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20대의 탄생 13회] 동은 - 나에게 예술은

이동은
2018-12-29 19:09
491

다른 20대의 탄생

 

 

 

 

 

대학을 안 가고, 못 가고, 자퇴한 우리들의 이야기. 학교를 관두라는 말, 직장을 관두라는 말은 많지만 어떻게 살라는 말은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다. 다른 20대의 탄생은 세 명의 20대가 공동체의 경험을 통해 질문들을 던지고 길을 찾아가는 구체적인 과정을 담은 글이다.

 

 

 

다른 20대의 탄생 #13

 

 

나에게 예술

 

 

 

 

 

 

 

 

동은 프로필01.jpg

글 : 이동은(길드; 다)

 

문탁에 온 뒤 살아가는 것과 공부하는 것이 멀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인지 내가 공부를 잘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가끔씩 잘 살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 순간을 늘려가고 싶다.

 

 

 

 

 

 

 

 

 

1.

예술프로젝트가 만들어지게 된 경위는 이렇다. 그 당시 문탁 근처를 어슬렁거리다 가끔 만나서 놀고 이야기를 나누던 청년들의 공통분모가 바로 예술이었기 때문이다. 음악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 연기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 영화를 만들고 싶은 사람. 하지만 대부분 백수에 다양한 이유들로 지속적인 결과물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 청년들을 모아서 판은 깔아 줄테니 너희들은 결과물만 내라!”고 만든 것이 바로 예술프로젝트다.

그리고 나는 이 만들어진 판에 참여했다. 그리고 한 번도 그림을 배우거나 하지 않은 내가 예술작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분명 친구들과 함께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2년동안 진행하고 난 이후엔 이제 예술작업으로 밥벌이를 고민하게 될 정도가 되었다. 나에게 예술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무엇을 하려고 하는 걸까?

    

 

 

2. 어쩌다 예술을 시작하고

예술 프로젝트는 서로 예술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을 나눌 수 있도록 관련된 책을 몇 권 읽는 것으로 시작한다. 예술프로젝트 1기에서 읽은 책은 발터 벤야민의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이었다. 쉽지 않은 책이었지만 자신이 진행하는 분야에 대한 생각을 두려움없이 나누고 앞으로 진행하게 될, 하고 싶은 작업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사실 나는 처음 예술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까지만 해도 단독으로 작업 진행할 생각이 없었다. 영상을 하는 용수와 음악을 만드는 남우 사이에 은근슬쩍 껴 뮤직비디오를 만들어보려는 단순한 계획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는 개인 작업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렇게 된 이유는 사전세미나에서 함께 예술에 대한 생각이 바뀌고, 마침 내가 하고 있던 공부가 우연히 맞물렸기 때문이다.

예술프로젝트를 하기 전에는 예술이 그저 아름다운 것, 깊고 중요한 의미를 가진 것이라는 생각에 나와는 아주 멀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사전세미나에서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예술은 인간의 지각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활동일지도 모른다는 생각하게 되었다. 당시 나는 내가 공부했던 <천자문>의 한자를 볼 때면, 나는 한자에서 특정한 장면이나 때로는 풍경이나 한자의 질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만약 내가 보는 방식으로 다시 한자를 표현한다면, 다른 사람들도 내가 보는 것처럼 한자를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아니, 그 이전에 한자인 것을 알아차릴까? 사람들이 한자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한자가 아닌 걸까? 이런 생각은 한자문자를 읽는 감각이 모호해지는 재미있는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재미있는 아이디어인데 아무것도 하지 않기에는 너무 아쉬웠다. 그렇게 개인작업을 하게 되었고 내 첫 예술작업은 한자 리디자인이 되었다. 그리고 작업을 시작한 뒤 매주 프로젝트원들과 함께 자신의 작업을 상대로 고군분투를 해가기 시작했다.

 

 

IMG_1917.JPG   IMG_1919.JPG   IMG_1924.JPG

 

 

아이디어 자체는 좋았지만 실제로 해나가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정말 온갖 자괴감과 불안함에 서로를 어르고 재촉하는 시간이 지나갔다. 부진한 작업속도와 생각만큼 만족스럽지 않은 과정에 예술프로젝트의 예술이란 이름마저 부끄럽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우리를 이끌던 새털쌤은 이렇게까지 말씀하셨다. “큰 기대 안한다. 정말 형편 없어도 좋으니 완성만 하자.” 그래 완성만... 완성만이 작업의 유일한 목표였다.

