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바리 주역>14회 화천대유-大有, 공통의 부?

자누리
2018-08-23 0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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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바리 주역>은 고전공방 학인들의 주역 괘글쓰기 연재물의 제목입니다.

    말 그대로 어리바리한 학인들이 어리바리한 내용으로 글쓰기를 합니다. 형식도 내용도 문체도 제 각각인 채 말입니다.

    하지만 압니까? 언젠가는 <주역>, 그 심오한 우주의 비의, 그 단 한 자락이라도 훔칠 수 있을지^^ 

大有, '공통의 부'?


1. 대유(大有)는 어떤 부유함인가?



   대유괘는 위에는 불(), 아래는 하늘()을 상징으로 하고, 효로 보면 오효만 음효이고 나머지 다섯 개는 양효이다. ‘대유는 보통 많이 소유하다’, ‘많이 있다의 의미로 해석한다.  먼저 대유괘가 전체적으로 어떤 상황인지 살펴보자. 서괘전에서는 남과 함께 하는 자는 사물()이 반드시 그에게로 돌아온다. 그러므로 대유로 받았다하고, 잡괘전에서는 대유는 대중()이고 동인(동인괘)은 친밀한 사람들()이다고 한다. 그래서 서괘전을 근거로 물질적 풍요로 해석하거나 잡괘전을 근거로 사람이 많이 모인 조직의 원리로 해석하기도 한다. 마치 서괘전은 물질, 잡괘전은 사람으로 포인트가 다른 것처럼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두 전이 의미하는 바는 비슷한 것으로 보인다. 춘추전국시대에는 부유함을 사람이 많이 모이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땅은 많아서 개간하면 되므로 땅을 밟고 서있는 사람이 많으면 부유한 것이다.

  그러므로 대유괘를 사람이 더 많이 모였고() 물질도 풍부해져서 그 사회(공동체)가 풍요로워진 상황으로 설정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것이 양적 부유함을 의미하는 것일까? 괘사 해석을 보면 이천도 이런 질문이 있었던 것 같다.

대유.jpg


  괘사는 대유는 크게 형통하다가 전부이다. 대유이면 왜 형통할까? 왕필은 대유이면 원래 형통하다, 형통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부유해지겠냐고 한다. 이천은 왕필의 해석이 대유라는 이름에서 의미를 찾은 것 같다고 못 마땅해 한다. 대유여도 불선하거나 형통하지 못한 사람도 있다면서. 아마도 양적 부유함으로 생각할까봐 걱정한 것 같다. 약간 다른 측면이지만 괘명에서 괘사의 의미를 유추하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괘명은 괘상과 괘사가 생긴 이후 후대에 붙여졌다고 보는 관점이 많기 때문이다. 심지어 괘명은 효사에서 적당한 것을 따왔다는 주장도 있다. 이 괘는 구이효 大車以載, 有攸往에서 대(), () 두 글자를 따왔다는 것이다. 어쨋든 이천은 이 괘가 형통한 것은 그 이름이 아니라 괘의 재질 때문이라고 한다. 나는 이렇게 질문하는 것으로 보인다. 어떤 부유함인가?

 

2. ‘공통의 부는 어떤 부유함인가?


   문탁에서도 몇 년간 어떤 부를 추구하는가를 꾸준하게 질문해왔다. 월든과 파지사유를 열고 나서 우리는 공통의 부라는 개념으로 답을 찾아갔다. 공간의 높은 월세를 우리 힘으로 감당하고 같이 공부하면서 친구들과 우정을 계속해서 쌓아갈 수 있다면 그것이 최고의 부의 형태라고 생각했다. 무난히 월세를 낼 수 있을 정도로 안정적이 되어 갔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올해는 대체로 적자일 때가 많았다. 그런데 지난 달 회계에서 모처럼 <파지사유><은방울키친>의 흑자가 돋보였다. <파지사유인문학> 강의를 했던 노라가 자신이 받은 강의비를 거의 전부 <파지사유>에 특별회비로 냈고, 청년사업단인 <길드다>가 캠프를 하면서 공간을 썼다고, 밥을 해줬다고, <파지사유><은방울키친>에 돈을 냈기 때문이다. 한 곳에 활동이 일어나니 다른 곳으로도 부가 흘러간 것이다. 대유괘를 보면서 이 회계를 떠올렸고, ‘공통의 부와 같은 개념을 말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파지사유.jpg



