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영화인문학시즌1] 2주차 : 내.신.평.가.#1 <게임의 규칙>

청량리
2022-04-30 20:44
888

내.신.평.가. #1 (내가 고른 이 장면을 말하다)

 

<게임의 규칙>(1939)  

The Rules Of The Game, La règle du jeu |  프랑스 | 장 르누아르 감독 | 113분

 

앙드레와 크리스틴의 감정을 알면서도 크리스틴의 남편 로베르는 그를 저택으로 초대를 한다.

하지만 마냥 들떠있는 앙드레와는 달리, 크리스틴은 자신의 감정에 확신이 없다. 

아니, 확신이 없는 게 아니라 그녀에게는 꼭 앙드레여야 할 이유가 없다.

 

비가 쏟아지는 날, 앙드레와 그의 친구 옥타브는 초대받은 저택에 도착하고

크리스틴이 1층에 마중하러 내려와 있다. 그녀의 뒷모습 너머로 앙드레가 보인다. 

얼굴을 보이지 않지만 실은 뒷모습이, 앙드레를 마주하는 뒷모습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 (청량리)

 

 

 

 

 

댓글 7
  • 2022-05-02 01:01

    우리가 영화를 보는 이유는 크게 재미와 의미를 얻고 싶어서일 것이다. 문탁에서 보는 영화들은 대부분 '의미'를 추구한다. 거기에 '재미'까지 있으면 정말 좋겠지만 그건 욕심이다. 현실적인 잣대로 재미있는 영화들은 사실 언제든 볼 수 있다. 그래서 '영화인문학'에서 보는 영화들이 재미가 없어도 나는 그닥 불만이 없다(예전에 조금 투덜거린 기억이 나긴 하지만). 그래도 튜터인 청량리샘과 띠우샘은 늘 우리가 영화를 재미 없어 할까봐 전전긍긍한다. 지난 시간 끝날 무렵 <게임의 규칙>에 대해 청량리샘이 재미가 없어서 걱정이라고 했다. 음, 에너지를 많이 축적해서 와야겠군. 그래서 금요일 저녁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편하게 쉬다가 문탁에 갔다. 띠우샘이 영화를 미리 보고 와서 영화가 재미있더라고 했다. 음, 그렇다면 정말 각오해야겠군. 급하게 띠우샘 커피를 얻어 마셨다.

    영화는 1시간 40분 동안 정신 없이 진행되었다. 쉴 새 없이 떠들고, 움직이고, 달리고, 죽인다. 영화는 의외로 재미있었다. 하지만 내 머릿속은 끊임없이 숨어 있는 '의미'를 찾기 위해 바빴다. '나만 모르는 뭔가가 있나. 중요한 상징이 있는 걸까. 시대적 배경이 중요한 영화였나. 책에서도 저 영화가 대작이라고 했는데. 뭐지? 뭘까?' 영화가 끝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이 영화에서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 촬영 기법이나 연출 등이 훌륭한 건 알겠는데, 왜 이 영화가 세계적인 대작인지에 대해서는 합의(?)가 잘 안 되었다.

    영화 속 세상에는 몇 가지 규칙이 있었다. 자신의 감정과는 무관하게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역할에 충실할 것. 상대방의 변심을 알게 되어도 모른척하거나 마음 넓은척하고, 순간 순간 필요에 따라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자신의 욕망에 솔직할 수 있지만, 언제라도 거짓을 말할 수 있을 것.
    또 사람들은 철저하게 계급으로 나누어져 있다. 후작으로 대표되는 상류 계급은 하류 계급에 대해 주도권을 가진다. 고용도 해고도 마음대로이다. 기분 내키는 대로 누군가를 자신의 밑에 둘 수 있고, 하루 아침에 해고할 수도 있다. 하인은 주인이 필요로 하면 감지덕지하며 일한다. 심지어 밀렵꾼은 하인이 되는 것이 소원이었다고 말한다. 귀족들의 오락거리인 사냥을 위해 동물을 몰아주는 하인들과 그렇게 몰린 동물을 내기하듯 총으로 쏘아대며 희열을 느끼는 귀족들을 보면 죽어가는 동물들의 권리 따위는 논의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영화에서 가장 뛰어난 장면이었지만 잔인한 살생의 모습 때문에 마음이 무겁기도 했다.)

