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완이의 쿠바통신 2] 혁명과 아내 - 하숙집 주인 G의 이야기

관리자
2020-10-25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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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완

청소년 때 인문학 지식공동체인 남산강학원에 눌러앉아서 오 년간 읽는 법, 쓰는 법, 질문하는 법을 배웠다. 그 후로 쭉 글쓰기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2014년에는 남산강학원과 인문의역학 연구소 감이당이 함께 하는 MVQ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뉴욕에 가서 살짝이나마 세계를 엿보았다.

2017년에는 공부와 실험을 계속하기 위해 쿠바로 넘어갔다가, 공부의 방향을 의학으로 틀게 되었다.

앞으로 신체와 생활이 결합되는 글쓰기를 해보고 싶다.

저서로는 『다른 십대의 탄생』(2011),『리좀 나의 삶 나의 글』(2013),『돈키호테, 책을 모험하는 책』(2015),  『뉴욕과 지성』(2018)이 있다.

 

 

 

 

좋은 사람, G

 

G는 좋은 사람이다. 인상은 우악스럽고 언사도 직설적이지만, 사람을 대할 때는 마음을 부드럽게 열어둔다. 머리가 비상한데다가 익살스러운 면도 있다. 젊은 시절에는 ‘올바름’의 외피를 입은 고집이 그의 우정의 경계선을 좁게 제한했을 것이다. 그러나 세월과 함께 병색이 깊어질수록 어깨의 힘은 빠지고, 커져가는 외로움에 더 많은 사람들을 수용하는 법을 익혔을 것이다. 이제는 완연한 노인인 그의 취미는 아침마다 집 청소를 끝내고 대문 앞에 앉아 시가를 피우는 것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에게 말을 건다. 집 앞 공원에서 뛰어 놀던 꼬마들이 종종 목이 마르다며 물 한 잔 달라고 찾아온다.

 

마을 사람들은 G가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 동네의 원주민이다. G는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태어났다. 원래는 G의 할아버지가 소유했던 집이었다. 그 후 어린 시절은 부모님을 따라 다른 지방에서 보냈지만, 어른이 된 후 아바나로 되돌아오면서 다시 이 집에 자리 잡게 되었다. 갓난아기가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오랜 시간이 흘렀고, 그 동안 그는 명망을 잃는 사건 없이 무탈하게 살아왔다.

 

G가 동네에서 유명해진 것은 아내 때문이기도 하다. 그의 아내는 남편보다 더 부드럽게 웃는다. 목소리를 높이는 일도 없고, 남에게 듣기 싫은 소리도 안 한다. 그러나 아내는 그렇게 생글생글 웃는 낯으로 동네 회비를 걷거나, 경고를 주거나, 벌금을 매긴다. 그의 공식 직함은 동네 반장이다. 안건이 있을 때마다 마을 사람들은 G의 집 앞에 동그랗게 모여서 회의를 하는데, 그럴 때면 아내의 얼굴은 한낮의 해바라기처럼 활짝 피어나고 목소리는 한 톤 더 쨍쨍하게 올라간다. 오래 전 받았던 다리 수술의 후유증으로 장시간 서 있지 못하는 G는 모임에 끼지 않는다. 대신 평소처럼 대문 앞에 앉아서 시가를 피운다. 혹은 거실의 흔들의자에 앉아서, 활짝 열어둔 창문으로 흘러들어오는 이야기를 경청한다.

 

 

 

엔지니어 청년과 매표소 아가씨의 모험

 

사람들은 G와 아내를 두고 천생연분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이혼하지 않고 인생의 황혼까지 함께 도달했다. 사랑이 빨리 뜨거워지는 만큼 쉽게 식는 쿠바에서는 보기 드문 경우다. 이것은 사랑의 힘이기도 하지만 혁명의 힘이기도 하다. 이들은 부부이면서 동지다. 체 게바라가 아직 쿠바에 남아있었던 시절을 함께 기억하고, 몇 년 전에 타계한 피델 카스트로를 똑같이 그리워한다. 같은 시간을 통과했고 같은 꿈을 꾸었다는 동지 의식이 이 둘 사이를 단단히 묶어 놓는다.