  ‘공통의 부’에서는 이렇게 부의 흐름이 중요하다. 그것은 첫째, 부의 흐름이 돈이 중심이 아니라 사람이 중심이고, 둘째, 부의 흐름이란 전체적이며 그러면서도 개별적 부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돈이 중심이고 사람이 뒷전이며, 사적소유를 신성시하는 자본의 논리를 뒤집으려는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이것이 반자본의 논리에 꽤 적중했다는 것을 대유괘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원리는 구이효 큰 수레에 짐을 싣는다(大車以載)”에서 발견할 수 있다. 자기 능력껏 활동하고 짐을 감당하며 그 결과 큰 수레에 가득 짐이 실릴 것이다. 각자 활동력을 증식하면 돈의 증식은 따라 온다. 돈을 중심에 두면 활동력이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둘째 원리는 구삼효 제후가 천자를 형통하게 하니 소인은 할 수 없는 일(公用亨于天子)”에 보인다. 제후는 천자 아래에 있는 사람이고 천자의 부는 천하의 부와 같다. 다시 말해 부란 자기만의 것일 수 없다는 표현이다.


  이런 원리가 들어있는 효사도 흥미롭지만 이 괘를 해석하는 단전과 대상전에는 더 세심한 논리가 있다. 앞서 이천이 괘의 재질에 형통한 의미가 들어있다고 강조한 이유를 알 것 같다. 두 가지가 있다. 괘의 상에서 발견하는 강건하면서 밝음( 剛健而文明)”과 효의 배치에서 해석하는 하나의 음이 다섯 양을 통솔한다이다.

 

3. 부는 지혜에서 비롯된다


   먼저 괘상을 보자. 불이 하늘 위에 있는 형상이다. 불은 밝음()으로 소성괘로는 리()괘인데 리괘로 이루어진 괘들은 문명(文明)’의 뜻을 갖는 게 많다. 그 때에는 세상을 설계하든가 옥사를 살피든가 전쟁을 한다. 모두 가장 현명한 지혜를 요구하는 일들이다. 대유괘도 바로 이런 지혜를 요구한다. 더구나 불이 하늘 위에 있으니 밝음이 비추지 않는 곳이 없다. 사람도 물질도 풍성하게 모이는 것은 가장 지혜로운 일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지혜일까? 단전에서 하늘을 따라서 때에 맞춘다고 말하듯 지혜의 준거점은 하늘이다. 소성괘인 하늘, 건괘가 아래에 있어서 붙인 말이긴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대상전의 하늘의 아름다운 명을 따른다(順天休命)’는 주역의 단골 코드이다.

audd.jpg



   하늘은 우리가 쓰는 개념으로는 자연에 가깝다. 하늘은 일정한 법칙을 따라 움직이는데, 중요한 것은 그 자신도 법칙을 어길 수 없다는 점이다. 자의적이지 않고, 한 순간도 어긋나지 않는다. 그렇게 하늘이 살아가는 방법은 만물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조화가 깨지는 것은 곧 죽음이다. 그러나 사람은 자의적이고 어긋나는 행동을 많이 한다. 애초에 그렇지 않다면 굳이 배울 필요가 없을 것이다. 자연처럼 생긴대로 살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늘에게서 배울 것은 남들과 조화를 이루는 삶을 살아내는것이고, 부유함은 그 만물의 풍성한 삶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사람은 매일 조화를 깨며 죽음을 향해 달려가므로 지혜를 갖기란 만만치 않다. 만물 속에서 수많은 나비효과를 일으키고 그 파장 속으로 들어가지만 그것을 다 알 수는 없다. 그러므로 지혜는 더 많은 사람이 모여서 만드는 다중의 지혜여야 한다.


   문탁에서 9년 동안 가장 많이 배운 것은 같이 살아가기 위해 지혜를 모으는 일이었다. 공통의 부는 하나보다는 둘, 둘 보다는 셋의 지혜를 모으는 과정과 다르지 않았다. 공통의 부를 증식시키는 일은 내가 현자가 되고 친구들을 현자로 만드는 것, 그래서 기쁨의 순간을 늘리는 것 말고 달리 무어라 말을 할 수 있을까? 반대로 친구들에게 책임을 묻고 원망하기 바쁘다면, 그래서 지혜를 모으기를 게을리 한다면, 공통의 부가 파괴되고 있다는 징후로 보아야 할 것이다.