    영화에서 유일하게 진실한 사랑을 외쳤던 앙드레는 죽는다. 왜 그가 죽었을까. 거짓말을 안 해서? 불륜을 당당하게 원해서? 앙드레를 죽게 한 건 표면적으로 우발적 사고였지만 나는 왜 이 모든 것이 잘 짜여진 살인처럼 느껴졌을까. 옥타브가 앙드레를 그곳에 초대하게 한 것부터, 자신이 크리스틴과 도망가기로 해 놓고 앙드레를 내보낸 것까지. 게임의 규칙을 지키지 않는 인간을 축출해내는 완벽한 각본으로 보였다. 뭐, 이게 내 억측일 수 있지만, 굳이 장 르누아르가 옥타브를 연기한 걸 보면 앙드레를 없애는 게 감독의 의도이긴 했을 것이다. 결국 위선적이고 우스꽝스러운 '게임'이 되어버린 세상을 비판하기 위해 감독은 이렇게 정신 없는 영화를 만들었던 것일까?
    이 영화의 제목이 '게임의 규칙'인 이유를 알겠다. 삶이 게임이 아니듯이, 우리가 게임판의 말들이 되어서는 안 되고, 영화 속 규칙들이 우리 '삶의 규칙'이 되어선 안 되기 때문이다.

    • 2022-05-03 15:58

      이런 방식의 후기? 좋네요ㅎㅎㅎ

    • 2022-05-04 22:00

      와~~

       

      마지막 문장 겁나 멋져요! 

       

      그리고....역시나 수수샘 글의 '에두르기'는 수준급 입니다. ㅋㅋㅋ~~

       

       

  • 2022-05-03 14:26

    <게임의 규칙> 상당히 재미있어요~~ 라고 말하자 수수님 얼굴빛이 파리해졌다. 잉, 이런 반응 어디서 많이 본 듯하다. 앗, 남편의 얼굴이ㅋㅋㅋ

    우리는 이번에 다시 초창기 영화들을 본다. 고르고 고른 영화들이다 보니 작품 자체가 세계적으로 유명하긴 한데, 주변에 물어보면 의외로 보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좋은 영화들도 많으니 굳이 찾아보지 않겠지. 게다가 보지는 않았어도 이미 온갖 해석들이 난무하기에 영화를 보는 재미가 줄어들기도 한다. 그 해석의 틀에 갇혀 보기 쉬우니까. 나 역시 가끔 영화를 볼 때 아무 정보없이 보는 즐거움을 누리고 싶다. 정말 내 마음대로 영화를 보는 나만의 시간이 되니까.

    그런데 나는 고전작품을 보는 것도 좋다. 이미 알고 있는 정보들부터 어떤 새로운 해석들이 있는지 둘러보고 영화를 볼 때도 많다. 늘 휴대폰을 들고 있고, 노트북도 있으니 손가락 몇 번 움직이면 정보가 넘쳐나서 그 유혹을 뿌리치지 못 한다. 뭔가 좀 알고 영화를 보면 그 장면들이 머물러 있다 간다. 영화인문학 선정작들은 한번 보는 것이 아니라 두 번 이상 보게 되니까 더더욱 주요 장면들이 오래 머물러 있어서 조심해야한다. 그것이 마치 나의 해석인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드니까. 그런데 이건 휴대폰 있는 사람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좀 찾아보고 온 사람과 아무 정보 없이 보는 사람들이 섞이는 과정, 이것이 영화인문학 안에서 이루어진다. 이게 왜 명작인지 모르겠어요부터 그 남성의 행동은 규칙을 벗어난 것일까요? 갑자기 여성들의 연대? 1930년대는 계급사회가 구체화되었다는 의미인가요 등등. 이때 알아본 사람들이 그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는지 전달한다. 가끔은 뭘 굳이 이렇게 영화를 봐야 하나 싶기도 하다(아, 사실 나도 웃기고 싶다). 그냥 보이는 대로 보더라도 우리는 이미 지나버린 시간을 가져와 오늘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으니 말이다. 많은 해석이 이미 있는 작품을 새롭게 해석하는 과정. 그것도 나랑 다른 사람들과 함께 말하다보면 아, 그런 해석도 가능하겠구나... 싶어진다. 나는 다르게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흥미롭고 좋고 재밌다.

