서와 새로운 기획에 효율적이고 도움이 되는 조건과 구성요소를 갖춘 신체로 만들고자 했다.

  충격을 받고 새로운 배치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나의 노력도 나 자신의 행동을 오목조목 따지고 고민 하는 데까지 이르지 못했거니와, 푸코에 따르면 권력은 일방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상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부터 작용하고 있던 나의 일방적인 요구들이 철수되었다 하더라도 관성처럼 작용하는 아이들의 습관이 중단되지 않으면 여전히 일방적인 관계가 유지되며, 이것은 비단 나의 강요 뿐 아니라 이 아이들의 지금까지의 삶이 만들어 놓은 습관ㅡ오랜 기간 동안의 단체생활-이 만드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로 아이들을 배려하는 순간이 잦아지고, 좀 더 웃을 시간이 많아졌다는 것, 또한 관계에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러한 소소한 변화들이 나에겐 곧 공부가 된다. 실제 나의 생활과 결합 되는 공부는 즐거움과 행복감을 준다.

  무엇보다, 나에게 악어떼가 공부인 가장 큰 이유는 ‘꾸준히 하면 된다’는 것을 매 순간 배우기 때문이다. 그것이 지겨운 관계든, 끈적한 권력이 틈틈이 껴있는 습관적인 관계든 공부와 함께 관계를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은 일종의 ‘연구’이고, 증명된 ‘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꾸준히 하는 속에서만 나는 수많은 변수들을 목격할 수 있다. 꾸준히 하면 된다는 것은 곧 악어떼와 나의 관계, 혹은 공부와 실천의 관계를 넘어 꾸준한 실천의 진리, 삶에 매순간 찾아오는 불안을 매순간 극복할 수 있는 힘, ‘지속 가능성’을 이야기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한 실천의 연장선에 또한 해봄이 있다.

 

해봄과 실천

  해봄은 <88만원 세대/우석훈>를 읽으며 제기 된 문제, “어떻게 반 소비적인 삶을 살아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집단이고, 여전히 그러한 고민들을 가지고 있다. ‘계’라는 형식 자체도 새로운 시도이고, 지금까지 해 온 세미나와 프로젝트들도 그 고민들의 연장선 상에 있다. 다만 조금 다른 점은, 실천에 조금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는 것. 그리고 악어떼가 내 개인적인 공부를 적용시킬 수 있는 실천의 장이라면, 해봄은 공통의 공부와 감각들을 실험해볼 수 있는 실천의 장이라는 점이다.

  개인적으로는 지난 1년을 돌아보면 가장 많이 생각나는 것은 해봄의 수많은 프로젝트들이다. 설명회를 시작으로 창립총회, 런닝맨, 밀양 농촌봉사, 그들이 사는 세상 워크숍, 쪼끄만 공연, MT, 수상한 가을 운동회, 아지트 여기의 SNL, 그리고 소화불량 연구소1,2까지 가장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다.

  1년가량이 지나며 동네 젊은 친구들의 입에 해봄이 오르락내리락 한다. 이제는 우리의 동료가 된 이웃문화협동조합에서 워크숍에 패널로 초대하기도 하고, 저 멀리 서울시 청년허브에서 인터뷰를 오기도 한다. ‘뭐하는 곳이냐’, ‘왜 하는 거냐’.

  나에게 해봄은 공부하고 실천하기 위해 존재한다. 위에서도 계속해서 이야기 했듯이, 나에게 공부와 실천은 삶의 조건이자 태도이다. 그 말은 과격하게 표현하자면 공부를 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과 같다. 불안해서 죽거나, 이미 알게 된 것들을 모른 척 하며 죽은 듯이 살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나는 해봄을 하고, 그만큼 열심히 하는 것이다. 최근에 마을교사 아카데미 시즌2에서 읽은 <미셸 푸코의 진실의 용기>는 그러한 실천을 강조하고 있다.

(···) 푸코는 우리의 현실태를 구축하고 그것을 다시 동요시키는 이 힘들을 진단하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그래서 그는 “우리의 현실과 우리가 우리의 과거에 대해 알고 있는 것 사이의 충돌”을 야기 하고자 했다. (···) 지식인의 역할은 미래에 대한 예언적 진실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대 사람들에게 발생되고 있던 바를 파악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미솅 푸코의 진실의 용기/프레데리크 그로 외/심세광 외 옮김/길>