 

4.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대유괘의 풍요로움의 의미를 설명하는 방식으로 상을 보는 것 말고 또 한 가지는 효의 배치를 보는 것이 있다. 나는 주역의 효 자체가 특이한 텍스트라서 흥미롭다. 초효에서 상효까지 이름이 있는 여섯 개의 자리가 있다. 그런데 각 자리는 비어 있어서 어떤 때는 양, 또 어떤 때는 음이 온다. 계사전에서도 자리를 비어 있음()’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괘의 경우의 수를 수학적으로 구해보면 각 자리마다 음양의 2가지가 오므로 2×2×2×2×2×264개가 나온다. 그러므로 64개 각각의 괘는 6개의 효를 모두 채우고 있다. ‘강의 자리에 음이 와서 어쩌구 저쩌구하는 표현은 비어있으면서 비어있지 않음을 말한다. 이 모순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주체를 구성적으로 보는 것이다. 양의 자리지만 양이 올 때와 음이 올 때 다른 주체가 된다. 주역을 변역이라고 하는 가장 큰 이유도 바로 효의 배치가 서로 다른 괘를 만들고 다른 주체를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대유괘의 효의 배치는 이런 성격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양은 강건하다, 간다는 표현을 주로 쓰는데, 일이 되게끔 하는 능력, 기획력에서 실행력까지 갖추고 있는 주체이다. 그 주체들이 부드러운 음 하나에 통솔되지만 음의 능력을 감안하면 양들이 스스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통솔자인 육오효는 효사에서 믿음으로 만난다고 한다. 중심인 군주인데 권력, 힘으로 만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자는 음이 자기 몸을 비운채 양들을 만나는 것이라고 한다. 육오는 텅 빈 중심과 같다. 그러므로 대유괘가 풍요로울 수 있는 것은 주체들이 있는 힘껏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며 활동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을 자율적인 삶, ‘공통의 부의 또 하나의 중요한 원리라고 보고 싶다. 상호 연결되고 상호 제약하여 구원도, 파멸도 상호간에 일어난다. 그러므로 대유, 그 어려운 것을 해내면, 상구효에서는 하늘로부터 도움이 있다고 한다. 자율적인 삶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에게 하늘은 이렇게 응대하는 게 아닐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111.jpg




   나는 문탁에서 친구들과 즐겁게 공부하며, 이 친구들과 함께 사는 것을 더 없는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많은 일에 참여하면서 기쁨을 누린다. 그러나 자누리화장품의 계속되는 적자와 파지사유의 매출 감소와 파지사유인문학의 수강생이 늘지 않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기쁨의 상태일까,

댓글 5
  • 2018-08-23 19:31

     소리내어 읽었더니 조금더 이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 

  • 2018-08-23 20:15

    하나의 음이 다섯 양을 통솔한다는 효의 배차의 해석이 저는 끌리네요.

    양들이 스스로 조화를 이루게 하는 음의 능력..? 다섯 양 사이에서 어떨까 싶기도하고..ㅎ

    그리고 대유괘 통찰을 통한 자누리쌤의 마지막 질문들이 ...

    아직 저에게 깊이는 덜한 듯 싶지만 질문으로 와닿네요 

    나는 공통의 부를 쌓고 있는 것인가?

  • 2018-08-24 10:11

    각자의 공부와 활동력으로 증식시키는 공통의 부....

    늘 그렇듯이 어려운 문제지요.

    샘의 고민이 더 깊어지신듯 하여 안타깝습니다.

    그렇지만 힘내서 지혜를 모아봐야 하겠지요? animate_emoticon%20(39).gif 

  • 2018-08-24 15:18

    "이 모순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주체를 구성적으로 보는 것이다. 양의 자리지만 양이 올 때와 음이 올 때 다른 주체가 된다. 주역을 변역이라고 하는 가장 큰 이유도 바로 효의 배치가 서로 다른 괘를 만들고 다른 주체를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 주역을 처음 읽으면서 일단 만나는 첫 난관이 바로 이 효의 '자리' 문제더라구요.


    이것은 6개의 비어있음, 양과 음의 자리인데 '다른' 것이 오면서 '다른' 주체가 된다.


    거기에 음인데 양이 오는 변화를 읽을 때 또 괘상 전체의 영향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것까지....


    자누리샘의 효의 배치에 대한 설명을 읽으니^^


    자리는 곧 자신이 처한 '자리'이자 엮여있는 일을 통해 그 전체의 때(64개의 때) 어느 '자리'인지도


    읽어야 하는 '명석판명한' 앎을 향한 길잡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아하^^!

  • 2018-08-24 23:41

    자누리샘이 마을공유지를 얼마나 아끼시는지 지난번 건괘에 이어 대유괘에서 더욱 확인할 수 있네요.

    저는 요새 복을 들여다 보고 있자니 문탁이 신기하게 생각되었는데...

    바로 샘께서 자세히 설명해 주시고 계시네요.

    샘의 고민이 이렇게 깊고 힘써 노력하시는데 하늘이 어찌 돕지 않겠습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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