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 4회차 후기

건달바
2018-03-31 11:42
294

『스피노자의 표현의 문제』12, 13, 14장은 스피노자의 양태 이론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그의 양태 이론은 당시 과학의 발달의 반영이었고, 

신 중심의 세계관을 벗어난 새로운 자연주의의 기획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결국 자연 자체에 역능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에 있어서 핵심은 

신의 초월성의 부정, 

특히 인간 그리고 (연장의 속성의 변용인) 물체들에 들어 있는 힘에 대한 인정입니다.

세미나 중에 주로 논의 된 내용들은

1. (양태의) 본질의 실존과 양태의 실존의 구분과 

2. 그로부터 파생된 논의인 두 가지 개체화(속성의 양태화).

3. 신의 역능의 분유인 양태의 본질의 실재성과 그 현행성의 구분.

4. 변용 능력에 관한 들뢰즈의 논의에 대한 두 가지 견해.

    즉 수동과 능동에 대한 이해.

5. 이 모든 논의 속에 (들뢰즈가 또는 스피노자가) 확보하고 싶은 내재적 인과성.

1. 굳이 본질의 실존과 양태의 실존의 구분은 왜 필요했을까?

다시말해 개체화를 왜 굳이 두 가지로 나누었을까요?

첫째, <<에티카>> 2부 정리 8에 나온 비실존양태에 대한 논의를 설명한다.

양태가 실존하지 않더라도 그 형상적 본질은 신의 속성에 포함되어 있고 

그 관념은 신 관념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둘째, 여기서부터 3.의 본질의 실재성과 현행성의 구분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본질 자체의 실재성은 늘 부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본질은 현행적으로 변할 수 있다. 

세째, 양태들간의 인과관계를 속성의 외연량으로 설명함으로써 

내재적 인과성 확보할 수 있다.

이 부분은 진태원샘이 비판하는 것인데요

굳이 두 가지 개체화로 설명할 필요는 없고

신의 역능의 분유로서의 양태의 역능은 '원인으로서의 역능' 자체이기 때문에 

양태들 간의 인과관계는 내재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이것이 '신 안에 있다'라는 표현에 함축되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들뢰즈는 관계 합성의 법칙과 본질 생산의 법칙에 구분을 두었는데요

그것은 속성의 양태화에는 설명가능하지만,

양태의 실존 이후엔 관계가 곧 본질인데,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요컨대, 신에게 분유한 역능으로서의 본질은 

양태의 실존 이후에는 양태의 역능으로서

양태의 관계, 변용 능력, 코나투스가 된다. 

즉  '원인으로서의 역능'은 양태들간의 인과관계이다.

양태들은 이제 서로에게 원인으로서 변용하고 변용된다.

4. 따라서 변용 능력이 커진다는 것은 그 자체로 역능이 커지는 것입니다.

곧 본질은 현행적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이죠.

다시 진태원샘의 시각인데요, 

변용되는 것은 수동이 아니고 변용하는 것은 능동이 아니라

변용 자체에는 늘 수동과 능동이 함께 포함되어 있다.

제가 이부분에서 열을 띠며 말하고 싶었던 것은

그동안 저 스스로 변용되는 것을 수동으로 생각하다 보니

관계에 있어서도 잘못된 생각을 했던 부분이 있습니다.

 또 변용에는 늘 수동과 능동이 포함되어 있다면

즉 인간의 조건 자체에 포함되어 있는 수동과 능동이라면,

변용하는 것과 변용되는 것 어떤 것이더라도

변용에 있어서 어떻게 하면 능동을 늘릴 수 있을까가 문제의 핵심입니다.

능동을 늘리는 것에서는 결국 인식이 문제입니다.

연장 속성에서 우리의 능동은 어쩌면 어려운 것이 아닐수도 있지만

사유 속성에서 능동은 적합하게 인식하지 않는다면 늘 수동이 되니까요.

향후 들로즈의 논의에서도 이 부분이 중요할 것 같구요.

함께 공부를 진행하다 보면 뭔가 명확해 지겠죠?

