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휴일> 후기(시즌2-4)

후.당.토
2021-06-27 15:01
237

지난주에 이어 또 쓰게 된 후기이다. 우스갯 소리로 이러다  '후기의 달인'이 되겠다고 했는데, 그럴 일은 없다는 걸 안다.

그냥 '후기 당번 토토로'ㅠ.ㅠ

사실, 이번 영화는 후기 쓰고 싶지 않은,  나에겐 그저 그런 영화였다. 그러나 그저 그런 영화였다면 어떤점에서 그랬는지 돌아보는 것도 의미있을것이다.

 

1968년 이만희 감독이 만든 <휴일>은 그 당시에는 극장에서 상영되질 못했다. 개봉이 금지된 이유는 지나친 허무주의와 퇴폐성 때문이라고 했다. 결말을 고치면 개봉을 허락받을 수 있었지만 감독은 제안을 거절했다고 한다.

이런 사전 정보를 듣고 적잖이 이 영화에 대한 기대를 갖게 되었다.  왠지 특별한 게 있을 것이고,  냉소적이고, 고집스런 뭔가가 있을거라고. 

 

 

줄거리는 간단했다.

가난한 젊은 남녀가 휴일에 만나,  남산 공원을 궁상스럽게 배회한다. 여자는 원치않는 임신을 했다. 여자의 뱃속에 든 아기를 지울 수술비를 구하기 위해 남자가 돈을 꾸러 다닌다. 그러나 친구들도 가난해서 돈 빌리기가 쉽지 않다. 결국 부자 친구의 돈을 몰래 슬~쩍 훔쳐와서 수술을 받게 한다. 남자는 여자가 수술받는 와중에 자기 괴로움을 못이겨 살롱에서 처음 만난 모르는 여자와 술을 마시고 뒹군다. 낙태 수술 받던 여자는 결국  죽는다.  이 모든것이 어느 바람이 휘몰아치는 휴일 하루 동안 벌어진 일이다.

 

영화는 흑백인데다가 러닝타임 내내 어둔 음악이 깔리면서 더욱 더 음울한 분위를 유도했다. 감독이 의도한 대로  줄거리는 답답했고, 엔딩은 허무했다. 연인이 낙태수술 받는 동안 다른 여자와 딴짓거리를 한 남자 이야기니까 충분히 퇴폐적이라고 할수도 있을것이다.

열심히 일 하고, 건전하게 가족을 이뤄야 할 젊은 것들이 이러고 있으니 나라에서 개봉을 금지시킨게다ㅎㅎㅎㅎ

 

 

허무한 영화를 싫어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휴일>의 우울과 퇴폐에  공감되지도 설득되지도 않았다.

우선 배우에게서 거부감이 느껴졌다. 다방에 들어갈 돈도 없는 빈털터리 연인이라고 하기엔, 남주 신성일과 여주 전지연이 너무 부잣집 철없는 도련님이자 따님처럼 옷을 차려입었다. 여주는 고급스러워 보이는 치마를 입고, 가죽가방에,  깔끔한 구두에, 블랙 실크 장갑까지!!  반들반들 잘생긴 남주는 댄디한 양복차림.... 빈곤함이 전혀 느껴지질 않았다. 그래서 그들의 가난이 '가짜'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과장된 감정과 대사, 휘몰아치는 먼지 바람 연출이 너무 부자연스러웠다. 시대상황을 고려한다해도...특히 여주의 흘러넘치는 비련미는 오히려 몰입에 방해가 됐다. 내가 워낙 담백한 연출을 좋아해서 더 싫었을 수도 있다.

(시대상황을 고려해서 플러스 점수 주고 싶지 않다. 오래됐지만 깔끔하고 좋은 연출이 얼마나 많은데...)

또한 이 영화는 이 젊은 남녀가 왜 이리 가난할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한 실마리가 거의 없었다. 감독이 일부러 설명하지 않았을테지만, 너무 앞뒤없이 가난하다고 하고, 낙태 밖에 선택지가 없다고 하는데, 그 부분에 대한 설득력이 상당히 떨어진다고 느껴졌다.

 

그래도 감독이 개봉을 못할지언정 엔딩을 바꾸지 않고 자기 고집대로 간 것은 맘에 든다. 만약 개봉을 위해 급 훈훈한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었다면 얼마나 영화가 우스꽝스러워 졌을까....이도, 저도 아닌.....

 

영화를 같이 본 다른 분들은 나처럼 혹평을 하지는 않았다. 내가 별로였다고 생각했던 몇몇 장면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도 잘 해서, 감독 이만희가 살짝 부럽기도 했다. 진짜 감독이 그런 의도를 갖고 장면을 찍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띠우샘은 신성일의 연기에 대해서도 칭찬을 했다.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라고 했다.  그리고 의외로 20대가 가장 허무와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나이라고 했다.

 

우리는 자신들이 봤던 허무하고 퇴폐적이었던 영화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베티 블루 37.2>, <브룩클린으로 가는 마직막 비상구>, <퐁네프의 연인들>.......

너무 오래전에 봐서 기억이 가물거리긴 하지만 거의 다 나도 본 영화들 이었다.

이 중 몇개는 다시 찾아 보고싶다.

 

다음주엔 후기 당번 걸리지 않길 바라며....

 

 

 

 

 

 

 

댓글 2
  • 2021-06-27 15:39

    어떤 영화든 그것이 말하는 이야기가 당위로 다가오면 답답해요ㅎㅎ

    저에게는 요즘 사회가 겉모습을 중시하는 분위기처럼 영화에서도 그런 모습들이 보였어요.

    내 모습을 보고 돈이 없어 다방에 못 들어간다고는 생각하지 못하겠지요? 라는 지연의 말처럼...

    먼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 젊은이들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럼에도 제가 보지 못한 부분을 꼬집어 주는 토토로님의 이야기들은 

    늦은 밤 영화인문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되더라구요. 

    이번 후기는...  

    어쩐지 우리가 보았던 영화 분위기가 물씬 나는 후기같아요ㅋ

     

  • 2021-06-29 00:18

    역시 솔직한 토토로님 후기네요~~

    내가 눈치보느라 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술술 말해주는 토토로님 없었으면 얼마나 답답했겠어요.. ㅋ

    저도 이번 영화는 느낌이 많이 오진 않았어요. 글을 읽고 기대치가 올라갔었나 봐요.

    이번주 후기는 제가 쓸게요. 너무 걱정 마시고요.. 금요일에 편히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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