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완이의 쿠바통신 6] 낭만의 의미 - 문학 선생 R의 이야기

관리자
2021-02-25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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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완

청소년 때 인문학 지식공동체인 남산강학원에 눌러앉아서 오 년간 읽는 법, 쓰는 법, 질문하는 법을 배웠다. 그 후로 쭉 글쓰기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2014년에는 남산강학원과 인문의역학 연구소 감이당이 함께 하는 MVQ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뉴욕에 가서 살짝이나마 세계를 엿보았다.

2017년에는 공부와 실험을 계속하기 위해 쿠바로 넘어갔다가, 공부의 방향을 의학으로 틀게 되었다.

앞으로 신체와 생활이 결합되는 글쓰기를 해보고 싶다.

저서로는 『다른 십대의 탄생』(2011),『리좀 나의 삶 나의 글』(2013),『돈키호테, 책을 모험하는 책』(2015),  『뉴욕과 지성』(2018)이 있다

 

 

 

노인과 스쿠터

 

이보다 더 낭만적인 순간이 있을까? 비포장도로를 달려서 과외수업을 끝나는 시간에 맞춰 R을 데리러 온 남편, 가는 내내 그의 하얀 머리카락을 바라보는 자신, 거의 닳아버린 배터리로 힘겹게 움직이는 스쿠터. 미국에 사는 조카가 다음에 쿠바를 방문할 때 새 배터리를 가져다줄 예정이다. 조카는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이모의 나라에 환상을 가진다. 모든 걸 돈으로 살 수 있는 미국에는 낭만이 없다나. 그렇지만 조카가 낭만을 찾는 이미지는 살사, 럼, 말레꼰이다. 언제 멈출지 모르는 스쿠터로 집으로 돌아가는, 바람에 머리가 발랑 까진 두 노인의 모습은 아니다. R의 낭만을 십대 소녀가 이해하기는 어렵다.

 

R은 외국인 학생들 사이에서 노련한 스페인어 선생으로 소문난 사람이다. 일주일에 과외 수업을 수차례씩 다닌다. 이 일에 뛰어든 지 벌써 삼십년 째다. 그 세월 동안 R은 어떤 학생과도 시간약속을 어기지 않았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여느 쿠바인들처럼 R은 차가 없고, 아바나의 대중교통은 형편없는데다가 집은 시내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이민을 간 언니가 몇 년 전에 스쿠터를 사서 보내준 후에야 상황이 좀 편해졌다.

 

그 후 남편은 R의 전용 기사가 되었다. 젊은 시절에도 남편은 R을 마을버스에서 꼬셨다. 그 당시 R은 남편의 건축사무소 옆에 있는 국립국어원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매일 같은 버스를 타고 퇴근하는 R을 눈여겨보더니, 남편은 어느 날부터인가 자기 집 정류장을 지나서도 버스에서 내리지 않았다. 두꺼운 책으로 묵직한 R의 가방을 들어주기 위해서였다. R은 삐로뽀(이성을 향한 추파와 칭송 사이의 언사)를 사회적 의무로 여기는 쿠바 남성의 오지랖이라고 여기면서 도도하게 가방을 넘겼다. 그러나 남편의 삐로뽀에는 정성과 끈기가 있었다. 곧 그는 R과 같은 정류장에서 내리기 시작했고, 지금까지도 집에 함께 간다. 교통편이 버스에서 스쿠터로 바뀌었을 뿐이다.

 

반빛 - <낭만 60세> (2021)

 

 

 

 

시를 사랑하는 마음

 

R의 본업은 과외선생이 아니다. 그는 대학교에서 국어국문과 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쿠바에서 교수의 월급이란 4인 가족이 외식 두 번 하면 사라질 돈이다. 학교 밖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과외를 뛰지 않았더라면 남편의 월급을 보태도 딸아이를 키울 수 없었다. 경제 인플레이션은 노동의 가치와 실제 물가 사이에 불가해한 간극을 벌려놓았다. 오래된 일이라 이제는 다들 무감각하다.