  악어떼와 해봄이 함께 기획한 프로젝트, ‘수상한 가을 운동회’에서 우리는 가슴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했다. 새로운 관계가 유입되고 접촉하면서 악어떼 아이들이 어떤 모습을 보여주었는지 다들 기억할 것이다. 무엇을 해도 자신감과 의욕이 없던 명기가 누구보다도 일을 잘하는 명기가 되었고, 지금까지는 친구 한명 부르지 않던 우석이가 10명이 넘는 친구들을 꼬셔왔다. 재민이와 광호가 스스로 일정을 잡아서 춤을 연습하고 멋진 공연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의 현실과 우리가 우리의 과거에 대해 알고 있는 것 사이의 충돌’이 아닐 수 없다. 놀라운 것은 해봄과 악어떼의 공동기획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할 때부터 우리는 막연하지만 좋은 효과를 기대하고 있었으며, 공부를 통하여 이를 발견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멋지게, 발생된 바를 파악했고, 이것을 가능하게 했던 힘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공부하고 있다.

  나아가 이러한 발견은 더 좋은 효과를 만들 수 있는 조건이 되고, 앞으로의 실천에 큰 힘이 될 것이 분명하다. 공부와 실천의 결합, 연구자적인 태도의 실천은 많은 것들을 얻게 하며, 늘 예상한 것 보다 많은 수확을 가지고 온다.

지난 1년간의 해봄은 늘 나에게 ‘불안’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론 매순간 ‘극복’이었다.

 

불안은 없어지지 않았다

  지난 9월, 나는 판교 석운동에 위치한 한 사무실 공간을 계약했다. 월세를 감당할 만큼의 소득이 있고, 더 이상 부모님의 집에 붙어있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계약한 공간이 텅 비어있는 상가 건물이라, 주거하기 위해서는 손봐야할 것이 한둘이 아니다. 막상 계약을 하고보니 들어가야 할 돈도, 시간과 노력도 걱정 안할래야 안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존재 자체에 대한 불안은 아니지만, 어찌됐건 나에겐 또 한 가지 불안이 찾아온 셈이다.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면, 계속해서 이야기 해 왔듯이 불안이 ‘없어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불안은 언제나 늘 존재한다. 공부가 제대로 되고 있는 것인가 하는 불안, 위태로운 해봄에 대한 불안, 악어떼를 걱정하는 불안과 당장 먹고 살아야할 것에 대한 불안까지. 김영민 선생님의 말처럼ㅡ혹은 김영민 선생님에게 빙의된 이희경 선생님의 말에 따르면, 괴롭고 힘들지 않으면 그것은 공부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불안하지 않다면 그것은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며,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불안’은 사실 삶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공부를 한다는 것은 막연한 불안을 구체적인 문제로 만들고 실제적인 고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이고, 실천을 통해 불안을 자신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1년간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나의 문탁생활은 나의 작은 노력에 보답하듯ㅡ그것을 응원하듯, 수많은 우연을 빌어 나에게 그런 배움을 선물해 주었다.

  그러나 선물이 늘 그렇듯, 중요한 것은 앞으로일 것이다. 계속되는 공부를 통하여 앞으로도 매순간 다가올 불안들을 즐기며 극복해야할 것이고, 더 많은 배움을 찾아서 세상에 꺼낼 수 있어야한다.

  그러한 일이 가능할 때에 우리는 불안을 지속가능성으로 바꿀 수 있다. 공부로 돈을 벌어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중요한 지속가능성, 정말 먹고‘사는 삶’의 지속가능성을 찾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푸코의 ‘진실의 용기’와 ‘자기배려’도, 프레이리의 ‘사랑’도, 연암의 ‘공부’도 결국엔 그런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끝으로, 나의 근자감에는 근거가 있다. 내가 돈이 없어도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이유처럼ㅡ선물을 받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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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드다스토어-<작심 팔주> 시즌1 멤버 모집! (8/27~) (6)
고은 | 2020.08.05 | 조회 8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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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04 회의자료
고은 | 2020.08.04 | 조회 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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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26 회의안
고은 | 2020.07.25 | 조회 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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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제'하면 어떤 게 떠오르세요? -길드다뉴스레터 아젠다 2호 발간
문탁 | 2020.07.20 | 조회 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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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12 회의자료 (1)
지원 | 2020.07.12 | 조회 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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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04 회의안 (4)
송우현 | 2020.07.03 | 조회 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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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음판 League> 후기 (2)
한결 | 2020.07.01 | 조회 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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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27 회의록
명식 | 2020.06.27 | 조회 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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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27 회의안 (1)
명식 | 2020.06.27 | 조회 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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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올까 걱정되는 영화모임> 200626 미장센영화제 온라인상영
지용 | 2020.06.26 | 조회 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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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드다와 '돈'과 뉴스레터의 함수관계에 대해 - 아젠다 1호 발송했어요 (4)
문탁 | 2020.06.21 | 조회 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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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18 회의록
고은 | 2020.06.21 | 조회 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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