특히 나와의 논쟁을 준비하고 있는 여울아~~의 공부를 기대해 볼께요. ㅎㅎ

댓글 3
  • 2018-03-31 20:53

    <<에티카>> 3부 정의 2에 따르면 "우리의 본성으로부터, 우리 안에서나 우리 밖에서 우리의 본성만으로 명석 판명하게 인식될 수 있는 어떤 것이 따라 나올 때, 나는 우리가 능동적이다(활동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연장과 사유로 나눠서 생각할 문제는 아닌것 같고, 어쨌건 능동은 인식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 2018-04-01 11:40

    스피노자가 <에티카>에서 무엇을 말했는지, 왜 그렇게 말했는지, 

    자신의 방식으로 그 근원을 파고들며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답을 찾아 나가는 들뢰즈의 모습은 정말 감탄스럽습니다.

    우리가 어렵다고, 모르겠다고 하며 이 책을 때려치우지 못하는 까닭은 다른 것이 아니라

    알면 아는대로 모르면 모르는대로 

    우리를 자극하고 도전하게 하는 바로 그런 놀라운 점 때문 아닐까요? 

    양태의 본질에 대해 들뢰즈가 말하는 것이 

    스피노자의 생각과 같은 건지 다른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덕분에 1부 정리 28과 2부 정리 8, 정리13 이후의 자연학 소론을 읽으며 

    들뢰즈와 스피노자가 같은 건지 다른 건지 생각하게 되니,

    의문을 갖지 않던 것에 새로운 의문을 갖게 되는 것, 

    그것이야말로 공부의 진보가 아닐런지요!

  • 2018-04-01 23:26

    들뢰즈때문에....스(피노자)포(기)자가 될까...하다가~ 

    잘 모르겠지만...다시 들뢰즈가 궁금해지기 시작합니다~ 

    모르겠는 말들 사이사이에 툭.툭.  마음을 울리는 말들이 많아서요.

    지난 시간 읽은 부분중에서는,

    "양태의 실존이 갖는 개체적형식이... 

    한편으로는 영원한 양태의 본질에 대응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무한히 많은 외연적 부분들이 본질과 일시적으로 관계를 맺는 장소"라는...

    말이..참 와 닿았습니다. 흠. 이걸 인상깊게읽고 난 바로 뒤에...어진의 글을 읽었고요. 

    우리의 실존자체도 하나의 장소이고, 

    우리가 만들어 낼 수 있는 무수한 것들 역시 어떤 본질들과 마주하기위한 

    하나의 장소라는 생각을.... 해보게 했습니다. 모두~ 고맙습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697
[2022 철학학교] 결론 1절 후기 (12)
아렘 | 2022.11.11 | 조회 639
아렘 2022.11.11 639
696
[2022 철학학교] 시즌4 <결론> 1주차 질문 (9)
정군 | 2022.11.09 | 조회 318
정군 2022.11.09 318
695
[2022 철학학교] 시즌3 5장 5절~6절 후기 (6)
요요 | 2022.11.05 | 조회 463
요요 2022.11.05 463
694
[2022 철학학교] 시즌3 5장 5-6절 질문 모음 (10)
정군 | 2022.11.02 | 조회 320
정군 2022.11.02 320
693
[2022 철학학교] 시즌3 5장 5-6절 요약 모음 (12)
정군 | 2022.11.02 | 조회 371
정군 2022.11.02 371
692
[2022 철학학교] 시즌3 5장 3-4절 후기 (2)
매실 | 2022.11.01 | 조회 262
매실 2022.11.01 262
691
[철학학교] <차이와반복> 읽기 시즌4 안내(zoom)
요요 | 2022.10.29 | 조회 1734
요요 2022.10.29 1734
690
[2022 철학학교] 시즌3 5장 3-4절 질문 모음 (10)
정군 | 2022.10.19 | 조회 269
정군 2022.10.19 269
689
[2022 철학학교] 시즌3 5장 3-4절 요약 모음 (15)
정군 | 2022.10.19 | 조회 379
정군 2022.10.19 379
688
[2022 철학학교] 시즌3 일곱 번째 후기(4장 끝 5장 시작!) (5)
정군 | 2022.10.14 | 조회 336
정군 2022.10.14 336
687
[2022 철학학교] 시즌3 4장 8절~5장2절 질문 모음 (9)
정군 | 2022.10.12 | 조회 354
정군 2022.10.12 354
686
[2022 철학학교] 시즌3 4장 8절~5장2절 요약 모음 (9)
정군 | 2022.10.12 | 조회 342
정군 2022.10.12 342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