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이 돌아왔다 12회> 『국가』의 ‘엔딩 요정’은 BTS

새털
2019-08-02 03:17
737

[플라톤이 돌아왔다 12회]

『국가』의 ‘엔딩 요정’은 BTS

-국가』 10권

 

 

문탁에서 공부하고 생활한 지 어느새 9년째다. 시간은 정말 자~알 간다. 정신없이 후딱 지나갔다

세미나에서 오고간 말들을 모아서 ‘10주년 자축이벤트를 준비중이다. 거기엔 분명 당신의 생각도

단팥빵의 앙꼬처럼 들어있다는 사실을 이 연재를 통해 확인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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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털

 

문탁샘도 아닌데 문탁에 왔더니 쪼는인간으로 살고 있다

요즘 먹고 사는 시름에 젖어 쪼는 각이 좀 둔탁해졌다

예리해져서 돌아갈 그날을 꿈꾸며 옥수수수염차를 장복하고 있다

 

 

 

1. 영혼, 뷰티인사이드 (beauty inside)

국가10권에서 우리는 이데아’ ‘이상국가와 함께 플라톤의 주요개념 가운데 하나인 영혼 불멸을 만나게 된다. 아킬레우스, 오뒷세우스, 이아손, 테세우스, 헤라클레스 등 그리스의 영웅들은 전쟁과 괴물과 맞서 싸우는 데 자신의 목숨을 던졌다. 그리고 명예를 얻어 오늘날까지 신화와 전설로 살아남는 불멸의 존재가 되었다. 명예와 불멸은 그리스 사람들에게 표준이 되는 생활양식의 전범(典範)이었다. 이 말은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플라톤 철학의 혁신은 이름영혼으로 교체했다는 점이다. 플라톤의 도식에 따르면 사람은 죽어도 영혼은 남는다’. 플라톤은 가시적이고 가변적인 감각의 세계와 비가시적이고 불변적인 지성의 세계로 이분법적 인식론을 체계화했던 공식대로, 인간의 삶도 가시적이고 파괴적인 육체와 비가시적이고 불변하는 영혼으로 이분법적으로 구분한다. 그리고 변덕스러운 감각세계에 휘둘릴 것이 아니라 불변하는 지성의 세계를 알고자 힘써야 하는 것과 같이, 언젠가는 파괴되는 육체를 보살피는 삶이 아니라 불변하는 영혼을 돌보는 삶이 되어야 한다는 자신의 철학적 슬로건을 완성한다. 스승 소크라테스가 세속적인 명예와 부가 아니라 내면의 충만함을 가져오는 영혼의 돌봄을 강조했다면, 제자 플라톤은 스승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영혼 불멸이라는 새로운 근거를 추가했다. 정리하자면, 무릇 인간에게 좋은 삶이란 불멸하는 영혼을 돌보는 일을 최우선으로 하는 삶이다.

이제 플라톤에게 남겨진 문제는 영혼 불멸을 증명하는 일이다. 정말 영혼은 불멸하는가? 그것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플라톤의 또 다른 대화편 파이돈은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다. 당시 그리스에는 영혼 불멸과 윤회를 주장하는 오르페우스교와 피타고라스학파의 주장이 있어왔지만, 밀교(密敎)의 방식으로 전해질 뿐 대중적인 지지를 받고 있지는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죽음과 함께 육체가 파괴되면 영혼이 거처할 장소를 잃게 된다고 생각했다. 파이돈에서는 이를 악기가 부서질 때 음악의 선율과 리듬 또한 파괴된다는 비유를 들어 영혼 불멸설을 반박하고 있다.