 

외화가 갈급한 것은 정부도 마찬가지인지라, R의 대학교는 외국인 학생들을 유치시키기 위해 스페인어 계절코스를 연다. 코스를 책임지는 것은 교수들의 몫이지만 쥐꼬리만한 월급에는 변동이 없다. 그럼에도 R은 이 일에 진심으로 임한다. 자신의 본분이 교수임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자로 잰 듯한 반듯한 근무태도는 생계유지도 보장하지 않는 노동이 무슨 소용이냐고 불평하는 다른 동료들을 무안하게 만든다. 상황의 모순은 모두에게 자명하다. 그렇지만 모순의 모서리로 스스로를 갈고 닦는지, 아니면 모순을 재생산하는 연료로서 스스로를 방치하는지는 당사자만 결정할 수 있다.

 

직장동료들이 R을 정치성향이 뚜렷한 인물로 분류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R은 공석에서나 사석에서나 정치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는다. 젊은 피를 끓게 했던 피델 카스트로의 연설도, 혁명적 교육에 대한 열정도 옛적에 마음속에 접어두었다. 그러나 이제는 말 없는 성실함조차 정치 표명이 되는 시대다. 노동과 생계가 괴리된 상황에서 자기 업무에 책임을 다하는 사람은 실종되었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친정부인사들이다. 혹은 화석이 된 혁명의 이름을 아직까지도 버리지 못한 자들이다.

 

R은 동료들의 생각보다 더 낭만적인 사람이다. 그를 움직이는 것은 정부나 혁명이 아닌 시(詩)다. R의 마음속에는 영원히 죽지 않는 시인이 살고 있다. 호세 마르티(Jose Martí), 쿠바의 국부로 추앙받는 시인으로서 그의 작품은 독립 쿠바의 기념비가 되었다. 명성에 질려버린 학생들은 마르티라는 이름만 나오면 눈에 힘이 풀리고 침 흘리며 잠에 빠진다. 저 놈들을 잘 기억했다가 학기말 성적에 반영해야지. 잠시 눈을 가늘게 뜬 R은 마르티의 작품에 생기를 불어넣기 위해 수업에 집중한다. 그의 시에는 사람의 영혼을 꿰뚫어보는 곧은 시선이 있다. 피 흘리는 시대부터 인간의 밑바닥까지 단숨에 질주하는 사유의 속도, 그 위에 얹힌 기막힌 글 솜씨. 얼마나 각진 모순 속에서 건져 올린 귀한 말들인가? 그는 스페인인의 아들로서 쿠바의 독립을 바랐고, 제국의 시대에 영성을 쫓았고, 가난 속에서 별을 보았다.

 

그래서 R은 쿠바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마르티의 글에는 이 열대 섬을 향한 사랑의 속삭임으로 가득하다. 이 섬은 스페인어권의 최고의 작가 중 한 명을 키워냈다. 그것만으로도 R은 자신이 쿠바인이라는 사실을 정당화할 수 있다.

 

R의 낭만이 학생들에게 악몽이라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제자들은 학기 말마다 마르티 사상에 대한 기나긴 보고서를 쓰면서 피눈물을 흘린다. 외국인들도 예외는 아니다. 계절코스 당시 R은 계속 졸기만 했던 노르웨이 학생 한 명을 지목했다. 그리고 마르티의 시 <나는 신실한 사람(Yo soy un hombre sincero)>을 낭독한 후 해석해보라고 했다. 금발머리에 새하얀 피부, 파란 눈을 가진 소녀의 얼굴이 더 하얗게 질렸다. 그리고 어색한 스페인어 억양으로, 쿠바의 명예로운 노교수에게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했다.

“몰라요. 마르티의 시는 그냥 말이 안 돼요.”

R은 눈을 깜빡였다. 교실 전체가 공포의 침묵 속에 잠겼다. 소녀는 F 점수로 코스를 마쳤다. 본국 대학의 학점을 위해서 F는 받을 수는 없다며 뒤늦게 울며 매달렸으나, R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교내에서 우아하기로 소문난 미소를 한 번 지어주었을 뿐이다.

 

 

쌀독과 하이힐

 

교수직을 막 시작했던 삼십대에도 R은 지금처럼 우아했다. 놀라운 일이었다. 그때는 만인이 사활을 걸었던 특별 시기였다. 자동차가 끊긴 텅 빈 거리에서 사람들은 식량을 찾아 끊임없이 걸었고, 신발이 닳으면 땜빵할 재료를 찾기 전까지 집에서 나오지 못했다. 그 난리 속에서도 R은 정확하게 시간에 맞춰 학교에 왔다. 그가 계단을 오르면 하이힐 소리가 또각또각 들렸다. 화장을 거르는 날은 하루도 없었다.