우리는 각자 다양한 방식으로 작업을 이어갔는데, 그 중에서 다작을 목표로 했던 재현이는 작업을 시작하고 한 달만에 20분 분량의 영화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재현이의 영화를 함께 보는 날, 피드백을 위해 남산강학원에서 공부하시던 혜진쌤이 새롭게 왔다. 그날 혜진쌤은 자신의 경험을 담아 재현이의 영화에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재현이는 평소에 보지 못하던 고집과 반발을 하며 자기 작업을 변호를 했다. 자기는 이렇게 만들어 보고 싶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했다, 고 말이다. 그때 우리는 평소와 다른 재현이의 모습에 의아했지만 한때이겠거니, 자존심이 상했겠거니 적당히 모른체 하며 넘어갔다. 하지만 얼마 후, 점점 작업이 진행되면서 우리는 그 때의 재현이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처음 작업을 시작할 때의 의욕이 오래가지 못해 꾸준히 작업물을 가져오지도 못하면서 프로젝트 중간 중간 산발적인 아이디어로 작업을 진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작업에 대한 자신감은 넘쳐서 일정에 맞지 않는 과한 계획을 들고 오고는 했다. 그럴 때마다 프로젝트원들은 네가 지금 그럴 때가 아니다라고 말해주었다. 처음에는 속상했다.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는게 예술 아닌가? 그런 말들이 그저 내가 하려는 것을 막으려고 한다고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은 고집과 반발로 나타났고 혜진쌤의 피드백을 듣던 재현이의 모습과 비슷했다. 그때서야 알았다. 그런 모습은 조언에 대한 고마움과는 다른, 어쩔 수 없는 마음 때문이라는 것을. 하지만 이런 생각과는 다르게 계속해서 변호만 늘어놓고 어쩔 땐 나를 위한 조언들이 마치 나를 공격하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이런 상황은 나 뿐만 아니라 프로젝트원들 모두에게 한 번씩 드러났다. 그 때마다 우리는 상당히 난처했다. 그저 감정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님에도 어떻게 해야할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우리들의 모습을 보고 경험이 많았던 혜진쌤은 우리에게 예술가가 그렇게 느끼는 것은 어느 정도 당연한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혜진쌤도 우리와 다르지 않게 생각했던 적이 있다고 했다. 혜진쌤 또한 감독으로서 작업을 하며 상대방의 말이 나를 공격하는 것처럼 느낀 적이 있다고 하셨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그것이 작업의 결과물을 나와 동일시 여기기 때문에 일어나는 생각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고 했다. 덧붙여 자의식이 모자라면 예술을 하는 것이 힘들겠지만 그보다 다른 사람들이 작품을 봤을 때, 그것 역시 자기 얘기라고 느끼게 된다면 좋은 작업이 될 거라고, 그렇게 느끼는 것은 더 나아지고 있는 과정이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혜진쌤은 이후로 몇 번 더 예술프로젝트의 모임에 나오셨고 곧 피드백을 하는 선생님의 위치가 아니라 함께 시나리오를 쓰며 작업에 대해 고민하는 프로젝트 원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혜진쌤에게 함께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혼자 작업을 하는 것보다 더 큰 원동력이 되었기 때문이다. 선생님의 합류는 예상하지 못했지만 그랬기에 더 기쁜 우연이었다.

예술프로젝트 1기 전시회의 이름은 <어쩌다 예술>이 되었다. ‘어쩌다계획에 없던 예술을 시작하게 된 나, ‘어쩌다우리를 만나 함께 작업을 하게 된 혜진쌤. 우리는 어쩌다만나 각자 다른 영역의 작업을 진행했다. 1기의 경험으로 나는 우리가 함께 작업을 하면서 분야는 다르지만 그 안에 비슷한 결을 발견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다른 분야의 우리가 서로 북돋으며 전시까지 해낼 수 있던 게 아니었을까? 우리는 발표가 끝난 이후에도 주기적으로 모임을 가지며 각자의 작업을 이어 하반기에도 한 번 더 전시를 할 수 있었다.

    

2432f2881f2546a543c022d88c3d581d.jpg

 

 

 

 