그러나 파이돈에는 이를 반박하는 또 다른 비유도 제시되고 있다. 새 옷을 지어 입는 재단사의 비유이다. 재단사는 계절과 날씨에 따라 그에 맞는 옷을 지어 입는다. 옷이 닳고 헤어져 버린다고 해서 옷을 입는 사람까지 같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변하는 옷과 변하지 않는 재단사의 비유를 필멸하는 육체와 불멸하는 영혼까지 확장하는 것은 너무 비약(飛躍)이 심한가?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것들이 있다. ‘1, 3, 5, 7……모두 다른 숫자들 사이에도 홀수라는 불변하는 개념이 있다. 물은 얼음과 수증기로 상태 변화하지만, ‘HO’라는 불변하는 개념을 갖는다. 변하는 것들 속에는 불변하는 것이 함께 있다. 플라톤은 생로병사를 겪는 인간에게도 그러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영혼이라고 주장한다. 플라톤의 이러한 논증은 누군가에게는 고개를 끄덕일 만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처럼 들릴 수 있다. 플라톤의 논증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반면에 심장 어택판타지 로맨스영화 뷰티인사이드(2015, 백종열 연출)의 전개는 보다 설득력이 있다. 남자, 여자, 아이, 노인……심지어 외국인까지 자고 일어나면 매일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 남자 우진을 사랑하는 여자 이수가 있다. 매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우진을 이수는 어떻게 같은 사람이라고 알아차릴 수 있을까? 이수가 먼저 우진을 알아볼 수는 없다. 이들의 데이트는 우진이 다가와 이수의 손을 잡아야 시작된다. 자신의 손을 잡는 다정한 온기와 그의 손가락에 끼어진 실반지로 이수는 매일 다른 모습의 우진을 같은 사람으로 받아들인다. 박서준, 박보검, 이진욱, 이동욱, 김주혁, 서강준, 유연석 등등 내로라하는 멜로장인’ 21명이 연기하는 우진을 바라보며 이수역을 맡은 한효주와 함께 관객들도 사랑에 빠진다. 이 영화를 본 대다수의 관객들은 판타지 장르를 표방했음에도 불구하고 진짜 사랑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다는 리뷰를 남겼다. 플라톤의 비유보다는 뷰티인사이드의 판타지가 우리 안에 있는 변하지 않은 아름다움혹은 영혼의 가능성에 대해 긍정적인 판단을 유도한다.

 

 

2. 똑같은 사랑을 해도 괜찮아(?), 이터널선샤인 또는 에르 전설

사랑에 대한 또 다른 판타지 영화 이터널선샤인(2004, 미셸 공드리 연출)은 이별 후 다시 사랑에 빠지는 커플의 이야기이다. 소심한 남자 조엘과 자유분방한 여자 클레멘타인은 첫 눈에 서로에게 끌려 사랑을 시작한다. 그러나 그들은 극명한 성격 차이만큼이나 매사에 티격태격하며 상대를 답답해하게 되고. 결국엔 악담을 퍼붓고 이별을 고한다. 클레멘타인은 이별의 고통을 잊기 위해 기억을 지워주는 회사를 찾아가고, 클레멘타인이 자신의 기억을 지웠다는 사실을 알게 된 조엘도 앙갚음하는 심정으로 같은 회사를 찾아간다. 서로에 대한 기억이 리셋된 두 사람은 우연히 기차역에서 만나 처음처럼 다시 서로에게 호감을 느낀다. 이런 걸 운명적인 사랑이라고 해야 할까? 영화의 끝부분에서 두 사람은 자신들이 기억을 지우고 다시 만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전처럼 서로를 견디기 힘들어 할 것이라는 것도 짐작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용감하게 다시 사랑을 시작한다. 초록색에서 오렌지색으로 다시 파란색으로 기분에 따라 머리색깔을 바꾸는 케이트 윈슬렛(클레멘타인역)이 말한다. “지금이야 그렇지. 근데 곧 거슬려할 테고 난 널 지루해 할 거야.” 언제나 노심초사인 짐 캐리(조엘역)가 평소와 달리 쿨하게 대답한다. “괜찮아.” 케이트 윈슬렛과 짐 캐리라서 이 엔딩장면이 멋져 보였던 건 아닐까? 두 사람의 사랑은 정말 괜찮을까?