 

1959년, 쿠바 혁명이 벌어졌을 당시 G와 아내는 아직 10대 초반이었다. 그들이 청년이 되고 눈이 맞아 함께 가정을 꾸릴 즈음에는 혁명도 청년기를 통과하고 있었다. 희망이 있던 시절이었다. G는 80년대에 시장에 나면 불가리아산 사과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을 만큼 물자가 풍성했다고 회고한다. 모두에게 동일하게 배급되었던 식량 배급표는 넘치지 않았지만 부족하지도 않았다. 실업이라는 개념도 없었다. 청년 시절 G는 버스를 수리하는 차량 엔지니어였고, 아내는 그 버스터미널에서 표를 팔던 직원이었다. 둘 다 한 고집하는 성격인데다가 취향도 정반대였던지라 주변 사람들의 만류도 있었지만, 그들은 보란 듯이 사랑에 빠졌고 결혼에 골인했다. 미래는 장미빛처럼 보였다. 그들에게는 자존감도 있었다. 가방 끈이 길지 않은 노동자였지만, 노동자야말로 새로 태어난 쿠바의 진정한 주역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수리공 청년과 매표소 아가씨가 쿠바를 지키지 않는다면 누가 지키겠는가?

 

그들이 실제로 걷게 된 미래는 장밋빛이 아니라 뒤집힌 팔레트 위로 뒤섞여버린 물감 같았다. 80년대가 지나자 거짓말 같은 90년대가 왔다. 소련은 공중분해 되었고 세상에서 홀로 고립된 쿠바는 ‘특별시기’에 들어갔다. 동네 개와 고양이를 몰래 잡아먹지 않으면 양식을 구할 수 없던 시기였다. 얼기설기 엮은 뗏목을 타고 마이애미를 향해 탈출했다가 부서진 배와 함께 시체로 되돌아오는 쿠바인들을 보며 아내는 매일 울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병 때문에 두 사람 모두 사십대라는 젊은 나이에 직장에서 은퇴를 하게 되었다. 점점 두께가 얇아지는 배급표와 한 달에 만 원 남짓한 연금을 손에 쥐고 아내는 매일 한숨을 쉬었다. 특별시기의 끝자락, 이제부터 쿠바의 희망은 관광업이라는 정부의 발표가 나자 그제야 아내는 벌떡 일어났다. 외국인 관광객 숙소(까사 빠르띠꿀라르)를 개업할 허가증을 따내기 위해서 사방팔방 뛰어다녔다.

 

G는 울지 않았다. 그 대신 생계를 잇기 위해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아내에게 협조했다. 아내가 큰 병에 걸려 쓰러졌을 때는 아내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겠다고 결심했고, 그 후 완벽한 주부로 변신하여 모두의 감탄을 자아냈다. 그렇지만 생계에 치이면서도 G는 혁명을 잊지 않았다. 승리의 행렬이 지나갈 때마다 길가에서 박수를 치며 판에 박힌 혁명 문구를 되풀이하는, 그러나 승기가 꺾이자마자 등을 돌리고 과거의 발자국을 욕하는 구경꾼으로 남을 수는 없었다. 그건 그가 혁명 쿠바에서 나고 자라면서 배운 게 아니었다.

 

 

반빛, <쿠바의 노부부>(2020)

 

 

 

혁명은 마음으로 계속된다

 

G는 배운 대로 살고자 했고, 그 의지를 밀어붙일 만한 고집도 있었다. 80년대 앙골라 독립 전쟁이 벌어졌을 때, 그는 휴직을 신청했다. 군인이 되기 위해서였다. 앙골라에 파견되는 쿠바 혁명군이 되기를 자처한 것이다. 사실 군인은 G의 담대한 성격에 가장 잘 어울리는 직업이었다. G가 쿠바를 떠나있는 삼 년 동안 아내는 세 살 배기 아들을 옆에 낀 채 매일 편지를 썼고, G를 부대에서 가장 많은 부러움을 사는 남자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가 쿠바에 돌아온 후에 아무래도 다시 앙골라로 돌아가야겠다고 말하자(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때였다) 아내는 말없이 이혼 서류를 꺼내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결국 G는 고집을 꺾었다. 전쟁의 후유증으로 수술도 몇 차례나 받아야 했다. 그 후로 그는 전쟁에 참여하는 대신 꼼꼼하게 세금을 내는 것으로 자신의 혁명적 과업을 실천했다. 탈세가 범죄가 아니라 불가피한 생존 방식으로 암암리에 용인되는 쿠바에서, 그는 20%가 넘는 까사 빠르띠꿀라르의 세금을 단 한 푼도 모자라지 않게 지불해왔다. 집 창문에 작은 간이 카페를 마련해서 50원 짜리 커피를 팔던 시절에도 그는 세금을 정확하게 지불했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고 누가 물어보면, 자신이 병원에서 돈 한 푼 지불하지 않고 받았던 16번의 수술도 누군가의 세금 덕분이었다고 답을 했다.

