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바리 주역> 15회 지산겸괘, 겸손이 형통하다고?!

인디언
2018-08-30 00:04
1316

<어리바리 주역>은 고전공방 학인들의 주역 괘글쓰기 연재물의 제목입니다.

    말 그대로 어리바리한 학인들이 어리바리한 내용으로 글쓰기를 합니다. 형식도 내용도 문체도 제 각각인 채 말입니다.

    하지만 압니까? 언젠가는 <주역>, 그 심오한 우주의 비의, 그 단 한 자락이라도 훔칠 수 있을지^^ 

겸손이 형통하다고?!

 

     

지산겸1.gif

                                                      

                                

1. 겸손하다는 것

   지산겸(地山謙)괘는 64괘중 15번째로 천화동인(天火同人), 화천대유(火天大有) 다음이다.

그동안 보아온 것처럼 64괘는 아무렇게나 배치된 것이 아니라 순서에 나름의 스토리라인이 있다. 천화동인은 천지만물이 모여 함께 한다는 뜻이 담겨 있고, 모두가 함께 모이니 무언가 성대하고 풍성하게 소유하는 대유괘가 이어진다.

그 다음이 겸괘인데, 많은 것을 갖게 되면 더 이상 가득채워서는 안되고 겸손해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계영노겸.jpg

  지산겸(地山謙)괘는 지중유산(地中有山), ‘땅 안에 산이 있는’ 형상이다. 땅은 낮은 것인데 높은 산이 그 아래 있으니 낮추고 또 낮추는 것이다. 그런데, 그냥 낮추기만 한다고 겸손한 것은 아니다. 전제조건이 있다. 산처럼 뭔가를 가득 채우고 있어야 한다. 아무 것도 없으면서 낮추는 것은 겸손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이 덕이든 재물이든 ‘소유하고도 자처하지 않아야’ 겸손한 것이다. 자기가 가진 것에 대해 드러내지 않는다. 겸손하려면 뭔가 소유하는 것이 먼저라니, 겸손도 쉽지가 않다.^^

   겸손하다는 말은 참 익숙하면서도 언제부턴가 좀 낯설기도 하다. 우리 어릴 때만 해도 겸손하다고 하면 참 좋은 칭찬이었는데, 요즘은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아이가 어렸을 때 학교 선생님이 상담을 하러 오라고 해서 간 적이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잘 모르면서도 손들고 나서는데, 우리 아이는 알고 있으면서도 전혀 나서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그게 문제가 되느냐고 했더니 그러면 손해를 볼 수 있다면서 걱정스러워했다. 사람들은 가진 것이 없으면 자기를 낮춘다. 이것은 겸손한 것과는 다르다. 오히려 비굴해지기 쉽다. 반면, 작은 것 하나만 갖고 있어도 어떻게든 드러내고,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다면 여기저기 자랑하고 싶다. 가진 것을 자랑하는 것을 그리 미워하지도 않는다. 부러워할 뿐. 자기가 가진 것은 물론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자신을 드러내야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서 겸손은 크게 환영받지 못하는 가치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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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겸괘는 아주 좋은 괘이다. 괘사, 효사 중에 좋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 괘사에서는 형통하다(亨)고 하고, 효사도 모두 길(吉)하거나 이롭지 않음이 없다(无不利)고 한다. 형통하고 길하고 이롭고. 주역의 64괘 중에 이렇게 모두 좋은 경우가 또 있을까? 요즘 사람들 생각과는 달리 『주역』에서는 ‘겸손’이라면 만사형통인 것이다.

2. 형통한 군자들


   괘사부터 보자. 謙은 亨하니 君子有終이리라.(겸은 형통하니 군자는 끝마침이 있으리라.)