 

 

 

치를 떨며 헤어졌건만 전 남친 혹은 여친과 비슷한 상대와 다시 사랑에 빠지는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마치 배우만 바꿔서 결말이 비슷한 속편을 계속 찍는 시리즈 영화처럼, 우리의 연애는 파격적인 캐스팅이나 새로운 스토리텔링을 시도하기 어렵다. 이것은 연애뿐 아니라 인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후회하고 다짐하지만, 매번 비슷한 선택과 후회를 하게 된다. 이런 반복은 괜찮지않다. 플라톤의 논리대로 영혼이 불멸한다고 치자, 그런데 그 영혼이 미숙하다면 우리는 결말이 뻔한인생을 붕어빵처럼 반복하게 된다. 국가<span style="background:#ffffff;letter-spacing:0pt;font-family:Arial, Helvetica, sans-serif;font-s

댓글 4
  • 2019-08-03 11:00

    오늘은 철학공부위해 뷰티인사이드를 봐야겠군요~~ㅎㅎ

  • 2019-08-06 10:25

    기승전BTS...일만 하네. 노래 가사를 집중해보면 나도 그들의 노래를 즐길 수 있을라나? ㅋ

    • 2019-08-06 10:36

      뮤비 보면 바로 입덕각!
      유튜브에서 BTS 화양연화 검색해봐

  • 2019-08-17 10:40

    새털씨 요즘 방탄 노래도 자주 듣고 이것저것 물어보시더니 이것도 다 글쓰려고 물어본거였군요!!!! 이런 글쟁이!!! 이런 글에 BTS가 등장하니 글이 더 재밌게 읽히네요ㅎㅎㅎ
    -젊은 대학생 소영-