 

G는 바보가 아니다. 그 역시 혁명이라는 이름 아래 부조리가 탈색되고 의도가 곡해되며 엉뚱한 사람에게 혜택이 가는 경우를 숱하게 보았다. 역사가 수많은 사람들의 선의를 배반하는 방향으로 무심하게 전개되는 것 또한 지켜보았다. 이제 그는 개개인마다 ‘현실’을 다르게 인식하고 또 거기에 개입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철학의 문제가 아니겠느냐고 말할 정도로 현명해졌다. 하지만 그 많은 변화를 겪으면서도 그에게 남은 믿음 하나가 있었으니, 그것은 나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하면서 살면 된다는 황금률이었다. 그는 이 소박한 선의가 혁명의 시작점이었다고 믿는다. 찢어지게 가난한 스페인 이민자의 후손이었던 자기 가족들의 삶이 혁명 후로 어떻게 바뀌었는지, 어떻게 병원과 학교의 문턱을 밟을 수 있게 되었는지 G는 지금까지도 잊지 않았다.

 

 

 

착한 사람들의 해피엔딩

 

‘좋은 혁명’은 결과적으로 G와 아내에게 ‘좋은 운명’을 선사했을까?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쿠바인들 모두가 겪어야만 했던 극심한 어려움 앞에서 그들 또한 낙담했었다. 그러나 G와 아내는 2000년대부터 외국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숙집을 운영하면서 꾸준히 재산을 늘렸고, 마침내 안정적인 중산층 계급에 안착했다. 누가 보기에도 성공한 삶이었다. 물론 이것은 혁명의 결실이라기보다는 시의적절한 행운과 둘의 부지런함이 일궈낸 결과이긴 했다. 젊은 시절에 몸을 함부로 쓴 대가로 둘 다 별의별 지병을 얻게 되었다. 그렇지만 무상 의료 체제 덕분에 병원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 어찌 보면 이 또한 감사한 삶이다.

 

G는 자신의 인생이 좋은 삶이었다고 확신한다. 외부 상황이 어떻게 변했든 상관없이, 그는 끝까지 ‘좋은 사람’으로 남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청년기에나 노년기에나 그는 한결같이 타인을 해롭게 하지 않았다. 부당한 혜택을 받지 않았다. 불법을 저지르지 않았다. 이 자존심이 무너지지 않는 한 그는 강하고 따뜻한 사람으로 남을 수 있다.

 

불행하지 않은 말년은 실제로 그의 자존심을 지켜주었다. 한때 외국에서 복무하는 군인이었던 G는 이제 외국인 학생들에게 사랑 받는 하숙집 주인이 되었다. 격의 없는 태도로 외로운 외국 청년들의 친구가 되었고, 그들이 연락 없이 외박이라도 하면 화를 벌컥 내며 진심으로 걱정했음을 알렸다. 말을 더듬거리는 언어초보자가 오면 낄낄 웃으며 스페인어를 가르쳐주었고, 그 친구의 언어 실력이 좀 늘었다 싶으면 두 팔 걷어 부치고 국제 정세에 관해 토론을 벌였다. 아침저녁으로 학생들의 식사를 챙겨주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요리는 훌륭했지만 메뉴는 단조로웠다. 반복되는 음식에 질린 학생들이 은근슬쩍 외식을 시작하면, 그럴수록 자기는 식비 절약하고 좋다며 쿨하게 대응했다.

 

하숙집은 대학가에서 점점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하숙집을 떠나 본국으로 돌아간 후에도 외국 학생들은 시가를 입에 물고 하루 종일 야구 경기를 보던 욕쟁이 쿠바 할아버지를 그리워했다. G의 생일날에는 전 세계로 흩어진 청년들이 축하 이메일을 보냈고, 면도 크림이나 간식을 잔뜩 담은 선물 박스를 보내기도 했다. 그는 이 모든 것을 이웃들에게 감추지 않고 자랑했다. 글로벌한 우정은 그가 말년을 위로하는 유일한 낙이었다.

 

 

 

반빛,  <영원히 여름>(2020)

 

 

 

 

그는 몰랐다

 

그는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그가 그렇게 아꼈던 ‘외국인 아들딸들’ 중 일부는 자기 방에서 돈이 사라졌음을 알고 깜짝 놀랐다는 것을. 속상한 마음에 말을 꺼내 보려다가도, G의 얼굴만 보면 입이 떨어지지 않아서 그냥 묻어두었다는 것을. 도난 사건은 잊을 만하면 이어졌다. 400불을 장롱 속에 놓으면 50불이 사라지고, 2000불을 인출해 놓으면 200불만 사라지는 식이었다. 희한하게도 이 사건은 G와 유달리 친했던 학생들에게만 일어났다.

 

그러나 G가 범인일 수는 없었다. 그가 도둑이 되느니 차라리 죽으리라는 것은 옆집 꼬맹이도 아는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외부인일까? 손녀의 손을 탄 것일지도 몰랐다. 아픈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돕겠다며 하숙집을 제 집처럼 들락거리던 소녀, 최신 아이폰을 사고 싶다고 투덜거리던 그녀가 범인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손녀가 스페인으로 건너간 후에도 도난 사건은 멈추지 않았다. 그제야 학생들은 G 옆에서 늘 웃는 그림처럼 서 있는 아내를 떠올릴 수 있었다.