겸괘는 형통한 군자의 괘이다. 내면이 덕으로 가득한데도 ‘나 이렇네’ 하고 자처하지 않으니 이런 자세라면 형통하지 않을 리가 없고, 그러니 스스로 낮춰도 사람들이 높여주고 감추어도 그 덕이 더욱 빛나서 끝내는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겸괘가 형통한 것은 하늘, 땅 뿐만이 아니라 귀신까지 나서서 돕기 때문이다. 하늘은 가득찬 것을 이지러지게 하여 겸손한 데에 더해주고, 땅은 가득찬 것을 변하게 해서 겸손한 데로 흐르며, 귀신은 가득찬 것을 해쳐서 겸손한 데에 복을 주고, 사람은 가득찬 것을 미워하며 겸손한 것을 좋아한다. 음양의 기운을 키우고 사그라지게 하는 하늘, 변화와 흐름의 형세를 만드는 땅, 화복을 주관하는 귀신, 그리고 그런 이치 안에서 겸손을 좋아하는 사람. 그래서 군자는 겸괘의 상을 본받아 많은 데를 덜어 적은 데에 더하고 사물을 알맞게 하고 고르게 베푼다(裒多益寡 稱物平施)고 한다. 겸손은 높이 있을 때는 빛나고 낮은 곳에 처할 때에도 사람들이 함부로 넘지 못한다. 그래서 겸손은 군자의 완성(君子有終)이다. 여기서 군자는 덕이 충만한 인격자일 수도 있고, 천하를 소유한 권력자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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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효사에서는 겸손한 군자들이 구체적으로 등장한다. 대부분의 괘에서 군자는 최소한 사효 정도는 되어야 하지만, 겸괘는 이미 군자의 괘인지라, 초효부터 군자다. 오히려 아래에 있는 효들이 더 겸손하고, 그래서 길(吉)하다. 겸손한 군자들의 면면을 살펴보자.

1) 겸겸군자(謙謙君子)

   겸손하고 또 겸손한 군자. 너무나 겸손해서 큰 내를 건너는 것과 같은 어려운 일이 있어도 잘 헤쳐 나갈 수 있으니 결국에는 길하다. 자신을 낮추고 스스로 수양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겸겸군자일까. 주나라 문왕의 큰아버지 태백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는 고공단보(태왕)의 큰아들이었다. 아버지가 셋째인 계력(왕계)과 그 아들 창(문왕)으로 권력을 이어주고 싶어 하자 자신이 가질 수 있는 천하를 사양하고 둘째와 함께 나라를 떠나 형만 땅으로 갔다. 거기서 삭발하고 문신하는 등 그들의 풍속을 따르며 평범하게 살았다. 그럼에도 그 곳 사람들이 그를 존중하여 섬기니 오나라의 시조가 된다. 공자도 이런 태백에 대해 세 번 씩이나 천하를 사양하였는데도 백성들은 그런 사실조차 알지 못하였으니 지덕(至德)을 갖추었다고 평하였다. 천하를 소유할 수 있었음에도 진심으로 이를 사양한 태백, 그것도 백성들은 그런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면 그는 겸손하고 또 겸손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위험하지만 나라를 떠나 오랑캐처럼 살려고 했던 것은 대천을 건너는 것과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사람들은 그의 덕을 알아보고 한 나라의 왕으로 받들게 되었던 것이다. 대천을 건너서 길하게 되었다. 겸겸군자, 태백!

2) 명겸군자(鳴謙君子)