    <게임의 규칙>은 지나치게 많은 이야기들이 섞여 있다ㅋ.  귀족과 하인으로 구분되는 계급에서부터 그 아래 동물의 세계까지. 20세기 초 과학문명이 발전하는 순간에 인간 사회가 어떻게 변화해가는지도 볼 수 있고, 남녀관계도 내가 예상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간다. 세상 참...  각자도생하는 인간들이 절묘하게(?) 규칙을 만들어 살아간다. 그 속에서 사랑이라는 것에도 남다르게 반응하는 인물들 덕분에 완전 정신산만... 재하의 말도 이해가 간다.

    그냥 크리스틴이랑 떠날 것이지 굳이 그 순간에  규칙을, 그것도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앙드레, 그가 죽는 이유는 그들의 규칙을 어겼기 때문이 아니라 규칙의 속성을 제대로 몰랐기 때문일 것이다. 그 게임에 참여하는 동안이라면 굳이 규칙을 들춰내서 어기려고 하지 말아야했다. 그러다 신호등 앞에 선 나와 아들이 떠올랐다. 어릴 때 무단횡단하는 나를 부끄러워했다는 것을 안다. 굳이 규칙을 지키려했던 앙드레같은 자식ㅋ.  나에게 규칙은 어떤 것일까. 그게 어떤 것인지 생각해보기도 전에 그냥 지키고 있는 것이 많은 세상이다. 길거리 상황을 복합적으로 보고 나서 무단횡단하는 자세, 이거 괜찮지 않은가.. 하하하 

  • 2022-05-05 00:06

    영화를 보고 나서 한동안 머리속이 잠깐 동안 여러 가지 생각들로 인해서 뒤죽박죽이 되었었다. 도대체 이 영화는 어떻게 읽어야, 다시말해,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는가. <게임의 규칙>은 전형적인(?) 프랑스 영화이다. 말 많고, 빠르고, 시끄럽고. 등장인물들은 쉴 새 없이 말을 하면서 영화는 전개가 된다. 수많은 인물들이 서로를 거치며 관계를 맺으며, 모두가 모두를 사랑한다. 앙드레는 크리스틴을 사랑하고, 크리스틴은 에두아르의 부인이며, 동시에 옥타브와 친한 사이며, 옥타브는 앙드레의 친구인 동시에 그 또한 크리스틴을 남몰래 사랑한다. 처음에는 명작이라는 말을 듣고 기대하였으나, 역시나, 명작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그 의미를 전혀 알 수 없었다. 오히려 한 차례의 폭풍에 휩쓸려 지나간 느낌이랄까. 정말 말 그대로 ‘난장판’이다. 그러나 지난주에 띠우샘께서 ‘좀’(‘꽤’라는 말이다) 지루하다는 말과 함께 러닝타임이 ‘조금’(2시간에 가깝다는 말) 긴 영화를 보겠다는 말을 하셨을 때, 제2의 ‘토리노의 말’을 기대하고 있었던 나의 생각과는 달리, 생각보다 한 번도 졸지 않고 영화를 끝까지 다 볼 수 있었다. 그러나 프랑스 영화의 ‘명작’이라는 말에는 동의가 되지 않았고, 지금도 여전히 영화를 어떻게 읽어야 되는지 조차도 잘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고개가 끄덕여지지는 않는다. 이 영화는 왜 하필이면 ‘명작’일까.