3.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

이듬해에도 예술프로젝트를 모집하게 되었다. 2기에 모인 사람들은 1기처럼 알음알음 알고 있던 사람들이 아니라 대부분이 예술프로젝트를 통해서 문탁에 처음 온 사람들이었다. 나는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는 것부터 큰 기대가 되었다. 새로운 사람과 가까워지는 것은 나에게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고, 1기에서 있었던 우연한 만남들이 더 새로운 즐거움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도 지난 1기와 같이 사전세미나에서 책을 읽으며 우리는 서로 예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예술을 전공으로 배우고 있는 사람, 단순해보이지만 내공이 스며있는 낙서를 하는 사람. 자유로운 분위기의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 스스로를 표현하는 예술을 고민하는 사람, 예술에 익숙해져 어느 정도 권태를 느끼고 있는 사람... 나 또한, 예술을 시작했지만 어떤 작업을 이어가야 할지 모르는 사람으로서 다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나는 1기를 해보았기 때문에 후에 우리가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부딪칠 일들이 대충 예상이 됐다. 작업을 진행하면서 개인들은 각자의 작업에 몰두하는데도 힘에 부치게 된다. 그러다보면 자신의 작업을 진행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작업물에도 별다른 피드백을 할 수 없어 진다. 그러나 예술프로젝트는 다른 위치에서 다른 일을 하던 사람들이 모여서 적극적으로 서로의 작업에 관여하게 될 수 밖에 없다. 자신의 작업과 다른 사람의 작업을 함께 살피기 위해선 서로 가까워지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피드백시간 이외에도 공동의 작업시간을 함께 가지자는 제안을 했다. 1기와는 다르게 2기에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함께 시간을 보낸다면 자연스럽게 가까워 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단순히 작업을 위해서 공동작업시간에 참여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개인 작업시간이 확보되지 않음에도 말이다. 그러다보니 피드백시간에도 작업물을 가지고 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내가 해야 하는 일도 벅차는데, 잘 모이지 않는 프로젝트원들이 답답하고 1기의 경험으로 마무리가 잘 될 수 있을까 막막했다.

하루는 몇 주째 완성된 작업물을 가지고 오지 못하는 친구에게 이런 저런 질문을 했다. 어떻게 작업을 진행하려고 하는 거냐, 진도가 나가지 않는 게 걱정이 된다,고 말이다. 그동안 그 친구는 어떻게 그림을 완성시켜야할지 모르겠다며 고민을 털어놓았다. 언제까지 그림을 그려야 하는지, 얼마나 그려야 하는지를 모르니 계속 그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이야기였다. 이 친구의 고민은 한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니었다. 우리는 모두 작업을 어떻게 완성시키는지를 알지 못했다. 그런 감 자체가 없었다고 해야 할까. 그때 나는 알았다. 단순히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으로는 프로젝트를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진행시킬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서로의 입장을 알았더라도 나는 나의 지난 프로젝트에서 즐거웠던 경험을 다시 하기를 기대하고 있었다는 걸 말이다.

2기를 시작하고 중반을 넘어가면서 까지도 나는 달라진 주변의 상황과 나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1기에서의 경험과 같은 방식의 작업을 진행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1기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예상하지 못한 작업을 진행하게 되었던 것처럼, 2기에서도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 새로운 활동이 만들어질 거라고. 그래서 서로 친해지면 다 될 거라고 생각했다. 새로운 활동이 되기 위해서는 함께 시간을 보내고 친해지는 게 아니라 서로 일을 진행해갈 수 있는 관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몰랐다.

    

 

 

4. 여러 일들을 함께 진행하는 것

예술프로젝트 2기를 시작하면서 비슷한 시기에 친구들과 <길드다>를 시작했다. 처음 일을 시작하는 것이고, 그 만큼 해야 할 일도 많았기에 길드다 친구들은 내가 예술프로젝트를 다시 하는 것에 대해 걱정을 했다. 그만큼 많은 일을 감당 할 수 있겠냐는 거였다. 하지만 예술프로젝트는 나에게 있어 예술을 시작하게 된 계기이고, 계속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작업을 위한 모임이 따로 있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했다. 내가 달라진 주변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잘못된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바로 이를 뜻한다. 그 일들이 내가 해낼 수 있는 일인지 알지 못했고, 결국 바뀐 일상에 시간과 체력을 조절하지 못해 항상 못하는 일들이 생기게 된 것이다. 한정된 시간과 체력, 그리고 해야하는 일들. 이것들을 앞에 두고 나의 일처리 방식들이 여실히 드러나게 되었다.

<길드다>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관심과 능력을 통해 새로운 일상을 만들어가겠다는 슬로건을 가지고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관심과 능력은 바로 손재주로 손재주와 관련된 예술 및 다른 업무들을 해나가겠다는 의미다. 처음 <길드다>가 만들어졌을 때, 나는 길드다의 리플렛을 제작했었고, 이후로 로고제작까지 하기로 했다. 내가 생각하는

<길드다>와 표현하고자 하는 가치를 고민하며 재미있는 작업을 진행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로고제작은 내가 생각하는 것을 나타낸다고 되는 것은 아니었다. 길드다 로고를 가지고 이야기하며 길드다 멤버들과 이런저런 언쟁을 했다. 나의 말과 상대의 말이 어긋나고, 종국에는 왜 이해하지 못하냐고 언성이 높아졌다. 그때 “왜 이걸 이해하지 못해?”라고 말한 건 어쩌면 “왜 나를 이해하지 못해?”의 다른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일로 몇 주간의 시간을 보냈지만 전혀 진척이 되지 않았고, 결국 그 일은 나를 도와주던 그래픽 디자이너의 몫이 되어버렸다.