 

어느 날 도난을 당한 학생 한 명이 참지 못하고 아내를 불러냈다. 그러자 아내는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그리고는 떨리다 못해 이상해진 목소리로, 자신은 죽어도 범인이 아니며 누가 했는지도 모르고 알 방도도 없지만, 어쨌든 자기 집 안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명예가 실추될 것이라며 제발 함구해달라고 말했다.

 

G는 몰랐을 것이다. 그의 병이 악화된 시기와 학생들의 돈이 사라졌던 시기, 그리고 아내의 얼굴이 어두워졌던 시기가 항상 맞물렸다는 것을. 그때마다 새로운 세간 도구가 집 안에 들어왔다. 그의 허리가 악화되었을 때에는 세탁기가 들어왔고, 한여름 더위와 관절통 때문에 그가 통 잠들지 못했을 때는 에어컨이 들어왔다. 약을 구할 수 없을 때에는 아주 비싼 값을 주고 외국산 약 구매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아내는 G에게 돈이 어디에서 들어왔는지 출처를 말해주었고, 그는 아내를 믿었다. 그는 이것을 행운이라 여겼다. 좋은 사람으로 살아보려고 한평생 노력한 것에 대한 세상의 작은 보답이라고 여겼다.

 

아니, 아니다. 사실 그는 모를 수가 없었다. 돈이 필요할 때마다 어떻게든 돈을 만들어오는 아내와, 그때마다 귀신같이 찾아와서 돈을 빌려달라고 요구하는 아들들, 그리고 때때로 말없이 하숙집을 떠나거나 소식을 끊고 사라지는 학생들을 보면서, 할아버지가 물려주신 이 집에서 자기가 모르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짐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G는 모르는 편을 택했고, 그래서 그는 여전히 모른다. 왜냐하면 ‘좋은 사람’이라는 이름표가 빠진다면 그의 세계는 무너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가 가진 마지막 재산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가 정말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아내를 그렇게 만든 것이 ‘좋은 세상’에서 ‘좋은 사람’으로 살고자 했던 자신의 선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일지도 모른다.

 

가난했을 때나 살림이 폈을 때나, 아내의 얼굴에는 근심의 빛이 지워지지 않는다. 그 슬픔이 G의 슬픔으로 남는다. 혁명과 아내 중 어느 것도 제외하고 G는 스스로를 설명할 수 없다. 그래서 그 양단 사이의 거리만큼이 G의 인생이 된다. 그 좁힐 수 없는 거리를 G는 어떻게 하지 못하고 그냥 내버려둔다. 이 둘의 시간이 ‘해피엔딩’이라는 외피를 덮고 어느 날 조용히 숨을 다하며 끝날 때까지, 그는 그렇게 할 것이다.

댓글 9
  • 2020-10-25 09:31

    아이코.. 할아버지.. 젊을 때는 혁명이, 노년에는 아내의 눈물이 그의 버팀목이군요.

  • 2020-10-25 09:40

    쿠바를 가고 싶게 하는 글입니다.
    G와 그의 부인의 삶을 꿰뚫고 보는 글이
    삶의 진실이고 연륜인데 혜안을 가진듯
    아름답네요.

    인간이 나이가 들수록 겸손하고 이해 할 수 있고
    남을 용서 할 수 있다면 잘 살았다 할 수 있을거에요.

    G의 부인을 손가락질 할 수 없는 마음입니다 .
    그녀의 미소와 조신함이 위선이 아니고 진실이듯 도벽 또한 사실이고 삶이라는게 인생이란 이렇게 알 수 없는거라는걸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 2020-10-25 09:49

    질읽었습니다. 이런 깊은 눈으로 풀어내는 글이라니 ..

  • 2020-10-25 09:49

    잘 읽었습니다. 뭔가 쿠바의 삶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나 기대 대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게 됐네요. 부럽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아침에 쿠바에 다녀오니 좋으네요.

  • 2020-10-25 10:22

    쿠바 그립네요 ㅎ
    혁명의 시대를 거쳐 살아가는 삶의 무게
    노부부의 삶을 이리 잘 읽어내는 해완이 멋져!!!
    그림도 해완작품?

  • 2020-10-25 13:39

    잘 읽었습니당!

  • 2020-10-27 23:27

    해완님^^새로운 글쓰기네요~ 잘 읽었습니다 ~

  • 2020-11-04 06:49

    저는 G보다 그의 부인에 빙의 되어서 읽게 되네요

  • 2020-11-07 00:11

    술~술~ 잘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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