     

    <게임의 규칙>에서는 모두에게서 일종의 ‘가벼움’을 느낄 수 있다. 모두가 모두를 사랑하는 이러한 복잡한 관계들 안에서 각각의 인물들은 누군가와 친해졌다가 멀어지고, 또다시 다른 누군가와 다른 만남을 지니기를 반복한다. 하지만 그렇게 이리저리로 옮겨다니는 가벼움들 속에서, 앙드레는 홀로 무거운 분위기를 지닌다. 친구인 옥타브도 크리스틴을 사랑하지만 짐짓 아닌 것처럼 굴고, 그녀의 남편인 에두아르 또한 부인이 여기저기서 사랑의 고백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관대한 것 마냥 굴며, 파티에 참여한 모두가 이러한 하나의 관계적 ‘놀이’를 할 때에도 불구하고, 앙드레는 크리스틴에게 진지하게 자신의 사랑을 고백한다. 아마도 그렇기에 앙드레는 죽었을 것이다. 그가 암묵의 규칙을 어겼기에 벌을 받아 죽어야 했기 때문이 아니라, 모두 앞에서 자신의 사랑을 가감없이 드러내며, 즉 가면을 벗고 그녀에게 다가설 사람은 옥타브도, 에두아르도 아닌, 그였기 때문이다. 게임의 ‘규칙’에 따라 나서지 않았던 이들과 달리, 앙드레는 옥타브가 거짓말을 하며 건네준 외투를 들고 달려나간다. 어쩌면 그의 죽음은 자신의 욕망과 사랑을 민낯으로 내보이는 하층계급(하인들 간의 거침없는 사랑에 대한 욕망이 펼쳐지는 상황 속 총을 들게 된 로베르)과 가면을 쓴 상층계급(누군가와 사랑에 빠져 도망친다는 게임을 반복하려는 크리스티나와 그를 찾아가려는 앙드레)의 ‘충돌’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그의 죽음은, 규칙을 어긴 대가가 아닌, 두 계급, 그리고 여기서부터 나오는 자신에 대한 표현들의 차이의 충돌의 잔해였을지도 모른다. 사랑이 발생하는 순간을 두고, 하인들은 폭력을, 귀족들은 게임을 따라간다. 그리고 결국 이는 공존할 수 없는 이 둘이 한 공간에서의 폭발함으로서 끝나고 만다. 다시말해, 그의 죽음은 아슬아슬한 두 경계선상 사이에서 터져야 했던 폭발이다.

     

    처음에 영화를 보고 나서는 계속해서 어딘가 있다고 믿어지는 ‘의미’를 찾는 나로서는 난감할 뿐이었다. 이 장면은 무엇을 말하고, 또 이 영화는 대체 어떤 것을 말하려고 하는가. 그렇다면, 도대체 내가 찾고자 하는 그 ‘의미’는 무엇일까. 아니, 굳이 나는 여기서 의미를 찾아야 하는가. 머리가 복잡해진다.
    명작은 무엇일까. 아니, 그보다 앞서, ‘고전’이란 무엇일까. 고전은 계속해서 현재로 다시 부름을 받는다. 그리고 고전이 그러한 까닭은 그것이 시대에 앞서서 이미 전제되어 있는 바탕들을 이야기해서가 아닐까. 마치 <게임의 규칙>에서 모두가 쓰고 있는 가면에 대해서 영화가 날카로운 시선을 보내듯, 이 영화가 ‘명작’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다름아닌, 그것이 가지고 있는 암묵적인 것에 대한 드러냄이 아닐까. 즉, 게임 그 자체보다도, 그 게임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게임의 ‘규칙’에 대한 영화여서가 아닐까.