봄날의 주역이야기
주역은 점치는 책이다. 그런데 점치는 방법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주역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은, 주역은 점을 치는 책으로 인정받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내용과 의미를 꼼꼼히 원리와 뜻을 따져가며 해석해서 읽어도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원리를 따져가며 읽는 방식의 주역을 의리역(義理易)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러한 구분은 별로 의미가 없다. 점을 치면서도 그 해석을 의리적으로 하기도 하고 의리역으로서 주역을 읽으면서 수시로 점을 치기도 한다. 어쩌면 두 가지 방식을 적절하게 취하는 것이 지혜로운 태도일 수 있다. 가끔 혼자 혹은 함께 모여 시초점으로 괘를 뽑고 이것을 해석하는 재미가, 주역이 다른 텍스트와 구별되는 매력이 되기도 한다. 점을 쳐서 화수미제(火水未濟)괘를 얻었다고 치자. 그럼 나는 생각해본다. 나에게 왜 이 화수미제괘가 왔을까? 주역을 공부하기 시작한 초기에는 우선 이 괘가 길흉, 즉 좋은지 나쁜지를 먼저 따졌었다. 지금은 그것이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어떤 괘가 오든지 내내 좋기만 하든지, 내내 나쁘기만 한 괘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좋다고 환호하고 있을 때 막바지에 다가올 불운을 캐치해내지 못하는 것이, 나쁜 괘를 받아들고 심사숙고해서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보다 더욱 큰 낭패를 보는 일이 종종 있다.   정(正)도 없고 응(應)도 기댈 바 없고 화수미제괘는 주역 64괘의 순서에서 마지막에 위치한 괘이다. 하나의 괘를 이루는 여섯 효는 음양의 배치에 원칙이 있다. 이 원칙에 따르면 첫 번째부터 여섯 번째 효의 자릿값의 순서는 양-음-양-음-양-음이다. 63번째 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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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2024.04.22 | 조회 125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세 번째 영화는 <아들>(2002)입니다.            우리가 흔들릴 차례 아들 Le Fils | 드라마/미스터리 | 벨기에, 프랑스 | 102분 | 2002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의 시작인 ‘인트로’는 그 영화의 첫인상이자 분위기를 보여준다. 다르덴 형제의 <아들>(2002)은 음악도 없이 흔들리는 어떤 ‘형상’을 보여줄 뿐이다. 그 위로 건조하게 제작자, 주연배우, 감독의 이름 등이 보였다 사라진다. 마치 <히로시마 내 사랑>(1959)이 생각나는 ‘인트로’를 보고 있으니 ‘아, 이번 영화도 뭔가 쉽지는 않겠구나’는 느낌이 팍팍 든다. 다르덴 형제의 이름과 영화의 원어제목 ‘Le Fils’이 사라지면, 카메라는 천천히 움직이며 그 흔들리는 ‘형상’이 바로 ‘올리비에’(올리비에 구르메, 배우의 이름을 그대로 등장인물 이름으로 사용했다)의 ‘등’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 ‘인트로’처럼 영화는 대부분 올리비에의 ‘등과 뒷모습’을 시종일관 따라다닐 거라고 미리 알려주고 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다르덴 형제는 혹독한 수준의 리허설로 유명하다. 이유는 영화가 배우들의 ‘몸’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여러 번 동선을 구성해보고, 몇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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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리
2024.04.14 | 조회 156
우현의 독서가 테크트리
    바닷가를 향하며 – 지그문트 바우만, 『사회학의 쓸모』 리뷰     사회학자-테크트리?  올해 내가 참여하는 세미나 중 하나로 사회학 세미나가 꾸려졌다. 이 세미나는 나를 장래의 ‘사회학 세미나의 튜터’로 키우겠다는 정군샘의 포부와 함께 만들어졌다. “사회학?” 정군샘은 평소 나의 글을 보며 사회학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고 하셨지만, 난 사실 ‘사회학’이라는 표현 자체가 낯설다. 내가 평소에 사회 문제나 이슈를 다룬 글들을 좋아하고, 그런 글을 쓰고 싶어 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사회학’이라는 학문으로 연결되는지는 확신이 없었다. 애초에 ‘사회학’이라는 말의 범주는 너무 넓은 게 아닐까? 하물며 ‘사회학자’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전공을 ‘사회학’으로 삼을만한 동기나 마음이 나에게 있을까? 이런 나의 상태를 간파했다는 듯이, 정군샘은 독서가 테크트리의 다음 책으로 『사회학의 쓸모』를 추천했다. 저명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과의 대담을 편찬한 책이다. 바우만은 나에게 사회학에 대한 확신을 심어줄 수 있을까?   사회학이 뭔데?  ‘사회학’이 뭘까? 바우만은 서론에서부터 사회학이라는 학문이 정의되기 힘든 점을 짚어주고 있는데, “사회학은 그 자체로 사회학의 연구 대상인 ‘사회세계’social world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14) 다른 대부분의 학문은 학문과 연구의 대상을 분리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화학을 연구하는 건 ‘화학의 세계’에 들어가서 전문 지식을 발휘해야만 한다. 일반인들은 ‘화학의 세계’를 살아갈 일이 많지 않으며, 그 세계는 전문 학자들의 영역으로 남는다. 반면 ‘사회세계’는 세상 사람들 모두가 살아가는 공간이고, 딱히 사회학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살아가는 데 문제가 없다. 