 

겉모습만 보면 외국에 부자 친척을 둔 배부른 쿠바인 같았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R의 언니는 특별시기가 끝날 무렵에야 미국으로 이민을 갔고, 그곳에 자리 잡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특별시기 내내 R은 쿠바에서 남편과 함께 생존을 분투해야 했다. 딸은 R을 강하게 만들었다. 초등학교도 아직 안 다니는 어린 딸이 배를 곯는 것은 용납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음식에 대한 R의 집착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월급이 들어오면 한 달 동안 무슨 음식을 사야하는지, 또 누구에게서 살 수 있는지 정리하는 리스트를 썼다. 과외가 구해지면 옆 도시라도 무조건 달려갔다.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쌀독이 바닥나는 날은 없었다. 넉넉히 채워지는 날도 없었지만, 이만해도 기적이었다.

 

최선을 다해도 평타를 치는 게 고작인 싸움이었다. 그 속에서 R은 승리하는 다른 길을 찾았는데, 스스로를 가꾸는 것이었다. 옷이 질리면 헌 옷을 새 디자인으로 직접 수선했다. 염색약은 이웃이 손수 만든 엉성한 제품을 썼다. 화장품이 떨어져도 화장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땐 구두약으로라도 눈썹을 그렸다! 정돈된 모습으로 집을 나서면 하이힐 소리가 경쾌한 음악의 비트처럼 들렸다.

 

R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쿠바인이다. 쿠바 여자는 쓰레기를 버릴 때에도 손톱을 예쁘게 다듬는다. 허영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삶의 무게를 덜어내기 위해서다. 덜어낸 공간만큼 긍정의 힘이 생긴다. 그래, 암만 세상이 무너지더라도 어쨌든 눈썹은 그려야 하고 발목도 3cm 들어줘야 한다. 인간들이 무슨 난리부르스를 치든 간에 태양이 변함없이 카리브해 위로 솟는 것처럼, 어떤 풍파 속에서도 인생은 빛나야 한다. 쌀독을 지킨다는 자부심만큼 하이힐이 높이 올라갔다. 그렇게 R은 승리를 기약하며 매일 우아한 출근을 했다.

 

 

낮과 밤의 불꽃

 

인생이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빛나던 때도 있었다. 그때 R은 대학생이었다. 쿠바는 세계사라는 외풍에 매 순간 흔들렸지만 그 풍랑이 대학교까지 뒤흔들지는 못했다. R과 친구들은 라틴어 수업을 낙제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공부했고, 교수님들의 지도하에 고전 소설을 묵독했다. 가끔씩 피델이 방문해서 연설할 때면 학교에 새벽같이 모였다. 1월 28일에는 전교생이 모여 횃불을 들고 호세 마르티 탄생일을 기념하는 행진을 했다. 그때는 하루하루가 바빠서 이게 평화인지도 몰랐다.

 

 

 

쿠바 혁명의 아버지 호세 마르티(1853년 ~ 1895년)

 

 

 

혁명은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뜨겁게 실재했다. 교수님들은 왜 언어가 혁명의 꽃인지 강의했다. 문화가 없는 민족은 죽은 민족이고, 이야기가 없는 땅은 인간의 땅이 아니다. <나는 모든 곳에서 와서 모든 곳을 향해 간다(Yo vengo de todas partes, y hacia todas partes voy)>는 호세 마르티의 시구는 세계 모든 대륙의 핏줄이 섞인 쿠바의 이야기를 한 줄로 요약해놓았다. R은 눈이 빛나는 교수님들을 따라서 대학원에 진학했고, 쿠바 각 지역에 흩어진 방언과 구전을 수집하기 위해 전국을 누볐다. 그는 성실한 기록자였다. 학자의 강의, 시골사람들의 속담, 원주민 후손의 기억이 그의 손끝에서 꼼꼼하게 종이로 옮겨졌다.

 

밤 또한 뜨거웠다. 놀고 싶었지만 청년들은 늘 돈이 없었다. 바를 가는 건 꿈도 꾸지 못했다. 그래도 방법은 있었다. R과 친구들은 자동차 라디오 볼륨을 높였다. 비싼 술 대신 레모네이드를 만들어서 마셨다. 집이 좁으면 길거리의 가로등 불빛 아래로 나왔다. 그리고 밤새 살사를 췄다. 겨울이 없는 나라에서는 아무 때나 야외에서 밤을 샐 수 있었다.