   겸손함으로 알려진 군자. 그래서 바르고 길하다. 겸손한 군자의 덕은 억지로 얻은 것이 아니다. 중정(中正)하니 내면에 덕이 쌓이고 쌓여 자연스럽게 주변에 알려지고 드러나게 된 것이다. 겸손함으로 알려져 울림이 있는 명겸군자는? 주 문왕(서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셋으로 나뉜 천하 가운데 둘을 소유하고도 은나라에 복종하고 섬긴 주 문왕은 일단 ‘소유하고도 자처하지 않은’ 겸손한 군자다. 천하를 가질 수도 있었지만 은나라에 복종했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그를 찾아 몰려들었다. 그의 겸손함이 널리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다. 백이 숙제도 서백이 노인을 공경한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찾아갔고, 여러 현자들도 서백의 소문을 듣고 그를 섬기기 위해 모여들었다. 모함으로 유리옥에 갇혔지만 여러 사람들이 구출운동을 펼쳐 사면 받게 했다. 스스로 한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한 것이다. 또, 서백이 남몰래 선행을 하여 제후들은 모두 그에게 와서 공정한 판결을 청했다고 하니 그는 정(貞)하다고 하겠다. 겸손함으로 알려져 바르고 길한 명겸군자, 문왕! 사마천은 그가 유리옥에 갇혔을 때 64괘를 만들었을 것이라고 적고 있다.

3) 노겸군자(勞謙君子)

   공로가 있으면서도 겸손한 군자. 능력있는 군자다. 모두 음효인 가운데 홀로 양효이니 양강(陽剛)의 덕으로 일을 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하괘에 있으니 겸손하다. 위 아래로 음효들의 신임과 추종을 받으니, 노겸군자는 만민이 복종한다. 정이천도 말했듯이 노겸군자는 주공 같은 사람이다. 무왕을 도와 주나라를 일으키고 어린 조카인 성왕을 군주로 받들면서 자신의 공을 끝까지 드러내지 않았고 왕의 자리에도 오르지 않았다. 그러면서 주나라의 기틀을 완성한 주공. 끝마침이 있어 길하다. 공자가 자신의 모델로 삼은 노겸군자, 주공!

겸겸군자든 명겸이든 노겸이든 겸손함으로 군자를 완성한 사람들. 태백의 사양과 문왕, 주공의 덕으로 주나라를 세웠으니 이 경우 군자유종(君子有終)은 나라를 세우는 것일 수 있다.

 

주공.jpg

   신영복 선생은『주역』에서 발견하는 최고의 관계론으로 성찰, 겸손, 절제, 미완성, 변방을 소개하면서, 관계론의 최고 형태로 겸손을 꼽는다. 다른 네 가지 덕목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찰’을 통해 자기가 어떤 관계 속에 있는지 깨닫고, 자기의 주장과 욕망을 자제하는 ‘절제’로 자기를 작게 갖는다. ‘미완성’은 목표보다는 목표에 이르는 과정을 소중하게 여기게 하고, ‘겸손’은 자기를 낮추고 뒤에 세워 다른 것과의 관계 속에 자기를 배치하게 한다. 이런 덕목들은 중심이 아니라 ‘변방’에 처할 때 최고가 된다. 관계를 통하여 자기의 존재성을 변화시키는 것이 주역의 관계론인데, 겸손이 그 변화에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는 것이다. 자기를 낮추는 겸손은 자기를 낮춤으로써 상대방을 배려하여 다른 사람과 뭔가 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든다는 것이다. 많은 데를 덜어 적은 데에 더하여 알맞게 함으로써 고르게 베푸는 것.

    겸손이 형통하지도 길하지도 않아 보이는 요즘 세상에서 지산겸괘가 보여주는 사고방식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댓글 2
  • 2018-08-30 09:44

    무조건 자기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낮추기 전에 먼저 채워야 하는것이 겸손이라는 것을 다시 배웁니다.

    또한 자신을 낮추는데만 목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결국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는 것.

    깔끔한 인디언샘의 정리로 지산겸괘, 겸손을 다시 생각하게 하네요.

    일주일동안 <논어>, <주역> 글쓰시느라 애쓰셨어요~ ^^

  • 2018-08-31 00:15

    겸손함도 종류가 있는게 재밌네요.

    겸손과는 거리가 먼 저로서는 생각하고 또 생각해볼이어요 .

    하늘과 띵과 귀신이 가득찬 것을 싫어하니 어쩔도리가 없구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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