그래서 사회학은 ‘과학’과 같은 지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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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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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파괴가 곧 창조다 리처드 켈리의 <도니 다코 Donnie Darko/2001>     중2는 미국에도 있더라   영화는 해가 뜰 무렵, 어스름한 산길 위에 누워있던 도니 다코(제이크 질헨할)가 잠에서 깨면서 시작되었다. 일어나 자신이 있는 곳을 확인한 도니의 입가에 비치는 사악한(?) 미소의 의미는 후반부에 가면 알게 된다. 경쾌한 음악에 맞춰 자전거로 아침 햇살을 가르며 집으로 돌아오는 도니, 냉장고 앞에는 ‘Where is Donnie?’란 메모판이 붙어 있다. 아, 이렇게 도니가 아침에 나타난 것은 처음이 아니다.   나 또 살았구나~   영화는 계속해서 현재의 시간을 환기한다. 우선 1988년 10월 2일이다. 역사적으로 1988년 11월 8일은 미국 대선 날이다. 공화당의 조지 부시와 민주당 마이클 듀카키스가 맞붙었고, 보수주의가 득세하던 시기였다. 도니의 가족들도 대선에 관심이 많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의 대화를 통해 이 가족의 분위기는 어느 정도 파악이 된다. 부모 세대는 은연중에 부시를, 큰딸 엘리자베스는 공개적으로 듀카키스를 지지한다.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가치관 차이는 당연지사. 부모와 아이들의 관계는 수평적으로 보이는데, 중2병에 걸린 자식은 여기도 있다. 도니는 매사 부모, 누나, 동생, 선생, 친구 모두와 부딪힌다.   10대 청소년인 도니가 정신병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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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이예술
    하나의 귀와 두 개의 입 한자가 보여주는 듣기의 방법론   동은     1. 실용實用적인 한자   책을 읽다보면 모르는 단어가 등장할 때가 있다. 그러면 눈을 부릅뜨고 앞뒤의 맥락을 살펴 단어의 의미를 짐작하곤 한다. 하지만 그 단어가 짐작만으로는 넘기기 어려운 위치에 있거나 도무지 감도 오지 않는 경우에는 사전에서 찾아봐야 한다. 그런데 사전에는 같은 발음을 가진 다른 의미의 단어들이 여러게 있을 때가 있다. 이럴 땐 하나하나 문장 속 단어에 의미를 적용시키며 여러 개의 단어 중에서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 한자를 많이 알면 이 과정이 상당히 빨라진다. 단어의 상당수가 한자어에서 유래한 우리말의 특성상, 한자를 많이 알수록 이렇게 문해력과 어휘력이 좋아진다. 그런 점에서 한자는 분명 살아가는데 실용적이다. 실용實用적이라는 건 실제로 쓰일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인데, 이런 문해력과 어휘력 외에도 한자의 실용성이 발휘되는 부분이 있다.     한글과 다르게 한자는 문자 하나에 ‘의미’가 담겨있다. 당연하게도 ‘의미’가 문자에 담기기까지는 여러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 과정은 때로 우연히 일어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상당한 고심을 거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문자 하나가 가지고 있는 의미의 맥락이 경우에 따라서는 대단히 복잡해지기도 한다. 이건 문자 하나일 뿐일지라도 거기에 담긴 ‘이야기’는 여러가지 일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중층적으로 구성된 이야기들은 문자가 사용되는 오늘날과도 긴밀하게 연관된다. 처음 문자가 만들어진 시기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갑골문에 대한 해석은 오늘날에도 고정되어 있지...
    하나의 귀와 두 개의 입 한자가 보여주는 듣기의 방법론   동은     1. 실용實用적인 한자   책을 읽다보면 모르는 단어가 등장할 때가 있다. 그러면 눈을 부릅뜨고 앞뒤의 맥락을 살펴 단어의 의미를 짐작하곤 한다. 하지만 그 단어가 짐작만으로는 넘기기 어려운 위치에 있거나 도무지 감도 오지 않는 경우에는 사전에서 찾아봐야 한다. 그런데 사전에는 같은 발음을 가진 다른 의미의 단어들이 여러게 있을 때가 있다. 이럴 땐 하나하나 문장 속 단어에 의미를 적용시키며 여러 개의 단어 중에서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 한자를 많이 알면 이 과정이 상당히 빨라진다. 단어의 상당수가 한자어에서 유래한 우리말의 특성상, 한자를 많이 알수록 이렇게 문해력과 어휘력이 좋아진다. 그런 점에서 한자는 분명 살아가는데 실용적이다. 실용實用적이라는 건 실제로 쓰일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인데, 이런 문해력과 어휘력 외에도 한자의 실용성이 발휘되는 부분이 있다.     한글과 다르게 한자는 문자 하나에 ‘의미’가 담겨있다. 당연하게도 ‘의미’가 문자에 담기기까지는 여러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 과정은 때로 우연히 일어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상당한 고심을 거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문자 하나가 가지고 있는 의미의 맥락이 경우에 따라서는 대단히 복잡해지기도 한다. 이건 문자 하나일 뿐일지라도 거기에 담긴 ‘이야기’는 여러가지 일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중층적으로 구성된 이야기들은 문자가 사용되는 오늘날과도 긴밀하게 연관된다. 처음 문자가 만들어진 시기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갑골문에 대한 해석은 오늘날에도 고정되어 있지...
동은
2024.03.26 | 조회 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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