 

살사를 추던 어느 밤, R은 한 대학 선배와 눈이 맞았다. 연애에서 결혼까지 모든 게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그렇지만 첫 번째 결혼생활은 어린 딸만 선물로 남기고 짧게 끝이 났다. R은 자신의 미숙함을 인정했으나 결과에 크게 괴로워하지는 않았다. 쿠바에서 이혼은 드물지 않았다. 많은 여성 선배들이 가정사 때문에 학자의 길을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몸소 증명해주었고, R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었다. 아직도 앞길은 밝아보였다. 이제부터는 딸이 인생의 새 빛이 될 터였다.

 

 

삶은 예술보다 넘친다

 

R이 딸의 엄마가 아니라 아직 엄마의 딸로 호명되던 시절, 집은 세상의 전부였다. 지금도 R이 남편과 함께 돌아가는 그 집이다. 이웃과 담소하는 어머니, 퇴근 후 목공 하는 아버지, 언니와 산책을 나선 조부모님이 그곳에 계셨다. 시간이 흐르면서 한 명씩 집을 떠나거나 세상을 떠났다. 딸마저 분가하고 난 후 R은 이곳에 남은 마지막 사람이 되었다. 스쿠터를 타고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반세기 넘게 그대로인 풍경이 보인다. 같은 영화의 한 장면을 매일 반복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지겨움보다는 안정감을 준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당시, 어떤 손님이 집을 방문했다. R이 태어나기도 전에 미국으로 떠났다는 이모였다. 늙은 이모는 그에게 옛이야기를 해주었다. R의 외갓집은 비야 끌라라의 부유한 가문이었다. R이 태어나자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이모에게 집을 봐달라고 부탁하고 아바나로 넘어왔다. 손녀를 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모는 근시일내에 보트를 타고 미국으로 떠나기로 남자친구와 약속한 상태였다. 누구에게도 계획을 발설할 수 없었고 일정을 미룰 수도 없었다. 이모가 쿠바에서 감쪽같이 사라진 후 집은 오랫동안 비어 있었다. 결국 정부는 빈 집을 압수했고 국가 사무실로 꾸몄다. 뒤늦게 사정을 알게 된 조부모님은 부랴부랴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이미 전 재산은 증발한 뒤였다. 그들은 빈손으로 아바나로 돌아와야 했다. 가족 모두가 힘든 시기를 거쳤다. 다시 살림이 편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였다.

 

R은 북받치는 감정에 아무 대꾸도 할 수가 없었다. 며칠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감촉이 아직 생생했다.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도 보고 싶었다. 자신이 딸을 지키고 먹이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살았던 것처럼, 그들도 R에게 아늑한 집을 만들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 고생은 자기 인생만이 아니라 다른 시공간에서 무수히 반복되던 순간이었다.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만인은 연결된다.

 

R의 인생은 여러 꿈들로 채워졌다.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꿈도 있었고, 혼자서 붙잡으려고 했던 꿈도 있었다. 세상은 책의 논리처럼 정합적이지 않다. 꿈은 깰 수밖에 없고 몰락은 우아할 수 없다. 그러나 아픈 기억을 왜곡하거나 삭제하지 않고도 인생의 서사는 바뀔 수 있다. 시간을 희롱하면 사건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는다. R이 사랑한 수많은 작가와 시인들은 작품을 통해서 시간을 재구성하는 비법을 알려준다. R은 귀갓길에서 ‘같은 영화의 한 장면’을 매일 반복하지만, 사실 이 장면은 단 한 번도 같은 적 없었다. 인생과 함께 낭만의 모습은 달라지지만, 낭만의 의미는 시간이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에서 늘 새롭게 샘솟는다.

댓글 3
  • 2021-02-25 18:01

    삶의 무게를 덜어내기 위한 소소한 행복^^
    쿠바인들은 지혜로운 사람들인것 같아요
    모순의 모서리를 갈고 닦으며 살수있으면 ㅎ

  • 2021-02-25 19:24

    아, R에게 스페인어를 배우러 달려가고 싶어집니다.

  • 2021-02-26 00:42

    R의 삶 자체가 혁명의 시네요.
    나는 모든 곳에서 와서 모든 곳을 향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