     

    (...)

    솔직하게 말하자면 영화인문학에서 보는 영화들은 재미있지 않다. 모두들 말하듯이, ‘내가 직접 찾아보지는 않을 영화들’이 수두룩하다.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에 여기서 보지 않는다면 볼 수 없는 영화들을 나는 매주 다른 사람들과 함께 모여서 본다. 어쩌면 그것이 내가 이러한 영화들에게서 찾는 것이 아닌가 싶다. 최근에 영어로 ‘흥미(interest)’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다. 부정과 긍정을 떠나서, ‘흥미’는 나로 하여금 두 번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아마도 그렇기에 영화인문학에서의 영화들은 ‘재미’있다기보다는 ‘흥미’로운 것일 것이다. 처음 봤을 때는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읽히고’, 그리고 해석되어야 한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과의 의견을 나누는 것을 통해서일 수도 있고, 글을 통해서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렇게 의미가 찾아지게 되는 과정이 나름의 또 다른 의미를 획득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그런지, 영화인문학에서의 영화 관람은 매번 알면서도 당한다. 다음 주에 볼 영화가 또 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 2022-05-13 01:36

    영화를 만든 르느와르는

    반짝거리는 빛을 인물과 배경 가득 그려낸 오귀스트 르느와르의 아들이라고 한다. 영화속에서 옥타브로  분신한감독과 검색된 화가 르느와르의 모습은 닮은 구석이 없어 보이지만,

    정신 없이 지껄이는 소리에 비해 , 정결하고 짜임새 있게 느껴지는 화면 위의  미학적 배치는 영향이 없다고 할수는 없을 것  같다.

    지지난 금요일에 친구들과 함께 영화를 보지 못한 탓에, 나는 그때 그때 찔끔 찔끔 영화를 보았고, 막 영화를 끝냈다.

    그래서^^혼자서는 집중하기가 결코 쉽지 않더라는 핑계를 앞세워 ...가를 짧막하게 적어보련다.

    대사() 행동이 분리된 듯한 , 유체이탈 멘탈의 캐릭터들이 벌이는 소동인물들은 노골적이고 다중적이며 , 한없이 가볍고 부조리하다어느 계급 할거 없이 파렴치함의 끝을  보여주는데…

    내가 고른 장면을 말하다( ...)’

    앙드레와 크리스틴이 서로 고백을 나누는 장면이다. 처음으로 그들은 엽총들이 잔뜩 세워진 방을 배경으로

    서로를 바라 보며 사랑한다는 말을 내뱉는다.

    크리스틴은 앙드레에게 지금 당장! 사랑의 도주를 원하고,  앙드레는그래도 규칙이라는 있어요.” 라고 꽤나이성적으로 말하는데, 그는 규칙을 지키느라 , 잔나비같은 목숨을 잃는다.

    영화나 책을 볼때 보통은 감정이입의 대상이 ( 그것이 움직일지언정 )항상 있었다고 할수 있는데, ‘게임의 규칙에서는 정신 없는  감정의 튕김 속에서 내가 잠깐이라도 머물 곳이 없었던 같다.

    잠깐 타임라인을 살펴 보니,  영화 제작이 2차세계대전이시작된 1939. 어느때보다  불안과  혼란 , 공포가 점철된  시기다.

    어쩌면, 

    정신없이 지껄이는 인물들의 대사 사이사이, 과장되고 연극적인 몸짓들의  행간에  시대의 불행과 고통이 숨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영화가 끝나니, 누구에게도 이입될수 없었던 감정은 누구라도로  조금씩 움직이고 있는것 같다.

  • 2022-06-15 22:52

    아~~ 영화보고싶어요 ㅜㅜㅜ 같이~!

    이렇게라도 여운을 느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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