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세미나 3회 후기

자작나무
2022-04-25 22:50
165

언제나 신학기는 좀 싱숭생숭하다. 

늦은 4월에 시작했으나, 우리도 이제 막 시작했다고 어수선하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코로나가 문제다. 한 사람씩 동학의 발목을 부여잡아서, 아직 완전체 모임을 하지 못했다.ㅎㅎ

그래도 조금씩 의견이 모아지면서 처음 만나고 어색하지만 서로를 알게 되어 마음을 나누는 것 같아서,

신학기의 푸풋함도 느껴진다. 이런 신선함을 계속 유지하길 .... 바라지만,  개인적으로 2차 자료가 걸림돌이지 않을까 싶다. 

너무 길고, 너무 어렵고, 뭐 그렇다.  게다가 시간도^^ 다들 학구열에 불타서인가, 시간이 부족하다. 

<도덕경>도 그렇다.  10편씩 읽어오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데, 언제나 정한 분량을 다 이야기도 못했는데, 세미나 끝낼 시간이다. 

게다가 지금 우리는 <도덕경>에서 주를이루는 '도'에 대한 부분을 서로 이야기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말로 하기에는 어떤 참신한 말과 우리의 문법에 갇히지 않는 언어 표현이 불가능하다. 노자가 말한 것처럼, 

'황홀'하고 '보려해도 보이지 않고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는 도'(23)

큰 덕(공덕)조차도 의지한다는 도(21)를 상상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도의 성질이랄까 뭐 그런 것을 노자는 '천지보다 먼저 생겨났으니, 고요하고 텅 비었다'(25)고 말한다. 

그런데 그건 '우뚝 서서 변하지 않으며, 두루 행하여 멈추지도 않는다.'(25) 그렇기에 천하의 어미가 될 수 있으나, 이름을 갖지 않는다. 

이름을 갖는 순간, 그것은 한낱 존재자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쨌든둥 다루어야 하니,

'일부러 이름을 붙여 도라고 한다, 억지로 이름으르 지어 대라고 한다.'(25)  

이런게 도라고 책은 몇 번이고, 잊을 만 하면 말한다. 그런데 이게 참 문제다. 마음으로, 느낌적인 느낌으로 뭔 말을 하는지 알겠다. 

그러나 그걸 전달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가끔 정적^^이 흐른다.

그런데 이렇게 말로 하기 힘든 것들을 말로 하는 과정에서, 혹은 말할 수 없는 순간의 침묵에서 무엇인가 팍 깨달음이 생긴다.

아, 이건 내가 이전 시간에 생각했던 그것과 다르구나.

어쩜 도를 이해할 수 없는 게 우리의 언어와 문법이 우리의 사고를 막고 있어서가 아닐까. 

혹은 아, 나는 이런 추상적 사고가 정말 쥐약이구나, 혹은 정말 멘붕이야, 혹은 더 열심히 공부해야지 , 아냐 공부란 뭐지? 등등.

이렇게 사소하지만 순간이지만 생각지도 못한 무언가를 대하게 만드는 것이, 노자 <도덕경>의 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읽으면 한없이 쉬운 듯한데, 의문을 갖고 보면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한다.  어쩜 공부할 맛이 나는 텍스트랄까.

풍우란의 말로 보자면 '극고명'^^한 이야기를 하는 세미나지만,

잘 보면 우리의 일상을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다. 

다음 시간에는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 어쩜 풍우란이 말한 '도중용'을 이야기하지 않을까 싶다.  기대기대~

 

 

 

 

댓글 3
  • 2022-04-26 05:38

    언어로 사유되지 않는 인간의 사고가 가능한가? 직관과 느낌의 깨달음, 체득은 다분히 주관적인 자기 기만 아닌가? 환경과 경험에 종속된. 뭐 대충 이런 의문을 가지고 '좋은 말이네'하고 읽고 있습니다. 

  • 2022-04-26 08:43

    저는 27장, 선자와 불선자의 오묘한 관계가 여전히 풀리지 않네요. 

    유가는 선자가 불선자와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하거나 선자가 성인이라면 불선자를 교화의 대상으로 삼잖아요. 

    근데, 여기서 노자는 이 둘의 관계를 스승이거나(이건 일반적이예요) 바탕(귀감)이라고 해요. 

    오강남은 동전의 양면이라고 표현했더군요. 그러니까 둘다 공존하는게 이치라는 거겠죠. 

    누구나 불선자가 될 수 있고 그렇게 어우러져 사는 세상을 인정하고 있지 않나. 생각보다 상당히 노자가 현실적이라는 생각까지 미치네요. ㅎㅎ 

  • 2022-04-26 14:59

    도 개념이 갖는 그 '말할 수 없음' 때문에 해석을 누가, 어떻게 하느냐의 영향이 더 크게 느껴져 말하기가 조심스러운 것도 있는 듯 합니다. 각자 나름의 도에 대한 해석을 가져가는게 중요할 듯 한데, 그렇다고 또 너무 마이웨이로만 틀어버리면 안 될 듯 하고...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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