돌이켜보면 그 때 내가 말했던 이해는 내 결과물에 대한 이해가 아니었다. 그 때의 나는 로고작업의 프로세스도 잘 알지 못했으며, 과정에 대해서 알고 싶어 했던 길드다 멤버들과 그런 과정을 나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내가 보낸 시간들을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앞세웠다. 작업의 결과물들은 겉으로 보기에 간단해보였지만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은 생각보다도 느리고 예측할 수가 없었다. 결국 로고작업에 있어 내가 해낸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한정된 시간을 쏟았으니 자연스럽게 다른 활동들에 영향이 가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예술프로젝트의 전시를 준비해야 할 시기가 되었지만 나는 내가 제안했던 드로잉모임 마저도 가까스로 자리만 채우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잘 알았다면, 그리고 이런 상황들을 미리 알았다면 나는 잘 해낼 수 있었을까? 이런 것들을 모두 처음부터 알았다면 좋았겠지만 애초에 모든 일을 알면서 시작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내가 일을 얼마나 감당할 수 있는지,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인지를 안다면 애초에 시작할 수 있는 일이 없지 않을까? 그러나 나의 문제는 그 때 까지도 내가 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아는 것보다 함께 일을 해낸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른다는 점이었다.

 

예술과 일은 다르지 않다

그 문제는 한꺼번에 일어났다. 길드다에서 처음 열렸던 공식적인 행사인 청년인문학캠프 <돈 몸 사람>과 예술프로젝트 2기의 전시가 갑작스럽게 함께하게 된 것이다. 행사가 얼마 남지 않고 밀려오는 일 중에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저 문제만 일으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길드다의 일에서도, 그리고 멤버쉽을 만들려고 했던 예술프로젝트의 일에서도 막막했다.

그 때 길드다의 행사와 전시 양쪽을 준비하면서 내가 해야 했던 일은 문탁이 낯선 예술프로젝트 사람들에게 문탁에 대해 설명하고 안내하는 일이었으며, 예술프로젝트의 상황을 길드다와 잘 공유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유경험자라고 생각해 주변 사람들을 챙겨야 한다며 스스로 느꼈던 의무와, 친구들과 함께 해내야 했던 일의 책임 사이에서 어떤 것도 해결하지 못하고 당장 눈 앞의 일들만 해치우기 급급했다. 결국 무사히 전시를 올려 예술프로젝트의 마무리를 잘 지을 수 있었지만, 그 이면에는 함께 일할 수 있는 관계를 맺는 방법을 모르는 나를 따라준 프로젝트 사람들과 캠프에 제대로 참가도 하지 못하고 막바지까지 함께 준비해준 친구들이 있었다.

모든 일정이 끝나는 날 나는 캠프 마무리에서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이곳이 내 현장인 것 같다.”고. 나에게 있어서 현장이란 내가 하는 모든 일들이 일어나고 여러 상황들이 날뛰는 곳이다. 내가 이 곳이 내 현장이라고 하는 말은 처음 예술에 대해서 멀고 막연한 것으로 생각했던 것처럼, 그재서야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눈 앞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같다는 말이었다. 물론 그렇게 말하고 알았더라도 해야 할 것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단 번에 체력과 일정을 잘 조절하게 되는 마법이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예술프로젝트 2기의 전시 제목은 <식어도 맛있는 예술>이었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우리는 결국 각자의 작업을 끝내기는 했지만 그 과정이 수월하진 않았다. 특히나 나에게는 일적으로도, 또 작업으로도 그랬다. 하지만 지난한 시간을 보내고 어렵게만 생각했던 막연했던 예술이 달라진 것처럼, 이제야 내가 눈 앞을 현장이라고 받아들이게 된 것처럼, 그렇게 조금씩 달라질 것 같다.

그러니 예술은 지금의 나에겐 현장을 바라볼 수 있도록 일에 대해서 알아나가는 계기다. 예술이 재미있지만 마냥 마음가는대로 하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걸, 예술을 하기 위해서는 그 이전에 일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행이도 그 힘든 시간을 보냈음에도 여전히 작업을 하는 것이 즐겁다. 일을 배우게 된 예술을 통해서 점점 다른 사람들과 소통해갈 수 있기를 바란다.

댓글 1
  • 2019-01-02 01:12

    예술은 혼자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강했었는데

    예술프로젝트를 하고보니 사람이 많을 수록 좋고 

    종이, 물감, 책상 등등 나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없구나 싶었어요

    사람이 많을 수록 해야할일도 늘어나는 것 같아요 

    해야할일을 어떻게 하고, 받아들일 것인가, 어려운 문제..1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